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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연재 > 현대물
도시의 히어로
작가 : 황규영
작품등록일 : 2016.4.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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웃기고 신나는, 따뜻한 마음을 가진 사람.
나를 버린 도시를 구하러 돌아왔다.
이 도시의 정의는 내가 세운다.
타협은 없다.
기생충들은 모두 지옥에 처박아주마.
세상은 히어로를 원한다.
마음을 울리는 따뜻한 이야기.

김민준은 외국 연구소의 희귀질병 치료 실험 대상자였으나, 비밀 치료 실패 후에 로키산맥에 버려졌다. 산속에서 혼자만의 노력으로 질병을 극복하면서, 신체가 강화되고 오감을 넘어 육감까지 크게 향상되었다.
성장기를 연구소와 로키산맥에서 보냈던 김민준은, 자신이 누구인지 알기 위해 귀국한다.
그가 로키산맥에서 맹수로부터 구해줬던 케이티는 그를 찾기 위해...

 
도시의 히어로 15
작성일 : 16-04-11 13:18     조회 : 789     추천 : 0     분량 : 62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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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 15 17 19 21

 15.

 이튿날,

 이서연은 아침 일찍 눈을 떴다.

 잠을 깰 때 간간이 찾아오던 고통은 강력한 진통제 처방으로 어느 정도 벗어났다. 하지만 몸 상태가 나빠지는 건 진통제로 해결할 수가 없다.

 “오늘은 몸이... 괜찮네.”

 매일매일 나빠지기만 하던 몸이다. 그런데 오늘은 평소보다 상태가 훨씬 좋았다. 건강한 사람만은 못하지만, 이렇게 편안한 아침을 맞는 게 얼마만인지 기억도 잘 난다.

 “아. 좋다.”

 따뜻한 이불을 덮고 포근함을 조금 더 느끼고 싶다.

 “안 돼. 오늘은 안 돼.”

 오랜만에 느끼는 아침잠의 유혹을 과감히 포기하며 이불을 젖혔다.

 “신세를 갚으러 가는데 내가 늦어버리면 안 돼.”

 아직 시간이 한참 이르지만, 아침부터 서둘렀다.

 

 이서연은 약속시간보다 한 시간 일찍 공원에 도착했다. 여느 때처럼 벤치에 앉았다.

 “오늘 아침은 공원 공기가 더 상쾌하네.”

 이 동네에만 오면 공기가 맑게 느껴졌다. 조금 외곽이지만 그래도 서울임인데도 기분이 좋아졌다.

 하루 한 시간 이 동네를 들르는 게 그녀의 일과다. 그녀가 한 시간쯤 공원에서 근처 산의 기운을 느끼며 쉬었다.

 열두시가 되자 김민준이 나타났다.

 “일찍 왔네요?”

 이서연이 김민준의 목소리를 듣고 얼른 일어나면서 인사했다.

 “네. 덕분에 잘...”

 김민준을 본 그녀가 말을 다 하지 못했다.

 김민준은 눈이 벌겋게 충혈된 상태로 나타났다.

 그녀가 혹시나 해서 물었다.

 “저기... 잠을 잘 못 주무셨나 봐요?”

 김민준의 몸은 무척 튼튼하다. 설사 밤을 샌다고 해도 눈이 이 지경이 되지는 않는다.

 평소라면 그렇다.

 하지만 온 정력을 다 기울여 밤새도록 모니터를 뚫어져라 쳐다보았다면 이야기가 다르다.

 김민준이 튼튼하기는 하지만 그래도 기계는 아니다. 그런 상태로 밤을 꼴딱 새면, 아무리 김민준이라고 해도 눈이 충혈 된다.

 로키산맥의 불법 쓰레기장에는 기업체나 연구소의 폐기물이 많았다. 생활 쓰레기는 상대적으로 적었다. 야동은 그에게 발견된 적이 없다.

 늦게 배운 도둑질이 밤새는 줄 모른다는 속담이 있다. 김민준이 딱 그 꼴이다.

 김민준도 낮짝이 있다. 솔직하게 대답할 수는 없다.

 “그냥 조금 피곤해서요. 하하.”

 이서연은 김민준이 야동을 보다가 그렇게 됐다고는 상상도 하지 못했다.

 다른 걱정을 했다.

 ‘어제 그 싸움이 몸에 부담이 됐었나보다.’

 무려 일대사의 싸움이었다.

 그녀가 고개를 꾸벅 숙였다.

 “다시 한 번 인사드릴게요. 고맙습니다.”

 “제가 더 고맙습니다.”

 덕분에 돈을 벌어서 밤새도록 신세계를 경험했다.

 “예?”

 “그런 게 있습니다.”

 그녀는 궁금했지만, 깊게 묻지 않았다.

 “네에.”

 어쨌든 어젯밤에 신세를 진 건 그녀다. 호기심 좀 풀겠다고 상대를 난처하게 하는 여자가 아니다.

 잠시 대화가 멈췄다.

 그녀의 손이 핸드백을 열었다.

 “아. 이거...”

 핸드백 안에 미리 챙겨온 봉투가 있다. 분홍색 예쁜 봉투에 수표를 챙겨왔다. 현금처럼 쓸 수 있는 십만 원 권 자기앞 수표 열 장, 백만 원이다.

 그녀는 어제 사례를 하겠다고 말했다. 그러자 김민준이 여기서 만나자고 대답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녀는 내심 불안했다.

 ‘혹시 실례가 아닐까?’

 상대의 호의에 돈으로 사례를 한다는 게 조금 찜찜하게 느껴졌다.

 그래도 말은 해보았다.

 “약소하지만, 사례로 받아주시면...”

 김민준이 그녀가 든 봉투의 두께로 안에 든 돈의 액수를 짐작했다.

 ‘십만 원쯤이네?’

 그에게 투시력은 없다.

 ‘십만원이면 아주 많이 짭짤하지는 하지만... 이 불쌍한 아가씨에게 어떻게 돈까지 받나. 이 아가씨 덕분에 어제 그놈들 털어서 돈도 벌었으니까, 나야 받을 만큼 받았지.’

 어깨를 으쓱해보였다.

 “아가씨 돈 보고 구해준 거 아닙니다.”

 당연히 아니다. 그녀가 아니라 건달들의 돈 냄새를 공원 반대편에서부터 맡았었다.

 그녀는 그가 거절할까봐 걱정했었다. 어떻게 할까 하다가 말이라도 한 번 더 꺼냈다.

 “받아주셔야 제 마음이 편할 것 같아서... 백만 원밖에 안...”

 김민준이 멈칫했다. 예상했던 것과 액수의 단위가 다르다. 0이 하나가 더 붙었다.

 그때서야 지식 속에서 ‘수표’의 존재를 떠올렸다.

 ‘배, 백만 원?’

 떠올리자마자, 그녀의 손을 덥석 잡았다.

 “역시 성의를 무시하면 안 되겠죠?”

 “예?”

 “이래야 마음이 편해지신다니 받아야지요.”

 말을 하면서 어느새 봉투를 그녀의 손에서 빼내 자기 주머니에 넣었다.

 이서연은 조금 당황했다.

 “아, 예.”

 어차피 주려고 가져온 돈이지만, 상대의 반응이 왔다 갔다 하는 게 이상했다.

 ‘특이한 사람이야.’

 문득 잊고 있던 게 떠올랐다.

 ‘아직 이 사람 이름도 모르네?’

 “저. 그런데 성함이...”

 태어날 때 받은 이름은 모른다.

 의학 실험의 대상물일 때는 이름이 없었다. 실험하는 자들은 그를 이름으로 부르지 않았다.

 김민준은 그들이 그렇게 한 이유를 잘 안다.

 - 날 같은 인간으로 인식하지 않으려고.

 그는 사람이 되기 위해 스스로 이름을 지었다. 자신이 누구인지 알기 위해 돌아왔다.

 그는 남들과 같은 인간이고 싶다.

 인간인 그의 이름은 김민준이다.

 김민준이 이서연을 똑바로 보았다.

 ‘그들이 이 아가씨를 조사한 적이 있을까?’

 그럴 가능성은 낮다고 판단했다. 그녀의 병은 그가 걸렸던 것처럼 체질의 문제이기는 하지만, 증상은 정 반대다.

 그래도 이름을 가르쳐주기가 망설여졌다. 어찌해야 할지 판단이 서지 않아 일단 한 번 튕겨보았다.

 어제 순댓국집 아가씨 탁현경에게서 들은 말을 그대로 써먹었다.

 “그냥은 가르쳐 드리지 않겠습니다.”

 ‘요즘은 이렇게 말해도 예의에 어긋나지 않나보다.’

 이서연은 김민준에게 큰 신세를 졌다. 그녀 입장에서는 생명의 은인이다. 다시 묻기가 망설여졌다.

 “아. 예.”

 ‘나중에라도 가르쳐줄건가 보다.’

 그녀가 순순히 포기했다. 김민준은 마음을 놓으며 다른 쪽으로 생각을 돌렸다.

 ‘앞으로는 수표가 들어 있을 가능성도 고려하자.’

 경험이 늘었다.

 잠시 대화가 끊겼다.

 그녀가 어색한 분위기를 바꾸기 위해서 새로운 제안을 했다.

 “저기... 점심 식사라도 하러 가실래요?”

 식사를 통해서 고마움을 조금 더 갚고 싶다.

 김민준이 제안했다.

 “아. 점심은 제가 대접하겠습니다.”

 그녀는 방금 김민준에게 백만 원을 주었다. 그 돈으로 사주겠다고 하는 줄 알았다.

 ‘어디로 가자고 할까?’

 그녀가 괜찮은 레스토랑을 몇 군데 떠올렸다.

 김민준이 검정 비닐봉지를 벤치에 올려놓았다.

 “점심밥은 여기 싸왔습니다.”

 “예?”

 김민준은, 그녀를 살려주고 싶다.

 

 폐렴은 20세기 초만 해도 치사율이 매우 높은 위험한 병이었지만, 1941년에 페니실린이 보급되면서 생존율이 획기적으로 올라갔다.

 그녀에게 김민준은 페니실린 같은 존재다. 그는 그녀의 병을 치료할 수 있다.

 그녀에게 그 사실을 말해줄 생각은 없다. 그는 아직 자신이 누구인지 모른다. 누가 자신을 미국으로 데려가 실험했는지도 모른다.

 김민준이 비닐봉지를 열었다.

 “몸에 좋은 겁니다.”

 안에서 일회용 도시락 용기 두 개를 꺼냈다.

 김민준이 그 중 하나를 그녀에게 내밀었다.

 “드세요.”

 그녀가 생각한 점심 대접은 벤치에서 먹는 도시락이 아니다.

 상관없다. 방긋 웃었다.

 “소풍 온 기분이에요.”

 그녀가 자기 몫의 도시락 뚜껑을 열었다.

 그 속에서 나온 건 그녀가 기대한 음식이 아니다.

 적당히 뭉개지고 갈아진 이상한 것 나왔다.

 그녀는 혼란에 빠졌다.

 ‘아무리 봐도 도시락에 들어 있을 음식은 아닌데?’

 그녀가 그를 쳐다보았다.

 “이게 뭐, 뭔가요?”

 “선식입니다. 몸에 좋아요.”

 그가 먹던 것과는 다르다. 재료도 다르고 생긴 것도 다르다.

 이건 그녀의 병에 맞춰 만든 선식이다.

 그는 이 선식을 만드는 데 필요한 재료를 구하기 위해 아침부터 경동시장 약재상들을 뒤졌다. 필요한 것이 모자랐다. 한의학에서 약재로 취급하지 않는 식물이 몇 가지 필요했다.

 그건 근처 산에 올라가서 캤다. 기가 잘 흐르는 동네의 산답게 그가 원하는 식물들이 있었다.

 ‘다행이지. 나랑 같은 병이었다면 재료가 모자랐을 테니까.’

 그녀의 병은 선식이 그가 먹은 것과는 완전히 다르다.

 그의 병은 몸속에 화(火)의 기운이 지나친 게 문제다. 태양절맥에 먹어야 하는 음식은 화의 기운을 철저히 배제한 것뿐이다. 심지어 음식에 열을 가해서도 안 된다.

 그렇게 만들어진 선식은 더럽게 쓰고 떫기만 했다.

 그녀의 병은 반대다. 화의 기운이 모자라다. 팍팍 넣어줘야 한다.

 김민준이 일회용 숟가락도 내밀었다.

 “드세요.”

 선식만 가지고 병을 치료할 수는 없다. 하지만 병을 치료하려면 선식을 먹어야 한다. 이걸 먹어서 화의 기운을 보충해야 치료가 쉬워진다.

 

 이서연은 이 요상하게 생긴 음식의 정체가 의심스러웠다.

 그래도 생명의 은인인 김민준이 가져온 것이다. 거절할 생각은 못했다.

 ‘사람이 먹는 거겠지.’

 그녀가 억지웃음을 지으며, 선식을 한 숟가락 떠서 입에 넣었다.

 그녀의 눈이 동그래졌다.

 “마, 맛있어요.”

 생긴 건 개떡인데 맛은 찰떡이다.

 달짝지근한 맛에 매콤한 맛이 섞이고, 한약재의 향이 기분 좋게 어울렸다.

 그녀가 선식을 한 숟가락 먹고 방긋 웃었다. 이번에는 억지웃음이 아니다.

 “정말 맛있네요.”

 김민준은 옛날에 그가 먹던 선식이 생각났다.

 속이 쓰렸다.

 ‘내가 먹던 선식은 더럽게 맛이 없었는데... 내가 참 복도 없는 병에 걸렸었구나.’

 그녀의 선식 재료들은 화의 기운을 담고 있다. 쓸 수 있는 종류도 다양하다. 배제가 아니라 채우는 것이 목적이라 일반 식재료가 섞여도 상관없다.

 김민준은 여러 재료를 모아 그녀를 위한 선식을 만들었다. 맛을 내기 위해서 샐러드를 만드는 데 쓰는 식재료들도 사용했다. 일반인을 초월하는 미각과 후각으로 직접 맛을 보면서 맛있게 만들었다.

 로키산맥의 쓰레기장에는 여러 가지 요리책도 버려져 있었다. 그는 로키산맥에서 그 요리책의 사진들을 구경하면서 침만 꼴깍 삼켰었다. 먹을 수 없는 것을 사진으로 구경하며 만드는 방법을 지식에 담기만 했었다.

 다만, 조리도구가 없이 만든데다가 처음 해보는 요리라서 모양이 개떡같이 나왔다.

 

 그녀가 선식을 한 숟가락 더 먹고 환하게 웃었다.

 “이거 진짜 맛있어요.”

 “다행이네요. 맛있어서.”

 김민준이 옛날 일을 생각하며 씁쓸하게 웃었다. 자기 도시락을 열었다.

 그녀가 김민준의 도시락을 보고 깜짝 놀랐다.

 “그, 그건?”

 김민준이 사온 건 가게에서 흔히 파는 김밥이다.

 “김밥이란 거 꼭 한 번 먹어보고 싶었거든요.”

 이서연은 김민준이 농담하는 줄 알았다.

 대한민국에서 자란 사람 중에 김밥 한 번 먹어보지 못한 어른은 거의 없다. 그가 한 말은 드라마에서 재벌2세나 치는 대사다.

 김민준은 진심으로 한 말이다.

 그는 김밥이 정말 먹어보고 싶었다. 김밥만이 아니라 다른 여러 가지 요리 사진을 보면서 먹을 날을 꿈꿔왔었다.

 이서연이 자기가 먹던 선식을 보았다.

 ‘내 건 한약 냄새가 이렇게 진한데...’

 재료가 뭔지는 제대로 모른다.

 보통의 경우 한약이 추가되면 음식 값이 올라간다. 선식에서 한약 냄새가 팍팍 나는 걸 보고 비싼 음식일 거라고 판단했다.

 ‘나한테는 이런 비싸고 맛있는 걸 주고, 정작 자기는 김밥을...’

 미안해서 선식이 넘어가지 않았다.

 그녀가 자기가 먹던 선식 도시락을 내밀었다.

 “저기... 이걸 같이 드시면...”

 김민준은 그녀의 선식을 먹을 생각이 없다. 그건 그녀의 몸을 치료하기 위해서 특별히 만들었다.

 그리고 그는, 도시의 음식이 더 좋다.

 “전 이게 더 좋습니다.”

 진심으로 한 말이지만, 그녀 입장에서는 손톱만큼도 믿어지지 않는 소리다.

 김민준이 김밥을 하나 들었다.

 ‘이게 김밥...’

 입에 넣었다.

 김과 기름의 향이 먼저 느껴졌다. 밥의 단맛과 속에 든 다양한 재료의 맛이 입안을 채웠다.

 여러 가지 맛이 동시에 느껴졌다.

 김민준이 눈을 가만히 감았다.

 “아. 죽이게 맛있네.”

 이서연이 그런 그를 보고 생각했다.

 ‘내가 부담 가지지 않게 하려고, 일부러 김밥이 맛있는 척 하는구나.’

 그녀도 어릴 때는 김밥을 좋아했다. 짜장면도 좋아했다.

 어른이 된 지금은, 김밥은 그냥 간단하게 한 끼 때울 때나 먹는 음식이다.

 그녀가 김민준의 옷을 보았다. 바지는 한쪽 건빵 주머니가 뜯어질 정도로 낡았다. 위에 입은 옷도 좋은 것이라고는 말할 수 없다.

 옷만 보면 가난 그 자체다.

 그녀가 군소리 없이 선식을 먹었다.

 미안한 마음으로 먹어도 맛있었다. 그래서 더 미안했다.

 ‘왜 나한테만 맛있는 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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