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
112에 범죄 신고를 하면 지역 경찰이 출동한다.
모든 신고에 출동하는 건 아니다. 외계인이 나타났다는 식의 허황된 신고는 무시되기도 하고, 그 범죄와 지역 경찰이 유착된 경우 출동이 늦어지기도 한다.
가끔은 일반인이 납득하기 어려운 황당한 이유로 신고가 무시될 때도 있다.
그래도 대부분의 경우, 서울 시내에서는 신고 후 빠른 시간 안에 경찰이 현장에 나타난다.
지나가던 시민이 꿈틀대는 오동태를 발견하고 112에 신고했다. 신고 후 오 분도 지나지 않아 경찰 두 명이 순찰차를 타고 현장에 나타났다.
그들이 나타났을 때 신고자는 이미 사라지고 없었다.
경찰 일은 위험하고 힘들다. 순찰을 하다 보면 험한 꼴을 자주 본다.
그런 그들도 오동태를 보고는 얼굴을 일그러뜨렸다.
경사 강정진이 말했다.
“이거 아주 사람을 아작을 내 놨군.”
신참 순경 고지산이 덜덜 떨며 물었다.
“사, 살아는 있는 겁니까?”
강정진이 오동태의 가슴 쪽으로 시선을 돌렸다.
“다행이 숨을 안정적으로 쉬네.”
순경 고지산은 경찰 시험에 합격했을 때 정말 기뻐했었다. 요즘처럼 어려운 시기에 경찰 공무원이 됐다며 친구들의 축하도 많이 받았다. 떡도 돌렸었다.
하지만 그는 지금, 합격 떡을 돌린 일을 아주 조금 후회했다.
“파, 팔다리 꺾인 거 보십시오. 이거 어떤 원한이 있어야 사람을 이 지경으로... 이게 사람이 사람에게 할 짓입니까?”
* * *
김민준이 밤길을 걷다가 오동태를 떠올렸다.
“어쨌든 안 죽였잖아.”
학자들에 의하면, 인간의 사회적 인격은 태어날 때부터 타고 나는 것이 반이다. 나머지 반은 유아기 때 만들어지고 청소년기에 완성된다.
그래서 성장 환경은 인격 형성에 큰 영향을 끼친다.
대자연은 많은 것을 가르쳐주지만, 관대하지 않다. 조금만 방심하면 죽을 수 있다. 로키산맥이 가르쳐주는 삶은 치열하고 잔인하다.
그런 환경에서도 그는 인간성을 유지했다.
책 덕분이다.
쓰레기장에서 주운 책들이 그의 청소년기의 인격 형성에 큰 기여를 했다.
대부분의 책에는 좋은 말이 많이 나온다. 착한 일을 권하고 악을 징벌한다. 나쁜 놈이 나쁜 짓을 하는 걸 칭송하는 나쁜 책은 흔치 않다.
좋은 책들이 김민준의 청소년기에 긍정적인 영향을 끼쳤다. 그 책들이, 로키산맥에서 혼자서 맹수들 사이에서 살아남아야 하는 최악의 환경에서도, 그를 사람답게 만들어주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김민준은 오동태를 반죽음 상태로 만들었다.
“나를 잡아먹으려는 놈을 만났으니, 확실히 처리해야 했는데.”
로키산맥에서는 그렇게 해야 살아남는다.
오동태는 돈 몇 푼을 빼앗으려고 김민준의 뒤통수를 향해 벽돌을 휘둘렀다. 보통 사람이 그 벽돌에 머리를 맞았으면 죽거나 폐인이 될 수 있다.
로키산맥에서의 방식이라면, 싸움에서 진 오동태는 죽어야 했다. 다른 짐승들의 먹이가 되어야 했다. 그러지 않은 건, 김민준이 인간이라서다.
“도시에서는 그러면 안 되겠지.”
그는 오동태를 죽이는 대신에, 뼈를 충분히 부러뜨려주었다.
* * *
순경 고지산이 오동태에게 다가갔다.
“일단 응급처치라도 해야...”
강정진이 고지산의 어깨를 잡았다.
“놔둬.”
“예? 지금 무슨 말씀을...”
“우리가 손 댈 수 있는 수준의 부상이 아니다.”
중상을 입은 사람을 함부로 만지는 건, 때에 따라서는 가만히 놔두는 것만 못하다. 비전문가가 중상자를 잘못 만지면 상태를 악화시킨다.
“구급차 불러라.”
“우리한테만 신고를 하지는 않았을 겁니다. 당연히 119에 먼저 신고를 했겠죠.”
“아니면? 사소한 데 피해자 목숨 걸지 말고 확인삼아 무전 때려.”
“예!”
고지산이 한 걸음 물러나며 무전기를 켰다.
강정진이 오동태의 상태를 자세히 보기 위해서 랜턴을 비추었다. 팔다리가 꺾여 있지만, 숨은 정상적으로 쉬었다.
랜턴을 움직이자, 오동태의 옆에 지갑이 굴러다니는 게 보였다.
현대 범죄 수사에서 현장보존은 대단히 중요하다. 현장이 잘 보존되면 범인을 잡을 확률이 그만큼 높아진다.
강정진은 지갑에 손을 대지 않았다. 자세를 낮추고 랜턴으로 지갑의 옆면을 비춰보았다.
지폐가 보이지 않았다.
“피해자의 상태로 보면 원한에 의한 폭행처럼 보이지만, 빈 지갑을 보면 강도 사건일수도 있겠군.”
* * *
김민준은 아까까지만 해도 빈털터리였다.
지금은 만 원짜리 지폐가 열 장이 생겼다.
“강도가 돈 많이 가지고 다니네. 십 만원이라. 이걸로 햄버거는 몇 개나 살 수 있을까?”
자기 목숨을 노린 적의 것을 빼앗는 건, 적어도 김민준의 기준으로는 죄가 아니다. 숲의 야생동물들 사이에서는 당연히 이루어지는 일이다.
“오늘밤 잠도 좋은 데서 자 보자. 푹신한 침대에 눕고 깨끗한 이불도 덮고.”
로키산맥에서 지낼 때도 이불은 있었다. 어릴 때 쓰던 이불은 그가 없을 때 곰이 쳐들어와서 걸레로 만들었다. 어쩔 수 없이 불법 쓰레기장까지 가서 상태가 나은 천을 주워 와서 만들었다. 속에는 마른 풀을 채워 넣었다.
그런 게 아니라, 사진에서 보던 깨끗한 이불을 덮고 싶었다.
“밥도...”
어린이용 햄버거 반 조각으로는 당장 움직일 힘을 얻는 게 고작이다. 아직도 배가 고프다.
지금까지 기억하는 가장 맛있는 음식은 햄버거다. 도시의 음식은 그것밖에 모른다.
“햄버거를 먹을까?”
햄버거 생각을 하자 입맛이 당겼다.
“그래. 햄버거를 먹자. 두 개를 먹... 아니지.”
경험은 없지만 지식은 많다. 머릿속에 온갖 음식들이 떠올랐다.
“다른 것도 맛있겠지.”
요리책의 사진만 보며 군침을 삼킨 날이 하루 이틀이 아니다. 이제 돈만 있으면 그 요리들을 먹을 수 있다.
“아. 돈.”
주머니에는 십 만원이 있다. 그의 입장에서는 운 좋게 퍽치기를 만나 번 돈이지만, 그런 운이 언제 또 올지는 알 수 없다.
현재는 이게 전 재산이다.
“고민되네.”
* * *
강정진이 다시 랜턴으로 쓰러져 있는 오동태를 비추었다.
오동태의 찢어진 옷 사이로 문신이 보였다.
강정진의 눈이 살짝 가늘어졌다.
“이것 봐라?”
일반인도 문신을 한다. 타투는 어떤 사람들에게는 하나의 문화로 취급된다.
하지만 문신을 문화나 예술로 생각하지 않으면서도 몸에 새기는 사람들도 있다. 대한민국에서 가장 많은 문신을 하는 그룹을 꼽으라면, 당연히 조직폭력배나 그 언저리의 양아치다.
문신의 종류를 파악하느라 자세히 들여다보았다. 그때 순경 고지산이 무전을 끝내고 보고했다.
“119 쪽에도 같은 신고가 들어갔다고 합니다. 이미 출동해서 곧 도착한답니다. 그런데 피해자는 왜 그렇게 들여다보십니까? 저한테는 만지지도 말라고 하시더니...”
강정진이 문신의 종류를 알아챘다.
“상황이 조금 변했다.”
“예?”
“단순 폭행 사건이 아니다.”
“그거야 당연합니다.”
“제법인데? 너도 알아봤냐?”
“물론이죠. 팔다리가 꺾였는데 어떻게 단순 폭행입니까? 이건 중상해...”
“그 소리가 아니다.”
강정진이 랜턴으로 문신을 다시 비추어주었다. 고지산이 그때서야 알아들었다.
“아. 조폭 놈들끼리 분쟁입니까? 어디 조직이 이놈을 친 겁니까?”
“모르지.”
“그런데 조폭끼리 싸움이면 이 사건은 어떻게 처리해야 합니까?”
고지산은 신참 순경이다. 아직 경험이 모자라다. 강정진을 따라다니면서 경찰일을 배우는 중이다.
강정진이 입맛을 다셨다. 이번 일에 뭔가 큰 건이 걸려 있다는 느낌이 들었다.
“잘만 처리하면 이 건으로 몇 놈 잡아들일 수 있을지도 모르겠는데?”
경찰은 한 자리에서 평생 근무하는 게 아니다. 강력팀에 근무했던 사람이 내근직으로 옮길 수도 있고, 지역 파출소에서 일할 수도 있다. 반대로 지역 파출소의 경찰이 강력팀으로 갈 수도 있다.
강정진은 작년까지만 해도 강력팀에서 강력범죄를 담당했었다. 그곳에서 강력범과 얽힌 조직폭력 사건도 질리게 다뤄보았다. 나중에 다시 강력팀으로 돌아갈지도 모른다.
이 사건에 욕심이 났다.
‘잘 엮으면, 당분간 실적 걱정은 없...’
그러다가, 자신은 이미 강력팀을 떠났다는 걸 깨달았다.
자신이 원해서 강력팀을 떠난 건 아니지만, 파출소 생활도 나쁘지 않다.
강력팀은 경찰조직의 다른 자리보다 가족의 희생을 더 많이 요구한다.
파출소 근무도 힘들고 더러운 일이 많지만, 여기 있으면 그래도 퇴근은 할 수 있다.
지금은 집에 돌아가면 토끼 같은 어린 자식들이 달려든다. 아내도 여우 짓을 하며 예전보다 많이 웃는다.
강력팀에 있을 때는 제대로 누리지 못했던 행복이다.
현재의 행복을 아직은 더 느끼고 싶다.
이런 사건과 실적은 이제 그의 몫이 아니다.
그가 맡지 않는다고 해서, 사건 자체가 없어지는 건 아니다. 누군가는 이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
자신이 이 사건을 가질 수 없다면, 주변 사람에게 넘겨주는 방법도 있다. 아무래도 범죄현장에 먼저 접촉하는 쪽이 사건의 우선권을 가지기 유리하다.
강정진이 휴대전화를 꺼내 예전 근무처의 상관에게 걸었다.
“팀장님. 접니다.”
- 오. 정진이. 잘 지내지?
“예. 저야 예전보다는 편하게 지내죠.”
- 마침 전화 잘 했다. 오늘 시간도 좀 되는데 술이나 한 잔 할까? 도망친 놈 술 좀 얻어먹어보자.
“술은 팀장님이 사셔야 할 겁니다. 시간 있으시다니, 좀 와보실 수 있으십니까?”
전화기에서 조금 커진 목소리라 흘러나왔다.
- 좋은 건수냐?
“겉으로 보면 그냥 폭행 사건일 수도 있습니다만... 제 감이, 강하게 옵니다.”
전화기에서 신이 난 웃음소리가 터졌다.
- 우하하하! 강 무당 감은 거기 가도 여전하구나! 어디냐? 당장 가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