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팔에는 링거가 너무나도 많이 꽂혀져 있어서 옆으로 돌아누울 수도 없었다. 그랬기에 병원 침대에 누워서 스마트 폰을 들어야지만 내 얼굴을 그 화면 안에 담을 수가 있는데. 내가 너무 나약해서 스마트 폰 조차 들 수가 없었다. 그 순간 나는 좌절했다. 스마트 폰 조차 들 수 없다니.... 내 상태가 얼마나 심각한지.... 그제 서야 처절하게 느껴졌다. 무너져 내렸다. 내 심정이. 내 마음이. 병들어 버린 내 몸이 내 정신을 무너뜨렸다. 이제는 정말 끝이구나. 라는 생각이 들었다. 끝이라는 생각이 들자, 정말로 그 사람을 보고 싶었다. 죽기 전 마지막, 목표. 소원. 이었다. 제발. 그래야만 할 것 같았다. 제발 죽기 전에 그 사람을 볼 수 있으면. 내 삶에 있어서 그나마 가장 가치가 있을 일일 것만 같았다. 우울 속에서 괴로워하는 사람을 벗어날 수 있도록 도와준 일. 그것만이 내 짧은 생애에서 가장 가치 있고 빛나는 일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간신히 스마트 폰을 내 배 위에 올렸다. 화상통화는 못하더라도 문자는 남길 수 있을 것만 같았다. 문자를 남기자고 생각하였다. 글을 남기자고. 마주보고 이야기하는 것이 아니라도 내 다급함이 담길 수 있을까. 두려웠다. 그 아이가 자신의 상처를 이겨내지 못할까봐. 두려움 속에서 일어서지 못하고 또다시 무너져 내릴까봐. 나는 한 자, 한 자. 내 마음을 담아 적기 시작했다. 그렇게 온 힘을 다해서 느리더라도 간절한 마음을 담아 내 상태를 적어내었다. 조금만 더 힘을 내 달라고. 조금만 더 빨리 나에게 와 달라고. 조금만 더 용기를 내달라고. 상처를 이겨내 달라고. 끔찍함을 지워내 달라고. 그렇게 부탁하였다. 나에게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고. 하였다. 문자조차 그리 길게 남길 수는 없었다. 그조차도 나에게 있어 힘겨운 일이었기에. 나는 간신히 문자를 완성하고는 전송버튼을 눌렀다. 그 사람에게 닿기를. 그 사람이 글 속에 담긴 나의 마음을 이해해 주기를. 우리의 마음이 같아서 실제로 서로 단 한 번이라도 만날 수 있기를. 그렇게 바라고. 바라고. 또 바랬다. 문자를 마치고 스마트 폰을 병원 침대 위로 내려놓았다. 힘겨웠다. 몸이. 그리고 마음이. 지쳐버렸다. 너무나도 빠르게. 그렇게 나는 눈을 감았다. 힘겨웠기에. 눈이 다시 뜨여져야 하는데. 그 아이가 나에게 오기 전까지는 죽지 않기를 바랐다. 그렇게 나는 제발 내 눈이 뜨여지기를 하며 눈을 감았다.
띠링. 문자였다. 문자. 동영상도 아니고. 댓글도 아니고. 전화도 아니고. 문자였다. 순간적인 두려움이 내 안에 스몄다. 그러한 두려움이 왜 든 것인지 알 수 없었으나 문자가 도착하자 약간의 두려움이 내 안에 들었다. 걱정스러운 마음으로 스마트 폰을 켜서 문자를 확인했다.
문자에 그 아이의 다급한 상황이 담겨져 있었다. 글뿐인 문자로는 그 아이의 상황을 알 수가 없었지만, 그 아이의 글 속에는 그 아이의 마음이 담겨져 있었기에 상황이 좋지 않은 것이 글 안에 새겨져 있었다.
다급해보였다. 나를 찾는 그 아이의 문자가. 간절해 보였다. 내가 빨리 그 아이에게 오기를 바라는 것만 같았다. 글을 읽어 내려갈수록 그 아이의 다급함이 느껴졌다. 문자에는 오타가 많았다. 문자를 적어 내려가던 아이의 손가락에 힘이 빠져버렸던 것만 같았다. 그렇게 그 아이의 빠져버린 힘이 글 속에 담겨져 있었다.
‘죽음이 얼마 남지 않은 것 같아’
라고 적혀 있었다. 죽을 날이. 죽음. 순간 두려웠다. 죽는다니. 죽음. 죽음이 두려웠다. 나에게 있어서 죽음이 두려웠던 적은 없었는데 그 아이가 죽음을 말하니까 너무나도 두려웠다. 죽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아니, 죽으면 안 된다. 그 아이가 죽는다면 다시 무너져 내릴 것이 분명했다. 죽지 않았으면... 죽으면 안 된다. 현실에서. 실제로 만나야만 했다. 급해졌다. 그 아이가 나를 찾았다. 그 아이를 만나야만 했다.
다급해졌다. 나가야만 했다. 그 아이가 내가 빨리 오기를 바랬다. 빨리 나가야만 했다. 그 아이를 위해서 빨리 나가야만 했다.
그렇게 나는 스마트 폰을 꺼버렸다. 나가야했다. 바로. 그 아이가 있는 병원을 향해서. 그렇게 나는 스마트 폰을 꺼버렸다. 급했다. 그 아이가 나를 불렀기에. 방문 손잡이를 잡아 열고는 바로 방 밖으로 나갔다. 빨리. 빨리 나가야만 했다. 너무나도 오래 걸렸다. 그 아이에게로 향하는 기간이. 너무나도 오래 걸렸다. 내 마음이 너무나도 나약해서. 내 마음이 너무나도 약해서. 내가 상처를 빨리 이겨내지 못해서. 너무 오래 걸린 것이었다.
다급하게 엘리베이터의 버튼을 눌렀다. 빨리. 빨리 그 아이에게로 가야만 했다. 엘리베이터를 기다리는데 나도 모르는 사이 내 눈에서 눈물이 떨어졌다. 제발.... 나를 기다려 주기를. 조금만.... 조금만 더 견뎌 주기를. 바랬다. 만날 수 있기를.... 죽음이 닥치기 전에 만날 수 있기를.
띵. 하며 엘리베이터가 도착했다. 나는 급한 마음을 가진 채로 엘리베이터에 올라탔다. 제발.... 제발. 하였다.
띵. 하며 1층에 도착했다. 나는 바로 엘리베이터에서 튀어나갔다. 버스.... 버스를 타야만 했다. 그 아이가 있는 병원에 가기 위해서는. 빨리. 빨리.... 나는 그렇게 집 밖으로 뛰쳐나갔다. 사람들이 내 옆으로 지나갔다. 다들 그렇게 내 옆에 있었다. 그러나 내 눈에는 그 사람들이 보이지 않았다. 흐릿했다. 내 눈물에 가려진 걸까. 내 머리에 들어오지 않는 걸까. 그렇게 사람들이 흐릿하기만 했다. 내 머릿속으로 들어오지 않았다. 사람들이. 내 머릿속에는 오직 그 아이만이 가득했다. 더 이상 사람들이 내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사람들이 나를 보고 뭐라고 수군거릴까 생각도 들지 않았다. 그저.... 그저 그 아이를 향해 가야만 했다. 그렇게 쓱_ 또다시 쓱_ 하고 사람들이 내 시야에서 사라졌다. 사람들이 들어오지 않았다. 내 머릿속에는 오직 그 아이만 있었기에....
버스가 왔다. 역에 정차하는 버스가 다가왔다. 타야만 했다. 버스를. 빨리. 그렇게 나는 사람들의 틈에 껴서는 버스에 올라탔다. 사람들이 많았다. 너무. 순간 내 머리가 사람들을 인지하기 시작했다. 당황스러웠다. 갑자기 두려워졌다. 사람들이 내 눈에 들어오기 시작하자, 너무나도 빠르게 두려움이 다시 내 안으로 스미고 들어왔다. 내 머릿속에서 사람들을 내보내야만 했다. 내 밖으로. 기억하지 말자. 신경 쓰지 말자. 하였다. 이겨내야만 했다. 그 아이를 만나기 위해서는. 내 상처를 딛고 일어서기 위해서는. 그래야만 했다. 나는 그렇게 사람들 사이에 껴서는 힘겹게도 버텨내었다. 너무나도 많은 사람들이 버스 안에 있었다. 생각하지 말자. 그들은 나를 보고 있지 않다. 신경 쓰지 말자. 나는 그렇게 나에게 속삭였다. 그 동안의 노력이 헛되어지게 하지 말자. 이겨내자. 이겨내야만 한다. 그 아이를 만나야 한다. 그 아이를 만나러 가는 길이니까 버텨야만 한다. 마음을 강하게 먹었다.
띵동. 역이었다. 내려야 했다. 내려서 지하철을 타야 했다. 나는 그렇게 사람들 사이를 비집고 통과해서 버스 출구에 섰다. 빨리.... 빨리..... 뛰어가자. 뛰어가자.... 버스의 뒷문이 열리고 나는 재빨리 버스에서 내렸다. 역으로. 역으로 뛰어가야 했다. 나는 그렇게 내 옆에 있는 사람들을 지나쳐서 역 안으로 뛰어 들어갔다. 역 안에는 버스에 있는 사람들과는 비교가 되지 않을 정도로 많은 사람들이 있었다. 역이 이렇게 넓었나. 순간적으로 당황하였다. 너무 오랜만에 역 안으로 들어와서 인지. 쉽사리 길을 찾지 못했다. 정신을 차려야 했다. 여기까지 와서 실패를 해서는 안 되는 것이기에. 나는 그렇게 역 안에 서서 스마트 폰으로 그 아이가 있는 병원으로 향하는 지하철을 찾았다. 정신을 차려야 했다. 그렇게 순간, 내 시선이 사람들이 있는 밖이 아닌 내 손안에 들려 있는 세계인 스마트 폰 속을 바라보았다. 내 마음에 안정감이 들었다. 편안했다. 앞을 쳐다보지 않고 내 마음이 편한 곳을 바라보니. 안정감이 들었다. 그 아이의 병원으로 향하는 지하철 방향을 알아내었다. 빨리. 빨리 다시 고개를 들고 현실에서 앞으로 나아가야 했다. 걷자. 걷자. 다시 걷자 하였다. 그렇게 내 발걸음이 앞으로 나아갔다. 다시 내 눈에 수 많은 사람들이 들어왔다. 여전히 사람들은 나에게 두려운 존재들이었다. 그러나 그 아이를 보겠다는 생각하나로 내 눈은 그 모든 사람들을 이겨냈다. 그렇게 나는 앞으로. 앞으로... 걸어나갔다.
지하철이 오기만을 기다리면서 스크린 도어 앞에 서 있었다. 스크린 도어에 내 얼굴이 비쳤다. 너무나도 초췌한 모습이었다. 뛰어 오느랴고 머리는 산발이 되었으며 얼굴은 내 마음을 숨기지 못한 채로 두려움을 품고 있었다. 초라했다. 너무나도. 순간 부끄러웠다. 어머니라는 사람이 있었다면 이런 나를 보고 내 얼굴을 비난하는 말을 했을 것이었다. 순간 다시 내 머릿속을 침투하는 어머니라는 사람의 비난의 목소리. 안 된다. 안 된다. 더 이상 내 자신을 빼앗기면. 어머니는 지금 내 옆에 있지 않았다. 허구였다. 상상이었다. 끈질긴 괴롭힘의 그림자였다. 나 스스로가 만들어낸 허상이었다. 실제가 아닌 과거의 기억을 불러와서 나 자신을 괴롭혀서는 안 되는 것이었다. 그러면 안 된다. 그러면 안 돼.... 나는 그렇게 내 안으로 파고 드려는 어머니라는 사람의 언어폭력을 간신히 막아내었다. 듣지 말자. 듣지 말자. 생각하지 말자. 벗어나자. 더 이상. 어머니라는 사람의 어두운 그림자한테 나 자신을 빼앗기지 말자. 내 머릿속으로 들려오는 어머니의 목소리를 내쫓았다. 나가라. 나가라. 더 이상 나를 괴롭히지 마라. 그렇게 나는 끔찍하기만 했던 어머니의 목소리를 내 밖으로 내보냈다. 더럽게도 나를 괴롭혔다. 어머니라는 사람의 오래된 습관은. 그렇게 폭력이 되어 어머니가 내 곁에 없을 때도 나를 괴롭혔다. 마치 나를 지배하는 듯이. 그렇게 내 머릿속에 존재하면서. 지워내야만 했다. 내 머릿속에서 끄집어내야만 했다. 그렇게 내 자신은 소중하지 않고 보잘 것 없고 쓸모없다는 생각이 들게 만드는 어머니라는 사람의 언어 폭행을 내 밖으로 던져내야만 했다. 그렇게 나는 사람들이 많은 역 안에서 홀로 내면의 싸움을 했다. 그 누구에게도 들리지 않고 보이지 않을 홀로하는 내적인 싸움. 그렇게 나는 나와 싸웠다. 현재를 붙잡는 과거의 나와. 끊임없이. 끈질기게도 나를 가로막는 과거의 나와 싸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