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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객의 옆에 앉아 술을 따른다거나, 창(唱)을 하는 것은 사실 그리 어렵지 않습니다. 원하는 게 있으면 들어주고, 그들의 장단에 맞춰주기만 하면 되니까요. 진짜 문제는 객이 술을 권할 때부터 시작되는 것이옵니다. 분위기를 해치지 않기 위해서라도 기녀는 술을 받을 수밖에 없고, 대개 그들의 끈질긴 강권으로 인해 결국 몇 잔 음용할 수밖에 없습니다. 이때부터는 정신을 똑바로 차려야 합니다. 까딱 잘못하다간 희롱과 추행을 당하기 십상이거든요. 일반 기녀들도 이럴 진데 세자마마께서는 더욱 조심하셔야 하는 것이고요.”
“그럼…… 어찌해야 합니까?”
“……저는 아직 곤란하여.”
일단 최대한 사양하라. 이것이 여옥과 홍월의 공통된 주문이었다.
“그래, 그래 마시라곤 하지 않겠다. 일단 받아만 두거라. 그게 예의니라.”
그러곤 다짜고짜 잔에다 술을 가득 채우는 게 아닌가. 뭐라 거절할 틈도 없었다.
“자, 잔들 들게나.”
“좋지.”
“밤새 한 번 마셔보자고!”
그러고 거하게 한 잔 들이킨 뒤, 이상환은 이어 그 찐득한 눈길을 곧장 이안에게로 쏘아냈다. 그러곤,
“그래, 네 잘하는 게 무엇이더냐?”
느닷없는 질문을 던져왔다.
“……잘하는 것 말이옵니까요?”
“그래, 뭐든 말이다.”
다른 이들도 부추기듯 덧붙였다.
“아무거나 말해보거라.”
“편히 말하거라, 편히.”
“음…….”
이안은 차라리 잘되었다고 생각했다. 노래나 춤 같은 걸 시키려는 모양인데, 그러한 기예를 펼치는 편이 옆에 앉아 끈적인 눈길을 받아내는 것보다야 훨씬 낫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많이 부족하나마…… 이곳 방주님께 창(唱)과 무용을 배운 바가 있습니다.”
이안의 말에 중년인들이 웃으며 이를 반겼다.
“그러고 보니 닷새 전에 우리에게 서경별곡을 불러주지 않았던가!”
“참으로 훌륭한 목소리였지!”
“암! 그런데 무용까지 할 줄 안다고?”
“예…… 다만 이를 위해선 음률이 뒷받침되어야 하는 지라…… 혹, 이를 보기 원하시면 급히 금(琴)연주자를…….”
잘하면 여옥을 다시금 불러들일 수 있지 않을까 싶어 꺼낸 말이었다.
“아니, 아니. 되었다.”
그러나 이는 이상환에 의해 곧바로 무산되고 말았다.
“곡조는 이미 들어봤으니 되었고, 무용은 다음에 보면 되지 않겠느냐. 지금 내가 궁금한 것은…….”
그러고 말을 흐리는데, 왠지 모를 불길함이 이안의 뒤통수를 간질거렸다.
“혹, 사내를 즐겁게 하는 법을 알고 있느냐?”
“……예?”
“기녀라면 당연지사 가장 잘해야 하고, 또한 잘 알아야 하는 것 말이다.”
그의 말에 가만 앉아있던 중년들이 합심하듯 낄낄거리기 시작했다.
“그렇지, 무엇보다도 가장 중요한 덕목이지!”
“비단 기녀들뿐이겠는가! 계집이라면 필히 수학해야할 공부이지.”
“암, 암! 그렇고말고!”
이안은 이 자들이 단체로 실성이라도 한 듯, 죽어라 웃어대는 까닭을 당최 알 수가 없었다.
“내 보니 네게 꽤 재능이 있는 것 같아서 말이다.”
“제, 제가 말이옵니까?”
“그래…… 혹 뭔지 알겠느냐?”
“그, 글쎄요…….”
순간 이상환 특유의 짝눈이 희번덕거렸다.
“궁금한 게냐?”
“……예?”
“궁금하냐고 물었다. 사내를 즐겁게 하는 법이 무엇인지 말이다.”
물론 추호도 궁금하지 않았지만, 상황 상 이안은 그가 원하는 대답을 해줄 수밖에 없었다.
“……예, 궁금합니다. 그게 무엇입니까?”
그러자 대뜸,
“한 잔 받으면 알려주도록 하마.”
다짜고짜 술을 권하는 게 아닌가. 이안으로선 어이가 없어 콧방귀가 나올 정도였다.
“……히하, 그게…….”
“왜, 알기 싫은 것이더냐?”
“아, 아니 그게 아니오라…….”
“혹, 술이 많이 담겨 그런 것이더냐?”
그러곤 갑작스레 이안의 술잔을 뺏어들더니, 냅다 한 모금을 쭉 들이키는 것이었다.
“내가 반절을 마셔주었으니 이 정도는 마실 수 있겠지?”
다시 건넨 술잔엔 이상환의 침이 한가득 묻어있었고, 이를 본 이안은 순간 어안이 벙벙해져 아무런 말도 내뱉지 못했다.
……뭐 하자는 거지?
더럽다는 생각보다 먼저 든 것은 그냥 어이가 없다는 것이었다. 지금 이게 대체 뭐하자는 수작인지…….
“아니! 이 서리, 자네 그렇다고 너무 마셔준 것 아닌가?”
“이렇게 쉽게, 쉽게 갈수록 귀한 것을 알려주는 의미가 덜해지는데 말이야!”
그러는 와중에도 주위에선 말 같지도 않은 말들이 쉴 새 없이 터져 나오고 있었고, 바로 옆에선 이상환의 끈덕진 눈이 계속해서 이안을 압박해오고 있었다.
“이것만 마시면 알려주겠다니까?”
“…….”
이안은 대답하는 대신 눈을 딱 감았다. 마음을 진정시키기 위함이었다.
‘아직…… 아직은 아니야. 괜찮아, 진정하자.’
이어 그는 상황을 벗어나기 위한 해결책을 모색했다. 일단은 방주님을 팔자.
“꼭…… 마셔야 하옵니까? 방주님께서 저더러 절대로 술은 마시지 말라…….”
“아니! 여기 방주가 어디 있다고 그러느냐, 응?”
이상환은 전혀 개의치 않는 모습이었다.
“이거 한 잔 한다고 해서 누가 뭐라고 하진 않을 게다. 우리만 입 다물면 아무도 모르지 않겠느냐. 또한…… 이를 마시면 오히려 네 기분이 좋아질 것이다. 어떻겠느냐? 기분도 좋아지고, 거기다 귀한 지식까지 얻고! 네게 손해는 없을 것이다.”
물론 이안 역시 음주(飮酒)가 처음은 아니었다. 어릴 적부터 종종 궁의 주고(酒庫:술을 넣어두던 광)에 있던 것들을 호기심 삼아 맛보곤 했던 것이다. 다만, 이렇듯 ‘진짜’ 술자리에서의 술이 처음이었을 뿐이지.
“그럼 귀하고말고!”
“돈 주고도 못 배우는 것이지!”
그 후로도 거센 압박이 이어지자, 이안으로서도 결국 더는 버텨낼 방도가 없었다.
‘하아…… 하는 수 없나.’
이안은 별 수 없이 잔에 든 술을 들이켰다.
꼴깍.
그리고 이는 명백한 그의 실수였다. 이안이 술을 들이켠 그 순간부터 자리의 분위기가 갑작스레 돌변하기 시작했던 것이다.
“그럼 이제…… 우리 청화에게 사내를 즐겁게 하는 법에 대해 알려줘 보실까…….”
이안은 느닷없이 자신의 허리를 불쑥 감아오는 거친 손길에 소스라치게 놀랐다.
……!?
“첫째, 언제나 사내의 손길이 닿을 수 있는 곳에 머물 것.”
“이, 이게 지금 무슨……!”
서둘러 그의 손을 떨쳐내긴 했으나, 거칠게 뛰는 심장은 좀처럼 진정될 기미를 보이지 않았다.
“허어, 내 귀한 지식을 일러준다 하지 않았더냐?”
이상환이 혀를 쯧쯧 차며 말하자,
“이런, 이런. 배움의 자세가 제대로 되어있지 않은 못된 아이로구나.”
“우리 청화가 아직 뭘 잘 모르는 모양이야.”
무리들이 하나같이 낄낄거리며 압박해 오는 것이었다. 저들은 이안의 깜짝 놀라는 반응에 더욱 흥이 겨운 듯했다.
‘이, 이자들이…….’
이안은 저들의 주름진 두 눈에서 흘러나오는 감출 수 없는 음심(淫心)을 보곤, 그제야 여옥이 어째서 홀로 남은 그를 그토록 걱정스런 눈으로 바라보았는지 알 수 있었다.
중년인들의 추악한 탐심(貪心)에 둘러싸인 이안의 두 눈에 처음으로 다급함이 서렸다.
‘……누구든 빨리 좀 도와주러 와야 할 것 같은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