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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연재 > 현대물
도시의 히어로
작가 : 황규영
작품등록일 : 2016.4.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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웃기고 신나는, 따뜻한 마음을 가진 사람.
나를 버린 도시를 구하러 돌아왔다.
이 도시의 정의는 내가 세운다.
타협은 없다.
기생충들은 모두 지옥에 처박아주마.
세상은 히어로를 원한다.
마음을 울리는 따뜻한 이야기.

김민준은 외국 연구소의 희귀질병 치료 실험 대상자였으나, 비밀 치료 실패 후에 로키산맥에 버려졌다. 산속에서 혼자만의 노력으로 질병을 극복하면서, 신체가 강화되고 오감을 넘어 육감까지 크게 향상되었다.
성장기를 연구소와 로키산맥에서 보냈던 김민준은, 자신이 누구인지 알기 위해 귀국한다.
그가 로키산맥에서 맹수로부터 구해줬던 케이티는 그를 찾기 위해...

 
도시의 히어로 25
작성일 : 16-04-11 13:22     조회 : 774     추천 : 0     분량 : 84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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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5.

 김민준에게 순댓국은 특별한 의미가 있다.

 로키산맥에서 돌아온 후, 가장 먼저 먹은 문명세계의 음식은 햄버거다. 하지만 이미나가 준 어린이용 햄버거 반 조각은 정식 식사는 아니었다. 양이 너무 적었다.

 제대로 된 식사로 처음 먹은 것이 순댓국이다. 그 맛에 감동했고, 거기서 느낀 감칠맛을 잊지 않았다. 김밥에 맞는 감칠맛을 개발할 때도 처음 먹은 순댓국이 큰 도움을 주었다.

 그래서 간간이 그 순댓국집을 찾았다.

 순댓국집 딸 탁현경이 아는 체를 했다.

 “오셨어요? 순댓국 드실 거죠?”

 김민준이 의자에 앉으며 평소보다 조금 큰 목소리로 주문했다.

 “특으로 주십시오.”

 특은 천 원이 더 비싸다. 김밥이 잘 팔리자 씀씀이가 천 원어치 커졌다.

 “어머. 오늘은 어쩐 일이세요? 그동안은 보통만 드시더니.”

 김민준이 씩 웃었다.

 탁현경이 고개를 살짝 갸웃거렸다.

 ‘웃음에서 돈 좀 만진 사람의 여유가 보이네? 그것도 저렇게 허름한 옷을 입고...’

 이해가 안 갔지만, 따져 물을 일은 아니다. 자기가 잘못 봤다고 생각하고 넘어갔다.

 “알았어요. 금방 드릴게요.”

 김민준은 원래 많이 먹는다. 선식에서 성장에 필요한 영양을 충분히 얻으려면 많이 먹는 방법밖에 없었다.

 그런 그동안 순댓국을 보통으로 먹은 건 돈을 아끼기 위해서였다.

 이제는 상황이 변했다.

 ‘부자가 된 기분이 이런 거군.’

 주머니를 만지다가, 시계를 건드렸다. 도상태를 잡고 획득한 시계다.

 김민준이 탁현경에게 물었다.

 “시계를 팔려면 어디로 가야 합니까?”

 이 시계가 정말 팔 수 있는 물건인지는 아직 모른다. 지식만으로는 구분이 어렵다. 경험이 필요하다.

 탁현경이 멈칫했다.

 김민준은 이 식당에 오면 항상 순댓국을 한 그릇만 먹었다. 매번 똑같은 허름한 옷을 입고 순댓국만 먹고 가던 사람이, 오늘은 천 원 더 비싼 걸 시키면서 시계를 팔 곳을 묻는다.

 ‘돈이 없어서, 시계를 팔아서라도 순대국을 특으로 먹고 싶어 하는구나.’

 가슴이 조금 아팠다. 순댓국 정도는 공짜로 대접하고 싶다.

 하지만 그녀의 사정도 공짜 밥을 줄 만큼 좋지는 않다.

 “전당포로 가야겠죠?”

 “역시 전당포군요. 그럼 이 동네에 전당포는 어디 있습니까?”

 “글쎄요? 그건 저도 잘...”

 “알겠습니다.”

 어차피 찾아보면 될 일이다.

 잠시 기다리자 탁현경이 순댓국을 가져왔다.

 김민준이 순댓국을 보고 탁현경을 다시 쳐다보았다.

 다른 사람이 특순댓국을 먹는 걸 보았었기에, 그 양이 어느 정도인지 안다.

 지금 나온 건 건더기의 양이 특순댓국보다 훨씬 많았다. 굳이 명칭을 붙이자면 특특순댓국이다.

 공기밥도 하나 더 나왔다. 두 개다.

 이만하면 순댓국 두 그릇 분량이다.

 탁현경이 속으로 말했다.

 ‘내가 도와줄 수 있는 건 겨우 이 정도네요.’

 김민준이 그녀를 보며 환히 웃었다.

 “아가씨는 좋은 사람이군요?”

 탁현경이 무안해져서 얼굴을 살짝 붉혔다.

 “많이 드시고 힘내세요. 세상은 아직 살만하잖아요?”

  * * *

 연쇄살인범 오동태 사건은 사회적으로 큰 관심을 끌었다.

 그 사건은 경찰이 범인을 잡아놓은 상태로 시작한 사건이다. 마약 쪽은 아직 수사 중이라 공식 발표를 하지 않았지만, 연쇄살인 건만 가지고도 경찰을 홍보하기에 딱 좋다.

 경찰에게 좋은 사건은 검찰에게도 좋다. 검찰이라고 구경만 하고 있을 리 없다.

 검사는 경찰의 수사를 지휘할 권한을 가지고 있다.

 

 강정진이 조사실 밖에서 강력1팀장 안상준에게 물었다.

 “도상태가 왜 아직까지 여기 있습니까?”

 경찰이 피의자를 체포하면, 구속영장을 받는다 해도 열흘 이내에 검찰에 넘겨야 한다. 검찰은 넘겨받은 피의자를 보통 구치소에 가둔다.

 “구치소에 자리가 꽉 찼댄다. 당분간 우리 유치장에 놔두기로 했다.”

 “검사는 또 왜 여기까지 온 겁니까?”

 검사는 발로 뛰는 자리가 아니다.

 “자기가 와서 신문하겠다는데 오지 말라고 할 수도 없고. 어쩌겠냐?”

 “안 바쁘답니까?”

 “이 사건에 기대가 많나보지.”

 “우리에게 시킬 일이 많겠지요.”

 

 검사 이태진이 취조실 문을 벌컥 열고 나왔다. 넥타이를 풀며 씩씩댔다.

 “아. 꼴통 새끼. 아주 그냥 모르쇠네. 저걸 그냥 확 십 년짜리로 처박아 버릴까보다.”

 밖에 있던 강정진이 피식 웃었다.

 마약 단순 소지 및 투약 혐의로 십 년 형에 처하는 건 어렵다. 검사가 무리해서 구형해도 판사가 십 년이나 판결해주지를 않는다.

 이태진의 눈에 강정진의 웃는 모습이 잡혔다.

 따지듯 물었다.

 “강 형사. 뭐가 우습나?”

 강정진은 오늘 수사팀에 합류했다.

 잘 알지도 못하는 사이에 대놓고 반말을 하는 게 거슬렸지만, 경찰에게 말이 짧은 검사를 처음 보는 것도 아니다. 순경에게까지 존댓말을 써주는 검사가 있는 반면에, 정년퇴직이 멀지 않은 경찰에게 반말을 던지는 검사도 있다.

 어쨌든 이태진은 강정진보다 나이가 한 살 많다. 그냥 그러려니 했다.

 “아무것도 아닙니다.”

 “웃은 거 맞지? 지금 대한민국 검사가 수사하는 걸 보고 웃었지?”

 강력1팀장 안상준이 끼어들었다.

 “검사님. 진정하시죠.”

 “안 팀장. 내가 지금 진정하게 됐습니까? 안 그래도 저 꼴통 새끼 때문에 열 받아 미치겠는데 이젠 경찰까지 날 건드리네. 아후.”

 “이 친구가 원래 잘 웃습니다. 검사님 보고 웃은 거 아닙니다.”

 “확실해요?”

 “그럼요.”

 이태진이 강정진을 한 번 째려보았다.

 그는 여기 오기 전에 강정진에 대해 들은 게 있다. 강정진이 승진을 포기한 사람이라는 걸 안다.

 아무리 경찰에 대한 검사의 영향력이 강해도, 승진을 포기한 공무원에게는 약발이 덜 먹힌다. 그 공무원이 비리가 없다면 더 그렇다.

 방법이 없는 건 아니다. 그럴 때는 주변 사람을 괴롭히면 된다. 자기는 약점이 없어도 주변 사람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숙이고 들어온다.

 이태진은 그런 짓을 할 정도로 인간이 쪼잔하지는 않다.

 “끄응. 그렇다고 칩시다.”

 그리고 그는 강정진의 적극적인 도움이 필요하다. 내색은 안하지만 강정진에게 거는 기대가 크다.

 ‘별명 강 무당. 오동태를 체포한 것도, 마약을 소지한 양아치들을 잡은 것도, 결정적으로, 이번 사건의 전체 그림을 그린 것도, 전부 이 사람이 파출소 근무할 때 다 한 거라고 했지.’

 검사는 검찰이라는 조직에 속한 사람이다. 조직에서 남보다 빠르게 승진하고 싶으면 경력 관리를 잘 하거나 줄을 잘 잡아야 한다.

 줄을 잘 잡은 사람이 큰 공까지 세우면 승진은 더 빨라진다.

 이전의 성과는 모두 경찰의 것이다. 이태진의 입장에서는 새로운 걸 찾아내야 한다.

 이 사건에는 연쇄살인 말고도 대량의 마약이라는 떡밥이 있다. 마약 부분은 현재 수사가 진행 중이라 대외적으로는 발표하지 않았다.

 연쇄살인에 대량의 마약까지 겹친 사건은 흔치 않다. 잘만 해결하면 검사 경력에 금테를 두를 기회다.

 이태진은 그걸 눈치 채고 빽을 써서 이 사건을 맡았다. 자기 딴에는 실력 좀 보여주겠다고 경찰서를 직접 찾아와서 피의자 신문을 했다.

 그렇게 오간지가 벌써 며칠 째인데 성과가 없다.

 ‘어영부영하다가 다른 놈이 이 사건 채가는 거 아냐?’

 그런 경우는 드물지만, 그 드문 경우가 이번에 없으란 법도 없다. 이태진 말고도 이 사건을 맡고 싶어 하는 검사는 많다.

 아쉬운 게 많은 이태진이 강정진에게 제안했다.

 “강 형사가 한 번 신문해 봐. 어디 그 소문이 자자한 강 무당 이야기가 진짜인지 헛소문인지 한 번 보자.”

 이태진과 같이 있던 마약팀장 조덕진이 끼어들었다.

 “강 무당이 현장 수사야 최고지만 범인 신문은 제가...”

 “조 팀장. 강 형사 솜씨 좀 봅시다. 내 실력을 보고 웃을 만한지.”

 이태진은 강정진의 주변 사람까지 괴롭힐 만큼 쪼잔하지는 않다. 그래도 뒤끝은 좀 있다.

 강정진이 어깨를 으쓱하고는 전화를 들었다.

 이태진이 재촉했다.

 “한 번 신문해보라니까 뭐해?”

 “설렁탕 주문합니다.”

  * * *

 김민준이 배를 두드리며 순댓국집을 나왔다.

 “이제 후식으로는 뭘 먹을까?”

 로키산맥에 있을 때는 후식 같은 건 상상도 하지 못했다. 당시에 그가 먹어도 되는 건 나뭇잎과 약초 등을 모아서 만든 선식밖에 없었다.

 “햄버거라도 하나 먹을... 응?”

 길 건너편 어두운 골목에서, 전에 본 인간들을 발견했다.

 “저것들이 또 왔네?”

 보름쯤 전에는 그들이 범죄를 저지를지도 모른다고 생각하며 뒤를 밟았었다. 죄를 저지를 때 현장을 덮쳐 돈을 빼앗을 생각이었다.

 하지만 그들은 그때 버스를 타고 떠나버렸었다. 헛물 켠 그는 근처 공원에 갔다가 이서연을 만났다.

 “다시 와서 저러고 있다는 건, 뭔가 노리는 게 있기는 있다는 소리인데.”

 사람의 눈은 낮과 밤을 보는 방식이 조금 다르다. 밤에는 적은 빛으로도 사물을 분간할 수 있는 대신에 색 인지 능력이 현격히 떨어진다.

 신경계통 강화는 시신경에도 영향을 끼쳤다.

 김민준의 눈은 밤에도 색을 잘 볼 수 있다. 저 골목 정도라면 낮만큼 선명하게 보인다.

 김민준은 두 남자의 시선이 어디를 향하는지 확인했다.

 그때와 같았다. 그들은 숨어서 그가 방금 나온 순댓국집을 보고 있었다.

 김민준이 방금 먹은 특특순댓국을 생각했다. 그가 받은 건 따뜻한 마음이다.

 김민준이 다시 골목의 두 남자를 보았다.

 “이거 신경이 좀 많이 쓰이는데?”

  * * *

 도상태는 공원에서 이서연을 덮치려다 김민준에게 두들겨 맞았었다. 신고를 받고 출동한 강정진이 마약을 발견하고 도상태 일당을 긴급체포했다.

 도상태는 한쪽 팔 전체에 기브스를 하고 그 위에 수갑을 찼다.

 어쩔 수 없이 왼손으로 숟가락을 쥐고 설렁탕을 먹었다. 기브스를 한 오른팔이 자꾸 방해가 되었다.

 강정진이 도상태에게 물었다.

 “불편하지?”

 도상태가 머쓱하게 웃었다.

 “예. 밥 먹을 때만이라도 풀어주시면 왼손으로 편하게 먹...”

 “지금 네 처지에 웃음이 나오냐?”

 도상태의 표정이 굳었다.

 강정진이 다시 물었다.

 “편하고 싶지?”

 “아니, 그게...”

 “여기서 나가고 싶지?”

 도상태가 실실 웃었다.

 “그거야 당연히...”

 “한 십 년 뒤에 나가게 될 거야.”

 “시, 십 년이라니요?”

 “조금 전에 검사님이 한 말 들었지? 십 년 형 때려버린다는 거 말이야.”

 마약범죄의 형량은 보통 마약을 유통한 양을 따라간다. 도상태도 자기가 소지한 마약이 어떤 수준의 처벌을 받는지 대충은 안다.

 “에이. 저야 뽕 좀 사다가 맞은 게 전부인데 어떻게 십 년을 받습니까? 그거 그냥 화가 나서 하신 말씀이겠죠.”

 “보통은 그런데, 저 양반은 달라.”

 “다르다니요?”

 “저 양반이 검찰에서 독종으로 유명하거든. 특히 마약사범을 미워하셔. 아. 너도 두더지파 이야기 알겠네.”

 “예? 모르...”

 “두더지파 놈들도 마약을 만졌거든. 그런데 그놈들 마약에 저 분 여동생도 당한 거야. 그때부터 마약이라고 하면 아주 이를 가시지. 두더지파를 아주 말단 조직원까지 다 잡아들여서 두목은 사형 구형하고 단순 소지로 걸린 놈들까지 십년 구형을 때렸거든.”

 강정진의 목소리는 차분하면서도 신뢰가 가는 묘한 분위기가 있다. 방금 먹은 따뜻한 설렁탕이 그 분위기를 조금 더 진하게 만들었다.

 도상태가 침을 꿀꺽 삼키고 물었다.

 “그, 그래서 어떻게...”

 “재판에서 판사님이 십 년짜리를 오 년으로 줄여줬지만, 조직은 완전히 날아갔지.”

 도상태의 얼굴이 흙빛으로 변했다. 조직이 날아갔다는 부분은 신경도 쓰지 않았다. 하지만 그 사이에 낀, 십 년이 오 년으로 바뀌었다는 말이 크게 와 닿았다. 십 년이든 오 년이든 인생 절단 나게 하기에는 충분한 시간이다.

 강정진이 도상태의 감정상태를 보며 한 마디 더했다.

 “그 때 이후로 마약사범한테 오 년 미만으로 때려본 적이 없지. 우리 바닥에서는 유명한 이야기야. 그런데 너는 십 년 때린다고 하셨지?”

 도상태의 손이 가늘게 떨렸다. 강정진이 거기다가 결정타를 날렸다.

 “저 바쁜 양반이 왜 널 오라 가라 안하고 직접 찾아와서 신문하겠냐? 너를 확실히 집어넣기 위해서야. 그런 걸 보면, 분명히 너한테 십 년 때린다.”

 “하지만 법이...”

 “마약으로 부족하면, 네가 살아오면서 저지른 죄를 샅샅이 뒤져서라도 때린다. 원래 그런 분이다.”

 검사 이태진이 소리를 지를 때보다, 강정진이 차근차근 설명해줄 때가 더 무서웠다.

 강정진의 말은 어쩐지 진짜로 이루어질 것 같았다.

 도상태가 숟가락을 떨어뜨렸다.

 “혀, 형사님. 살려주세요!”

 “그럼 아는 대로 다 불어서 저 검사님 기분을 좋게 만들어드려야지. 혹시 아냐? 저분도 사람인데 큰 놈 잡으면 너 같은 잔챙이 하나쯤은 관대하게 처분하실지. 원래 큰 놈을 더 미워하시니까.”

 도상태가 갈등했다.

 “하지만 마약 파는 놈들은 무서워서...”

 “무서운 놈들은 우리에게 넘겨. 약을 파는 놈들이 저 검사님에게 걸리면 최소한 십 년씩 맞아. 십 년 뒤에 일을 알게 뭐야? 그렇잖아?”

 “하지만...”

 “아. 설렁탕 식겠다. 어서 먹어. 맛있지? 앞으로 최소한 오 년간 콩밥만 먹을 텐데 오늘이라도 맛있게 먹어야지.”

 도상태의 눈이 흔들렸다.

 강정진은 도상태가 망설이는 걸 보며 자리에서 일어나려고 했다.

 그걸 본 도상태가 급히 말했다.

 “혀, 형사님. 가지 마십시오. 다 말씀드리겠습니다. 다만 제가 말했다는 건...”

 강정진이 다시 자리에 앉았다.

 “당연하지. 네가 말한 거 나만 알고 있을 테니까 아무 걱정하지 마.”

  * * *

 강정진이 취조실에서 나오자, 강력1팀장 안상준이 팔을 툭 쳤다.

 “수고했다.”

 “애송이 하나 다루는 건데 일도 아니죠.”

 애송이 하나를 제대로 못 다룬 검사 이태진과 마약팀장 조덕진이 인상을 찌푸렸다.

 검사 이태진이 물었다.

 “강 형사. 내가 그렇게 유명한가?”

 강정진은 작년부터 파출소에서 근무했다.

 “이번 사건으로 처음 뵙습니다만?”

 “끄응. 두더지파 사건은 뭐야? 처음 듣는데.”

 “그런 사건도 있습니까?”

 “다 거짓말이었군.”

 “사람에게 해야 거짓말입니다. 저놈의 마지막 반응으로 볼 때, 분명히 마약 소지나 투약보다 큰 죄를 저질렀습니다. 잘 털어보십시오.”

 “응? 관대하게 처분한다며?”

 “처분은 제가 하는 게 아닙니다만?”

 “어? 어. 당연하지. 내가 알아서 하는 거지.”

 무안해진 이태진이 다른 걸 걸고 넘어졌다.

 “그런데 말이야. 내가 따질 게 있는데. 왜 그랬어?”

 “뭘 말입니까?”

 “기분 나쁘게 왜 우리 막내 이야기를 그렇게 해? 우리 서연이는 마약 같은 거 절대로 하지 않아. 얼마나 착한데.”

 강정진이 피식 웃었다.

 “다행입니다.”

 “뭐야? 이번엔 왜 웃은 거야? 어? 설마 ‘평균 내면 중간은 가겠네’ 같은 생각 한 건 아니지? 어? 왜 또 웃어?”

  * * *

 김민준은 로키산맥에 있을 때 야생동물들을 추적했던 경험이 풍부하다.

 잡아먹으려던 게 아니다. 어차피 잡아봤자 재롱부리는 늑대들이나 포식하지 그는 먹지도 못하던 시절이다.

 그가 노린 건 대부분 선식 밭을 망쳐놓은 놈들이다. 한두 마리 잡아서는 소용이 없는 경우도 있다. 그럴 때는 뒤를 조용히 밟아 무리를 찾아낸 후 자신의 공포를 각인시켜 밭 근처로 오지 못하게 만들었다.

 가끔은 큰 곰과 같은 맹수들도 찾아다녔다. 주로 그가 약하던 시절에 그를 잡아먹으려고 들었던 놈들이다. 다 기억해뒀다가, 힘을 어느 정도 얻은 후에 그놈들을 찾아내 때려잡았다.

 김민준이 그때의 경험을 살려, 두 사람을 조용히 미행했다.

 야생동물을 몰래 쫓아갈 때는 기척을 드러내지 않는 게 중요하다. 동물을 상대로도 해낸 그가 사람의 주의를 끌지 않고 움직이는 건 어렵지 않았다.

 김민준이 그들과 같은 버스를 탔다. 그들은 평범한 버스 손님처럼 보이는 김민준에게는 신경도 쓰지 않았다.

 버스가 서울 외곽의 조금 외진 동네로 들어섰다. 두 사람이 일어나 내렸다.

 김민준은 잠시 망설였다.

 안전하게 하려면 한 정거장을 더 간 후에 내려서 돌아와야 한다.

 하지만 여기는 숲이 아니라 도시다.

 숲이라면 땅과 풀을 살펴 동물의 발자국과 풀이 꺾인 상태를 확인할 수 있다.

 반면에 도시의 땅은 콘크리트와 아스팔트로 덮여 있다.

 ‘어쩔 수 없군.’

 김민준이 최대한 기척을 죽이며 그들을 따라 버스에서 내렸다.

 두 남자 뒤를 따라가다가, 길가에 버려진 장난감 가면을 발견했다. 로보트 가면은 턱 부분이 부서져서 사라진 상태였다.

 

 두 남자는 뒤를 돌아보지 않았다. 뒤에서는 발자국 소리는 고사하고 옷깃을 스치는 소리조차 들리지 않았다. 그림자도 비치지 않았다.

 그들은 누가 자기들을 따라 내렸는지도 몰랐다. 아무 생각 없이 걸어가며 말했다.

 “그년 말이야. 쭉쭉빵빵한 게 딱 내 스타일인데 잡아오면 우리 차례도 오겠지?”

 “당연하지. 그거야 기본 코스잖아.”

 “흐흐. 그런 여자는 벗겨놓으면 몸에서 어떤 냄새가 날까? 꽃향기가 날까?”

 “순대 냄새가 날지도 모르지. 하하하.”

 그들의 뒤에서 갑자기 목소리가 들렸다.

 “너희들.”

 두 남자는 깜짝 놀라 뒤로 돌아섰다.

 “헉!”

 “누구냐!”

 로보트 가면을 쓴 김민준이 그들의 뒤에 서 있었다.

 이 두 남자가 전부라면 탁현경을 노리는 위험은 지금 소멸시킬 수 있다. 하지만 이들은 대화를 하면서 다른 위험을 간접적으로 언급했다.

 정보가 필요하다.

 “먼저 말하는 놈이 덜 부러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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