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7살이 되고부터 미애원에서의 생활이 어느 정도 적응이 돼서 언니는 여자부 방으로 올라갔다.
유치부방은 이제 동생과 나, 그리고 다른 동생들과 같이 생활했다. 내가 7살이었던 때는 인원이 별로 없어 유치부 방은 비교적 여유있게 지냈다.
낮에 나오는 간식을 먹으면서 2~4시쯤은 낮잠을 자기도 했다.
어느 날, 간식으로 사탕이 나온다는 소식을 듣고 설레이며 사과 맛 사탕을 골랐다. 막대사탕으로 볼 따구에 넣다가 빼고를 반복하며, 다른 쪽 볼에 넣다가 빼고를 반복하며 먹었다. 구석진 자리를 좋아해서 그 자리에서 엎드리면서 사탕을 빨고 있는데,
그 순간, 사탕이 목에 걸려 당황과 함께 공포가 한꺼번에 몰려왔다.
‘캑캑’
숨이 점점 쉬기가 어려웠고, 도움을 요청할 사람도 내 주위에 있지 않아 공포가 더 컸다. 목에 커다란 이물질이 걸린 것 같은 느낌이 너무 불쾌하고, 괴로워 사탕이 빠질 때까지 캑캑 거리고 있는데 생각보다 잘되지 않자 빠질 때까지 억지로 빼내며 구역질을 해댔다.
방도 불이 꺼져 있어 주위가 어두웠는데 그 때문인지 그때 느낀 공포는 말로 설명할 수 없다.
천만다행으로, 사탕은 빠졌지만, 그 뒤로는 덩어리 진 게 너무 무서워 20살이 된 지금도 작은 덩어리조차 잘 먹지 못한다.
아직까지도 그때의 그 공포가 그대로 느껴져 숨이 턱 막힌다. 만약, 그때 사탕이 목에 걸린 채로 계속 캑캑 거렸다면 난 어떻게 됐을까를 생각하니 소름이 끼친다.
그로부터 약 두 달 뒤, 내게 또 다른 일이 일어났다. 점심을 먹고 난 뒤, 유치부 방에서 동생과 같이 놀고 있었다.
밥을 먹은 게 잘못됐는지 배가 슬슬 아파져 와 화장실에 가 유아용 변기통에 앉아 변을 보기 시작했다.
아기 때부터 가지고 있었던 변비라 아무리 힘을 주어도 나오지 않았다. 혼자 끙끙대고 있는데 우습게도 잠이 점점 쏟아져 왔다.
머리로는 자면 안 된다는 생각을 하면서도 정작 내 몸은 변기에 앉아 꾸벅꾸벅 졸고 있었다.
“소영아, 소영아 박소영!!’
동생이 나를 부르는 소리에 스스로도 깜짝 놀라 움찔했다.
5초간의 시간이 지나고 나는 또다시 졸기 시작했다.
“소영아, 박소영!! 쌤, 영이 화장실에서 계속 자요” (여기서 영이는 동생이 나를 부를 때 하는 말)
동생이 보다못해 유치부 선생님께 말했다.
“소영아!! 소영아!!“
선생님마저도 나를 깨웠지만 도통 잠이 달아나지 않았다.
한없이 계속해서 꾸벅꾸벅 졸고 있는 그때, 결국 일이 터졌다.
“쾅!!!”
하는 동시에 나의 울음소리가 화장실에서부터 울려 퍼졌다.
머리에서인지 얼굴에서인지 어디서 나는 피인지 모를 피가 철철 흘렀다. 피 냄새가 진하게 풍겨왔을 무렵, 나는 병원에 갔다.
다행히 머리가 다친 게 아니라 이마가 째졌다.
내가 고개를 꾸벅꾸벅하며 졸고 있을 때 고개가 앞으로 가면서 그만 빨랫비누랑 부딪히면서 찢진 거 같다.
너무 아파 울고 있는 나에게 했던 말이 생각난다.
“울지마라 뚝 그쳐!! 빨리 안그치나!!”
너무 서러워 눈물이 나고 아파서 더 눈물이 났지만, 어떠한 눈물도 허락되지 않는 그곳은 나를 더 아프게만 했다..
내가 다니는 유치원에서는 웅변을 한다.
조를 지어 정해진 시나, 문구를 정해주시면서 웅변을 했다.
마지막에는 항상 “힘차게 외칩니다!!” 하면서 두 팔을 높이 들어야 했다. 나는 웅변 수업이 어찌나 싫었는지 유치원에 가기 싫을 정도였다.
웅변 선생님은 남자셨다. 키도 크셨고 덩치도 있으셨고, 목소리도 굵어 내게는 무서운 존재였다. 그런 쌤을 매주 만나야 한다니,, 내겐 청천벽력 같은 말이다.
많은 수줍음과 내성적이었던 나는 사람들이 보는 데서 말을 하기를 꺼려했고, 그랬기에 웅변을 할 땐 말 한마디도 하지 않았다. 다른 친구들이 말을 할 땐 나 혼자서만 입을 꾹 다물고 있었고,
고개를 푹 숙인 채로 머리로 내 얼굴을 가려 시야를 어둡게 했다. 이런 내 모습이 계속되다 보니 웅변 선생님도 한계에 다다르신 것 같았다.
“박소영!! 말 안 하나?? 말 못 해? 네가 무슨 벙어리야??”
그 말에 눈물이 왈칵 쏟아져 나와 아무런 대꾸도 하지 못했다. 갑자기 엄마가 생각나 더 눈물이 나왔다.
‘엄..마.. 보고 싶어..’
“울긴 왜 울어? 네가 뭘 잘못했다고, 지금 웅변할 건데 말 안 하고 입도 뻥끗 안 하면 애들 있는 앞에서 바지 벗긴다. 알았어??”
“... 네”
나는 그의 말에 울면서 말을 할 수밖에 없었다. 내 뒤에서 나무 회초리를 들고 무서운 눈으로 나에게 바지를 벗긴다며 협박하는 선생님이
정말로 나의 바지를 애들 있는 앞에서 벗길까 두려웠기에 나는 울면서, 훌쩍거리며 계속하는 것밖에 내가 살 수 있는 최선의 방법이었다.
조를 지어서 했기 때문에, 그리고 웅변 선생님을 뒤로한 채, 뒤돌아서 했기 때문에 내 앞에는 애들이었고, 내 뒤에는 웅변 선생님이라 웅변 쌤은 내가 말을 하는지 안 하는지 알 리가 없었다.
그래서 웅변 선생님은...
“얘들아, 얘 말하고 있나? 솔직하게 말해라”
“네 네”
울면서 하고 있는 나를 못 미더웠는지, 애들한테 굳이 확인까지 해가면서 나를 괴롭혔다.
다행히 그때 애들이 내가 말하고 있다고 대답해줬고, 또 진짜로 말을 했긴 했지만 내게는 지금까지도 그 웅변 선생님은 무서운 존재다.
‘지금 생각해 보니까 내가 이 일 때문에 발표를 싫어하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