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
순댓국집 맞은편 어두운 골목에 있던 남자 둘은 담배꽁초를 길바닥에 버리고 그곳을 떠났다.
김민준도 움직였다.
충분히 강해지기 전에는, 맹수와 싸우기 위해서 기척을 지우는 법을 배워야 했다. 자기보다 강한 맹수를 물리치려면, 적보다 은밀하게 움직여야 한다.
콘크리트 도시는 몸을 숨길 풀이 없다. 나무는 부족하다. 바위도 없다. 바닥은 평평하다.
대신에 광고판과 전봇대, 주차된 차, 수없이 많은 골목길이 몸을 숨길 공간을 제공했다.
김민준이 입맛을 다시며, 아무런 기척 없이 그들의 뒤를 쫓았다.
‘한 번만 걸려라.’
그의 기대를 배신하며, 두 남자가 버스에 올라탔다.
김민준은 조금 당황했다.
“어? 저러면 안 되는데...”
안 되는 건 김민준의 사정이다. 버스는 두 남자를 태우고 출발했다.
정류장에는 아무도 남지 않았다.
아쉬웠다.
“저 두 사람. 여기서 뭔가 죄를 지을 것 같은 분위기였는데, 아니네. 사냥감이 아니네.”
로키산맥에서 살 때, 사냥꾼이 노릴만한 동물의 출몰 빈도를 떠올렸다.
“하루에 사냥감이 두 번이나 걸리기는 어렵지.”
사냥감이 쉽게 눈앞에 나타나준다면, 가난할 사냥꾼은 없다. 심지어 사냥보다 상대적으로 많은 숫자를 잡을 수 있는 낚시조차도 밤새도록 공치는 날이 있다.
오늘은 이미 오동태를 잡아서 돈을 벌었다.
미련은 깨끗이 털어버리고 주변을 보았다. 조금 큰 공원이 바로 옆에 있었다.
콘크리트 도시 속에도 흙을 밟을 곳은 있다. 그가 있던 숲만큼은 아니지만, 흙과 풀, 나무가 있는 공원의 환경이 편안한 느낌을 주었다.
김민준이 공원 벤치에 털썩 앉았다.
조금 전의 일로 약간 실망했다. 돈이 생길 줄 알았는데 실패했다.
“모텔이라는 데 꼭 가보고 싶었는데.”
주머니에서 돈을 꺼내 셌다. 구만오천 원이 남았다. 다른 사람들처럼, 사람이 잘만한 곳에서 편안하게 자고 싶다.
“모텔은 비싸니까 안 되지만, 그래도 찜질방 정도는 가도 되겠네.”
이 돈이면 모텔에 간다 하더라도 오늘 하루는 문제가 없다. 내일도 괜찮다. 그 다음부터가 문제다.
삼시세끼를 사먹고 제대로 된 숙박시설에서 잠을 자면, 십만 원으로는 이틀밖에 살지 못한다.
“역시 돈을 벌어야 하는데...”
현대 사회에서는 돈을 벌기가 쉽지 않다.
“내일부터는 노가다라는 거라도 알아봐야 하나? 그런데 그런 건 어디 가야 일자리를 얻을 수 있지?”
많은 지식을 가지고 있지만, 실생활과 관련된 것에는 빠진 부분이 제법 많다.
“내일 걱정은 내일 하자.”
마음을 편하게 먹고 몸을 벤치에 축 늘어뜨렸다. 마음이 편해지자 주변의 기의 흐름이 느껴졌다.
“여기는, 예상한 그대로네.”
로키 산맥에 있을 때, 서울 지도를 근거로, 기의 흐름이 가장 좋을만한 곳을 찾았다. 그렇게 고른 곳이 이 동네다.
“확실히 여기가 서울에서 기의 흐름이 제일 좋아. 이 공원은 특히 더 높고.”
이 주변은 산이 많다. 그 산들을 타고 흐르는 기운이 내려와서 이 동네에 모인다. 그만큼 기의 밀도가 높다.
그래봐야 기감이 예민한 사람이 조금 상쾌하게 느끼는 정도다. 그래도 서울역에서 여기까지 걸어오면서 지나친 다른 동네에 비하면, 별천지나 다름없다.
“서울만이 아니라, 수도권까지 다 훑어도 이만한 데가 없겠지.”
김민준이 공원 벤치에 앉아 편안한 자세로 자연에 흐르는 기를 느꼈다.
편안해지자 따로 각성시키지 않아도 다섯 가지 감각이 예민해졌다. 청각에, 신경 쓰이는 소음이 잡혔다.
고개를 그 방향으로 돌렸다.
신경세포의 강화와 고대 서적의 수련은 시신경에도 영향을 끼쳤다.
어두운 밤이지만 상관없었다. 그의 시야가 무성한 나무와 구조물들 사이를 뚫고, 공원 반대쪽까지 확장됐다.
“여자?”
벤치에 앉아 있는 여자가 제일 먼저 눈에 들어왔다. 그 다음으로 여자 주변을 남자 네 명이 어슬렁거리며 희롱하는 게 보였다.
그가 읽은 글 중에, 이런 상황에 대해 설명한 것이 꽤 많았다. 그가 비록 숲에서 혼자 자라 세상 경험이 모자라지만, 한 눈에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 파악했다.
오히려, 세상 경험을 많이 한 사람이 변명거리를 찾을 시간에, 그는 판단을 끝내고 자리에서 슥 일어났다.
“저것들.”
입맛을 다셨다.
“돈 좀 있겠구나.”
* * *
이서연이 공원 벤치에 앉아서 과거를 추억했다.
삼 년 전까지는 그녀도 행복했었다.
‘어제 같은데...’
잃어버린 행복이라 더 아련했다.
몸에 기운이 빠졌다. 손끝이 살짝 떨렸다. 시계를 보았다. 약을 먹을 시간이 지났다.
가방에서 약을 꺼내 먹었다. 치료효과는 전혀 없지만, 고통을 조금 줄여주는 진통제다. 치료약은 없다. 아직도 병명조차 모른다.
오늘 병원에 정기 검사를 받으러 갔다가, 병의 진행 속도가 더 빨라졌다는 진단을 받았다. 의사로부터 받은 권고는 절대 안정이다. 무리하면 심장 마비가 올 확률이 대단히 높아졌다는 경고도 받았다.
슬펐다.
“나 꿈을 위해서 정말 노력했는데.”
그녀조차 모르게 몸 속 깊이 숨어 있던 병이, 첫 발작을 일으킨 때가 삼 년 전이다.
가수가 되는 꿈을 이루기 직전이었다. 진심으로 노력했던 꿈이고, 손에 잡히기 직전이었다.
삼 년 전 그 날, 병이, 꿈을 빼앗아갔다.
그녀의 집은 성북구에 있지만, 매일 이 동네의 공원을 찾았다. 여기 와 있으면 기분이 조금은 나아졌다. 공기가 상쾌하게 느껴졌다. 이렇게 있으면 발작적인 고통도 덜 찾아왔다.
왜 여기 있으면 편안해지는지는 그녀 자신도 몰랐다. 그래도 매일 이곳을 찾아와 쉬었다.
오래 있을 필요는 없었다. 오래 머문다고 상태가 더 나아지는 건 아니다. 하루 한 시간이면 충분하다.
그녀가 이 공원에서 바라는 건, 단 한 시간의 휴식이다.
하지만 오늘은 제대로 쉬어보기도 전에 불량배들을 만났다.
“어이. 우리 같이 재미있는 거 하러 가자. 너도 좋지?”
“싫어도 가야지. 으흐흐흐.”
보기에도 껄렁했다. 넷 모두 이마에 양아치라고 써놓고 다니는 것 같았다.
두렵지 않았다.
대신에 서러웠다. 눈물이 나려는 걸 꾹 참았다.
‘내게는 왜 잠시 쉴 행복조차도 허락되지 않는 걸까?’
양아치들은 그녀의 표정을 착각했다. 눈물을 글썽거리는 모습이 겁먹은 것처럼 보였다.
여자의 눈물은 강력한 무기다. 하지만 그 무기가 힘을 발휘하려면, 상대가 보통 남자여아 한다.
처음부터 악의를 가지고 접근한 양아치들에게는, 눈물이 통하지 않았다.
양아치 넷이 그녀를 희롱했다.
“그냥 잠깐 같이 놀기만 하면 돼. 잡아먹는 것도 아닌데 왜 울려고 그래?”
대답하지 않았다. 대답할 가치도 없다.
“오빠들 말 잘 들어야지, 안 들으면 납치해서 섬에 팔아버린다. 무슨 소리인지 알지?”
겨우 그 정도 협박은 무섭지 않다. 어차피 병이 그녀의 몸을 좀먹고 있다.
그녀가 말없이 그들을 쳐다보았다. 그러다 피식 웃었다.
‘팔수나 있을까? 나에게 남은 시간은 이제 얼마 없는데.’
양아치들은 처음에는 그녀가 겁먹은 줄 알고 만만하게 보았었다.
그런데 그녀가 웃었다. 비웃음으로 보였다.
양아치들은 그녀를 먹잇감으로 생각했다. 자기들보다 약하다고 판단했다.
양아치들은 보통 약자 앞에서 화를 참지 않는다.
그들 중 하나가 화를 벌컥 냈다.
“이 년이 가랑이에 금테라도 둘렀나? 말로 좋게 하니까 우리가 우습지?”
우스웠다. 그녀는 자기 신세가 우스웠다. 웃음이 소리가 되어 나왔다.
“훗.”
양아치들 중 하나가 인상을 쓰며 그녀를 향해 다가갔다.
“이년 안되겠구만? 야. 저기 화장실로 끌고 가자.”
이서연이 조용히 핸드백 속에서 립스틱처럼 생긴 것을 꺼냈다.
겉으로 보기에는 디자인이 조금 특이한 기다란 립스틱이다. 일반적인 립스틱과의 차이점은 길이뿐이다.
하지만 그건, 그녀가 더 이상 고통을 견디기 어려워졌을 때 사용하려고 가지고 다니는 물건이다.
양아치들은 그녀의 행동을 이해하지 못했다.
“이거 미친년 아냐? 이 상황에서 립스틱을 꺼내네? 왜? 지금 화장하게? 우리한테 이쁘게 보이려고?”
“어쩐지 말도 안 하고 있더라. 미친 년 맞네. 야. 잘 됐다. 미친년이면 뒤탈도 없을 거 아냐?”
“미친년은 기분이 좀... 미친 거 옮으면 어떻게 해?”
“새끼. 쫄기는. 많이 예쁘잖아.”
“흐흐. 그렇지? 뭐해? 빨리 끌고 가자.”
이서연이 손잡이를 가만히 잡았다.
겉보기에는 립스틱처럼 생겼지만, 속에 든 것은 손가락만한 길이의 티타늄 칼날이다. 레이저 가공된 칼날의 날카로움은 외과의사의 수술칼 이상이다. 그 정도면 약간의 힘으로도 사람의 살을 자를 수 있다.
‘이길 수 있을까?’
립스틱형 단검은 두 가지 단점이 있다. 일단 가격이다. 일반인의 입이 떡 벌어질 정도로 비싸다.
더 큰 단점은, 작은 크기다. 작아도 너무 작다. 칼날이 손가락 하나 길이밖에 되지 않는 단검으로는 성인 남자 넷을 이기기 어렵다. 상대도 칼을 가지고 있다면 승률은 더 낮아진다.
‘한 놈 정도 피를 보는 게 한계야. 운이 좋으면 그 정도만 해도 해결되겠지. 겁을 먹고 도망칠 테니까. 운이 나쁘면... 살해당할지도 몰라.’
운을 떠올리자, 자기도 모르게 입 밖으로 말이 나왔다.
“아. 나는 운이 나쁘지.”
양아치 중 하나가 실실 웃었다.
“이야아. 목소리도 엄청 이쁘네. 어서 가자. 나 흥분했다.”
양아치가 그녀의 손목을 잡으려고 했다.
손목이 잡히면 싸움이 불리해진다. 더 망설일 시간이 없다.
그녀가 립스틱 단검을 꽉 잡았다.
‘한 놈을 찌르고 살해당하는 게 먼저일가? 무리한 내 심장이 멈추는 게 먼저일까?’
죽음이 현실로 느껴졌다. 손이 가늘게 떨렸다.
‘나 겁이 나나봐. 아직 살고 싶나봐. 어차피 이제는 늦었...’
새로운 목소리가 들렸다.
“어이. 거기까지.”
김민준이 입맛을 다시며 나타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