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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연재 > 로맨스
옆집에 그가 산다
작가 : 유월
작품등록일 : 2019.9.2

뜨거운 사랑도 해 봤다, 가슴 아픈 이별도 해봤다. 그래서일까, 새로운 사랑이 두려운 지은아가 있다.
그런데 어느 날 한 남자가 나타난다. 뭔가 모르게 자꾸만 끌리는 이도운이라는 남자.
하지만 은아에게는 그에게 선뜻 다가가지 못 할 아픈 기억이 있고,
그로 인해 치유될 수 있을까?
그리고 운명이 맺어준 듯이 두 사람의 인연은 한참을 거슬러 올라간다.
이 인연은 과연 어떤 의미일까.

 
006. 주말 데이트
작성일 : 19-09-09 22:29     조회 : 234     추천 : 0     분량 : 478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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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006.

 

 

 

 은아는 약속 시각보다 10분 일찍 도착했다. 모카라떼를 시킨 후 창가에 앉아있던 그녀는 어김없이 도운을 떠올렸다. 아마도 지금쯤 그 ‘여자’와 만나고 있을 도운.

 

  ‘왜 여자친구가 있을거라는 생각을 못했을까...’

 

 은아는 한없이 침울해졌다.

 

 머그컵이 반쯤 비워졌을때, 그녀의 핸드폰이 울렸다. 왠지 안좋은 예감이 그녀를 감쌌다.

 

  “네 영훈씨 지금 어디에요?”

 

  “...은아씨 어쩌죠, 제가 길에서 가벼운 접촉 사고가 있었는데... 그게 일이 꽤 커져서-”

 

 영훈은 매우 곤란한 듯한 목소리로 말했다.

 

  “...어쩔수 없죠. 그럼 영화는 생략하고 이따 저녁 식사 같이 할까요?”

 

  “그게...지금 병원이에요, 저는 다리가 부러지고 상대 운전자는 지금 응급실에 있어서...”

 

  “..........가벼운 접촉 사고가 아니잖아요!!” 은아는 화들짝 놀라며 외쳤다.

 

  “...네...은아씨 걱정할까봐..제가..아무튼, 저는 괜찮으니까 걱정 마시구요. 다음에 제가 또 연락 드릴게요.”

 

 은아는 통화를 마친 후 이미 다 식어버린 머그컵을 내려다봤다. 영훈에게 사고가 났다니 걱정이 되면서 한편으로는 이렇게 마무리 된 게 다행이라는 이기적인 생각도 들었다. 뭐가 됐던 김이 다 빠진 듯한 그런 기분이었다.

 

 지금쯤 도운은 ‘여자’와 웃고 떠들고 한창 분위기 좋을까? 그녀는 어떤 콱 막힌 느낌이 차곡 차곡 쌓이는 것 같았다. 도운이 ‘여자’를 만나기로 했다는 말을 순간부터 계속 이랬다.

 

 

 집으로 힘없이 걸어가던 은아는 분식집 떡볶이 냄새에 걸음을 멈췄다. 벌써 일곱 시가 넘어가고 있었고, 점심을 대충 먹어서 허기진 그녀였다.

 

 

  “여기 떡볶이 1인분 순대 1일분이요”

 

  “네-”

 

 낡은 분식집 한구석에 앉아 텔레비전을 보며 은아는 음식이 나오기를 기다렸다. 그때, 막 분식집을 지나치는 도운의 차가 보였다.

 

  ‘이 시간에? 벌써 데이트 끝났나?’

 

 은아는 재빨리 도운에게 전화를 걸었다.

 

  “도운씨! 지금 집 쪽으로 가는 차 도운씨 차 맞아요?”

 

  “...네 왜요?” 도운이 담담하게 답했다.

 

  “...데이트....일찍 끝났나봐요. 저녁을 먹기는 했어요?”

 

  “.......안 먹었습니다. 왜요”

 

 도운의 목소리는 평소보다 더 굳어 있었다. 뭔가 안 좋은 일이 있었음을 대충 짐작할 수 있었다. 그 때문에 더욱 용기가 솟아 올랐다.

 

  “저 지금 X분식집인데...저랑 같이 떡볶이...먹지 않을래요?”

 

 잠시 후, 도운이 분식집에 나타났다. 은아는 한껏 미소를 지으며 그에게 손을 흔들었다.

 

  “웬 떡볶이에요….” 도운이 앉으며 말했다.

 

  “그냥 집에 가다가 배고파서요…. 저 오늘 소개팅남 못 만났거든요. 근데 도운씨도 설마 오늘 데이트 못한 거에요?”

 

  “...데이트가 아니라….” 도운은 잠시 말을 끊었다 이어 말했다. “그럴 사정이 좀 있었어요. 아무튼, 떡볶이 오랜만에 먹어보네요.”

 

  “기분 우울할 땐 매운 거 먹는 게 최고예요.” 은아는 웃으며 떡볶이 그릇을 도운 쪽으로 밀었다.

 

 도운은 살짝 웃으며 떡볶이를 입에 넣었다. 우물거리는 도운을 보며 은아는 웃음을 빵 터트렸다.

 

  “왜요? 묻었어요?”

 

  “아니요, 그냥 이런 음식도 드시는구나 싶어서요.”

 

  “제가 이런 음식이 뭔데요? 분식?” 도운이 떡볶이를 삼키며 물었다.

 

  “네. 그냥 어디서 도도하게 스테이크 썰 것 같은 이미지시잖아요.”

 

 도운은 그런 말은 처음 들어봤다는 듯 잠시 당황한 듯 했지만 곧 다시 떡볶이를 포크로 찔렀다.

 

  “저도 ‘이런’ 음식 먹고, 좋아합니다.”

 

 도운이 고개를 들어 은아를 잠시 쳐다봤다. 단지 그 뿐인데 은아는 양 볼이 뜨거워지는 것을 느꼈다. 은아가 어색하게 시선을 피하자 도운도 그걸 느끼고 다시 얼굴을 숙였다.

 

  “그런데, 오늘 왜 못 만나신 거예요?” 그가 얼른 화제를 돌렸다.

 

  “아...소개팅남이... 사고가 났대요.”

 

 도운이 살짝 놀란 듯 우물거리던 것을 멈췄다.

 

  “저도 깜짝 놀랐어요. 오늘 두 번째로 만나기로 한 거였는데, 근데 뭐 사실 잘 됐어요. 어색하기도 하고. 연애 해본 지 너무 오래돼서... 원래 이렇게 어색한 건가 싶기도 하고. 저는 편한게 좋은데 편하면 설렐 수 없는 걸까요?”

 

  “글쎄요 저도 잘 모르겠어요.”

 

 도운이 대꾸했다. 다시 분위기가 묘해졌다. 둘은 한참 떡볶이를 먹었다.

 

 -

 

  “한민원이 너희 집 앞까지 찾아 왔었다고?”

 

 윤지가 달려들 기세로 물었다. 은아는 고개를 끄덕였다. 은아의 원룸엔 은은한 커피향이 났다. 여유로운 주말 오후, 오랜만에 윤지가 은아의 집에 놀러 와 있다.

 

  “그래서 넌 어떻게 했는데!”

 

  “...어쩌긴. 다시는 오지 말라고..뭐 그런식으로 말했던것 같은데..”

 

  “같은데..?”

 

  “...같은게 아니라 확실하게 내 의사표현 했어. 그러니까 다시 올 일 없을 거야. 연락도 안 왔고.. 아직까지 안 찾아왔잖아.” 은아가 황급히 덧붙였다.

 

 조금 안심한듯 윤지가 앞으로 숙였던 몸을 뒤로 뺐다. 하지만 여전히 분은 가시지 않은 얼굴이었다.

 

  “나쁜새끼..지가 무슨 짓을 했는지 아직도 모르나. 염치없는 새끼.”

 

  “...”

 

  “그래도 웬일이냐 지은아, 특히 한민원한테는 물러터진 네가 확실하게 선도 긋고.”

 

 윤지가 뒤늦게 의아한지 물었다. 은아는 예상치 못한 질문에 눈만 굴렸다. 은아에게서 무슨 이상한 낌새를 챈 윤지가 다시 몸을 일으켰다.

 

  “뭐야 너...?”

 

  “...그...왜...내가 저번에 말했었지? 옆집 남자.”

 

  “...어어!! 말했지! 왜 그 남자가 왜! 혹시 민원 그 자식 만날 때 같이 있었어?”

 

  “........응...”

 

 은아는 조심스럽게 답하며 얼굴을 붉혔다.

 

  “진짜 오마이갓이다 너. 설마 너 그 남자한테 꽂혔어? 내가 소개시켜준 영훈씨는 어쩌고!”

 

 윤지가 은아의 몸을 잡아 흔들며 다그쳤다.

 

  “...영훈씨 정말 좋은 사람이야...근데...아 몰라. 솔직히 말해서 나도 나 자신을 잘 모르겠어.”

 

  “모르긴 뭘 몰라, 말 한번 꺼내니까 얼굴 새빨개졌는데. 이미 빠질대로 빠진거구만! 역시 남녀 일은 모르는 것이여..하긴 처음부터 그 남자 얘기 꺼낼 때부터 내가 알아봤어야 했는건데.”

 

  “야, 그런 거 아니라니까...” 은아는 약하게 부정했다.

 

  “...그럼 너 영훈씨는 이제 어쩔거야?”

 

 은아는 윤지를 빤히 바라봤다.

 

  “너 설마 여태껏 아무 생각 없었던 거야? 설마 한 남자 마음에 두고 다른 남자랑 데이트는 하고 그럴 생각은 아닌 거지?”

 

  “...그렇게 되는건가.”

 

  “와 이제보니 나쁜년이 어디 먼 데 있는게 아니었네,” 윤지가 손으로 부채질을 했다.

 

 은아는 잔뜩 흥분한 윤지를 쳐다보며 생각에 빠졌다. 어쩐 일인지 부쩍 도운에 대해서 많이 생각하고, 그와 함께 있으면 즐겁고, 그에 대해 더 알고 싶어지는 그녀였다. 영훈과 소개팅 이후에 데이트 약속을 잡으며 내내 그래왔었다.

 

 좋아하는 걸까.

 만약 그렇다면 도운의 마음은 뭘까.

 

 -

 

 분리수거 날. 은아는 그동안 귀찮아서 쌓아뒀던 재활용 쓰레기를 모두 상자에 담았다. 제법 무게가 나가는 상자를 들고 힘겹게 나오던 그녀는 막 복도로 들어선 도운과 마주쳤다. 은아는 갑작스러운 그와의 대면에 조금 긴장됐다.

 

  “도와줘요?” 도운이 은아의 품에 있는 상자를 보며 물었다.

 

  “....그래주면 고맙죠. 제가 대신 음료수 쏠게요.” 은아가 밝게 답했다.

 

 쓰레기를 버린 후, 두 사람은 근처 공원 벤츠에 잠시 앉았다. 도운은 은아가 사준 음료수를 마셨다. 한적하고 어두운 곳에 도운과 있자 있자 은아는 어색한 기분이 들었다.

 

  “도운씨는 제가 필요할 때 꼭 나타나는 것 같아요.” 은아가 먼저 말을 꺼냈다.

 

  “볼 때마다 도움이 필요한 거겠죠.”

 

 은아는 조심스럽게 도운을 곁눈질했다. 표정을 읽을 수 없는 남자. 보면 볼수록 알쏭달쏭하기만 한 사람. 그녀는 짧게 감상했다.

 

  “...도운씨는 어떤 사람이에요?”

 

  “.....네?” 뜬금없는 질문에 도운은 당황한듯했다.

 

  “....아....하하..아니 그냥. 좀 속이 안 보여서. 제가 원래 사람 파악 은근히 잘 하는 편인데, 도운씨는 도무지 모르겠어요. 어떤 사람인지. 무슨 생각인 것인지.”

 

 은아의 말에 도운은 잠깐 말이 없었다. 은아는 자신이 한 말을 되뇌며 혹시 실수라도 한 건 아닐까 겁이 나기 시작했다.

 

  “그냥..별거 없는 사람입니다.” 그가 짧게 답했다. 그 다운 대답이었다.

 

  “...별거 없는 사람이 어딨어요. 사람마다 다 사연있고, 생각있고..그런거지.”

 

 도운은 순간 은아의 목소리가 매우 따뜻하게 느껴졌다.

 

  “저번에...왜 남자가 찾아왔던 날. 왜 저한테 그 사람에 대해 아무것도 안 물어봤어요?” 그녀가 물었다.

 

  “은아씨 일이니까.” 도운이 답했다.

 

  “...그럼....그때 왜 나 도와준거요? 제 일이니까 그냥 지나쳐도 됐잖아요. 먼저 들어갈 수도 있었잖아요.”

 

 은아와 도운의 눈이 마주쳤다. 도운은 지금 이 여자가 왜 이런 질문들을 하는지 쉽게 헤아릴 수 없었다. 하지만 그가 그 날 그녀를 도와준 이유는 분명했다.

 

  “...그냥..도운씨는 원래 남 잘 도와주는 그런 분이에요? 그냥.. 제가 좀 불쌍해 보여서..아니면 민원이 위험해 보여서 그래서 저 도와준 거에요?”

 

 은아는 불안한 마음을 조금 내비추며 말했다. 너무 대놓고 들이 대는건 아닐까 겁도 나는 그녀였다.

 

  “...나는...그렇게 아무한테나 친절하지 않아요.”

 

 도운의 말에 긴장으로 바싹 타오르던 은아가 웃음을 흘렸다.

 

  “은아씨가 신경 쓰이니까 도와준 거에요.”

 

 은아는 후끈 거리는 고개를 내렸다. 이 이상 그에게 질문할 수 없을것 같았다. 지나치게 솔직해졌다가 그가 뒷 걸음질 칠까 걱정이 나서였다. 그런 은아의 마음을 알아 채기라도 한듯, 도운이 천천히 몸을 일으켰다.

 

  “슬슬 추워지는데, 가죠?”

 

  “네, 가요.” 은아는 뒤따라 일어섰다.

 

 도운은 자신 뒤에서 걷는 은아를 돌아봤다. 그리고 걸음을 늦췄다.

 

 신경 쓰이는 마음 그리고 좋아하는 마음. 불분명한 경계선 사이에 있는 것도 나쁘지는 않다고 은아는 생각했다. 일단은 편안하고 그 어디보다 따뜻한 곳이니까, 그것으로 그녀에겐 충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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