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애원에 있으면서, 우리는 보육교사 몰래 공중전화로 엄마와 통화를 하고 편지를 주고 받았다. 초 5학년 때까지 폰이 없었던 터라 엄마와 전화를 하고 싶어도 문자를 하고 싶어도 마음대로 하지 못해 늘 아쉬었는데 언니가 1541 누르고 공중전화로 엄마 번호 눌려서 전화하면 엄마가 받는다는 언니의 말에 학원 마치고 미애원으로 갈 때 공중전화기를 찾아 늘 전화 하곤했다. 받지 않을 때면 속상한 마음을 안고 다음 날에 하기도 했다. 엄마가 전화를 받을 때면 학교 갔다가 미애원에 가는 길이라며, 엄만 지금 뭐하냐는 사소한 이야기에도 우리 세 명은 즐거웠고 좋았다. 때론 번호를 자기가 누르겠다며 나와 소진이와 싸워 엄마가 전화를 받았는데도 소진이가 아무 번호를 막 눌러 전화가 끊긴 바람에 둘이 크게 싸우기도 했다. 엄마와 편지를 주고 받을때면, 늘 편지지는 뜯어져 있었다. 사무실에서 엄마가 우리에게 보내온 편지를 먼저 뜯어서 읽고 우리에게 준 것이었다. 무슨 이유에서인지는 모르겠지만, 편지를 뜯어서 줬다는 것에 대해서는 울화통이 아직도 터진다.
무슨 내용을 보고 싶었던 건지, 항상 편지를 뜯은 상태로 줬던 미애원은 늘 그렇듯 시치미를 뗐고, 언니가 왜 맨날 편지를 뜯어서 주냐고 대들었지만, 미애원은 말도 안되는 이유만 내놓을 뿐, 아무런 피해조치도 해 주지 않았다. 이런 일이 있는 뒤론, 우리는 엄마와 편지를 주고 받지 않았고, 엄마와 공중전화로 통화하지 말라고도 했지만, 우리는 결코 그 말을 듣지 않았다. 학년이 올라가면서 상황도 점점 바뀌게 되면서 언니와 소진이 그리고 나는 금요일만 되면 엄마에게로 갔다. 매일 하는 공부도 하기 싫을 뿐더러, 맛없는 밥 또한 먹기도 싫었고, 항상 꼭두각시처럼 생활해야 한다는 게 너무 싫어서 우리는 항상 몰래 엄마에게로 가곤 했다. 그럴때면 엄마를 본다는 생각에 설레기도 했지만, 보육교사께 들키면 어쩌지 하는 생각에 조바심과 두려움도 났다. 하지만 미애원을 빠져나오는 순간부터 답답했던 마음이 뻥~ 뚤렸고, 기분은 더 상쾌해졌다. 집은 괴정이었다. 부산역을 거쳐 걸어서 가도 될 정도의 거리로, 엄마가 언니한테 길을 가리쳐 주어 언니랑 시간이 되면 같이 오라는 엄마의 말이었다. 집에는 늘 맛있는 햄 김치찌개가 있었고, 우리는 그 김치찌개를 먹고 놀라면서 이렇게 맛있는 찌개가 있나 하면서 먹기도 했었다. 이때까지만 해도 모든 김치찌개가 엄마가 해 주는 맛과 똑같을 줄 알았지만, 미애원 김치찌개를 보고 먹는 순간, 그 생각은 와르르 무너졌다.
우리는 그 집에서 맘 편히 놀고 티비도 보면서 폰을 하기도 했다. 때론 언니와 그리고 소진이와 싸워 분위기가 냉탕 이었지만, 분위기는 금방 풀렸다. 그 집에는 새끼 고양이 한 마리가 있었다. 이름은 길이..
엄마가 말하기를, 그 고양이가 길가에 버려진 상태로 상처도 많고 덜덜 떨고 있었다고 한다. 마음이 약했던 엄만 그냥 지나치기가 좀 그래서 그 고양이를 주워 동물병원에 가 주사를 맞고 우리 집에 키우기로 한 것 같았다. 이미 고양이 사료와 집이 있었고, 우리 집은 가난했지만 길이를 키울 능력 또한 되지 않았지만, 우리는 길이를 마음으로 키웠다.
처음에는 그 작은 고양이가 너무 무서워 호들갑을 떨면서 오도방정 거렸다. 그러면서도 길이가 귀여워 사진을 찍었고 우리는 길이와 친해지기를 2년이 걸렸다. 맨날 야옹 거렸던 길이는 지금은 없지만, 아직도 길이가 생각나곤 한다. 늘 옆에 있을 것만 같았던 길이가 없으니 왠지 모르게 마음 한켠이 찡해진다.
길이가 다시 우리에게로 온다면 얼마나 좋을까 싶지만 길이가 온다면 우리는 나가는 돈이 더 많아지게 되겠지.. 길아, 많은 것을 해주지 못 해 미안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