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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연재 > 현대물
도시의 히어로
작가 : 황규영
작품등록일 : 2016.4.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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웃기고 신나는, 따뜻한 마음을 가진 사람.
나를 버린 도시를 구하러 돌아왔다.
이 도시의 정의는 내가 세운다.
타협은 없다.
기생충들은 모두 지옥에 처박아주마.
세상은 히어로를 원한다.
마음을 울리는 따뜻한 이야기.

김민준은 외국 연구소의 희귀질병 치료 실험 대상자였으나, 비밀 치료 실패 후에 로키산맥에 버려졌다. 산속에서 혼자만의 노력으로 질병을 극복하면서, 신체가 강화되고 오감을 넘어 육감까지 크게 향상되었다.
성장기를 연구소와 로키산맥에서 보냈던 김민준은, 자신이 누구인지 알기 위해 귀국한다.
그가 로키산맥에서 맹수로부터 구해줬던 케이티는 그를 찾기 위해...

 
도시의 히어로 1
작성일 : 16-04-11 13:09     조회 : 1,295     추천 : 0     분량 : 58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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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도시의 히어로

 

 1.

 아메리카의 요정이라는 별명을 가진 케이티 실버스톤이, 붉게 칠한 입술로 마티니 잔을 살짝 물었다 놓았다. 투명한 유리가 와인색으로 옅게 물들었다.

 “미스터 M에 대해서는 묻지 않기로 약속했잖아요.”

 미국 대형 음반사인 UA뮤직의 사장 제이슨이 얼굴 가득히 편안한 미소를 지었다.

 “케이티. 순수하게 개인적인 호기심입니다. 남들에게는 말하지 않겠습니다.”

 케이티가 술잔 윗부분을 손가락 끝으로 동그랗게 만지다가 입을 열었다.

 “작년에, 열아홉 살 생일선물로 로키산맥으로 여행을 갔었어요. 여행은 즐겁지 않았어요. 어릴 때부터 꿈이었던 가수가 되는 길이, 시작하자마자 실패했었으니까요.”

 “아. 1집이 실패한 건...”

 “현실의 벽이 너무 높았어요. 음반이 완벽하게 실패하고 나서, 차라리 배우를 하라는 제안을 받았죠. 내 꿈은 가수인데 말이에요.”

 “케이티의 미모라면 당연히 그런 제안을 받을 만...”

 “거기 참 좋더라고요. 우울한 기분이 한순간에 날아갔어요. 뭐, 둘째 날부터는 우울할 틈도 없었지만요.”

 “둘째 날?”

 “길을 잃고 일행과도 헤어졌거든요. 그래도 곧 일행을 만날 거라는 희망을 잃지 않았어요. 하룻밤을 혼자서 보내고 나서도 말이죠.”

 “케이티는 밝으니까...”

 “그 희망은, 커다란 곰을 맞닥뜨리면서 사라졌어요.”

 “고, 곰?”

 “정말 어마어마하게 컸어요. 무게가 제 열 배는 충분히 넘어 보일 정도로요.”

 케이티가 사장 제이슨을 쳐다보았다.

 “그런 큰 곰이 눈에서 맹수 특유의 살기를 뿌리면서 달려오는 모습 보신 적 있어요?”

 “없...”

 “둔한 곰탱이라는 말은 실제로 곰 앞에서 도망쳐보지 못한 사람이나 할 수 있는 말이에요. 곰은 빨라요. 적어도 저보다는 훨씬 더 빨랐어요. 그리고 그때 저는 얼어서 움직일 수도 없었고요. 그 곰이 저를 확 덮쳤어요. 그 날카로운 이빨하고, 커다란 발톱은 아직도 잊지 못해요. 저 같은 건 한 입 거리였을 거예요.”

 “하지만 케이티는 지금 여기 있잖습니까? 어떻게...”

 “위기에 빠지면 세상이 느리게 보이더라고요. 곰의 머리가 옆으로 휙 젖혀지는 게 슬로우모션으로 보였어요. 곰의 얼굴을 사람이 걷어차고 있다는 걸 깨닫자마자, 눈에 보이는 속도가 빨라지면서 곰이 옆으로 휙 자빠지더라고요.”

 “사, 사람이요? 사람이 어떻게 커다란 곰을 발차기로 쓰러뜨립니까?”

 “말도 안 되죠? 하지만 그때 저에게 말이 되는지 안 되는지가 중요했겠어요? 전 그때 수퍼히어로가 현실에 정말 있다고 생각했어요.”

 “하, 핫. 그래서 만화책을 즐겨 보시는군요? 그래서 그 사람은 누구였습니까? 수퍼맨이라도 됐습니까?”

 “동양인 남자였어요. 그 남자가 쓰러진 곰의 머리를 밟은 채 뭐라고 했는지 아세요?”

 “뭐라고...”

 [잡았다. 요놈.]

 그건 제이슨이 알아듣지 못하는 언어였다.

 “예?”

 “한국말이에요.”

 “아. 그렇군요. 그런데 곰이 앞에 있는데 어서 도망쳐야 하지 않습니까?”

 “그럴 필요가 있나요? 그 곰은 그 한 방으로 목이 부러져서 죽었는데요.”

 제이슨이 자기도 모르게 무례한 소리를 냈다.

 “하. 목이 부러져요? 사람의 발차기를 맞고?”

 사장 제이슨은 케이티의 말을 조금도 믿지 않았다.

 ‘어쩐지 순순히 털어놓는다 싶더라니. 미스터 M에 대해서 말하기 싫으니까 어디 만화책에서 본 소리만 늘어놓는군.’

 “케이티. 제가 듣고 싶은 건 미스터 M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당신의 2집에서 빅히트한 세 곡을 모두 작곡한 미스터 M 말입니다.”

 “그 사람에게 도와달라고 했어요. 배고파 죽겠다고도 하고요. 그 사람이 일단 자기 먹을 걸 나눠줬어요. 겉보기에는 회색 골프공처럼 생긴 거였어요.”

 케이티가 갑자기 눈살을 찌푸렸다.

 “아. 또 생각나네.”

 “왜...”

 “정말 맛이 없었거든요. 선식이라고 부르더라고요. 나무 이파리 같은 거랑 약초 같은 걸 섞어서 만든 거래요. 제가 전날부터 굶어서 정말 배가 고팠거든요? 그런 상태로 먹었는데도 그건 정말 쓰고 역겹고... 그래서 다른 거 없냐고 물었더니, 없대요. 그래서 방금 잡은 곰을 구워달라고 했더니, 싫대요. 자기는 그 선식이라는 이상한 것만 먹어야 한대요. 저도 곰의 살을 잘라서 구울 용기는 없었고요. 어쩌겠어요. 눈 딱 감고 선식이라는 걸 삼켰죠.”

 “아니. 그러니까 미스터 M에 대해서...”

 “먹고 나서 사람 사는 도시까지만 데려다달라고 했어요. 그랬더니 그것도 싫대요. 자기는 그 지역을 벗어나면 안 된대요. 대신에 일행을 찾는 걸 도와준다고 하더라고요.”

 “산에 사는 인디언이군요?”

 “아니요. 곰을 잡을 때 한국말을 했다니까요.”

 “케이티는 그때 한국말을 못 했을 텐데...”

 “그 사람 영어도 잘 해요. 선천적인 병을 치료하려고 한국에서 아주 어릴 때 왔대요. 로키산맥 안에서도 대자연의 기가 잘 흐르는 곳에 자리를 잡고 이십 년 가까이 지냈대요.”

 “문명의 혜택을 못 받고 숲에서 그렇게 오래 살면 사람이 아주 야만인...”

 “아주 지적인 사람이에요. 아는 게 정말 많았어요.”

 제이슨이 속으로 짜증을 냈다.

 ‘말이 안 되는 소리를 하는군. 병을 치료받으러 왔다는 사람이 곰을 혼자 때려잡고, 이십 년이나 로키산맥 안에서 살면서 지적이라니. 미스터 M에 대해 말해주기 어지간히 싫은가보군.’

 케이티는 제이슨이 무슨 생각을 하는지 짐작했다.

 ‘내 말을 안 믿겠지.’

 하지만 그녀도 모든 걸 말해줄 생각은 없다.

 ‘산맥 깊은 곳에 있다는 그 사람 집에는 책도 많고 컴퓨터도 있다고 했지만, 그건 말해주지 말아야지.’

 “그 사람하고 같이 일행을 찾으러 다니면서 참 많은 이야기를 나누었는데, 대화를 하다보니까, 정말 대단한 사람인 거예요. 그래서 생각했죠.”

 “무슨 생각을 했습니까?”

 “이 사람에게 내 노래를 불러줘 보자. 이 사람이 안 좋다 그러면, 포기하고 배우가 되라는 제안을 받아들이자.”

 “노래를 듣고 뭐라던가요?”

 “남이 직접 부르는 노래는 처음 들었대요. 답례라면서 자기가 만든 노래를 불러주더라고요.”

 “노래?”

 “요정의 첫사랑.”

 “억!”

 UA뮤직 사장 제이슨의 입에서 놀란 소리가 자기도 모르게 튀어나왔다.

 ‘요정의 첫사랑’은 그녀의 2집 타이틀곡이다. 그리고 무명에 가깝던 그녀에게 아메리카의 요정이라는 별명을 붙여준 대히트곡이기도 하다.

 “그럼 설마 그 야만인이...”

 케이티의 고운 눈썹이 모였다. 목소리가 높아졌다.

 “야만인 아니라니까요!”

 “아, 그러니까, 그 맨손으로 거대한 곰을 한방에 때려잡는 수퍼히어로가... 미스터 M?"

 케이티가 그때를 생각하며 눈을 살짝 감았다.

 “아. 정말 저는 움직일 수가 없었어요. 노래에 빠져서 멍해져 있는데, 그 사람이 그러는 거예요. 자기가 만든 그 노래를 불러달라고. 제 목소리로 듣고 싶다고.”

 “그래서...”

 “불렀죠. 못 외우니까 제 가방에 있던 수첩에 악보를 그려주고 가사를 써주는 거예요. 제가 방금 그 노래를 부르면서 한 실수를 고칠 방법까지 같이요. 그걸 보고 불렀더니, 처음이라 어설펐는데도 불구하고, 그 사람이 정말 환하게 웃으면서 말하는 거예요. 제가 부르니까 정말 잘 어울린다고.”

 제이슨은 케이티의 말을 믿지 않았다.

 ‘어디서 이런 말도 안 되는 구라를... 끄응. 그래도 장단은 맞춰줘야지.’

 “그러시군요. 그런데 미스터 M이 작곡한 노래는 세 곡입니다만? 한 곡은 그렇게 얻었다고 해도...”

 “졸랐죠.”

 “예?”

 “선심 쓰는 김에 조금만 더 쓰라고. 졸졸 쫓아다녔더니 두 곡 더 적어주는 거예요.”

 그가 귀찮아하면서 적어주었다는 말은 하지 않았다.

 “가만. 그 자리에서 작사작곡을 했을 리는 없고...”

 “이십 년이나 숲에서 지내면 심심하대요. 심심풀이로 만들어둔 노래들 중에 저랑 잘 맞는 걸 골라준 거래요.”

 사장 제이슨은 진심으로 케이티의 말이 사실이기를 바랐다.

 ‘진짜라면, 그런 대박곡들이 여려 곡 남아있다는 소리.’

 히트곡 하나쯤은 작곡 실력이 모자라도 행운이 따른다면 만들 수도 있다. 하지만 세 곡의 히트곡을 쓰는 건 행운만으로는 어렵다. 여러 발표곡 중에 단 셋만 히트해도, 대단한 재능을 가졌다고 인정받는다.

 미스터 M은 단순히 재능을 가졌다고 표현할 수준을 넘어선다. 딱 세 곡만 공개해서 셋 다 엄청난 히트를 했다. 성공률이 백퍼센트다. 완전히 다른 차원의 이야기다.

 하지만 믿지를 않았다.

 ‘지금 이야기가 진짜가 아니라 아쉽군.’

 케이티의 말은 제이슨의 상식을 벗어난다. 애당초 사람이 거대한 곰을 발차기 한 방에 때려잡았다는데서부터 믿음을 주지 못한다.

 그렇다고 면전에서 뭐라고 할 수는 없다. 케이티의 2집 음반 중에서 미스터 M이 작곡한 세 곡의 노래 모두 빌보드 차트의 꼭대기에 올라갔었다. 그 중 ‘요정의 첫사랑’은 무려 6주 동안 정상을 차지했었다.

 케이티가 말했다.

 “노래를 받아보니까 이제 일행을 찾는 게 문제가 아닌 거예요. 그래서 달라붙었죠. 이 노래들을 잘 부르는 법도 가르쳐달라고. 그렇게 일주일을 따라다니면서 노래를 배웠어요.”

 “아. 예. 그러셨겠지요.”

 제이슨의 말은 이제 건성으로까지 나온다.

 ‘확실히 케이티의 음반 1집과 2집은 곡뿐만이 아니라 노래 실력도 차이가 크게 나지. 그렇다고 그걸 1주일만에? 그것도 스튜디오가 아니라 아무 장비도 없는 숲에서? 야만인에게? 케이티는 거짓말이 너무 어설프군.’

 케이티의 얼굴에 아쉬운 감정이 떠올랐다.

 “그렇게 일주일이 지나고 나서, 일행을 찾아버렸지 뭐예요.”

 사장 제이슨이 그런 케이티를 보며 속으로 생각했다.

 ‘역시 케이티는 배우 쪽에도 재능이 있어. 그 영화의 주연으로 케이티를 밀어봐야겠어.’

 “그래서, 거기서 헤어진 겁니까?”

 “그러기로 약속했으니까요. 같이 산을 내려가자고 부탁했지만, 단번에 거절당했어요. 정말 뒤도 안 돌아보고 가더라고요.”

 제이슨이 케이티를 놀리는 마음으로 물었다.

 “뭐, 그랬다고 칩시다. 그럼 미스터 M의 저작권료는요? 액수가 장난이 아닐 텐데...”

 “제가 통장 따로 만들어서 잘 보관하고 있어요.”

 “로키산맥으로 다시 찾아가서 전해주지 그랬습니까?”

 케이티가 시무룩해졌다.

 “가봤죠. 하지만 찾을 수가 없는걸요. 거기 정말 넓고, 길도 없고, 저도 어디를 헤맸는지 모르겠고...”

 제이슨은 그 모습을 보고 확신했다.

 ‘이 연기력! 그 영화의 주연은 케이티밖에 없다.’

 케이티가 시계를 힐끗 보더니 일어났다.

 “전 이제 다음 일정이 있어서 가볼게요.”

 

 케이티가 나간 후에, 사장이 한숨을 푹 쉬었다.

 “후우. 미스터 M이 로키산맥의 야만인이면서 동시에 수퍼히어로라니. 사람이 아무리 속아주려고 해도 믿을 말을 해야 믿지. 젠장. 누군지 알아내야 계약을 할 텐데 말이야.”

 

 케이티가 차에 올라탔다. 일정을 점검하던 여자 매니저 메리가 물었다.

 “케이티. 뭔가 좋은 일 있어요?”

 “입이 간지럽던 게 조금 가셨어.”

 “병원에 갈까요?”

 “임금님 귀는 당나귀 귀.”

 “아. 무슨 이야기를 하셨는데요?”

 “그 사람 이야기.”

 메리는 깜짝 놀랐다.

 “케이티. 미스터 M에게 사람들이 찾아가면 폐 끼치는 거라고 하셨잖아요. 무슨 병을 치료하는 중이라고...”

 “괜찮아. 하나도 안 믿게 이야기했으니까.”

 “거짓말을 하셨다고요?”

 “아니. 이야기를 다 안 한 거지. 다 이야기해도 안 믿었을 테지만.”

 메리도 미스터 M에 대해서는 자세히 모른다. 그냥 고개만 끄덕인다.

 “아. 예.”

 케이티가 뒷좌석에 몸을 파묻으며 말했다.

 “메리. 이번 달 일정 조정해서 며칠만 비워봐. 로키 산맥 한 번 더 가자.”

 “케이티. 지난달에도 다녀오셨잖아요! 안돼요! 스케줄 잔뜩 밀렸어요! 게다가 영화 제안도 막 들어오는데!”

  * * *

 하늘이 깊은 바다색을 자랑하는 날 오후에, 김민준이 서울역 공항철도 출구를 걸어 나왔다.

 “아. 서울이다. 서울아. 잘 있었냐. 정말 오랜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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