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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연재 > 로맨스
옆집에 그가 산다
작가 : 유월
작품등록일 : 2019.9.2

뜨거운 사랑도 해 봤다, 가슴 아픈 이별도 해봤다. 그래서일까, 새로운 사랑이 두려운 지은아가 있다.
그런데 어느 날 한 남자가 나타난다. 뭔가 모르게 자꾸만 끌리는 이도운이라는 남자.
하지만 은아에게는 그에게 선뜻 다가가지 못 할 아픈 기억이 있고,
그로 인해 치유될 수 있을까?
그리고 운명이 맺어준 듯이 두 사람의 인연은 한참을 거슬러 올라간다.
이 인연은 과연 어떤 의미일까.

 
005. 각자의 주말
작성일 : 19-09-08 23:30     조회 : 224     추천 : 0     분량 : 4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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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005.

 

 

 

 

 은아는 점점 자신에게 다가오는 민원을 멍하니 바라봤다. 이 모든 상황이 거짓말 같게만 느껴졌다. 한민원. 2년 동안 우연히라도 마주친 적 없었던 그가, 이렇게 자신의 집 앞에 찾아와 있다니.

 

  “지은아...”

 

 민원 역시 믿기지 않는 다는 식으로 은아의 이름을 부르며 살짝 웃었다.

 

 한때 은아가 미치도록 사랑했고, 그리워했고, 증오했던 그 웃음.

 

 그때, 다가오던 걸음을 멈춘 민원이 도운을 슬쩍 보더니 은아에게 다시 시선을 돌렸다.

 

  “이 분은 누구야 은아야? 네 애인분이셔?”

 

  “한민원...여긴 왜 왔어 대체?”

 

 은아는 부들거리는 음성을 숨기지 못했다. 이미 민원의 말은 안중에도 없었다. 그저 매일밤 증오하던 얼굴을 직접 대면하니 분노만 끓어오를 뿐이었다. 긴 시간이 흘러서 이제 괜찮다고 생각했는데, 전혀 그렇지 않았다. 모든 것은 그대로다.

 

 도운은 은아의 몸이 떨리고 있음을 알아챘다. 그는 직감적으로 앞에 있는 남자가 은아가 전에 말해줬던 ‘솜’이와 관련 있는 사람이란걸 알 수 있었다. 그는 은아에게 위험한 남자가 틀림없었다.

 

  “...일단 우리 둘이 어디 가서-”

 

  “은아씨가 좀 취해서요. 제가 곁에 있어야 할 것 같은데, 그냥 여기서 말씀하시죠.”

 

 민원과 은아 가운데 끼어든 도운이 서늘하게 말했다.

 

 은아는 갑자기 차갑게 돌변한 도운을 살짝 올려봤다.

 

  “당신은 도대체 누군데 자꾸 끼어드는 겁니까?” 민원이 거슬린다는 듯 도운에게 말했다.

 

  “은아씨와 이웃입니다만 이런 위협적인 상황에 나설 정도는 됩니다.” 도운이 은아의 말을 끊었다.

 

 민원은 도운을 노려봤다. 그 사이에 은아는 어느 정도로 이성을 되찾았다. 3년 만의 만난 민원에게 나약한 모습을 들킬 수는 없다는 결론을 내린 것이다. 그 누구보다 잘 지냈고, 앞으로도 잘 지낼 거라는 걸 보여줘야만 했다. 한편으론 민원이 불쑥 찾아온 이유가 궁금했다.

 

  “도운씨 말이 맞아. 할 말 있으면 여기서 말해.”

 

 민원은 은아의 태도에 살짝 당황했는지 잠시 말을 잃었다.

 

  “할 말 없으면 갈게. 피곤해. 그리고 다시는 찾아오지 마.”

 

 은아는 한 걸음을 내디뎠다.

 

  “아까 술집에서 너를 우연히 보고 따라서 온 거야. 보고 싶어서 왔어. 네가 너무 그리워서.” 민원이 말했다.

 

  “.......개소리는 딴 데 가서 해.”

 

 은아는 쿵 내려앉는 심장을 겨우 붙들고 대꾸했다. 그리고 망설임 없이 오피스텔 건물 안으로 들어갔다. 도운은 그녀를 뒤따라갔다.

 

 건물 안으로 들어서자마자 은아는 무너지듯 주저앉아 흐느끼기 시작했다. 도운은 당황해서 그녀를 지켜봤다.

 

 얼마나 지났을까, 정신을 차린 은아를 도운이 부축했다. 두 사람은 나란히 계단에 앉았다. 사방은 고요했다. 마치 건물에 이 둘 뿐인 것 같았다. 긴 침묵 끝에 은아가 말했다.

 

  “...고마워요 도운씨 아니었으면...진짜...아찔해요 무슨 일이 일어났을지.”

 

 은아가 애써 웃으며 말했다. 도운은 그런 그녀를 물끄러미 바라봤다. 그의 시선에 민망해진 은아는 얼른 고개를 숙였다.

 

  “아까 그 사람, 한때 제가 정말 사랑했던 남자예요. 평생을 함께할 줄 알았어요. 근데 제가 가장 힘들었던 순간에 떠나가버리더라고요. 뒤도 돌아보지 않고요. 그 배신감이 너무 컸어요. 어쩌면 지금까지 계속 저 사람을 증오하는 힘으로 살아온 건지도 몰라요. 오늘처럼 다시 마주할 날이 언젠간 올 것에 대해 항상 생각했어요. 하지만 뭔가 더 통쾌하게, 더 차갑게 꺼지라고 하지 못한 게 너무 바보 같아요.”

 

 은아의 말을 가만히 듣고 있던 도운이 처음으로 입을 열었다.

 

  “네, 은아씨 바보 같아요.”

 

 도운의 말에 은아는 고개를 번쩍 들었다.

 

  “이럴 때는 그냥 위로해주면 안 돼요?”

 

  “내가 왜.” 도운이 장난스럽게 말했다. “나한테 위로받고 싶어요?”

 

  “....와...말을 말자 진짜.”

 

 은아가 팅팅 부은 눈을 흘기자, 도운은 씩 웃었다.

 

  “사실 꽤 멋있었어요.”

 

  “네..?”

 

  “은아씨 아까 용감했다구요. 저에겐 그렇게 보였습니다.”

 

 도운의 말에 은아는 마음 구석 어딘가에서 따뜻한 무언가가 퍼지는 기분이 들었다. 이제 정말 괜찮다는 생각이 들었다. 정말, 괜찮다.

 

 

 -

 

 

 다음 날 아침, 은아는 가뿐한 마음으로 출근 준비를 했다. 마치 어제 민원을 만났던 일이 모두 꿈이었던 것처럼 아득하게만 느껴졌다. 막 집을 나서던 그때, 핸드폰에 문자 수신음이 울렸다.

 

  -은아씨, 좋은 아침이에요. 저번에 영화 약속, 내일 여섯 시쯤 어때요?-

 

 멀뚱히 문자를 내려다보던 그때, 옆집 문이 열리고 도운이 나왔다.

 

  “뭐해요. 안가요?” 도운이 계단 쪽으로 가다가 말했다.

 

  “네, 네 가야죠.”

 

 도운을 뒤따라 계단을 내려가며, 은아는 다시 핸드폰을 내려봤다. 내일은 토요일, 너른한 날이었다. 마침 보고 싶은 영화도 있었다. 그야말로 데이트하기 최상의 조건. 하지만 그녀는 어쩐 일인지 흔쾌히 답장을 보낼 수가 없었다.

 

  “지하철역까지 한참 걷죠? 거기 지나가는데, 데려다줘요?”

 

 도운의 음성이 그녀의 귀에 웅웅거렸다.

 

  “....네....네? 뭐라고요?” 은아가 뒤늦게 고개를 번쩍 들었다.

 

  “...지하철역까지 태워다 줘요?”

 

 은아는 한참 위에 있는 도운의 얼굴을 가만히 올려봤다. 갑자기 호의를 베푸는 이유가 뭘까, 하는 눈빛으로. 지나치게 강렬한 시선에 부담스러워진 도운은 1층에 다다르자마자 재빠르게 걸음을 옮겼다.

 

  “태워다 주세요!!”

 

 정신 차린 은아는 성큼성큼 가버리는 도운을 쫄래쫄래 뒤따라 갔다.

 

 차에 올라탄 은아는 다시 핸드폰을 내려다봤다. 눈치를 챈 도운이 먼저 입을 열었다.

 

  “중요한 문자라도 왔어요?”

 

  “..........아..그게..”

 

 은아는 어디까지 얼만큼 말해야 하나 망설였다.

 

  “별로 안 궁금해요.” 은아가 쉽게 답하지 못하자 도운이 딱 잘라 말했다.

 

  “...도운씨 내일 주말인데 뭐 해요?”

 

 은아이 갑작스러운 질문을 던졌다.

 

  “..내일..”

 

 도운은 내일 별과 저녁 약속을 잡은 것을 떠올렸다. 그는 살짝 얼굴을 굳힌 채 대꾸했다.

 

  “저녁 먹어요, 아는 사람이랑.”

 

  “아는 사람이요? 여자...사람?” 은아가 은근하게 물었다.

 

  “네, 여자.” 도운은 별 생각 없이 답했다.

 

  “....그렇구나...”

 

 은아는 대답을 흐렸다. 어쩐지 마음 한구석이 활활 타오르는 것 같았기 때문이었다. 그녀는 곧 손가락을 움직여 답장을 눌렀다.

 

  -좋죠, 그럼 내일 어디서 볼까요?-

 

 

 -

 

 

 도운과 은아의 토요일은 결코 유쾌하게 시작하지 않았다.

 

 별과 만나기로 약속한 레스토랑 입구에 들어선 그는 기분이 묘하게 나빴다. 별에 대한 악감정은 아니었다. 그녀가 그를 친한 오빠 이상으로 생각한다고 해도, 그는 큰 부담을 느껴본 적이 없었다. 그 정도로 깊은 생각을 해보지도 않았고.

 

  “오빠! 여기.”

 

 별이 손을 든 곳엔 그녀 외에 다른 한 사람도 있었다. 도운이 오늘 볼 거라 생각지도 못했던, 자신의 아버지이자 X그룹 회장인 이도건. 도운은 잠시 멈칫했지만, 태연한 척 테이블로 다가가 앉았다. 어머니 기일에만 잠깐 보는 사이가 된 지 오래였다. 이 만남을 주최한 별은 뒷 일이 두렵지도 않은지 그저 싱글벙글 웃을 뿐이었다.

 

  “오랜만이구나.” 도건이 먼저 입을 열었다.

 

  “...네.”

 

  “또 이사 갔더구나.”

 

  “사람 시켜서 저를 소란스럽게 찾아 다니지만 않으셨어도 제가 이사 할 일은 없었겠죠.”

 

 도운이 차갑게 대꾸했다.

 

 도건의 주름진 얼굴이 딱딱하게 굳었다. 그의 깊은 눈동자는 도운의 눈과 닮았다. 아무 감정도 담기지 않은 것 같은 눈.

 

  “분위기 왜 이래요, 오랜만에 만난 자린데” 별이 나섰다.

 

  “너는 나중에 보자.” 도운이 말했다.

 

  “며느리한테 말투가 그게 뭐냐.”

 

  “누가 며느리에요.”

 

 도운이 낮은 목소리로 말하자, 도건이 입을 꾹 다물었다. 어금니를 꽉 무는 것은 그가 분노를 참을 때 주로 짓는 표정이었다.

 

  “오빠가 무뚝뚝해서 그러지 얼마나 저를 챙기는데요,” 별이 웃으며 도건에게 말했다.

 

  “날짜 잡아라.”

 

  “무슨 날짜요. 설마 결혼 날짜 얘기하시는건 아니겠고”

 

 도운의 비꼬는 말투에 도건이 테이블을 손바닥으로 내리쳤다. 주변 사람들의 시선이 집중됐다.

 

  “넌 언제까지 반항만 할 거야. 네가 언제까지 그렇게 살 수 있을 것 같아?”

 

  “왜 제 모든 행동을 반항이라고만 생각하세요. 저는 이미 완벽하게 독립했고, 지금 제 삶에 만족해요. 결혼 같은 거 강요하실 자격 아버지한테 없어요.”

 

  “뭐야!!”

 

 도건이 크게 외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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