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
강력1팀 형사들이 부지런히 움직였다. 자연히 소란스러워졌다.
강력2팀장이 무슨 일인가 하고 고개를 내밀었다. 뒤늦게 강정진을 발견했다.
“이야. 강 무당. 오랜만... 어라? 분위기가 이거 혹시?”
무슨 일인지 눈치 채자마자 강력1팀장 안상준에게 제안했다.
“형님. 큰 사건입니까? 1팀만으로 힘들면 좀 나눠주시죠. 정말 우리 일처럼 적극 지원하겠습니다.”
안상준이 손을 휘휘 내저었다.
“신경 꺼. 이미 범인 잡아놨으니까.”
강력2팀장이 조금 실망했다.
“아. 예. 1팀은 좋겠네요.”
그냥 물러나지는 않았다. 못 먹는 감 찔러나 보는 심정으로 강정진에게 말했다.
“강 형사. 복귀할거면 이번엔 우리 2팀으로 와. 우리도 실적 스트레스 좀 그만 받자.”
“잠시 들른 겁니다.”
“에이. 아쉽게.”
강정진이 피식 웃으며 강력1팀장 안상준에게 말했다.
“팀장님. 그럼 전 이만 가겠습니다.”
“이제 시작인데 가긴 어딜 가?”
“복귀해서 밀린 순찰부터 돌아야죠. 지금 제가 빠져서 다들 바쁠 겁니다.”
안상준이 강정진의 팔을 잡았다.
“정진아. 좀 도와주라.”
“이미 범인 잡아놓으셨잖습니까?”
“네가 있으면 앞으로도 잘 잡을 거 같다.”
“죄송합니다.”
“너도 알다시피 이 사건 승진 케이스다. 잘하면 진급자 나온다.”
“오동태가 연쇄살인범이라고 확인된 건 아닙니다.”
“확인만 되면, 그걸 알아낸 건 너니까, 진급도 네가 가져가야지. 너도 진급 하고 싶잖아.”
강정진이 씁쓸한 표정을 지었다.
“팀장님. 포상자 명단에 제 이름 끼워 넣으면, 다른 건 몰라도 특진은 절대로 안 나옵니다. 아시잖습니까?”
안상준이 한숨을 푹 쉬었다.
“하아. 그러게 왜 그때 그 사건을 파고들어서. 아. 그래. 안다. 알아. 피해자 사정.”
“전 여기 없는 게 우리 팀에도 낫습니다. 혹시 특진자가 나오면, 짜장면이라도 한 그릇 사라고 하십시오.”
“짜장면만 사겠냐. 탕수육도 시켜주마.”
“하하하.”
안상준도 더 이상 강정진을 붙잡지 못했다. 그는 정말로 강정진이 필요하지만, 현실은 그렇게 간단하지 않다.
“후우. 할 수 없지. 이만큼이라도 고맙다. 이번 일은 다 네 덕이다.”
강정진이 고개를 가볍게 숙였다.
“그럼 저는 이만...”
그가 사무실을 나가려고 돌아섰다.
채 한 걸음을 떼기도 전에 목격자 신원을 확인하던 박성식이 놀란 소리를 냈다.
“어?”
안상준이 물었다.
“왜? 목격자 도저히 못 찾겠냐?”
“아닙니다. 전화번호로 조회해서 휴대폰 주인을 찾긴 찾았습니다.”
안상준이 다시 기운을 얻었다.
“근데 지금 뭐하냐? 당장 가서 목격자부터 확보해!”
박성식이 떨떠름한 표정을 지었다.
“그게 그럴 필요가 없는데요?”
안상준은 안 그래도 강정진과의 대화 때문에 속이 쓰리던 참이다.
“너 지금 개기냐? 내가 확보하라고 했으면 염라대왕 앞이라도 일단 확보부터...”
박성식이 안상준의 말을 끊었다.
“여기 있는데요?”
“뭐?”
“어제 공원에서 잡아온 약쟁이들 있잖습니까? 그 중에 대화가 가능한 놈이 하나밖에 없어서 기브스만 하고 데려다놨는데, 전화 주인이 그놈입니다.”
“어디 있는데?”
“유치장에...”
안상준이 소리를 버럭 질렀다.
“그게 말이 되냐! 유치장에서 어떻게 전화를 해?”
강정진이 끼어들었다.
“됩니다.”
“야. 이제 너까지...”
“같은 사람입니다.”
안상준은 어이가 없었다.
“뭐? 그 양아치들이 오동태를 잡았다고?”
“어제 제가 공원에서 드린 말씀 기억하십니까?”
그때서야 생각났다.
“아! 오동태와 약쟁이들이 같은 놈에게 당했을 수 있다고 했지.”
“어제까지만 해도 증거는 없었습니다만, 누군가 약쟁이들의 전화로 오동태를 신고했다면 더 의심할 필요가 없습니다. 양쪽 모두 같은 사람에게 당했습니다.”
“그러니까, 오동태를 퍽치기로 신고한 목격자가 사실은 목격자가 아니다?”
“자기가 양쪽을 다 치고, 직접 신고전화까지 한 겁니다.”
“하. 이거 참. 북 치고 장구 치고 혼자 다 했단 말이야? 그리고 나서 경찰을 농락해?”
“우리가 목표가 아닙니다. 오동태를 확실히 끝장내기 위해서 우리에게 정보를 제공한 겁니다.”
“허. 참. 그냥 청부업자가 아니라, 이거 아주 고수구만. 고수.”
“보통 놈은 아닙니다.”
“도대체 뭘 노리고 경찰까지 이용해가면서 일을 이렇게 치밀하게 처리하는 거야?”
박성식이 끼어들었다.
“이놈 아무래도 위험한 느낌이 듭니다.”
강력1팀장 안상준도 그렇게 생각했다.
“위험하지. 놈은 지금 이 순간에도 어두운 곳에 숨어서 뭔가 큰 걸 노리고 있어. 아주 큰 걸.”
* * *
“어둡군요.”
“불 켜면 밝습니다. 그리고 지하방이라 어쩔 수 없습니다. 그래도 월세 이십오만 원에 보증금 없이 한 달치 선월세만 받는 데는 여기밖에 없어요.”
전봇대에 붙어 있던 광고지를 보고 찾아온 그에게, 집주인이 월세방의 임대 조건에 대해 설명했다.
무보증 임대는 보증금을 걸지 않는 대신에 일반적인 경우보다 월세가 비싸다.
“이십오 만원에 이십오 만원이라.”
무보증이라고 해서 보증금을 전혀 안 거는 건 아니다. 한 달 월세 이십오 만원을 보증금 대신 걸어놓고, 다시 매달 월세를 선월세로 내야 한다. 처음에 들어가는 돈이 오십만 원이다.
그래도 이런 조건으로 빌릴 수 있는 방은, 이 동네에도 흔치는 않다.
여기는 그 흔치 않은 방 중에서, 공간이 그나마 넓은 곳이다.
게다가 이 방은 집주인이 특별한 신분증명을 요구하지 않고 빌려주기로 했다.
그에게는 그게 가장 중요한 조건이다.
그는 현재 외국인 신분이다. 대한민국 국적을 회복하려면 자신이 누구인지부터 알아내야 한다.
그 일은 아직 시작도 못했다.
‘천천히, 서두르지 말자.’
하루 이틀 여행하러 돌아온 게 아니다. 일단 살 곳이 필요하다. 동영상이 아쉽지만, 그것 하나만 보고 계속 비싼 모텔을 이용할 수는 없다.
“여기로 하겠습니다.”
* * *
순댓국집 딸 탁현경이 학교를 마치자마자 그녀의 아버지 탁진호가 하는 식당으로 달려왔다.
탁현경이 손님이 가득 찬 식당을 기대하며 문을 열었다.
홀은 텅 비어 있었다.
“에휴.”
이 식당은 경쟁에서 밀렸다.
맞은편에 대형 식당이 생긴 후로 손님이 많이 줄었다. 매출이 줄자 인건비도 부담이 되었다. 탁현경은 그때부터 식당일을 도왔다.
“아줌마. 저 왔어요. 늦었죠?”
“오늘은 수업 늦게 끝났나 보네?”
그녀가 거짓말을 했다.
“그러게 말이에요. 교수님이 끝내주지를 않는 거예요.”
미팅 약속 잡아놨다고 붙잡는 친구들을 뿌리치느라 늦었다.
“그럼 난 퇴근할게. 나도 우리 애가 돌아올 때가 다 되서 말이야.”
“네. 들어가세요.”
저녁때부터는 탁현경이 식당의 홀을 책임진다.
탁현경이 탁자부터 새로 닦았다.
“맛도 우리가 더 좋고, 가격도 우리가 싸. 밀리는 건 규모랑 때깔밖에 없어. 때깔이라도 좋게 깨끗이 닦자. 닦아.”
열심히 닦았다. 탁자를 다 닦기 전에 손님이 오기를 바라면서 행주질을 했다.
마지막 탁자까지 깨끗하게 닦았지만, 아무도 오지 않았다.
열리지 않는 유리문을 한 번 본 후에, 소매를 이마에 댔다.
“휴우. 땀난다. 힘도 나면 좋겠다.”
이번에는 바닥을 대걸레로 미는 것과 천으로 유리를 닦는 것 중에 뭘 할까를 고민했다.
구석에 있는 14인치 브라운관 텔레비전에서는 조금 전부터 뉴스가 나왔다.
그때서야 아나운서의 말소리가 귀에 들어왔다.
- 경찰은 작년에 서울에서 있었던 세 건의 연쇄살인 사건의 유력한 용의자로 오모씨를 체포했습니다. 경찰은 이미 증거를 확보한 것으로 알려져 있으며, 현재 여죄를 추궁 중...
탁현경이 흥분했다.
“어머. 어머. 저런 나쁜 놈. 저런 건 그냥 콱...”
가게 유리문이 딸랑 소리를 내며 열렸다.
그녀의 얼굴이 환해졌다. 밝은 목소리로 손님을 맞았다.
“어서오세요!”
* * *
쌍칼파 두목 조덕구가 소리를 꽥 질렀다.
“오동태가 짭새들에게 잡혔다니! 그게 무슨 개소리야!”
부두목 이성진이 목을 움츠렸다.
“그게... 그 새끼가 뉴스에 나왔습니다.”
“뉴스에 나와? 아놔. 씨팔.”
조덕구가 소파에 털썩 주저앉았다. 천장을 올려다보며 푸념했다.
“재수 더럽게 없네. 필요한 새끼들에게 약 좀 팔았다고 뉴스에 나오고.”
고개를 슬그머니 이성진 쪽으로 돌렸다.
“설마 우리까지 걸린 건 아니겠지? 동태 새끼 우리가 누군지 모르지? 확실하지?”
눈빛이 서늘하다.
이성진이 움찔했다.
‘안다고 말하면 목이라도 따겠네.’
목을 한 번 더 움츠리며 대답했다.
“약 때문에 잡힌 게 아닙니다.”
뉴스에는 마약 이야기가 단 한 마디도 나오지 않았다.
쌍칼 조덕구가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휴우. 괜히 놀랐네.”
곧바로 인상을 썼다.
“왜 잡혔대? 술 먹고 깽판이라도 쳤냐?”
“그게... 오동태가...”
“새끼가 왜 말을 못해?”
“연쇄살인범이랍니다.”
조덕구가 잠시 멍한 얼굴로 있다가 물었다.
“뭐?”
“그 새끼가 퍽치기로 여럿 잡았나 봅니다. 확인된 것만 세 건인데, 더 있을 것 같다고...”
조덕구가 헛웃음을 터트렸다.
“하. 그래? 그렇단 말이지?”
소파에 앉아 고개를 젖힌 채 말없이 멍하니 천장을 쳐다보았다. 이성진은 숨소리도 못 내고 쥐 죽은 듯이 서 있었다.
실내의 침묵이 돌덩이처럼 무거워질 때쯤에, 조덕구가 다시 입을 열었다.
“그러니까 우리가 별 것 아닌 놈인 줄 알고 배달부로 쓴 게, 알고 보니 연쇄살인범이다?”
“예. 어쩌다보니...”
“돈만 조금 주면 물건 배달할 멍청한 새끼들이 길바닥에 널려 있는데, 하필 짭새들이 눈에 불을 켜고 찾는 새끼를 골라서 배달부로 썼다 그거네? 게다가 그 새끼는 잡혀서 뉴스에까지 나오고?”
이성진이 급히 변명했다.
“사실, 제가 고른 게 아닙니다. 오동태는 추천을 받아서...”
조덕구가 고개를 바로 세웠다. 눈매가 독사처럼 변했다.
“오동태를 배달부로 쓰자고 추천한 새끼 어디 있어?”
“태수는 팔을 다친 것 때문에 쉬라고 집에 보냈...”
조덕구가 칼을 뽑아 탁자에 콱 꽂으며 소리를 질렀다.
“당장 그 개새끼부터 끌고 와!”
* * *
김민준이 방 한가운데에 드러누웠다.
가전제품은 커녕 아직 이부자리 하나도 없다. 그래도 자신의 힘으로 마련한 공간이다.
“아. 사례로 받은 돈으로 마련했지.”
주머니에서 돈봉투를 꺼내 옆에 툭 던졌다.
“남은 돈은 육십만 원.”
뭔가 해보려고 해도 자본금으로는 턱없이 모자라다. 돈이 더 필요하다.
해야 할 일도 많다.
“내가 누구인지, 나를 찾아야지.”
그는 어렸을 때 미국으로 입양됐다. 그가 초반에 받은 실험들은 그의 신경을 오히려 약화시켰다. 그 후유증으로 유년기의 기억을 많이 잃었다. 왜, 어떻게 입양되었는지 기억이 나지 않는다. 합법적인 방법으로 입양됐는지조차 의심스럽다.
찾아야 할 건 또 있다.
“날 실험체로 쓰다가 죽을 거 같으니까 버린 놈들이 누구인지도 알아내야지.”
그 일들은 그에게 대단히 중요하다.
하지만 가장 중요한 건 따로 있다.
“내가 잘 먹고 잘 살아야지.”
쓰레기장을 뒤지면서 꿈꾸었던 문명세계의 혜택을, 이제 마음껏 누리며 살고 싶다.
김민준이 방바닥에서 팔다리를 쭉 폈다.
“아. 이러고 있으니 참 평화롭구나.”
누워있는 시간은 짧았다. 몸이 편해지자 배가 출출해졌다.
김민준이 돈봉투를 잡았다. 입김을 후 불어 봉투를 열고 그 안의 돈을 다시 셌다.
든든했다.
“좋아. 이번에는 진짜 고기를 먹자. 구워먹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