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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연재 > 현대물
도시의 히어로
작가 : 황규영
작품등록일 : 2016.4.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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웃기고 신나는, 따뜻한 마음을 가진 사람.
나를 버린 도시를 구하러 돌아왔다.
이 도시의 정의는 내가 세운다.
타협은 없다.
기생충들은 모두 지옥에 처박아주마.
세상은 히어로를 원한다.
마음을 울리는 따뜻한 이야기.

김민준은 외국 연구소의 희귀질병 치료 실험 대상자였으나, 비밀 치료 실패 후에 로키산맥에 버려졌다. 산속에서 혼자만의 노력으로 질병을 극복하면서, 신체가 강화되고 오감을 넘어 육감까지 크게 향상되었다.
성장기를 연구소와 로키산맥에서 보냈던 김민준은, 자신이 누구인지 알기 위해 귀국한다.
그가 로키산맥에서 맹수로부터 구해줬던 케이티는 그를 찾기 위해...

 
도시의 히어로 26
작성일 : 16-04-11 13:23     조회 : 699     추천 : 0     분량 : 61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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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6.

 탁현경은 손님이 없어도 식당의 탁자를 열심히 닦았다.

 “우리가 밀리는 건 규모랑 때깔밖에...”

 딸랑거리는 작은 종소리에 표정을 환하게 밝히며 고개를 들었다.

 “어서 오세요.”

 남자 네 명이 가게 안으로 들어왔다.

 탁현경이 남자들의 덩치를 보고 잔뜩 기대했다.

 ‘많이 먹겠네.’

 많이 먹는 사람에게는 많이 팔 수 있다. 그렇지 않아도 손님이 없어서 아쉬워하던 참이다.

 ‘최소한 특순댓국 네 그릇. 어쩌면 찹쌀순대도 따로 시킬지 몰라. 순대전골이랑 소주도 시키면 더 좋겠다.’

 소박한 꿈을 꾸며 제일 넓은 탁자로 안내했다.

 “이쪽으로 앉으세요.”

 박두수가 식당 안을 한 번 둘러본 후, 덩치들에게 턱짓을 했다.

 덩치 하나가 뒤돌아서서 가게의 문을 잠갔다. 다른 덩치는 계산대의 전화기를 들어 선을 뽑았다. 그것만으로 모자라서 발로 밟아 부쉈다.

 탁현경이 깜짝 놀라 달려들었다.

 “왜 그러...”

 박두수의 다른 부하가 등 뒤에서 그녀를 껴안고 입을 막았다.

 “읍! 읍!”

 그녀가 소리를 내며 발버둥 쳤다.

 박두수가 말했다.

 “조용히 시켜라.”

 덩치가 제일 큰 부하가 다가가 솥뚜껑만한 주먹으로 그녀의 배를 힘껏 때렸다.

 탁현경의 허리가 꺾였다. 잠시 조용해졌다.

 곧바로 다시 발버둥 쳤다.

 “어? 이년이?”

 덩치가 다시 그녀의 배를 때렸다.

 조용해지는 건 잠깐이다. 또 몸부림쳤다.

 “으으읍!”

 박두수가 인상을 썼다.

 “제대로 안 해?”

 “제, 제대로 때렸는데 말입니다.”

 당황한 덩치가 그녀의 배를 주먹으로 샌드백 때리듯이 연달아 쳤다. 사람을 때리는 소리와 막힌 비명소리가 겹쳤다.

 “읍! 읍. 으”

 그녀는 결국 덩치의 주먹에 배를 다섯 대나 맞고서야 축 늘어졌다.

 박두수가 그걸 보며 혀를 찼다.

 “쯧쯧. 새끼. 여자를 아껴줄 줄 몰라. 어떻게 여자를 두드려 패냐? 딱 한 대로 끝냈어야지.”

 덩치가 허리를 숙였다.

 “죄송합니다. 형님. 이년이 맷집이 장난이 아닙니다.”

 주방문이 벌컥 열렸다. 그녀의 아버지 탁진호가 순대 써는 식칼을 들고 뛰어나왔다.

 “이 강도 새끼들아! 내 딸을 놔!”

 칼을 보고도 덩치 넷 중에 아무도 무서워하지 않았다.

 박두수가 말했다.

 “겨우 그걸 연장이라고. 쯧쯧. 연장이 뭔지 좀 보여줘라.”

 덩치 하나는 탁현경을 붙잡고 있다. 손이 남는 덩치 둘이 품에서 회칼을 꺼냈다. 식칼보다 기다랗고 끝은 날카로우며 날은 시퍼렇게 섰다.

 탁진호의 손에 쥔 칼이 덜덜 떨렸다.

 무서웠다. 덩치 넷이 나타나 험악한 분위기를 만들었다. 그 중 둘은 날이 시퍼런 칼을 들고 있다. 무섭지 않으면 그게 더 이상하다.

 하지만 자기 딸이 잡혀 있는데 물러날 수는 없다. 싸우다 죽더라도 아버지는 자식을 버리고 도망치지 않는다.

 탁진호가 허공에 칼을 휘저었다.

 “내 딸 놔두고 당장 꺼지라고!”

 박두수가 눈살을 살짝 찌푸렸다.

 상대가 칼에 겁을 먹어줘야 일이 쉬워진다. 하지만 탁진호는 물러나지 않았다.

 “이 집구석은 말로 좋게 해결이 안되겠구만?”

 박두수가 옆구리에 찬 회칼을 뽑았다.

 탁진호가 식칼을 콱 쥐었다.

 박두수는 탁진호에게 가지 않았다. 탁현경을 붙잡고 있는 부하에게 걸어갔다. 좁은 가게라 몇 걸음 되지도 않았다. 탁진호가 무슨 일인지 닫기도 전에, 회칼을 들어 날카로운 칼날을 탁현경의 얼굴에 댔다.

 탁진호가 깜짝 놀라 외쳤다.

 “그, 그러지 마!”

 “칼 버려.”

 탁진호가 부들부들 떨었다.

 박두수가 다시 협박했다.

 “예쁜 딸 얼굴에 줄이 쫙쫙 그어지는 거 보고 싶어? 당장 확 그냥 몇 줄 그어줄까?”

 탁진호는 더 이상 버티지 못했다. 어쩔 수 없이 식칼을 바닥에 떨어뜨렸다.

 “워, 원하는 게 뭐냐.”

 덩치 하나가 다가와 식칼을 발로 찼다. 칼이 빙글빙글 돌며 구석으로 밀려났다.

 칼이 멀어지자마자, 덩치가 발로 탁진호를 힘껏 걷어찼다.

 “이 새끼가 감히 어따 대고 연장을 들이대!”

 탁진호가 뒤로 날아가 바닥에 쓰러졌다.

 “컥!”

 박두수가 회칼을 다시 허리의 칼집에 넣으며 말했다.

 “그러게 이 가게 접으라고 할 때 접었으면 서로 좋잖아. 당신은 돈 받아서 좋고. 우리는 일 간단히 처리해서 좋고.”

 탁진호는 이들을 누가 보냈는지 깨달았다.

 “박조환이 보냈구나!”

 박조환은 이 가게와 경쟁을 하는 맞은편 대형 식당의 주인이다.

 사실 경쟁 자체가 되지 않았다. 비슷한 메뉴를 취급하는 크고 화려한 식당이 문을 연 후로, 이 식당은 손님이 크게 줄어들었다.

 박조환은 그 정도로 만족하지 않았다.

 박두수가 실실 웃었다.

 “고객의 비밀을 알려고 하지 마라. 예쁜 딸 얼굴에 그림 그리는 수가 있으니까.”

 탁진호가 이를 갈았다.

 하지만 법은 멀고 주먹은 코앞에 있다.

 탁진호가 항복했다.

 “알았다. 내 딸을 놔라. 가게 접을 테니까 놔라!”

 “어허. 내놓을 게 뭔가 더 있을 텐데?”

 박조환은 처음부터 이 가게를 망하게 하려고 맞은편에 대형 식당을 차렸다. 그런데 이 가게가 망하지 않았다. 손님이 가게를 겨우 유지할 만큼은 남았다. 음식 맛이 이쪽이 나아서다.

 “겨우 양념 하나 때문에 이런 짓을 한단 말이냐!”

 “내가 들은 소문으로는, 순대 체인점을 만들려면 이집 양념의 비밀이 필요하다던데. 아. 우리 고객 이야기는 절대로 아니야. 애들아. 그렇지?”

 “예. 형님.”

 탁진호에게는 다른 방법이 없다. 딸이 적에게 붙잡혀 있다.

 “알았다. 가게를 접고 양념의 비밀도 넘기겠다.”

 탁현경은 배를 너무 많이 맞아서 몸에 힘이 없다. 그래도 억지로 소리를 쥐어짜냈다.

 “아빠. 안...”

 “괜찮아. 다른 데 가서 다시 장사하면 돼.”

 가게가 중요하고 비전 양념도 중요하지만, 딸보다 중요하지는 않다.

 박두수가 말했다.

 “가게부터 팔아버려. 내일 아침에 부동산에 내놓으면 당장 살 사람이 나올 거야. 양념의 비밀도 그 사람에게 넘기고.”

 탁진호가 분노를 담아 소리를 질렀다.

 “알았으니까 내 딸에게서 손 떼라고!”

 박두수가 음흉하게 웃었다.

 “인질이다.”

 “뭐?”

 “네가 마음을 바꿔서 경찰에 신고라도 하면 어떻게 하라는 거냐? 인질로 데리고 있다가, 내일 일 다 처리하고 나면 풀어주마. 빨리 처리할수록 딸도 빨리 풀려날 거야. 하하하.”

 탁진호는 탁현경이 끌려가도록 놔둘 수가 없다. 손에 칼도 없지만, 무작정 탁현경을 잡고 있는 덩치에게 달려들었다.

 “이 새끼들아! 안... 컥!”

 덩치 하나가 재빨리 끼어들어서 탁진호를 걷어찼다. 쓰러진 탁진호를 다른 덩치들이 두드려 팼다.

 박두수가 그걸 보며 말했다.

 “얼굴이랑 손은 건드리지 마라. 내일 거래 하려면 겉은 멀쩡해 보여야지.”

 덩치들이 탁진호를 때리며 외쳤다.

 “알겠습니다. 형님.”

 탁현경은 덩치에게 붙잡힌 채 저항하려고 했다. 하지만 몸이 말을 듣지 않았다. 눈에서 눈물이 흘러내렸다.

 박두수가 구타하는 덩치들을 구경하다가 지시했다.

 “그쯤하면 알아들었을 거다. 가자.”

 덩치들이 이번에는 주방으로 들어갔다. 주방 뒤쪽에 골목으로 통하는 쪽문이 있다.

 덩치 하나가 그 문을 열었다. 문 바로 밖에는 봉고차가 한 대 세워져 있었다.

 먼저 나간 덩치가 봉고차 문을 열었다. 다른 덩치가 탁현경을 봉고차 안에 던져 넣고 운전석으로 올라갔다.

 박두수가 조수석에 앉으며 말했다.

 “이따가 데리고 놀 때 사진 확실히 찍어라. 화끈하게 나와야 신고를 못 하는 거 알지?”

 “장사 한두 번 하는 것도 아닌데 걱정 마십시오. 비디오로 화끈하게 찍겠습니다. 하하하. 그런데 첫 타는 누가...”

 박두수가 입술을 핥았다.

 “흐흐흐. 때깔을 봐라. 당연히 내가 먼저 시식해야지.”

 봉고차가 출발했다.

 탁현경의 눈에서 눈물이 멈추지 않았다.

 ‘내가 왜 이런 꼴을 당해야 하지?’

 그녀는 큰 죄 짓지 않고 열심히 살았다. 한창 놀기 좋아할 새내기 대학생이지만 놀러갈 시간에 가게 일을 도왔다.

 그녀의 아버지는 예전에 가게가 잘 될 때는 조금씩이지만 남을 돕기도 했다.

 그렇게 살았는데 이런 꼴을 당했다.

 ‘세상은, 결국 이런 거야? 정의는 없는 거야? 나쁜 놈이 이기는 거야? 너무해.’

 그녀가 아픈 배도 잊고 외쳤다.

 “너무해!”

 배에 힘이 들어가지 않아서 목소리가 너무 작게 나왔다. 억울한 마음을 만분의 일도 표현하지 못했다.

 박두수가 낮게 웃었다.

 “흐흐흐. 목소리도 좋고. 어서 빨리 안아보고 싶네.”

 탁현경이 욕을 했다.

 “개새끼!”

 그녀 입장에서는 엄청나게 심한 욕이다. 하지만 박두수에게는 좋은 자극일 뿐이다.

 차가 천천히 골목을 빠져나가 큰 길로 들어서려고 했다.

 박두수가 운전석의 덩치에게 말했다.

 “야. 빨리 가자. 예쁜이에게 욕을 먹었더니 후끈 달아올...”

 그의 눈에 허연 물체가 날아오는 게 보였다. 뭔지 알아보지도 못했다.

 인도 위에 세워져 있던 식당 광고판이 수평으로 빙글빙글 회전하며 날아왔다. 박두수 일당이 미처 반응하기도 전에, 봉고차의 자동차용 강화유리에 꽂혔다.

 운전석의 덩치가 놀라 소리를 질렀다.

 “으헉!”

 앞유리 전체에 하얀 금이 쫙 퍼졌다. 광고판이 유리를 반쯤 파고 들었다. 모서리가 박두수의 코앞에서 멈췄다.

 차체가 충격으로 크게 흔들렸다.

 박두수가 기겁을 했다.

 “뭐, 뭐야!”

 운전석의 덩치가 급하게 말했다.

 “어떤 새끼가 길 건너편에서 이걸 던졌습니다!”

 “아, 씨발. 다 내려! 내려서 조져!”

 덩치 넷이 봉고차에서 우르르 내렸다.

 길 건너편에 김민준이 서 있었다.

 박두수가 김민준을 발견하고, 어이가 없어서 웃음을 터트렸다.

 “하. 이거 뭔 미친 새끼야?”

 

 김민준은 버스를 타고 박두수의 부하 둘을 쫓아갔다가 순대라는 말에 그들을 덮쳤다. 두 놈의 팔을 부러뜨려가면서 박두수 일당이 일을 저지를 시간과 장소, 방법을 알아냈다.

 상황을 파악하자마자, 가면을 옷 속에 감추고 택시를 타고 돌아왔다. 뒤쪽 길에서 내려 식당 옆 골목을 통과하면서 가면을 꺼내 썼다.

 그렇게, 봉고차가 막 출발하려는 순간에 겨우 도착했다.

 차가 출발하면 쫓기 어려워진다. 김민준은 더 생각할 것도 없이 곁에 세워져 있던 식당 광고판을 들었다.

 ‘너무 세게 던지면 그 아가씨까지 다칠 거야.’

 그가 가진 지식으로 자동차의 안전유리의 강도를 계산했다. 손에 쥔 광고판의 재질도 고려했다.

 경험하지 못한 지식을 함부로 적용하면 오차를 피하기 어렵다. 그는 아직 자동차의 안전유리를 깨보지 못했다. 계산이 잘못됐을 때 탁현경이 다치지 않으려면 중간에 완충장치가 필요하다.

 그래서 박두수가 있는 조수석을 향해 광고판을 던졌다.

 결과는 성공적이다.

 덩치 넷이 차에서 내렸다.

 

 박두수는 어이가 없었다.

 “길 건너편에 저 새끼 지금 얼굴에 쓴 게 뭐냐?”

 “애들 놀 때 쓰는 가면인데요?”

 

 김민준은 아까 길에서 주운 가면을 쓰고 있다. 턱 부분은 떨어져나가고 없는 가면이다.

 가면만 쓴 게 아니다. 골목을 통과할 때 버려진 보자기도 하나 주워 몸에 둘렀다.

 보자기는 탁현경 때문에 사용했다. 그녀가 그의 옷을 기억할까봐 한 행동이다.

 정체를 들켜도 된다면 가면을 쓰지 않는다. 하지만 오동태나 도상태처럼 이미 저질러놓은 일들이 마음에 걸렸다.

 그래서 선택한 위장 도구가 가면과 보자기다.

 

 박두수가 비웃었다.

 “얼굴에 가면에, 망토까지 둘렀네? 지가 무슨 영화에 나오는 히어로라도 되는 줄 아나?”

 “미친 새끼인가 봅니다.”

 “미친 새끼는 몽둥이가 약이지. 짭새 오기 전에 건너가서 잡아다가 우리 애들 대기타던 골목으로 해서 그 뒷길로 끌고 가라. 차 몰고 갈 테니까 거기서 태워.”

 덩치 둘이 박두수에게 허리를 구십 도로 꺾으며 대답했다.

 “예. 형님!”

 

 탁현경이 차안에서 겨우 몸을 일으켰다.

 부서진 유리창을 보며 희망을 가졌다.

 ‘누가 날 구해주러 온 걸까?’

 너무 심하게 맞아서 도망칠 힘이 없다. 하지만 얼굴은 멀쩡하다. 시선을 앞으로 향했다.

 반쯤 떨어져나간 유리 너머로 가면을 쓰고 몸에 보자기를 두른 남자가 보였다.

 ‘변태?’

 절망했다.

 

 김민준은 덩치 둘이 박두수에게 인사하려고 허리를 꺾는 순간 움직였다.

 차가 달리는 도로는 위험하다.

 상관없다.

 달렸다. 빨랐다. 순식간에 도로의 절반을 건넜다.

 

 박두수의 눈이 커졌다.

 

 반대편 차선에서 네온과 LED로 치장한 승용차 한 대가 그를 보지 못하고 달려왔다. 과속차량이다.

 상관없다.

 달리면서 아스팔트를 박찼다. 차보다 높이 솟아올랐다. 발밑으로 과속차량이 스쳐 지나갔다.

 아스팔트 위를 날았다.

 

 어깨에 두른 보자기가 망토처럼 펄럭였다.

 

 1권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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