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뒤에서 여전히 열려있는 문에서 찬바람이 들어왔다. 내 온 몸을 덜덜거리면서 떨리게 만드는 차가운 방 밖의 공기. 문을 닫아야만 했다. 더 이상 떨지 않기 위해서는. 엄마라는 사람이 나가고 나서 나는 간신히 문을 닫았다. 내 속의 나는 발광했다. 너무나도 끔찍했다. 부모는 그래도 되지만 자식은 그러면 안 되는 거였다. 처절하게 나는 약자였다. 그 누구도 도와주지 않았기에 나는 상처만 깊어져갔다 나는 쓰레기니깐. 나는 죽어야한다. 그 사람의 말대로 죽고 싶은 충동이 다시 나를 찾아왔다. 벗어날 수 있다고 생각했는데 나는 너무나도 쉽게 무너져 내렸다. 안 돼. 안 돼. 제발. 나는 그렇게 그 사람을 내방에서 밀쳐내었다. 제발 꺼져. 제발 사라져. 죽을 거니깐. 내가 죽으면 그 사람을 저 사람을 더 이상 보지 않아도 되겠지. 죽자 죽어. 나는 그 사람을 내 방밖으로 밀쳐내었다. 내가 무슨 죄를 졌기에 이러고 사는지. 저 사람들 딸로 태어난 죄 밖에 없는데. 난 병신이었고 쓸모없는 존재였다. 제발 내 방에서 꺼져. 내 안에서 나가.
죽어, 죽어, 죽어, 죽어. 내 안에 나를 향해 끊임없이 들려오는 환청의 소리. 내 안에서 나를 죽이는 소리가 났다. 내 안으로 들어온 잔인한 말은 내 머릿속에 박혀서는 또다시 나를 찔렀다. 듣고 싶지 않았으나, 내 안에서 나를 공격하는 소리는 타인의 말과 같이 멈추게 할 수가 없는 것이었다.
나는 모든 것을 빼앗겨버린 심정으로 다 뜯겨나간 내 방바닥에 누워버렸다. 방이 차가웠다. 추웠다. 너무나도. 바닥이 너무나도 찼다. 그래. 죽어. 그냥 방치 되어서 죽으라고. 나는 그렇게 나 자신을 죽여 대었다. 제발 죽어라 나의 생명아.
그 아이가 아름답게 생각했던 친구들과의 과거. 그리고 또한 그 아이를 사랑해주는 어머니라는 존재. 둘 다 싫었다. 나에게 있어서는 친구라는 것은 날 괴롭힐 뿐이었다. 그리고 엄마라는 존재는 나를 사랑하지 않았다. 나를 비난할 뿐. 그 아이가 생각하는 엄마와 나의 어머니라는 존재는 굉장히 다른 존재였다. 우리가 바라보는 죽음이라는 의미의 차이만큼. 그렇게 다른 것이었다.
그 아이를 생각하니 더 우울해졌다. 죽어야하는 것은 나였다. 죽음을 원하는 것 또한 나였다. 그 아이에게는 사랑하는 사람이 있었고, 살고 싶어 했다. 나에게는 나를 사랑해주는 사람이 없고, 살고 싶지 않았다. 그런데 죽음이라는 것은 그 아이에게 닥친 것이었다. 나에게는 죽음이 닥치지 않았다. 내가 용기만 내면 되는 건데, 죽지를 못했다. 두렵고 무서웠다. 그러나 나를 둘러싼 모든 사람들이 나를 쓸모없다 하였다. 그렇게 죽음만이 그 끔찍한 공간을 벗어날 수 있는 방법이라고 생각하게 해주었다. 죽음. 죽음뿐이었다. 그런데 그 순간, 내 머릿속에서 그 아이의 전화번호가 생각이 났다. 내가 왜 죽고 싶은가를 물어보는 질문에서 그 아이가 주었던 답변. 자신의 전화 번호.
털어놓고 싶었다. 나의 우울함을. 나를 죽음으로 몰고 가는 그들의 끔찍함을. 누군가에게 털어놓고 싶었다. 아니 정확하게 그 아이에게 내 속을 털어놓고 싶었다. 그 아이가 나에게 털어 놓은 자신의 속마음처럼. 나도 내 깨져버린 속을 그 아이에게 보여주고만 싶었다.
그러나 얼굴을 마주볼 용기가 나지 않았기에, 나는 그 아이에게 문자를 남겼다. 그 아이가 나를 위해 남겨준 전화번호. 문자를 보내고 싶었다. 나는 댓글을 남겼던 사람이라고 내 자신을 밝히며 나의 우울함을 털어내었다. 내 속이 얼마나 무너졌는지를. 내 감정을 다 털어놓았다. 길게도, 길게도 그렇게 나의 우울함의 그림자처럼 긴 글이 쓰였다. 그렇게 문자를 남겼다. 그 아이를 향해.
오늘은 병실이 너무나도 고요했다. 엄마는 너무 오래 집을 비웠다고 잠시 집에 다녀온다고 하시고는 병원 밖으로 나가셨다. 그렇게 병실이 고요했다. 오직 나뿐. 낮인데도 불구하고 너무나도 고요했다. 고요함이 나를 약간은 두렵게 만들었다.
그 순간, 띠링. 하며 스마트 폰이 울렸다. 문자가 왔다는 것을 뜻했다. 그 소리에 스마트 폰을 확인했다. 처음 보는 전화번호였다. 그런데 처음 보는 전화번호였는데 문자가 장문이었다. 너무나도 길었다. 처음에는 당황했지만 천천히 긴 문자를 읽었다.
문자는 그 사람의 댓글보다 더욱 암울했다. 문자가 긴만큼 더 어두웠다. 이번에도 역시 댓글을 읽었을 때와 마찬가지로 어떻게 댓글을 남겨야 할지 알지 못했다. 함부로 적을 수가 없었다. 그 사람의 글에 대해서. 그 사람의 마음에 대해서 이야기를 하는 것이기 때문에. 아무런 말도 적을 수가 없었다. 그렇게 글이 쉽게 쓰이지 않았다. 그러나 그 문자들은 너무나도 다급하게 나를 부르는 것만 같았다. 죽음이 가까운 듯. 그렇게 살기를 간절하게 바라는 다급함으로 나를 부르고 있었다. 죽고 싶다고 했던 그 사람은 어쩌면 그 누구보다도 간절하게 살고 싶은 것이 아닐까. 살려야만 했다. 죽음 앞에 다다른 그 사람을 구해줘야만 했다. 그렇게 그 사람은 간절하게 나를 불렀다. 그러나 글이라는 것은 너무나도 멀었다. 이야기를 하고 싶다고 생각했다. 그 사람의 속을 나누고 싶다. 그러기에 글이라는 것은 너무나도 먼 방법이었다.
내 손가락이 문자를 남기지 못하고 글들을 훑어지나갔다. 그리고는 문자의 가장 위로 올라갔다. 그곳에 있는 전화번호. 내 손가락은 그 전화번호를 눌렀다. 얼굴을 보고 이야기하고 싶었다. 글에 얼굴을 가린 채로 말을 나누는 것이 아니라 얼굴을 마주보고 진심을 전하고 싶었다. 그렇게 내 손가락이 그 사람의 번호를 눌렀다. 신호음이 울렸다. 그 사람에게 전화를 걸었다. 너무나도 간단하게.
내가 문자를 보내자마자 순간, 띠리리링. 하며 전화가 울렸다. 문자가 아니었다. 영상통화였다. 받을까 말까를 고민했다. 두려웠기에. 그러나 받았다. 마지막이라고 생각했기에. 그렇게 내 손가락이 통화버튼을 눌렀다.
고개를 들어 스마트 폰 속에 들어찬 그 아이를 바라보았다. 아이가 내 스마트 폰에 새겨져 있었다. 어떻게 반응해야 할지 몰랐다.
그 아이가 올림 영상을 볼 때도, 그 아이는 내 스마트 폰 속에 있었기에 익숙하다고 할 수 있는 장면이었으나. 이것은 일방적인 영상이 아니었다. 쌍방으로 하는 통화였다. 소통이었다. 그 아이 혼자 말하는 것이 아니라. 그 아이와 나와 함께 대화를 나누는 그러한 소통이었다.
두려웠다. 누군가와 대화를 한다는 것이. 두려움을 넘어서 무섭기까지 했다. 누군가와 얼굴을 마주본다는 것이.
그러나 피할 수도 없었다. 그렇게 나는 그저 스마트 폰을 바라보았다. 그 아이가 그렇게 하듯이 나도 그저 그 아이를 바라볼 뿐이었다.
툭. 하고는 내 스마트 폰 화면서 그 사람의 얼굴이 들어왔다. 활짝. 하며 펼쳐진 세계 속으로 처음 보는 얼굴이 들어왔다. 내 머릿속의 그 사람은 정신이 나가서는 힘겨워해서 매우 허약하고 나와 같이 아픈 모습일 줄 알았는데, 너무나도 정상적이었고. 너무나도 건강해 보였다.
그 사람은 아프다, 아프다 하였다. 그랬기에 나는 그 사람 또한 나와 같이 죽을병이라고 생각했다. 정신이 아픈 것도 몸이 아픈 것 못지않게 아프다는 사실을 매우 잘 알고 있었으니깐. 그런데 막상 영상으로 바라본 그 사람은 너무나도 멀쩡했다. 전혀 아파보이지 않았다. 나는 정말로 아파서 머리카락이 다 빠지고, 매일 심장이 찢겨나갈 정도로 세게 뛰어서 힘이 드는데. 그 사람은 머리카락도 있었고 얼굴만 보았을 때에는 전혀 아픈 사람으로 보이지 않았다. 정신이 아팠기에 그런 걸까. 몸이 아프지 않아서? 순간 화가 났다. 건강하면서. 멀쩡하면서. 나처럼 외형적인 것이 표가 날 정도로 아픈 것도 아니면서 아프다고 징징대었던 걸까 싶어서 화가 났다. 너무나도 멀쩡해 보였기에....
건강한 것이 몸이 건강한 것이 얼마나 큰 행복인지 그 사람이 알까 싶었다.
죽고 싶다고 하는 그 사람이 얼마나 행복한 것인지. 죽음이 나를 선택 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이 죽음을 선택 할 수 있다는 것이 얼마나 큰 행복인지 알까. 싶었다.
그렇게 처음 마주한 그 사람은 나에 비해서는 너무나도 멀쩡해 보였기에 부러웠다. 내가 생각한 만큼 그 사람이 아픈 것 같지 않았다. 나 혼자서 그 사람 또한 나만큼 아픈 가 오해한 것이 아닐까. 생각하였다. 괜히 나 혼자서. 내 상태가 더 심각하면서 다른 사람을 걱정한 게 아닐까. 하는 후회가 들었다.
그런데 내 생각은 틀린 것이었다. 그 사람은 아픈 것 분명했다. 그것도 굉장히. 그 사람은 마음이 아팠다. 정신이 아팠다. 쓰리고 아픈 것이 분명했다. 그 사람이 입을 열었을 때부터 나는 그 사람의 상태가 심각하다는 것을 알아챘다.
무슨 말이라도 해야 될 것만 같았다. 그 아이가 뭐라도 말할 줄 알았는데, 아이는 왜인지 화가 난 듯 한 표정을 하고는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있었다. 내가 말해야하나 싶었다. 싫었으나 어쩔 수가 없었다. 그렇게 입을 열었다. 우울하다고, 죽고 싶다고. 항상 해오던 생각들이 그런 것 뿐 이라서 다른 생각은 내 머리 속에 없었기에. 그랬기에 나는 내 머리 속에 있는 어둡고 끔찍한 생각들을 털어놓았다. 싫었지만 어쩔 수가 없었다. 그런 내용들 밖에 없었으니까. 그렇게 내 속을 다 털어놓았다. 너무나 쉽게. 나도 내 속이 그렇게 쉽게 터져 나올 줄 몰랐다. 그 누구에게도 한 번도 말하지 않았던 나의 속이 너무나도 솔직하게 내 밖으로 나왔다. 나를 괴롭혔던 사람들의 존재를. 그 사람들로부터 들었던 충격적인 단어들을 그렇게 그 아이에게 다 털어놓았다. 너무나도 쉽게 내 안에서 터져나왔다. 그 누구에게도 말하지 못했던 아픔이었다.
그 아이는 실제로 내 앞에 있는 것이 아니었으나 내 곁에 있는 것만 같이 느껴졌다. 먼 곳에서 그저 화면에 찍힌 채로 나를 마주보고 있는 것이지만 바로 내 곁에서 나를 위로해 주고 있는 것만 같이 느껴졌다.
내가 내 상처를 다 털어놓자, 약간은 화가 난 듯이 보였던 그 아이의 얼굴이 서서히 바뀌었다. 내가 입을 열자 그 아이의 화가 사라진 듯이 보였다.
죽고 싶다는 이야기를 끝내고 내 나이. 나이를 이야기했다. 그 아이와 같은 것은 나이 밖에 없었기에. 지금까지 살아온 기간. 그것만이 나와 그 아이의 공통점이었기에. 그 아이는 죽음을 원치 않았고 나는 죽음을 원했기에 우리 둘의 세계는 달랐다 매우 달랐고 정반대라고 할 수도 있었다. 나이뿐이었다 우리의 공통점은. 이 세상에 태어나게 된 기간만 똑같을 뿐 이었다. 우리는.
내 말이 끝났지만 그 아이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아무 말 없이 굳어버린 영상통화 속 우리는 마치 찍혀버린 영정 사진 속의 사람들처럼 그저 가만히 굳어져 있었다. 그 어떠한 움직임도 없었다. 그렇게 우리는 서로를 바라보며 굳어버렸다. 너무나도 다른 서로를 스마트 폰 밖에서 바라보며. 그 안에 갇혀버린 서로를 보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