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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연재 > 현대물
흔들려도 괜찮아, 넘어지지만 않으면.
작가 : writer
작품등록일 : 2019.9.3

이야기 1
우울함 속에서 하루하루 버티며 살아내는 한 사람과
죽음 앞에서 하루하루를 살아가는 한 사람의 이야기.

이야기 2
죽음을 택한 친구와
그 친구에 대한 감정으로 힘들어하는 친구의 이야기.

 
05
작성일 : 19-09-07 21:14     조회 : 27     추천 : 0     분량 : 54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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맑은고딕 나눔고딕 돋움 굴림 궁서 바탕
13 15 17 19 21

 내 옆에서 나와 함께 걷는 엄마의 발걸음에는 초조함이 묻어났다. 살려야 한다는. 무슨 일이 있어도. 죽으면 안 된다는 다급함이 그렇게 엄마의 발걸음에서 느껴졌다. 그러나 나는 그러한 발걸음을 따라잡을 수가 없었다. 나의 걸음은 엄마의 걸음과 다르게 걸어졌다. 나에게 엄마의 기대와 희망은 벅찬 것이었다. 나는 죽음을 향해 걸었고, 엄마는 기대를 향해 걸었기에. 우리는 서로 다른 길을 걷고 있었다.

 

 검사결과를 바라보는 의사선생님의 표정이 좋지 않았다. 내가 한 어느 검사든지 결과가 좋지 않았다. 그 표정들을 바라보는 것만 해도 나는 부서져 내렸다. 끊임없이 끌려 다니며 해내야만 했던 그 모든 검사들이 끝나자 나는 회복이 불가능할 정도로 피폐해져 버렸다.

 

 그렇게 검사라는 것은 그저 내 몸 상태가 얼마나 나쁜 지를 확인하는 것 일뿐. 수술을 하기 위한 대비가 아니었다. 나의 몸은 처절하게 무너졌기에 더 이상은 회복조차 불가능한 상태였던 것이다. 그렇게 나는 또다시 무너져 내리고 말았다.

 

 정신없이 끌려 다녔던 검사들을 마치자, 이제 더 이상은 할 검사들도 남아있지 않았다. 그렇게 정말로 내가 할 수 있는 것이 아무것도 없었다. 엄마는 좌절했다. 딸의 병 앞에서 나보다 더 처절하게 무너져 내렸다. 내가 정말 죽은 뒤에는 더 무너져 내릴 것이 분명했기에 나는 의사선생님을 붙잡고 우는 엄마를 보지 않으려고 내 시선을 병원 문과 반대편에 있는 창문을 향해 돌렸다. 창문에 담긴 하늘이 너무나도 청명했다. 나는 이렇게 병원에 갇혀서 죽음을 맞이하려 하는데 하늘이 너무 맑았다. 그러한 하늘에 내 마음이 더욱 서글퍼졌다.

 

 울음에 지친 엄마는 멍하니 내 곁에서 앉아있을 뿐이었다. 더 이상은 방법이 없었다.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은 없었다. 매일 피를 뽑고 검사를 하고 치료라고 하는 것을 했으나 나는 알고 있었다, 그것은 치료가 아닌 그저 경과를 확인하는 것 뿐임을. 엄마의 남은 희망이라는 사실을. 그러나 나는 그 희망이라는 것이 얼마나 덧없는 것인지 알고 있었기에 그 모든 치료에 내 희망은 걸려있지 않았다. 나는 그렇게 너무나도 담담하게 나의 죽음을 받아드렸다.

 

 내 삶을 빼앗겨 버릴 듯 한 공포가 떠나가면 아침이 왔다. 아침이 시작되자마자 끊임없이 반복되는 검사들. 그렇게 내 삶이 얼마나 남았는지를 측정하는 검사들이 이어졌다. 내 팔 속으로 쑤시고 들어오는 창과도 같은 주사바늘들. 나는 내 몸을 찌르는 그 모든 창에 맞서 싸워야만 했다. 나를 살리려고 애를 쓰는 듯 한 의료진들의 몸짓이었지만. 사실 그 모든 과정은 삶이 아닌 죽음을 대비하는 싸움들이었다.

 

 간호사가 내 팔에 채혈기를 찔러 넣었다. 이미 나는 내 몸을 포기해버렸기에 내 몸에 들어오는 채혈기 조차 나를 아프게 만들지는 못했다. 나는 이미 안에서부터 죽었기에 육체적인 아픔은 나를 괴롭게 만들지 못했다. 내 안으로 침투한 주사바늘은 내 속에서 내 생명을 빼앗아갔다. 그렇게 나의 새빨간 피들이 채혈기 안으로 흘러들어갔다. 그렇게 나는 내 피를 빼앗겼다. 나는 내 밖으로 뽑아져 나오는 피를 멍하니 바라보았다. 빠져나가는 피에도 내 몸은 아프지 않았다.

 

 그러나 주사기를 빼는 순간은 아팠다. 무언가가 나로부터 빠져나가는 듯 한 허망함. 그것만이 나를 쓰리게 했다. 내 안에 넣어졌다가 빠져나가는 날카로운 주사바늘은 순간적으로 스치고 베어버리는 창과도 같이 내 마음을 허하게 만들었다. 그렇게 나는 허함을 느끼며 내 팔에서 뽑혀져 나가는 주사바늘을 바라보았다. 내 피부와 피부사이를 파고들었던 날카로운 바늘이 빠져나가면서 내 속을 스치자, 그 모든 아픔이 세세하게 느껴졌다. 너무나도 차갑고 냉철한 아픔이 나를 거쳐 나갔다. 그 아픔들이 너무 느릿해서 나는 가슴을 움켜쥐었다. 간호사는 나의 피를 가지고 나로부터 멀어져갔다. 나는 빠져나간 나 자신을 붙잡지 못했다.

 

 나는 그렇게 매일 매일 나 자신을 빼앗겼다. 내 안에서 깨져버린 나라는 존재는 그렇게 밖으로 빼내어져 흩어져 나갔다.

 

 그러나 나를 떠나간 것은 피뿐만이 아니었다. 어느 순간부터 내 배게 위에 수북하게 쌓인 내 머리카락. 그렇게 내가 배고 잤던 베개의 위로 수북하게 머리카락이 쌓여 있었다. 침대에서 일어나자 내 머리가 붙잡지 못한 나의 머리카락들이 그렇게 나로부터 떨어져 나와서는 애처로이 베개에 달라붙어 있었다. 약을 먹고 치료를 진행할수록 내 겉모습은 점점 피폐해져 가고 있었다. 내 몸이 약들을 감당하지 못했다. 약은 사람을 낫게 하는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약은 나로부터 많은 것을 앗아갔다.

 

 하루, 하루, 하루, 하루가 지속되자 머리카락들의 수가 늘어만 갔다. 그렇게 한 올, 한 올, 한 올, 한 올로 빠지던 머리카락들은 순식간에 뭉텅이로 빠져나갔다. 내 머리는 흩어져 나가는 머리카락들을 붙잡지 못했다. 그저 떨어져 나가는 그 모든 머리카락들을 놓아줄 뿐이었다. 그렇게 나의 머리는 힘이 없었다. 내 몸에 있는 다른 나쁜 것들을 공격하느라고 차마 머리카락에 쏟을 정신이 없었나보다 라고 생각했다. 나는 그렇게 상처받는 내 자신을 위해 나 스스로를 위로하였다. 모든 상처들에 내 가슴이 찢어졌기에 난 그것들로부터 나를 방어해야만 했다. 나를 지켜내야만 했다. 그렇게 나는 나를 위한 변명과 위로를 했다.

 

 어느 날, 간호사가 듬성듬성 빠져버린 내 머리를 바라보더니 미용실을 들리는 게 좋겠다고 권했다. 약이 너무 독한 탓이었다. 검사를 위해서 내 몸에 넣어야만 했던 수많은 약품들이 나를 무너뜨렸다. 아프지 않게 하기 위해서 먹었던 약들이 나를 짖이겼다. 나에게 있어서 약은 더이상 나를 낫게 하는 것이 아니었다.

 

 

 

 미용실. 아프기 전까지 나에게 미용실이라는 것은 아름답게 꾸미기 위한 곳으로 기억되었다. 그러나 병원에서의 미용실은 나왔을 때 들어가기 전보다 예뻐지는 그런 곳이 아니었다. 죽음이 한 걸음 더 가까워졌고, 나의 겉모습은 점점 더 피폐해진다는 것을 뜻했다. 그렇게 나는 엄마와 함께 미용실을 향했다. 미용실로 내려갈 때는 차마 눈물을 참아낼 수가 없었다. 너무했다. 머리를 다 밀어버리는 것은. 너무한 것이다. 나는 엘리베이터에 타서는 빠져버린 내 머리를 들여다보았다. 구멍나버린 내 마음과도 같이 내 머리에서 머리카락이 쑹. 하고는 뜯겨져 나가 있었다. 머리카락이 빠진 다는 것은 사람들에게 나의 아픔을 알리는 신호였다. 그렇게 다 뜯기고 나가고 텅 비어버렸다. 나는 손을 들어 내 머리를 매만졌다. 너무나도 매끈했다. 듬성듬성 비어버린 나의 머리. 마치 총격을 당한 듯이 그렇게 제 자리에는 아무것도 남기지 않은 채로 그저 텅 하고 비어서는 아무것도 자라지 못하게 다 뜯겨나간 내 머리. 나는 그렇게 허망한 손길로 내 머리를 매만졌다. 죽기 전까지 내 머리는 다시는 자라나지 못할 것이다. 눈에 눈물이 차올랐다. 나는 거울을 깨 부셔 버리고 싶었다. 거울에 비친 내 모습이 너무나도 초라해서. 너무나도 보기 싫었다. 내 자신이 내가 아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그렇게 내가 싫어졌다. 한 순간에 나의 겉은 무너진 내 속과 같이 아파보였다. 빠져버린 머리카락과 울음에 지쳐 새빨개진 눈. 그리고 텅 비어버린 듯 한 동공. 핏기 없는 창백한 얼굴. 그리고 다 뜯어져 나가 찢겨나간 듯 한 내 입술. 제대로 먹지 못해서 야위어 버린 내 몸. 그렇게 나는 누가 봐도 환자였다. 나는 그런 내 모습이 꼴도 보기 싫어져서는 거울로부터 내 몸을 돌렸다. 보기 싫다. 보기 싫다. 내가 싫다. 거울에 비치는 내 겉이라는 것이 나를 너무나도 괴롭게 만들었다. 못 생겼어. 못 생겼어. 다들 꽃답다고 하는 나이에 나는 인생의 결말을 맞이하고 있었다. 그렇게 나의 인생은 펴보기도 전에 져버리려고 하고 있었다.

 

 

 

 띵. 하고 엘리베이터가 열렸다. 나는 엄마와 함께 엘리베이터에서 내렸다. 나의 손을 꽉. 하고 붙잡는 엄마의 손에서도 간신히 억누르는 울음이 느껴졌다. 나의 손에 닿은 엄마의 손에서 느껴지는 미세한 떨림에서 나는 엄마의 마음도 무너져 내리고 있음을 느꼈다. 그 울음을 마주할 자신이 없어 나는 차마 엄마를 향해 내 고개를 들지 못했다. 그렇게 나는 고개를 내 발로 떨구고는 그저 병원 바닥을 걸어 나갔다. 미용실이 있는 곳을 향해서.

 

 미용실 의자에 앉자, 나는 어쩔 수 없이 보고 싶지 않은 내 모습을 마주해야만 했다. 너무나도 추례한 내 모습이 밝기만 한 거울에 박혀 있었다. 천장에 난 형광등에서 빛이 흘러나와 내 얼굴에 닿았다. 그렇게 햇빛과는 다르게 제 속에 따스함을 담고 있지 않은 희기만 한 빛이 내 얼굴로 스며들어왔다.

 

 나는 삭막한 병원 안에 갇혀서는 차갑기만 한 형광등의 빛을 받았다. 형광등의 불빛은 내 속으로 들어가서는 내 아픔을 내 밖으로 끄집어내었다. 그리고는 내 안에서 튕겨져 나와서는 한 치의 오차도 없이 제대로 비춰주는 거울로 향하였다. 그렇게 형광등의 빛은 밝기만 한 거울에 어둡기만 한 나를 찍어내었다. 그렇게 초췌한 내 모습이 거울에 담겼다. 핏기 없이 삐쩍 거리는 내 겉이 그렇게 꼴도 보기 싫게 거울 속으로 담겨버렸다. 거울에 비치는 것은 사실이기에 나는 그곳에서 또다시 무너져 내렸다. 거울 속에 담긴 내 모습이 진짜 내 모습이라는 생각에 나는 내가 보기 싫어서 눈을 감았다. 눈을 뜨고 싶지 않았다. 내 앞에 놓인 거울이 사라지기만을 바랬다.

 

 눈을 감고 있는데, 뒤에서 미용사분이 다가오는 것이 느껴졌다. 나는 감긴 눈으로 다가옴을 느꼈다. 가위가 내 머리를 향해 다가오는 것이 느껴졌다. 쓰윽_ 하고는 내 머리카락 사이를 스며드는 차가운 가위의 소리. 가위는 가볍기만 한 내 머리카락들 사이에서 너무나도 무겁게 존재했다. 가위의 안쪽에서부터 내 머리카락이 서서히 잘려나갔다. 후두두둑... 머리카락이 가위에 의해 잘려나갔다. 가위의 안에서부터 가위의 끝부분까지. 그렇게 내 머리카락들이 내 몸에서 떨어져나갔다. 나는 여전히 눈을 뜨지 못했다. 눈이 감겨있었으나 머리카락이 잘려나가는 그 모든 것이 생생하게 느껴졌다. 머리카락이 땅으로 떨어져 내리며 내 어깨를 스쳤다. 마지막이었다. 나로부터 떨어져 나가는 것이. 내 몸에 닿는 마지막. 그렇게 머리카락은 어깨를 살짝 스친 뒤에 바닥으로 떨어져 내렸다. 그렇게 머리카락이 하직했다. 쉼 없는 가위질이 이어졌다. 너무나도 잔인하게 내 머리를 잘라내었다. 더 잘려나갈 머리카락이 남지 않자, 그제 서야 가위질이 끝이 났다. 그러나 싹둑 거리는 가위보다 더욱 무서운 소리가 내 귀에 닿았다. 위이이잉___ 가위가 떠난 곳에는 내 머리를 삭발하기 위한 이발기가 들어섰다. 그저 내 머리카락에 닿았기에 머리카락에 전해진 진동만을 전해 받은 가위와는 다르게, 이발기는 내 머리에 딱 달라붙어 있었기에 나는 그 모든 충격을 더욱 세세하게 감당해내야만 했다. 그렇게 이발기는 내 머리에 찰싹하고 달라붙어서는 내 머리카락들을 다 잘라 내버렸다. 그렇게 내 머리카락이 이발기 속으로 집혀 들어가며 잘려져 나갔다. 그렇게 내 머리카락이 잘려져 나갈 때마다 나는 머리카락이 아닌 심장이 뜯기는 것만 같은 느낌을 받았다. 그렇게 내 심장이 뜯어져 나갔다. 이발기가 내 목에서부터 내 이마까지 쓰윽_ 하고 밀리었다.

 

 쓰윽_ 하고 쓰윽_ 하고 쓰윽_ 하고 쓰윽_하고 쓰윽_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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