똑같은 상황에서 나 또한 힘겨운 수험생활을 지내고 있는데
나의 힘듦은 알려고 하지도 않고
자신의 힘겨움만을 풀어내는 진희가
한편으로는 이기적인 것 같다는 생각도 들었다.
계속해서 그 상황이 지속되다보니.
나도 바쁜데. 나도 힘든데.
라는 생각이 들었다.
진희가 풀어내는 내용들
은 대한민국에 사는 수험생들이라면 다들 겪고 사는
그런 흔해빠진 고민들이었다.
고통에 대한 감수성이라는 것이 다른 사람들과는 차이가 있을 수도 있으니 그럴 수도 있겠다며 진희를 이해해보려고 했다.
그러나 나는 계속 되는 말들에 지쳐갔다.
처음에는
두렵고 어찌해야 할지를 몰라서였으나.
나중에는
나도 힘들고 내 상황도 쉽지는 않다는 자기변호로 인해 난 점점 진희의 진심을 흘려보냈다.
그렇게 몇 개월이라는 시간이 흘렀다.
계속해서 반복되는 끊임없는 부름에 나는 지쳐만 갔다.
그렇게 나는 진희의 속마음을
그저 일상과도 같은 것으로 치부해버렸다.
끊임없는 시험들과 나를 판단하는 것들의 연속.
정신없는 수험생의 일상들이 돌아갔다.
나는 서서히 진희를 바라보는 것을 잊어갔다.
솔직하게 말하면 의도적으로 진희와의 눈 맞춤을 피했다.
나도 힘들어.
라는 생각이 한 번 든 순간부터
내 눈에는 더 이상
진희
가 보이지 않았다.
그렇게 나의 시선은
진희
를 향하는 대신
내 책상 앞에 놓인 문제집들로 향했다.
진짜 심각한 문제
는 고개를 들고 바라봐야 하는 곳에
놓여져 있었는데,
나는 그저
한낱 의미 없는 문제를 위해
내 고개를 깊숙이 숙이고
가짜 문제만을 그토록 괴롭게 풀어댔다.
진짜
는 저 앞에 있었는데.
그렇게 나는 인생의 문제들을 직접 풀어내지도 못하고
그저 시험이라는 거짓된 세상 속에 갇혀서는
그렇게 점차 현실성을 잃어갔다.
진짜 중요한 것이
무엇인지 알지도 못하면서.
인생을 위한 것은
그 속에 있는 줄로만 알았다.
그렇게 나의 고개는 생각보다 오래 들어지지 않았다.
내 머리가 지식들로 들어차자
진희는
내 머릿속에서 점차 사라져 갔다.
더 이상 자리가 없어지자,
내 머리는
그렇게
진희를
지
워
갔
다.
더 외워야 할 것이 많다.
더 집어넣어야 할 것이 많다.
하며 나는 스스로 내 속에서 진희를 지워갔다.
그렇게 너무나도 쉽게,
너무나도 간단하게 진희가 내 머릿속에서 사라져갔다.
그렇게 쉽게 잊으면 안 되는 거였는데.
너무 쉽게 잊혀졌다.
그렇게 바쁘게도 돌아간 수험생활.
친구의 고민을 들어주고 짐을 덜어주는 게
뭐 대단한 일이라고 그토록 대단한 것처럼 포장을 했는지.
그러나 그 때의 나는 진희의 아픔을 그렇게 외면했다.
그러면 안 되는 거였는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