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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연재 > 현대물
도시의 히어로
작가 : 황규영
작품등록일 : 2016.4.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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웃기고 신나는, 따뜻한 마음을 가진 사람.
나를 버린 도시를 구하러 돌아왔다.
이 도시의 정의는 내가 세운다.
타협은 없다.
기생충들은 모두 지옥에 처박아주마.
세상은 히어로를 원한다.
마음을 울리는 따뜻한 이야기.

김민준은 외국 연구소의 희귀질병 치료 실험 대상자였으나, 비밀 치료 실패 후에 로키산맥에 버려졌다. 산속에서 혼자만의 노력으로 질병을 극복하면서, 신체가 강화되고 오감을 넘어 육감까지 크게 향상되었다.
성장기를 연구소와 로키산맥에서 보냈던 김민준은, 자신이 누구인지 알기 위해 귀국한다.
그가 로키산맥에서 맹수로부터 구해줬던 케이티는 그를 찾기 위해...

 
도시의 히어로 7
작성일 : 16-04-11 13:13     조회 : 774     추천 : 0     분량 : 55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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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7.

 김민준이 심각한 표정으로 고민했다.

 “이것도 맛있어 보이고. 저것도 맛있어 보이고.”

 서울의 거리에는 식당이 많다. 김민준이 식당들을 살피며 무엇을 먹을지 고민했다.

 “앗!”

 가게들 중 하나가 눈에 확 들어왔다. 바짝 다가갔다.

 “여기는 고기도 파는구나. 고기. 고기라는 거 꼭 먹어보고 싶었는데.”

 도시로 나와서 먹어본 고기는 햄버거가 고작이다. 그것도 충분히 맛있었지만, 그는 지금 갈아 구운 것이 아니라 고기처럼 생긴 고기를 먹고 싶다.

 

 로키산맥의 숲에서는 고기를 먹을 기회가 많았다. 맹수들이 보기에 그는 쉬운 먹잇감이었다. 그래서 멋도 모르고 덤벼들고는 했다. 그는 그를 잡아먹으려고 덤비는 놈은 용서 없이 때려잡았다.

 그 맹수들은 고기를 남겼다.

 모두 그림의 떡이었다.

 그는 병이 완치될 때까지는 선식과 물 이외에는 아무 것도 먹을 수 없었다. 심지어 물조차도 증류해서 선식 가루를 타 먹었다.

 그에게는 그 고기가 그림의 떡이지만, 늑대들에게는 진수성찬이다.

 “녀석들은 잘 있겠지.”

 늑대는 개 같다.

 십여 년 전에, 김민준은 흑곰 한 마리를 때려잡았다. 그 흑곰은 작은 늑대 무리를 습격해 거의 몰살시키다가 김민준과 마주쳤었다. 당시에는 김민준의 힘이 지금보다 약한 편이라 칼을 써서 곰의 목줄을 끊었다.

 김민준이 흑곰을 잡고 나자, 거의 몰살당한 늑대 무리의 새끼들이 나타났다. 살아남은 건 새끼들뿐이었다.

 그 새끼들이 흑곰에게 달려들어 원수의 살을 뜯어먹었다.

 그 후로, 그 늑대새끼들은 그를 보면 개 같이 행동했다. 다 자라서도 마찬가지였다. 무리 전체가 아예 그의 집 주변을 영역으로 삼고 그만 보면 달려와 재롱을 부렸다.

 

 맹수들과의 싸움들 중에 가장 기분이 좋았던 건, 커다란 회색 곰을 잡았을 때였다.

 그 곰은 그가 어릴 때 그를 잡아먹으려고 했었다. 그가 없을 때 쳐들어와서 집안을 난장판으로 만든 일도 몇 번이나 있다. 평소에는 충성스러운 개처럼 굴던 늑대들도 거대한 회색곰만 나타나면 꽁지가 빠져라 도망쳤다. 늑대들은 다음날에나 나타나 미안한 듯이 꼬리를 살랑살랑 흔들었다.

 그 곰을 일 년 전에 겨우 찾아내서, 발차기 한 방으로 때려잡았다.

 그때 일이 생각났다.

 “아. 그 아가씨가 곰 고기 구워달라고 했었지.”

 예쁘장한 얼굴과는 어울리지 않게, 곰이 잡아먹자고 칭얼대던 아가씨가 생각났다. 곰에게 잡아먹힐 뻔 한 걸 구해줬더니 계속 배고프다고 칭얼댔었다. 선식을 나눠줬더니 맛없다며 자꾸 곰 고기를 구워달라고 졸랐었다.

 “먹고 싶으면 자기가 구워먹지 말이야.”

 그녀는 일주일이나 그를 따라다니며 귀찮게 굴었었다. 일주일 내내 고기 타령을 했다. 그녀의 일행을 찾아내서 곁에서 떨어뜨렸을 때는 속이 다 시원했었다.

 “하긴. 고기가 그렇게 맛있으니까, 그럴 만도 했지.”

 그녀가 선식을 왜 그렇게 맛이 없다고 하는지, 당시에도 머리로는 이해했었다. 하지만, 마음으로는 공감하지 못했었다.

 선식이 맛이 형편없는 건 그도 잘 안다. 남들보다 월등한 미각과 후각을 가지고 있어서 아주 잘 안다.

 그래도 선식은 그가 병을 치료하고 살아남기 위해서 반드시 먹어야 하는 음식이었다.

 이제, 햄버거 반 조각을 먹고 나자, 그때 그녀의 마음이 공감이 됐다.

 “이렇게 맛있는 게 많은 세상에 설다가, 산속에서 선식만 먹으면 괴롭겠지. 그 자리에서 안 뱉은 게 다행이지.”

 뱉는 건 고사하고, 일주일이나 선식을 억지로 먹으면서 자신을 쫓아다녔다.

 지금 심정으로 그때로 돌아가면, 그녀에게 곰 고기를 구워 줄 것 같다. 그때의 자신은 못 먹더라도, 그녀만이라도 배부르게 먹일 것 같다.

 “그런 날은 안 오겠지. 한국에 온 내가 미국에 사는 그 아가씨를 다시 볼 날은 없을 테니까.”

 식당 유리 너머로 사람들이 고기를 구워먹는 게 보였다.

 “맛있겠다.

 그는 오늘 낮까지는, 치료를 위해서, 오직 선식만 먹었다. 이제 음식에 대한 제약이 풀렸다. 가릴 필요가 없다.

 하지만 가게 안으로 들어가지는 못했다. 음식에 대한 제약은 풀렸지만, 돈이라는 제약이 생겼다.

 유리 너머로 가격표가 보였다.

 “비싸군.”

 그 가게는 삼겹살 일인분을 만삼천 원에 판다.

 그가 가진 지식은 미국 로키산맥의 불법 쓰레기장에서 얻은 것이다. 조금 지난 지식으로는 현재 대한민국 서울의 삼겹살 가격을 정확히 알기 어렵다.

 가격 정보 자체가 없는 건 아니다. 한국과 관련된 자료는 보이는 대로 찾아 읽었기 때문에 삼겹살에 대한 지식도 있다.

 하지만 그가 가진 삼겹살에 대한 지식은 유통기한이 지난 것이다. 그 문서가 작성됐을 때는 삼겹살 가격이 일인분에 삼천오백 원이었다.

 현재 가진 돈은 십만 원이다. 다음에 돈을 언제 벌지 알 수 없다.

 한 끼 식사로 만삼천 원을 쓰는 건 무리다.

 “삼겹살 일 인분으로는 배가 안 부르다고 했는데...”

 눈 딱 감고 들어가려고 해도, 일인분만으로 배가 찰 것 같지 않다. 이인분을 먹게 되면, 전재산의 사분의 일이 날아간다.

 “서울에서 살려면, 먹고 싶은 거 마음대로 먹으려면, 역시, 돈을 더 벌어야겠다.”

  * * *

 오동태를 실은 119 구급차가 종합병원으로 들어섰다. 강정진은 순경 고지산에게 현장을 확보하라고 지시한 후, 순찰차를 타고 구급차를 따라갔다.

 오동태는 곧바로 응급실 앞에서 기다리던 병원 직원들에게 인계되어 안으로 옮겨졌다.

 응급실 당직의사가 오동태의 상태를 보더니 혀를 내둘렀다. 급히 응급조치를 하며 고개도 들지 않고 물었다.

 “이 환자 어쩌다 이렇게 된 겁니까? 이렇게 다치려면... 덤프트럭에라도 받혔습니까?”

 경사 강정진이 물었다.

 “상태가 어떻습니까?”

 “일단 팔뼈랑 손목뼈는 확실히 부러졌습니다. 손목은 이거 복합골절일지도 모르겠는데요? 어깨도 양쪽 다 망가지고 턱뼈도...”

 의사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어?”

 강정진이 단서라도 발견했나 싶어 물었다.

 “왜 그러십니까?”

 “뼈와 관절들은 심각한 손상을 입었는데... 이 환자. 내출혈의 흔적이 안 보입니다. 이 정도로 다치려면 몸 안쪽에 충격이 없을 리가 없는데...”

 “그러기는 어렵지요?”

 “어렵기는요. 어려운 정도가 아니라 말도 안 되는 일인데... 실제로 일어났네요.”

 강정진은 확신했다.

 ‘역시 단순 폭행이 아니야. 전문가의 솜씨다.’

 강정진이 과거 강력계 근무의 경험을 토대로 범인의 실체와 행동을 추측했다.

 ‘어떤 놈일까? 전국구 조직에서 키운 놈일까? 아니면 독고다이로 뛰는 놈일까? 놈의 손에는 지금 뭐가 들려 있을까? 칼? 양주? 아니면, 여자?’

  * * *

 김민준의 손에는 젓가락이 들려 있다.

 그는 젓가락을 뚫어져라 쳐다보았다. 사진으로는 많이 봤지만 실제로 만지는 건 처음이다.

 주변을 보았다. 식당의 다른 손님이 거의 비어가는 그릇을 앞에 두고 젓가락질을 하는 게 보였다.

 그 모습을 유심히 살폈다. 손동작을 기억했다.

 김민준이 손가락 사이에 젓가락을 끼웠다. 손의 근육을 세밀히 조정했다. 옆사람의 움직임을 실시간으로 따라했다. 입에 가져가는 동작도 마찬가지였다.

 ‘이런 원리군.’

 신경 강화 실험과 고대 서적의 수련 덕분에, 그는 남의 동작을 관찰하면 작은 움직임까지 그대로 따라할 수 있다.

 젓가락이 능숙하게 움직였다. 누가 봐도 한국 사람의 젓가락질이다. 젓가락질을 하는 자리가 아무 것도 없는 빈 식탁이라는 것만 빼면 완벽했다.

 ‘의식하지 않고 쓰려면 시간이 필요하겠어.’

 아직은 의식적으로 남의 동작을 따라해야 한다. 음식을 먹을 때마다 그러면 머리가 피곤하다.

 사람이 젓가락질을 할 때는, 자기 손가락의 동작을 인식하면서 하지는 않는다. 그런 건 뇌의 무의식의 영역에서 알아서 처리한다.

 아무리 김민준이라고 해도, 무의식의 영역에 동작을 입력시키려면, 의식의 영역에서 연습해서 익숙해져야 한다.

 

 순댓국집 딸 탁현경은 김민준이 빈 탁자에다가 젓가락을 쓰는 걸 보며 찜찜해했다.

 ‘어디 아픈 사람인가?’

 그래도 손님은 손님이다.

 “저기... 뭐 드릴까요?”

 김민준은 젓가락을 내려놓았다.

 길 건너편 대형 식당에서는 고기가 푸짐하게 얹힌 순댓국 사진을 걸어놓았다. 그걸 보고 싼 값에 배도 채우고 고기 맛도 볼 수 있겠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이 식당이 건너편보다 천 원 쌌다.

 막상 이 식당에 들어오고 보니, 여기는 음식 사진이 없다. 메뉴가 글자로만 적혀 있다.

 그가 탁현경에게 물었다.

 “순댓국이 왜 두가지입니까?”

 “아. 그냥 순댓국은 내장도 들어가거든요. 내장 싫어하세요? 싫어하시면 순대만으로 시키세요.”

 먹어본 적이 없으니 모른다.

 하지만 숲에서 육식동물이 초식동물을 사냥하면 내장부터 먹어치우는 건 자주 보았다. 그걸 보면서 내장은 무슨 맛일까 궁금해 했었다.

 “고기도 들어갑니까?”

 “들어가기는 하지만...”

 고기가 들어간다는 소리에 만족했다. 길 건너편 식당의 사진 같은 순댓국을 기대하며 주문했다.

 “고기 많이 들어가는 순댓국으로 주십시오.”

  * * *

 강정진은 확신했다.

 ‘이 사건에는 역시 뭔가 큰 건수가 있어.’

 그때 강정진의 예전 상관인 형사팀장 안상준이 응급실로 들어왔다.

 “정진아.”

 “팀장님. 오셨습니까?”

 “뭐 나온 거 있냐?”

 “일단...”

 

 의사가 간호사들에게 지시했다.

 “일단 옷부터 벗깁시다.”

 팔다리가 부러진 환자의 옷을 그냥 벗길 수는 없다. 그랬다가는 부상이 커진다.

 간호사 한 명이 가위를 들었다. 가위로 오동태의 점퍼를 잘랐다. 점퍼가 잘리자 그 속에서 하얀 솜이 빠져나왔다.

 솜만 나온 게 아니다. 솜과 함께 작은 까만색 비닐봉투 하나가 빠져나와 바닥에 툭 떨어졌다.

 강정진은 안상준에게 상황을 설명하려다가 그 소리를 들었다.

 고개가 그쪽으로 휙 돌아갔다.

 바닥에 떨어진 작은 까만 비닐봉투가 보였다. 어디서 나왔는지는 뻔했다.

 강정진의 눈에 다시 점퍼에 가위질을 하려는 간호사가 보였다. 점퍼 속에 비닐봉투가 더 있다면 지금 가위질로 내용물이 응급실에 쏟아질 수 있다.

 그가 급히 외쳤다.

 “그 옷 자르지 마!”

 간호사가 놀라서 움찔했다.

 의사는 그렇지 않아도 문신 가득한 중환자를 받는 게 마음에 들지 않았다.

 ‘나중에 이 작자 일당들이 찾아와서 행패라도 부리면...’

 그 걱정을 하고 있는데, 경찰이 소리를 지르자 얼씨구나 하고 큰 소리로 항의했다.

 “이봐요. 치료를 방해할 거라면 나가십시오. 아니면 이 환자 다른 병원으로 데려가던가!”

 정진이 의사의 말을 무시하고 허리를 숙여 바닥에 떨어진 비닐봉투를 집었다.

 팀장 안상준이 물었다.

 “왜 그래?”

 강정진이 도톰한 까만 비닐봉투를 손으로 만져보았다. 손가락 끝에 익숙한 감각이 느껴졌다.

 이런 느낌을 주는 물건은 여러 가지가 있지만, 옷 속에 숨겨두어야 할 정도의 물건은 한 가지밖에 없다.

 강정진이 비닐봉투를 손 안에 감추고 안상준에게만 보이도록 방향을 돌렸다. 의사나 간호사들이 듣지 못하도록 아주 작은 소리로 말했다.

 “일단, 히로뽕이 나왔습니다.”

 “뭐?”

 강정진이 무게를 가늠해보았다.

 “이 정도 양이면, 비닐봉투 하나당 최소한 천 명 이상 투약하겠는데요?”

 

 마약은 인간을 망가뜨리기 때문에 불법이다. 불법이기 때문에 비싸다. 비싸기 때문에 범죄의 수단과 이유가 된다. 범죄가 다시 인생을 죽인다.

 

 마약은 독약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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