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작에게 약을 부탁하고 의사가 와서 영양실조라는 과격한 진료를 내리고 몸 조심하고 약 꼭 챙기라는 말과 함께 미음을 먹은 지도 어느덧 일주일이 지났다.
“ 저 공녀님 기상하셨어요?"
"응 “
“ 세수하실 물을 준비할까요? ”
평소에는 찾아오기는커녕 눈치보며 피해다니던 사용인들이 하나 둘 말을 걸며 나를 챙기는 척 하는 가증스러운 모습은 꼴보기 싫었지만
"됐어 어차피 나갈 일도 없고 “
“ 그래도... 오후에 손님이 오신다는 전령을 받았는데요... ”
“ 손님? ”
“ 네... 아젤란 공녀님의 약혼자가 오후에 찾아오신다고... ”
아젤란의 약혼자? 누구더라... 적어도 클레라의 기억속에는 이름도 기억 나지 않는 인물이었다.
“ 근데, 내가 뭐 꽃 들고가서 공작가를 찾아오신 걸 환영합니다 뭐 이런 거라도 해줘야해? ”
“ 그...건 아니지만 그래도 공작부인이 쓰러지시고 소공작님과 공작님은 자리를 비우셨잖아요 적어도 지금 공작가에서 손님을 맞이하실 분은 공녀님 밖엔... ”
뻔뻔한 건지, 의도한 건지 내가 영양실조 판단을 받기 전 소공작과 공작은 각각 영지와 황궁으로 갔고 공작부인은 기다렸다는 듯 나의 병에 쓰러졌다는 이야기가 들려왔다.
"됐어, 내가 아젤란의 약혼자를 왜 봐? 아젤란의 약혼자면 공작가 안에서는 돌아다닐 수 있잖아 “
“ 하지만... 아젤란 공녀님이 계속 우셔서 꼴이 말이 아니래요... ”
기분이 나쁘다고 대놓고 들어내도 끝까지 제 할 말을 하는 시녀에게 박수를 치고 싶을 정도의 당당함이었다.
“ 하, 공작가인데 공작도 없고 소공작도 없고 공작부인도 쓰러졌는데 왜 찾아오는거야? "
보통은 주인이 없는 집에 문뜩 찾아오는 건 무례한 거 아닌가 하긴 공녀라던지 꽤 높은 귀족으로 환생한 적이 드물어서 기억도 잘 나지 않지만
“ 공녀님... 그래도 황궁에서 오시는 분인데 아무도 마중 안 나가면 상당히 무례하단 소리 들으실 듯 싶어요 ”
아젤란의 약혼자가 황궁 사람이야? 뭐 황태자 그런 사람은 아니겠지, 데드플래그 꽂은 느낌이 팍 드는데 설마
“ 알았어, 씻을게 물 받아줘 ”
***
“ 제국의 빛 제 2 황자님을 뵙습니다. ”
“ 으음... 그대는? ”
밝은 금발에 적안을 가진 2 황자였다. 아젤란도 꽤 예쁘긴 했는데 여자를 넘어서는 아름다운 선을 가진 남성이었다.
“ 라메디아 드 클라레입니다. 아젤란의 언니죠 ”
“ 아아- 그 소문의 라메디아의 ? ”
사람 면전에 대놓고 라메디아의라니 무슨 소리일까
“ 사교계에 나간 적이 드문데 저를 아시나봅니다? "
싱긋 웃어주었다. 내가 몇 백년 살았는데 저런 잔챙이 같은 애송이의 도발에 넘아가 줄 생각은 추호도 없다
“ 기분 나빴나보군? ”
“ 설마 검도 안 마주쳤는데 검날이 부러지겠습니까? ”
내가 아무짓도 안 했는데 설마 저런 말이 돌까 싶은 뜻을 담은 말이었다.
“ 말 수가 적고 밖의 활동을 안 한다 들었는데 기사나 쓸 법한 저급한 표현을 쓰다니 기대 이상이군 공녀 ”
실수했다. 저번 생에서 너무 자주 쓰던 기사식 표현인데 그걸 알아채다니 예의만 없는 줄 알았는데 눈치는 꽤 빠른 모양이네 아젤란과 다르게
“ 제가 이래저래 검에 관해서는 아는게 많죠. 그게 기사든, 상대의 입을 다물게 하는 기술이든 ”
한 마디로 입을 강제로 다물고 싶지 않으면 닥치라는 말인데 이것도 알아먹을까 싶었다.
“ 푸핫 공녀는 듣던 것 보다 재밌는 영애구려 ”
보통 닥치라고 돌려 말하는 사람보도 재밌다...? 는 표현은 쓰지 않는데
“ 실례가 많았군, 아젤란과 약혼한지 3년이 지났는데 그녀의 언니는 처음보거든 ”
“ 저런, 저는 제 인생에서 2황자님을 처음 뵙습니다만 ”
아까 재밌다는 말이 거짓은 아니었는지 어린아이가 흥미로운 장난감을 발견한 것처럼 기분 나쁘지 않을 만큼 킄킄거리던 2황자는 이내 다음 또 보자는 말과 함께 아젤란의 방으로 올라갔다.
“ 아 이번이나 저번이나 황궁 새끼들은 하나같이 재수가 없냐 ”
대충 중얼거린 나는 방으로 올라가 저번 생을 떠올렸다.
***
서왕국의 최고의 기사
그것이 내 저번 생의 별칭이었다.
여자였지만 꽤 큰 키에 훈련을 많이 해서 몸 전체에 잡힌 근육 흔한 전쟁으로 인해 곧곧에 있는 흉터 그리고 짧은 머리카락
보통은 아 남자다 생각하지만
서왕국을 빼놓고 모든 나라를 통일한 루시티아 제국이 계속 하여 넘보고 사막과 바다와 여러 혹독한 환경을 접하고 있어 이민족과 마물들 흑마법사들의 등장이 흔하여 위태위태 하던 곳
그 서왕국을 제국과 맞먹게 강하게 만든 서왕국의 최고의 기사
아몬
통칭 악마라고도 불리며 제국과 이민족 그리고 마물, 흑마법사들을 떨게 만들었던 미친 기사. 한 번 마주친 적은 기어서도 살아 돌아가지 못하게 한다해서 불려졌다.
애시당초 첫 번째 환생이 검사였고 이래저래 검에 관심도 많았으며 평민으로 환생하여 용병과 붙어먹고 자랐으니 자연스레 세졌다.
그러다 웬 높으신 분을 임무중에 구하게 되었는데 그 기회로 왕국 기사단에 스카웃 되어 4년 만에 최연소 왕국 제 2 기사단 단장에 올랐다.
아 이제와서 생각하니 좀 오글거리네 너무 열심히 살았어, 좀 쉬엄쉬엄 살아도 되는데 뭣하러
나를 믿고 의지하는 몸 아픈 언니가 좋았다.
평민임에도 나를 존경하던 왕국 제 2 기사단 단원들
서스름없이 대해주던 왕태자 그냥 그들 자체가 좋았다.
그리고 마지막은 비참했다. 믿었던 왕국 놈들에게 복부에 칼이 찔린 채로 과다출혈로 사망이라니, 아무리 죽고 죽어도 익숙해지지 않는다
“ 악마새끼 그렇게 칼에 찔리고도 목숨이 붙어있다니 징하구나 ”
“ 커헉... 훅... 태자... 전하께서... 너희를 벌 하실...게다 ”
“ 뭐래 이 새끼가 미쳤나, 왕태자? 걱정 마 그 새끼도 네 뒤를 따라가게 해줄게 ”
그게 내 전삶의 마지막 기억. 그러고 보니 매일 기침하던 언니는 괜찮을까. 내가 죽어서 기사단 애들은 걱정하지 않을까. 왕태자 전하는 나를 죽이던 1기사단 새끼들에게 당하셨을까.
괜한 걱정이다 어짜피 내가 그들을 걱정해봤자 바꿀 수 있는 것도 뭣도 없으니 적당히, 조용히 이번 삶은 그리 살고싶다.
이미 깽판을 쳤지만 이제부터라도 입 다물고 반항하지 않으면 일주일이 지나도 없어지지 않는 내 아몬으로써 삶의 고통을 이기진 않을까
괜히스레 신이 미워지는 그런 날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