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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연재 > 현대물
도시의 히어로
작가 : 황규영
작품등록일 : 2016.4.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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웃기고 신나는, 따뜻한 마음을 가진 사람.
나를 버린 도시를 구하러 돌아왔다.
이 도시의 정의는 내가 세운다.
타협은 없다.
기생충들은 모두 지옥에 처박아주마.
세상은 히어로를 원한다.
마음을 울리는 따뜻한 이야기.

김민준은 외국 연구소의 희귀질병 치료 실험 대상자였으나, 비밀 치료 실패 후에 로키산맥에 버려졌다. 산속에서 혼자만의 노력으로 질병을 극복하면서, 신체가 강화되고 오감을 넘어 육감까지 크게 향상되었다.
성장기를 연구소와 로키산맥에서 보냈던 김민준은, 자신이 누구인지 알기 위해 귀국한다.
그가 로키산맥에서 맹수로부터 구해줬던 케이티는 그를 찾기 위해...

 
도시의 히어로 4
작성일 : 16-04-11 13:11     조회 : 856     추천 : 0     분량 : 497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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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

 꼬마 아가씨 이미나와 헤어지고 나서, 김민준이 두 팔을 쫙 벌렸다.

 “아. 맛있었다. 정말 맛있었다. 끝내주게 맛있었다.”

 양은 작았지만, 당분간 움직일 에너지를 확보했다. 충분하지는 않지만, 하룻밤을 견딜 수는 있다.

 

 문명세계의 음식 맛을 보았다. 맛있는 음식을 사려면 돈이 필요하다. 돈의 가치를 전에는 지식으로 알았지만, 이제 경험으로 인지했다.

 “돈을 벌려면?”

 오늘 당장은 돈을 벌 방법이 없다. 하지만 내일이 되면 방법이 있다.

 “내일 당장 돈이 들어오는 일은...”

 그런 일이 하나 떠올랐다.

 “노가다?”

 건설 일용직 노동자는 그날 일을 하고 일당을 받는다.

 “아니야. 좀 더 안정적으로 돈을 벌려면...”

 그는 책을 많이 읽고 지식을 쌓았다. 로키 산맥에서 혼자 공부했다.

 하지만 그가 가진 것은 대부분 지식뿐이다. 경험이 별로 없다. 경험한 것들은 어느 수준인지 모른다.

 음악이 돈이 될까 하는 생각이 잠깐 떠올랐지만, 곧바로 머리에서 털어버렸다.

 “에이. 나야 그냥 취미고.”

 그가 가진 지식에 의하면, 세상에는 수많은 곡이 발표되었지만, 그중에서 히트한 건 극소수다. 그의 지식으로는, 문화예술 쪽은 먹고 살 수 있을 만큼 돈을 벌 확률이 낮아도 너무 낮다.

 로키 산맥에서 만났던, 곰에게 잡아먹힐 뻔했던 아가씨가 생각났다. 그가 불러준 노래가 좋다고 한 아가씨다.

 “그 아가씨도 가수가 되기 위해서 평생을 노력했는데, 음반이 쫄딱 망했다고 했지. 그 바닥이 다 그렇지 뭐. 밥은 안 굶고 다니나 몰라.”

 안 굶는다. 그녀는 그가 던져준 세 곡으로 스타가 됐다.

 이번에는 일반적인 루트가 떠올랐다.

 “취직할까?”

 대한민국에서 월급이 좀 되는 곳에 첫 취업을 하려고 하면, 먼저 학력이 요구된다.

 이 나라는 학력을 일종의 자격으로 취급한다. 학력이라는 자격을 가지지 못하면, 지식과 능력이 있어도 첫 번째 관문조차 넘기 어렵다.

 어릴 때부터 로키 산맥에서 산 그에게 공식적인 학력이 있을 리 없다.

 학력은 고사하고, 아직 대한민국 국적조차 회복하지 못했다. 그의 국적은 어렸을 때 타의에 의해서 미국으로 바뀌었다. 그걸 되돌리고 싶지만 간단하지는 않다.

 “정상적으로 학력을 올리려면, 공부를 해서 검정고시부터 줄줄이 통과하고, 대학을 좋은 곳에 들어가고, 졸업도 하고...”

 남들과 같은 과정을 밟기에는 나이가 많다.

 “공부에는 다 때가 있다더니...”

 그는 학창시절을 가져보지도 못했다.

 유일하게 지금 신분으로 취직 가능한 일이 생각났다. 그 직업에 대해 한국 관련 뉴스 파일에서 읽었다.

 “원어민 강사?”

 한국말과 영어를 동시에 사용하는 미국 시민권자라면 학력을 무시하고 취직이 가능하다.

 하지만 거기에는 큰 문제는 있다.

 그는 할 수만 있다면, 미국 여권을 쓰지 않으려고 했었다. 비행기를 타려면 다른 방법이 없어서, 어쩔 수 없이 소도시에서 여권을 갱신해 대한민국으로 들어왔다.

 그는 누가 자신을 미국으로 입양해 실험실로 보냈는지 모른다. 자신이 살아 있는 걸 알면 어떤 반응을 보일지 판단이 되지 않는다.

 “나한테 또 무슨 짓을 할지 모르지.”

 이미 입국하는데 미국 여권을 사용했다. 이제 자신의 생존이 그들에게 알려질 가능성이 생겼다. 미국인 신분을 계속 사용하면 그 가능성이 높아진다.

 자신의 어릴 때 정보를 알아내고, 대한민국 국적을 회복할 때까지는, 조심해야 한다.

 “오늘은 자고, 내일 생각하자.”

 긴 시간의 여행과 소량의 음식물 섭취, 스트레스 등이 질긴 그의 신경조차도 피곤하게 만들었다.

 잠을 잘 곳은 결정해 두었다.

 “산에 가면 필요한 게 다 있겠지.”

 이 동네는 서울 시내임에도 불구하고 주변에 산이 많다. 가까운 곳에 북한산이 보인다.

 김민준이 그곳을 오늘 하룻밤을 지낼 목표로 삼았다.

  * * *

 오동태는 기분이 좋았다.

 “흐흐. 그 새끼들이 내가 어떤 분인지 이제야 알아주는구나. 짜식들. 진즉에 좀 알아보지 말이야.”

 좋아하다가 곧바로 짜증을 냈다.

 “이따위 잠바를 입고 가야 그쪽에서 알아본다고?”

 만나기로 한 장소는 도시와 붙어 있는 산이다.

 “기왕이면 명품 양복에 코트로 구분하자고 약속으로 잡았어야 뽀다구가 나잖아. 하여간 무식한 깡패 새끼들이라 그런지 멋을 몰라.”

 짜증내던 표정이 다시 밝아졌다.

 “한 몫 잡으면 그까짓 양복이랑 코트는 내가 산다. 사. 으흐흐흐.”

 웃음이 실실 나왔다.

 “멍청한 깡패 새끼들. 내가 니들이 주는 푼돈 먹고 떨어지겠냐? 산에 가서 받아오는 물건이 뭔지 내가 안 열어보겠냐고. 물건 값이 한 장이 넘어가면 무조건 들고 잠수 타야지. 안 넘으면 그냥 배달만 하고 다음 기회를 노려야지. 으흐흐흐.”

 오동태의 감정이 춤을 추었다. 그의 경우, 조울증이 나타날 때는 판단력도 같이 춤을 춘다.

 오동태가 두 손을 주머니에 꽂고 팔자걸음을 걷다가 앞에 걸어가는 남자를 발견했다.

 김민준이다. 잘 곳을 찾으러 산으로 올라가는 중이다.

 오동태가 길바닥에 침을 찍 뱉었다.

 “딱 때리기 좋은 뒤통수네.”

 오동태의 본업은 퍽치기다. 지금 하는 심부름은 부업이다.

 “오늘 물건이 저렴하면 배달료만 받고 떨어져야 하는데, 그게 몇 푼이나 된다고... 놀면 뭐하냐. 가는 길에 돈이나 벌자.”

 오동태가 먼저 앞을 걸어가는 김민준의 복장부터 살폈다. 지갑에 돈이 얼마나 있는지 판단하기 위해서다.

 김민준의 옷은 로키산맥 아래 쓰레기장에서 주운 것이다. 밝은 낮에 보면 심하게 낡아빠진 옷이다.

 하지만 가로등도 제대로 켜져 있지 않은 어두운 밤길에서는 옷의 상태가 잘 구분되지 않았다.

 그래도 한 가지는 알 수 있었다.

 “양복은 아니네. 쳇.”

 혀를 차며 주변을 힐끗 보았다.

 산으로 올라가는 이 길에는 CCTV가 없다.

 CCTV의 범죄 예방이 효과가 있느냐에 대해서는 다양한 주장이 있다. 효과가 있다는 사람과 없다는 사람의 주장이 팽팽히 맞선다. 투입 비용 대비 예방 효과나 개인의 프라이버시 침해 문제까지 끼면 결론을 내기는 더 어려워진다.

 하지만 확실한 건, CCTV는 적어도 범인을 잡는 데는 큰 도움이 된다.

 그래서 오동태는 강도질을 할 때 CCTV가 없는 곳을 고른다. 여기는 그가 나름대로 파악해 둔 CCTV 없는 지역들 중 하나다.

 “돈은 많지 않아 보이지만, 나도 같은 방향으로 가는 길인데다가, 내 사냥터에서 발견했으니까.”

 목표물이 가진 돈의 액수를 판단했으면, 이번에는 먹이처럼 보이는 맹수는 아닌지를 확인해야 한다.

 오동태가 김민준의 체격을 살폈다.

 “건장한 체격은 아니네?”

 어차피 그것 말고는 알아볼 수 있는 게 없다.

 오동태가 입술을 핥았다.

 “오케이.”

 오동태의 퍽치기 경험에 의하면, 지금 이 상황에서 앞만 보고 천천히 걷는 김민준은 완벽한 먹잇감이다. 더 쉬운 먹잇감은 술에 잔뜩 취한 취객밖에 없다.

 오동태가 주머니에서 빨간 목장갑을 꺼내 끼고는 주변을 훑어보았다. 벽돌 하나가 굴러다니는 게 보였다.

 “연장도 완벽하고.”

 오동태가 벽돌을 집었다. 그리고는 빠른 걸음으로 김민준에게 다가갔다.

 퍽치기는 여러 가지가 있다. 길가는 사람을 두들겨 패고 돈을 빼앗는 것도 퍽치기라고 부른다.

 퍽치기 중 가장 지독한 건, 둔기로 피해자의 머리를 공격하는 행위다.

 그런 퍽치기의 피해자는 머리가 깨져 죽거나 폐인이 되기 쉽다. 하지만 피해자의 목숨이나 인생을 걱정하며 그런 퍽치기를 하는 인간은 없다. 인간성이 남아있는 사람은 애당초 그런 퍽치기를 하지 않는다.

 오동태도 마찬가지다. 그에게 있어서 상대의 목숨은 관심 대상조차 아니다. 그가 신경 쓰는 건 오직 상대가 가진 현금이다.

 거리가 가까워지자, 오동태가 땅을 박차며 앞으로 달려갔다. 손에 쥔 벽돌을 한번 흔들어 본 후, 김민준의 뒤통수를 향해 힘껏 휘둘렀다. 김민준이 저항하지 못하게 하려고 벽돌을 휘두를 때 전력을 다했다.

 마치 머리뼈를 부숴버리려는 것 같았다.

 벽돌이 김민준의 뒤통수를 향해 정확히 날아갔다.

 

 김민준의 머리가 앞으로 슬쩍 기울어졌다.

 “어?”

 놀란 소리는 오동태의 입에서 나왔다. 벽돌이 허공을 크게 헛맞추었다. 헛손질이 몸의 균형을 무너뜨렸다. 그는 벽돌을 휘두르던 힘을 이기지 못하고 앞으로 두 걸음이나 비틀거렸다.

 오동태는 당황했다. 정확히 노리고 휘둘렀는데, 상대가 눈앞에서 사라졌다.

 

 그의 뒤에서 목소리가 들렸다.

 “너 나 아냐?”

 오동태가 깜짝 놀라 뒤로 돌아섰다.

 김민준이 짝다리를 짚고 서 있었다.

 

 김민준은 오동태가 뒤따라온다는 건 알고 있었다.

 어렸을 때 당했던 수많은 실험의 부수 효과로 감이 좋아졌다. 고대 서적을 수련하면서 그 능력이 강화되었다. 사나운 육식동물들 때문에 경험도 쌓았다.

 처음에는 오동태에 대해 신경 쓰지 않았다.

 그런데 살기가 느껴졌다. 어쩌나 하고 놔뒀더니 벽돌을 들어 자신의 뒤통수를 부수려고 했다.

 의문이 들었다.

 ‘이놈은 왜 나를 노릴까?’

 자신이 노림을 당해야 하는 이유를 생각해보았다.

 ‘나를 로키산맥에 버리고 떠난 사람들? 아니야. 그들은 나를 잊었어. 완벽하게.’

 그들이 자신을 어떻게 하려고 하는 거라면, 여기가 아니라 로키산맥으로 찾아왔어야 했다.

 ‘게다가 나를 죽이려고 들 리가 없어.’

 그가 어떻게 살아있는지 알아내려고 애써야 할 자들이, 그를 죽일 리가 없다.

 좀 더 과거를 생각했다.

 ‘그럼 어렸을 때의 원한? 그 어린 나이에 내가 무슨 원한을 쌓겠어? 그것도 아니야.’

 그는 지식은 있지만 경험이 없다. 지식만 가지고 판단하려고 하자 이 상황이 도저히 이해가 가지 않았다.

 혹시나 해서 오동태에게 물었다.

 “너 나 아냐?”

 

 오동태의 눈이 독해졌다.

 퍽치기를 했을 때 목표물이 정신을 잃지 않으면, 정신을 잃을 때까지 돌로 머리를 때리는 게 그가 즐겨 쓰는 방법이다.

 “이 새끼. 내가 널 어떻게 알아!”

 오동태가 김민준의 머리를 노리고 벽돌을 휘둘렀다.

 

 추가 정보를 얻었다. 적이 그를 모른다고 했다. 이제야 상황을 완전히 이해했다. 생각이 너무 멀리까지 갔었다. 상황은 보이는 그대로였다.

 경험이 한 가지 늘어났다.

 김민준이 히죽 웃었다.

 “그럼, 강도라는 거구나?”

 

 강도는, 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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