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러나 다행인 것인지.
그 날 이후로, 진희는 마음을 털어놓을 사람이 없었는지
나를 자주 찾았다.
진희가 나를 찾을 때마다
나는 진희의 마음을 들어주었다.
그저 듣기만 했다.
사실은 진희의 말들에는
하나도 공감을 할 수가 없었다.
그럴 때면
진희와
나는
서로 다른 세상 속에서 사는 것만 같았다.
진희가 자신의 속에 있는 말을
할 때면 마치 몽환적인 세상에
홀로 빠져 있는 듯이
그 눈이
몽롱했다.
텅하고 비어버린 듯 한 초점 없는 눈빛으로 털어내는 속 깊은 얘기들.
그저 들어주기만 했다.
다른 것은 어떻게 해야 하는지 알 수가 없어서.
어떠한 행동도 취할 수가 없었다.
그 때, 들어주기만 하는 게 아니라 뭐라도 했어야 했는데....
그러나 그 당시의 나는 알지 못했다.
그저 지겨울 뿐이었다.
계속해서 반복되는 똑같은 말들이.
이기적으로 자신의 괴로움만을 풀어대는 진희의 말들이.
그렇게 시간이 지날수록
나는 점차 그 속에서 지쳐만 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