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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연재 > 현대물
도시의 히어로
작가 : 황규영
작품등록일 : 2016.4.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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웃기고 신나는, 따뜻한 마음을 가진 사람.
나를 버린 도시를 구하러 돌아왔다.
이 도시의 정의는 내가 세운다.
타협은 없다.
기생충들은 모두 지옥에 처박아주마.
세상은 히어로를 원한다.
마음을 울리는 따뜻한 이야기.

김민준은 외국 연구소의 희귀질병 치료 실험 대상자였으나, 비밀 치료 실패 후에 로키산맥에 버려졌다. 산속에서 혼자만의 노력으로 질병을 극복하면서, 신체가 강화되고 오감을 넘어 육감까지 크게 향상되었다.
성장기를 연구소와 로키산맥에서 보냈던 김민준은, 자신이 누구인지 알기 위해 귀국한다.
그가 로키산맥에서 맹수로부터 구해줬던 케이티는 그를 찾기 위해...

 
도시의 히어로 19
작성일 : 16-04-11 13:20     조회 : 711     추천 : 0     분량 : 61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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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

 쌍칼파 중간간부 박태수가 벌벌 떨었다.

 “형님. 오해이십니다. 저는 절대로...”

 쌍칼 조덕구가 박태수의 허벅지에 단검을 콱 찔렀다.

 “이것도 오해냐? 내가 찔렀지만 넌 찔린 게 아니냐? 이 새끼야!”

 “크윽!”

 박태수는 다리가 불로 지지는 것처럼 아팠다. 그래도 이를 악물며 참았다. 조덕구의 칼은 두 자루다. 여기서 비명이라도 질렀다가 잘못하면 한 칼 더 맞는다.

 조덕구가 칼을 슥 뽑았다.

 조폭도 피는 붉다. 박태수의 다리에서 피가 흘렀다. 그래도 흐르기만 할 뿐 뿜어져 나오지는 않았다.

 조덕구는 사람을 많이 찔러보았다. 다리의 굵은 동맥을 피해 찌르는 법은 안다.

 조덕구가 피 묻은 칼을 오른손에 든 채 씩씩거렸다.

 “조직을 말아먹을 새끼. 배달부로 쓸 새끼가 없어서 연쇄살인범을 써?”

 박태수는 조덕구의 칼이 무섭다. 저 칼이 자신의 목이라도 찌를까봐 두렵다. 조덕구는 그러고도 남을 인간이다.

 살기 위해서 고통을 참으며 폐를 쥐어짰다.

 “죄송합니다. 형님. 동태 새끼가 그렇게 나쁜 새끼인 줄은 정말 몰랐...”

 조덕구가 박태수의 칼 맞은 다리를 발로 걷어찼다.

 “이 새끼야!”

 “으아악!”

 박태수가 더 이상 견디지 못하고 비명을 지르며 고꾸라졌다. 발에 차인 충격으로 다리의 상처가 찢어지며 피가 더 많이 흘렀다.

 조덕구가 화를 내는 건 나쁜 놈을 배달부로 써서가 아니다. 살인이라면 조덕구도 했다.

 “경찰이 그 살인마 새끼를 대충 보겠냐? 탈탈 털 텐데 그러다가 나한테까지 오면 어떻게 되는지 알아?”

 쌍칼파는 마약을 대량으로 유통한다. 조덕구는 살인을 한 적이 있다. 둘 중 하나라도 드러나면 한두 해 교도소 생활로는 안 끝난다.

 “그땐 너 이 새끼. 목을 따 버리겠어!”

  * * *

 “고기. 고기.”

 김민준은 삼겹살집에서부터 한우 전문점까지 찾아다녔다.

 들어가지는 않았다. 정보부터 얻기 위해 유리벽 너머로 보이는 가격표와 고기를 먹는 사람들의 표정을 살폈다. 가게 밖으로 나오는 냄새도 판단에 한 몫 했다.

 “맛있어 보이는 고기가 너무 많아서 고르지를 못하겠네.”

 갈등하며 길을 걷다가 새로운 식당을 찾아냈다. 가게 간판에 써진 글자를 보고 깜짝 놀랐다.

 “정말 저렇게 판단 말이야?”

 믿어지지가 않았다. 자신의 최대 식사량을 고려하고 가격을 생각해보면 저렇게 팔아서는 이익을 낼 수가 없다.

 “이 집은 땅 파서 고기를 캐나?”

  * * *

 탁현경네 식당에는 두 명이 들어와 순댓국을 시킨 후로는 다른 손님이 없었다.

 그녀는 손님이 밥을 먹는 곳에서 대걸레질을 할 수가 없어서 한쪽에 앉아 뉴스를 보았다.

 뉴스에서 다시 오동태 이야기가 나왔다.

 “어머. 경찰이 쫓아가서 잡은 건 아니네. 그냥 길에서 주운 거네. 누가 저런 걸 버렸지? 그런데 연쇄살인범인 건 어떻게 알아냈을까? 지문이라도 나왔나?”

  * * *

 쌍칼 조덕구가 쇼파에 앉아서 손가락을 까닥였다.

 부두목이 이성진이 바닥의 핏물을 피해 다가와 허리를 숙였다.

 “예. 형님.”

 “짭새가 오동태를 잡은 게 아니라 주운 거라고?”

 “예. 짭새가 발견했을 때는 오동태가 이미 누군가에게 당한 후라고 합니다.”

 “뉴스에 우리 약 이야기는 한 마디도 없었고?”

 “예. 확실합니다.”

 “왜 안 나왔지?”

 “옷 속에 잘 숨겨뒀잖습니까? 아직 안 들켰나 봅니다.”

 조덕구는 학교 다닐 때 공부를 못했다. 남들 공부 할 시간에 잠을 자고 빼먹기도 밥 먹듯이 했다. 그나마도 끝까지 못 하고 고등학교를 때려치웠다.

 그렇다고 평소에 책을 읽는 것도 아니다.

 대신에 그는 경찰과 안 좋은 일로 얽혀본 경험이 많다.

 잠깐 생각하다가 고개를 가로저었다.

 “아니야. 짭새들이 어떤 새끼들인데 연쇄살인범을 잡고서 옷을 조사 안 했겠어.”

 “하지만 뉴스에는...”

 “뉴스라는 게 원래 자기들 하고 싶은 말만 한다며? 내가 보기에는 이유가 따로 있어.”

 “짐작 가는 데가 있으십니까?”

 조덕구가 확신을 가지고 말했다.

 “약이 없었으니까 짭새가 못 찾은 거야.”

 “예?”

 “오동태는 사람을 최소한 셋은 죽여 본 놈이야. 그런 놈은 일반인에게 잘 안 당해. 싸울 때 독기가 있거든. 그럼 뭐겠어? 분명히 어떤 놈이 내 약을 노리고 오동태를 쳤어.”

 이성진이 아부를 했다.

 “아! 역시 형님이십니다. 저희들하고는 생각의 깊이가 다르십니다. 그런데 어떤 새끼가 감히...”

 “돈 귀한 줄만 알고 자기 목숨 아까운 줄은 모르는 새끼겠지. 그런데 말이야. 궁금한 게 있어.”

 “말씀한 하십시오. 형님. 제가 알아보겠습니다.”

 “그 새끼는 오동태에게 우리 약이 있다는 걸 어떻게 알았을까? 당연히 누가 알려줬겠지? 그게 누굴까? 어떤 새끼가 배신을 했을까?”

 부두목 이성진이 멈칫했다.

 “그, 그건, 최선을 다해 알아내겠...”

 “멀리서 찾지 마. 이 거래를 남들이 어떻게 알겠냐? 밑에 놈들은 우리가 뭘 취급하는지도 모르는데. 내 약에 대해 아는 건 니들뿐이야.”

 지금 이 방에는 쌍칼파의 간부급들만 있다. 조덕구가 부하들을 노려보았다.

 “니들 중에 이번 일에 발 담근 새끼가 밝혀지면, 다리에 공구리를 쳐서 한강에 던질 줄 알아. 살고 싶으면 지금 실토해. 내가 한 번은 용서해줄 테니까. 진짜다.”

 부하 조폭들이 몸을 움츠렸다.

 “안 나와? 칼을 맞아야 솔직해질 새끼들이구나?”

 가만 놔두면 또 피를 볼 판이다. 부두목 이성진이 급히 말했다.

 “이번 일은 우리만 아는 게 아닙니다. 오동태가 그때 거기로 간다는 건 저쪽에서도 압니다. 그놈들이 우리 약을 산다고 해놓고, 중간에 가로챈 게 틀림없습니다.”

 지하세계에서는 그런 일이 비일비재하다. 지하세계의 법은 의리나 신뢰가 아니다. 폭력과 공포, 그리고 돈이다. 돈의 액수만 맞고 뒤탈만 없으면 하루에 열두 번이라도 배신한다.

 조덕구는 자기 부하들부터 의심하느라 바빠 미처 거래 상대방까지는 생각 못했었다.

 “맞아. 그날 약을 사려고 한 새끼들이 배신자겠네. 이 개새끼들을 당장 확...”

 조덕구가 멈칫했다. 약을 사겠다고 한 쪽도 허수아비들은 아니다.

 ‘당장 쳐들어갔다가는 서로 개피 보겠지. 지금처럼 몸조심해야 할 때 그건 곤란해.’

 그렇다고 명분 없이 몸을 사리면 부하들 앞에서 체면이 서지 않는다.

 “그놈들 짓일 수도 있지만, 아닐지도 모르잖아. 우리에게 약을 판 새끼들도 있으니까.”

 “약을 우리에게 판 쪽에서는, 그날 우리가 다시 파는 거래를 알 리가 없...”

 “개기냐?”

 이성진이 급히 허리를 숙였다.

 “아, 아닙니다. 형님. 저도 형님 말씀이 옳다고 생각합니다.”

 “배신자를 잡아서 약을 찾으려면, 일단 어떤 새끼가 오동태를 쳤는지부터 알아내야 해. 그게 순서야.”

 “맞습니다. 방법을 찾아보겠습니다.”

 “한 몫 단단히 잡았으니까, 돈을 잘 쓸 거다.”

 “저... 형님. 당장 약을 팔기는 어려울 겁니다. 그러면 이 바닥에 소문이 날 텐데, 어느 간덩이가 부은 놈이 그러겠습니까?”

 “그걸 엉덩이에 깔고만 있어도 돈을 펑펑 쓰게 돼 있어. 그게 다 돈이라고 생각할 테니까.”

 조덕구가 이를 갈았다.

 “내 약을 사가려고 했던 새끼들이 배신자라면, 지금쯤 뭘 먹든 고급으로 처먹고 있을 거야. 그 새끼들 나와바리에서 비싼 데는 다 뒤져. 증거를 잡아서 가져와!”

 윗사람이 합리적인 판단을 하지 않고 명령만 싸지르면, 죽어나는 건 아랫사람이다.

 부두목 이성진은 난처했다. 명령은 받았는데 방법이 마땅치 않다.

 ‘비싼 데가 어디 한두 군데냐고. 그리고 그 새끼들이 강남 가서 놀고 있으면 이쪽을 백날 뒤지면 뭐하냐고.’

 그렇게 말하고 싶지만, 조덕구가 이를 가는 앞에서 대놓고 반대 의견을 내놓고 싶지는 않다.

 이성진이 조금 돌려 말했다.

 “형님. 가게가 너무 많아서...”

 더 돌려야 했다.

 조덕구가 재떨이를 들었다. 잠시도 망설이지 않고 이성진의 머리를 내리쳤다.

 “이 새끼야! 내가 하라고 했으면 무조건 해내란 말이다!”

 “컥! 차, 찾아보겠습니다.”

 “아주 최고급으로 처먹고 있을 거다. 제일 비싼 룸살롱부터 훑어!”

  * * *

 김민준이 고기뷔페에서 고기를 씹으며 눈을 감았다.

 “아아. 구워먹는 고기는 이런 오묘한 맛이 있구나.”

 일단 고기 맛을 보자 로키산맥에서 곰을 구워달라고 조르던 길 잃은 여자와의 일이 생각났다. 여자가 아니라 그때 잡았던 곰이 주로 생각났다.

 “그놈 근수 정말 많이 나왔을 텐데. 아깝다.”

 입맛을 다시며 이번에는 상추를 폈다. 쌈장과 파절임을 얹고 그 위에 구운 고기를 삼단으로 쌓았다. 다시 그 위에 얇게 썬 마늘을 올려놓은 후 한 입에 넣었다.

 뿌듯했다. 입안에 행복이 가득해졌다.

 “오늘 내 평생 못 먹은 고기를 다 먹어야겠다.”

 불판의 화력을 최고로 높여놓았는데도, 고기가 구워지는 속도가 먹어대는 걸 쫓아가지 못했다.

 

 가게 주인이 계산대에서 김민준을 보며 불평했다.

 “아무리 우리 집이 고기가 무제한이라지만, 해도 해도 너무하잖아? 만 원짜리 한 장 내놓고 도대체 얼마를 먹는 거야? 혼자서 돼지 한 마리 다 잡아먹을 거야?”

 종업원이 곁에서 맞장구를 쳤다.

 “그러게요. 덩치라도 커다라면 또 모르겠는데, 멀쩡하게 생겨서... 앗! 또 고기 가지러 가나 봅니다.”

 “저 인간 위장은 고기를 실시간으로 압축이라도 하나? 뭐가 저렇게 끝없이 들어가?”

 “푸드파이터가 아닐까요? 외국에는 많이 먹기 대회도 있다던데요.”

 가게 주인은 불안해졌다.

 “에이. 설마...”

 

 김민준이 쟁반에 고기를 담으러 갔다가 불평했다.

 “뭐야. 고기가 왜 더 없어? 이제 시작인데.”

 

 그 불평이 계산대까지 들렸다.

 종업원이 뜨끔한 표정으로 사장에게 제안했다.

 “차라리 만 원 도로 돌려주고 내보내는 게 낫지 않을까요?”

 “지금까지 저 인간이 먹은 게 얼마인데 돈까지 돌려줘? 난 그렇게는 못하겠다. 어디 한번 누가 이기나 보자. 가서 고기 계속 꺼내와!”

 

 김민준이 배를 두드리며 가게를 나섰다.

 나가기 전에 사장이 그를 불렀다.

 “손님.”

 “무슨 일입니까?”

 가게 사장이 진심을 담아 말했다.

 “내가 졌소.”

 김민준은 무슨 소리인지 몰랐다. 배가 부르니 궁금하지도 않았다. 신경도 쓰지 않고 가게를 나갔다.

 뒤에서 소금 뿌리는 소리가 들렸다.

  * * *

 동네 공원 벤치에서, 김민준이 손가락으로 이서연의 등을 찔렀다. 산의 기운을 느끼며 그녀의 몸속 신경계의 신호전달체계 오류를 수정했다.

 그녀는 처음에는 이 상황이 무척 어색했었다.

 뭐든지 처음이 어렵다. 며칠 치료를 받고 났더니 김민준의 손길이 익숙해졌다.

 “매번 느끼는 거지만 지압을 참 잘 하세요.”

 그녀는 아직도 김민준의 치료가 지압이라고 생각했다. 일반적인 지압과는 조금 다르다는 건 슬슬 눈치 챘지만, 침술의 원리를 이용하는 거라고 편하게 짐작했다.

 지압인지 아니면 손가락 침술인지는 그녀에게 아무 상관없는 구분이다. 그녀는 그 효과가 마음에 쏙 들었다.

 ‘따뜻해.’

 지난 삼 년간 의사들이 그녀의 병을 치료하려고 했었다.

 모두 실패했다. 여러 가지 약을 시험 삼아 써봤지만, 효과가 있는 건 진통제밖에 없었다. 강력한 진통제를 먹으면 그래도 고통이 조금은 줄어들었다.

 그런데 김민준을 만난 뒤부터, 몸이 훨씬 편해졌다. 고통이 없는 건 아니지만, 예전보다 덜했다.

 지압으로는 병을 치료하지 못한다는 게 그녀의 상식이다. 게다가 그녀의 병은 대학병원에서도 원인조차 알아내지 못했다.

 ‘이 분이 해주는 지압을 받은 후부터, 진통제가 더 잘 들어.’

 통증이 줄어든 이유를 그렇게 이해했다.

 몸이 편안해지자 마음에 여유가 약간 생겼다.

 가슴 아래쪽까지 내려왔던 뜨거운 느낌이 빠르게 사라졌다. 오늘의 치료는 끝났다는 걸 깨달았다.

 그녀가 잠시 여운을 즐기다가 혼잣말을 하듯이 말했다.

 “전 꿈이 있었어요. 그 꿈을 위해서 참 열심히 했어요. 꿈을 거의 잡을 뻔 했는데... 이렇게 돼버렸네요.”

 “다시 잡으세요. 지금은 다른 일에 치여서 잃어버린 것 같아도, 꿈을 포기하지만 않으면, 언젠가는 잡을 수 있습니다. 인생은 기니까.”

 그녀가 슬픈 표정을 지었다.

 “모르셔서 그래요. 이제 못 잡아요.”

 ‘제 인생은 아주 짧거든요.’

 그녀는 자신이 살날이 얼마 안 남았다고 믿는다. 그녀를 진찰한 의사들이 모두 그렇게 말했다.

 “그 꿈. 곧 잡을 수 있습니다. 날 믿어요.”

 믿으라는 말에, 그녀가 살짝 웃었다.

 그녀는 그 말을 믿지 않았다. 이미 너무 많은 좌절을 겪었다. 희망이 꺾인 횟수는 이제 다 세지도 못한다.

 “풋. 거짓말쟁이.”

 그래도 기분은 좋아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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