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혜는
나
에게 있어,
숨구멍
과도 같았다.
유일하게 내가 내 속을 털어놓을 수 있는.
그렇게 나의 발걸음은 그 친구에게로 향하였다.
나의 마음이 향하는 곳으로 나의 발걸음도 향했다.
그렇게 친구가 생긴 이후
나는
칼이 아닌
사람을 찾았다.
나에게 해를 가하는 것 말고도
나를 풀어놓을 수 있는 방법이 있다는 것은
나에게 있어서 매우 놀라운 일이었다.
누군가에게 속을 털어놓는다는 것은 상상조차 할 수 없는 일이었기에.
그렇게 나는 더 이상 칼이 아니라 친구를 찾아갈 수 있어서 너무나도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다혜는 내 시선에서 점점 적이 아닌 친구로 그 모습이 점점 바뀌어가고 있었다.
그렇게 나는 매일같이
다혜를
찾았다.
내 속을 털어 놓을수록 내 몸이 그 무게를 더는 것만 같았다.
짙은 어두움이
점차 회색빛으로
옅게도
자신의 암울함
을 벗겨내고 있었다.
그렇게 나의 암흑은 서서히 벗겨졌다.
그러나 그것은 나만의 착각이었다.
어두움을 벗겨내다가
어느 순간 그 친구의 눈을 바라보면
내 어두움이 그 동공에서 다시 나를 불렀다.
너만 힘든 거 아니야.
다들 그러고들 살아.
다 똑같은데 왜 너만 더 힘들어 하는 거야.
고통을 비교하는 말들.
우리의 세계에서는
고통마저 비교대상이었다.
개개인의 아픔의 정도마저
무게를 가늠할 수 있는 것이었다.
나는 고통은 가늠할 수 없다고 믿어왔었는데.
그것이 아니었다.
개개인의 고통은 재어졌으며
그를 넘어 비교까지 가능했다.
그렇게 나의 괴로움은 저울질을 당했다.
나의 아픔이.
나의 슬픔이.
나의 상처가.
나의 고통이.
그 어두운 눈을 마주한 순간부터
나의 마음은
다시 닫혔다.
굳게도.
어둡게도.
옅어졌던 회색빛의 내
암
울
함
은
다시
어
두
움
으로
덧칠되어져 갔다.
고통이라는 커다란 붓은
자신의 온 몸을
암담함이라는
검은 먹물 속에
담근 뒤,
그 모든 암울함을 머금었다.
그런 뒤,
밝아지려고만 했던 회색빛에
자신의 어두움을 덧칠하였다.
쓱_
하고
또
쓱_
하고
그렇게
밝아질 일만 있을 줄 알았던
나의 그림자는
다시 짙어졌다.
짙어지고.
짙어지고.
짙어졌다.
어두움에 어두움을 더하고
그 어두움에 또 어두움을 발라버렸다.
그렇게 나의 어두움은 짙어짐을 넘어서 두꺼워졌다.
겹겹이 쌓여올려진 고통이라는 것은 전보다 더 어두워졌다.
친구의 관심이라는 시선에 틈을 벌렸던 나의 마음은
더욱 더 꼼꼼히 메워졌다.
더 이상은 그 틈을 절대로 벌리지 않으려는 듯이.
그렇게 닫혀갔고,
그렇게 두꺼워졌다.
입으로 털어놓기만 했다.
마음이 아닌.
그 친구는 나의 말을 닫힌 눈으로 받아내었다.
나 또한 닫힌 마음으로 말들을 내보냈다.
의미 없는 대화들.
그곳에서 중요한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