광주 일대 의문의 바이러스. 원인 파악 중. 사상자 수 확인 불가. 신속한 대피 요망.
여러 글자가 어지럽게 떠다니는 순간 들리는 안내방송.
‘지금 방송을 들으시는 분들께서는 최대한 빨리 광주천 아래로 이동해주시기 바랍니다. 그곳에 가면 대피요원이 안전한 곳으로 안내해줄 거에요. 최대한 신속하게 이동해 주세요. 다시 한 번 알립니다. 지금 방송을 들으시는 분들께서는 ---- ’
무엇인지도 모를 것들이 날아다니는 저 길거리를 뚫고 어떻게 그곳까지 가라는 말인가. 대책 없다.
“엄마, 일어나봐, 일단 나가자. 필요한 것 좀 챙겨서 얼른 가자.”
정신 없어하는 엄마를 뒤로 한 채 가져온 가방에 그대로 필요한 것들을 쓸어 담았다. 바깥의 고성은 점점 심해지고 심장이 또 너무 뛴다.
“엄마, 다 챙겼어? 얼른 가자.”
“아니, 어디 가는데 갑자기... 엄마 저기 부엌 정리 좀 하고 나갈게”
“가면서 설명할게, 그냥 냅두고 가자 제발!”
“금방 갈게, 가서 가방 싣고 시동 걸어놔”
“알았어, 짐 줘. 전화할 테니까 바로 내려와.”
“걱정 말어!”
엄마를 두고 나와서는 안 되었다. 아니다. 엄마 혼자 두고 나온 것이 차라리 잘 한 일일 수도 있겠다. 이성이 서서히 어지럽혀지는 듯하다. 비상구 계단에서 이미 거북스러운 소리가 들려온다. 가방에 늘 지니고 다니던 잭나이프를 꺼내 쥐었다. 과연 내가 이걸 쓸 수 있는 배짱일지는 장담 못 하지만.
직감적으로 엘리베이터는 절대 안 될 것만 같다. 정말 다행인 것은 우리 집이 3층이라는 것. 아래층에 무언가 있다.
‘퍽 – 퍽 – 퍽 – 퍽 –‘ 일정한 소리
미세하게 들리는 힘겨운 숨소리
그 사이에 묻힌 내 발소리
이상하게도 내 발자국 소리를 듣고도 쳐다보지 않는다. 절반을 조심스레 내려가 본다. 어쩐지 온
신경이 고통스러워 하는 저 사람에게 쏠려 있는 것만 같다. 눈 딱 감고 달린다.
오밤중에 이게 무슨 짓인지. 잠깐 뛰었는데도 숨이 턱까지 차는 것이 이 상황이 두렵기는 한가보다. 트렁크를 열 새도 없이 뒷좌석에 가방을 던지고 시동을 걸었다. 엄마, 엄마를 어쩌지.
“엄마”
“차 뺐어? 이제 내려갈까?”
“엄마, 엘리베이터는 타지 말고 계단으로 와야 하는데 좀 위험해. 그냥 집에 있는 게 나을까?...”
말을 하는 중에도 뭐가 맞는 선택인지 너무 혼란스럽다. 내려오다 무슨 일 생기면 어떡하지.
“엄마, 내가 나가서 상황 보고 다시 올게. 근처 경찰서 다녀올 테니까 잠깐만 기다려. 문 꽉 잠그고 절대 나오지마. 알았지?”
“알았어, 조심히 다녀와. 전화 꼭 하고..”
“응, 끊어, 문 다 잠그고 있어.”
근처 경찰서로 가 봐야겠다. 푸르스름한 새벽 기운 아래 흩뿌려진 뻘건 자욱들. 가쁜 숨이 쉽게 가라앉지가 않는다. 배터리도 얼마 안 남았다. 돌겠네.
“이검사, 나 집에 내려왔는데 일이 좀 생겼어. JK바이러스인가, 하여간 난장판에 대피소까지 이야기하는 것 보면 보통 일은 아닌 것 같아. 거기는 괜찮아?... 부탁인데 한 번 알아보고 전화 좀 해줘. 최대한 빨리 부탁할게. 최대한 빨리.”
끼익 –--
도로 한 복판에 아까 그 광경이다. 마치 눈 앞에 한 사람밖에 안 보이는 것처럼 온 힘을 다해, 일정한 간격으로 가격한다. 브레이크 마찰음에도 불구하고 눈길 한 번 주지 않는다. 미친 것 같다 다들. 파출소, 얼른 파출소.
미치고 팔짝 뛸 노릇이다. 파출소 안에 여러 명이 널브러져 있다. 미동이 없는 것을 보아 내가 그들에게 답을 들을 수는 없을 것 같다. 엄마, 엄마 먼저 데리러 가야겠다.
제발, 제발 아무 일도 없어라. 제발. 살려 주세요, 제발.
쾅------------- 끼이ㅣㅣㅣㅣㅣㅇㅣ익---------------------
눈 깜짝할 사이에 범퍼 위로 누군가 뛰어들었다. 이 짧은 몇 시간 사이에 생명이 2분의 1로 단축된 것 같다. 죄송하지만 엄마를 데리러 가야 한다.
쾅 쾅 쾅 쾅 쾅 쾅 쾅 --------
얼른 가야 하는데, 이 사람 눈이 이상하다. 차에서 떨어지지도 않을뿐더러 눈이 진짜 이상하다. 눈을 맞춘 것뿐인데 온몸에 소름이 돋는다. 굳는 것도 같다. 메두사가 이런 눈깔이었을까. 그만 좀 두드려라, 제발.
눈 딱 감고 핸들을 꺾는 순간 이번에는 웬 여자가 뛰어들어 앞을 막는다. 급하게 문을 두드리는 여자. 백미러로 보이는 벌떡 일어나 달리려 하는 눈 돌아간 아저씨. 일단 차 문을 연다.
“아저씨, 빨리 가요. 빨리요. 잡히면 죽어요. 빨리 가요, 제발, 제발요.”
미친 속도로 쫓아오는 남자가 보인다. 일단 달려야 살 것 같다.
“광주천으로 가요. 거기에 대피소가 있대요.”
“저도 아까 들었어요, 그런데 집에 어머니가 계셔서 모시고 가야 해요.”
“안돼요. 지금 천지가 저런 사람들이 깔렸는데 아저씨도 죽고 싶어요? 일단 광주천으로 가요. 꺄아아ㅏㅏㅏㅏㅏ악”
여자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또 어디선가 뛰어든 사람. 한 두명이 아니다. 뒤에도, 옆에도, 앞에도 사방이 메두사 눈깔들이다. 내 본능이 액셀을 밟는다.
“엄마, 엄마. 무슨 일 없어?”
“응, 괜찮아. 경찰서에서는 뭐래? 무슨 일 인거야? 아들은 괜찮은 거지?”
“어,, 나 괜찮은데, 엄마, 무슨 병이 퍼져서 밖으로 나오면 안 된대. 절대로 밖으로 나오지마. 내가 지금 엄마 모시러 가야 하는데, 가고 싶은데, 나 지금 갈 수가 없을 것 같아. 엄마, 진짜 미안해… 내가 금방 갈 테니까 집 밖으로 절대 나오지 말고 있어. 집에 먹을 건 충분해?”
“엄마 걱정하지 말고, 너부터 조심해… 엄마 집에서 기다리고 있을 테니까 울지 말고 몸조심해. 응? 문단속 다 했고 먹을 것도 많아. 그러니까 걱정하지 말아. 알았지?”
“알았어 엄마. 조심하고 있어, 나 금방 갈게. 알았지?”
“ …. “
끊겼다. 배터리가 하필.
“아저씨, 지금 울 때가 아닌데. 더 밟아요.”
도착하니 다리 밑에 서 있는 대피 요원이 보인다. 무지막지하게 달려가는 저 여자. 태워줬더니 나를 팽개치고 달려간다.
“이쪽으로 오세요.”
“어디로 가는 거에요?”
대답도 안 하고 빠른 걸음으로 성큼성큼 걸어간다. 멈춰선 곳에 보이는 거대한 문. 태어나서 본 문 중에 제일 크다. 냇가를 가로지르는 다리의 한 부분에 설치되어 있는 큰 문은 보는 것만으로도 위압감이 들었다. 문을 여는 요원 틈으로 길고 어두운 통로가 드러난다. 끝이 없어 보이는 통로 속으로 들어가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