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교 수업이 마무리된 뒤 종례시간.
담임 선생님이 들어오셔서 지휘봉으로 칠판을 두드리신다.
“탕!! 탕!!“
“조용!! 이번 주 당번 누구였지!”
반장인 양미경이 자리에서 일어서며 선생님께 고자질하듯이 말한다.
“네 선생님, 이번 주 당번 박 동 욱 인데요?”
미경이는 매번 동욱이만 가지고 저렇게 독하게 군다.
뭔가 쌓인 게 있는 건지.
저 친구는 무슨 생각을 하는지 잘 모르겠다.
마치 로봇 같다.
가끔 친구들과 모여 이런저런 얘기를 하는데 말 걸기가 무서운 친구.
유독 남자들한테 냉정하다.
박동욱이라는 애는 우리 학교 짱인데, 날라리들을 몰고 다니면서 온갖 나쁜 일은 다 하고 다닌다.
내가 1학년 때 저놈에게 꼬일 뻔했었지.
만약, 다시 나에게 엉긴다면 가만두지 않을 것이다.
나도 지금은 쉬운 놈은 아니게 됐으니까.
“그래 동욱이는 오늘 청소 다 끝나면, 점검할 거 다 점검해서 나한테 검사받으러 오고! 이상, 종례 끝!!”
우리 반은 참 간결하게 종례가 마무리된다.
단임의 귀차니즘의 영향인지 모르지만.
난 그게 좋다.
당번은 한마디로 청소 반장이다.
당번은 일주일마다 한 번씩 바뀌고 운 좋으면 한 학년 동안 한 번도 안 할 수 있다.
오늘은 용인이네 분단이 청소다.
“용인아 나 먼저 간다. 내일 보자!”
웃으며 손 흔들어 주는 용인이, 친구 놈이 있어 학교생활이 행복해질 수 있었던 것 같다.
“그래 잘 다녀와 무리하지 말고.”
“오키!”
그렇게 인사하고 가려는데, 뒤에서 반장의 목소리가 쩌렁쩌렁 울린다.
깜짝 놀라 돌아봤더니, 반장이 악다구니를 쓰며 동욱이에게 다가가고 있었다.
“야! 박동욱! 너 어디 가!! 야~!!!”
박동욱이 들은 척 만 척 소리 지르는 반장을 뒤로하고 가방을 들고 나가는데.
반장이 달려가서 어깨에 비스듬히 걸쳐 맨 가방을 잡아당겼다.
무방비 상태의 박동욱은 반장이 힘껏 잡아당긴 방향으로 버둥거리며 주춤주춤 끌려갔고 말이다.
그런데..
일이 터지고야 말았다.
“짝!”
“아! 이 쌍! 뒤지고 싶어? 거 왜 잘 가는 사람 잡아당겨서 당황스럽게 만들어?”
주춤주춤 버둥거리며 넘어질 뻔한 박동욱의 손이 휘둘러지며 짝 소리가 들릴 정도로 반장 얼굴에 맞았다.
박동욱이 오히려 반장에게 화를 내고 욕을 퍼붓고는 반 애들을 날카로운 눈으로 쓱 훑어보았다.
그런 동욱을 바라보는 반장의 눈동자에 눈물이 고이며 심하게 요동쳤다.
“미, 미안해. 흑,”
“아~시벌 일진 더럽네. 퉤!”
박동욱은 그렇게 도망치듯 교실을 나갔다.
뭐 저런 놈이 다 있는지.
맘 같아선 쫓아가 혼 좀 내주고 싶은데, 시계를 보니 버스 시간이 다 돼간다.
한숨만 나온다.
반장은 너무 놀란 마음에 그 자리에서 무너지며 주저앉았고, 몸을 사시나무 떨듯 떨며 흐느껴 우는 것이다.
그런데 그런 반장을 외면하며 나머지 반 애들은 조용히 아무 일도 없다는 듯이 서로의 눈치를 보며 자기 갈 길만을 찾아갔다.
참 매정한 놈들이다.
여자들끼리 기분 좋을 때는 친구라면서 말이야 이럴 때 다가와 위로의 말은 못 해줘도 안아주고 다독여 줄 수는 있는 거 아닌가.
나야 남자라 그렇게 하지 못하지만.
그동안 같이 모여 수다 떨던 친구들은 다 어디 간 건지..
쯧쯧
너무 안쓰러웠다.
뭐, 사실 저 상황에 다가가는 것이 오히려 자존심을 상하게 할 수도 있겠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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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닥에 쪼그려 앉아 흐느끼는 반장을 아무도 눈치채지 못하게 애잔한 눈빛으로 바라보고, 교실을 나간 박동욱을 조용히 따라 나갔다.
놈을 쫓아가다, 희미하지만 웃고 있는 것이 보이자 살기가 들끓었다.
박동욱이 담배를 피우며 느긋하게 걸어 어느 골목 어귀에 들어설 때, 주변을 훑어보고 빠르게 다가가 어깨를 잡아당겼다.
.
.
.
“야! 박동욱!”
헐~ 이놈은 또 뭐냐~
갑자기 어깨를 강하게 잡아당겨 당황스러웠다.
당황스러움을 감추기 위해 목소리를 높이는데.
“이런 쌍! 기분도 더러운데 넌 또 뭐야?”
놈이 날카로운 눈빛으로 바라보는 것이다.
“너, 뭐 잘못한 거 없냐?”
그리고 다짜고짜 묻는 말에 어이가 없었다.
아~ 이 새끼는 뭐야?
갑자기 나타나서 뭔 뚱딴지같은 소리야?
오늘 일진 사납네, 어디서 굴러들어온 놈인지, 가뜩이나 기분 더러운데.
“시발! 너 뭐냐! 뭔 개소리하고 있어!”
놈의 입이 뒤틀리며 비웃는다.
“개 소린지, 새 소린지는 두고 보면 아는 거고~ 내 말에 대답이나 하라고!”
괜히 시비 거는 놈인지, 귀찮아서 인상을 쓰고 손을 휘저으며 말했다.
“아우~쌍! 야! 나 오늘 기분 별로니까. 좋은 말로 할 때 가라.”
한데 요지부동인 놈 씨알도 안 먹힌다.
오히려 게슴츠레 눈을 뜨고 나에게 턱짓을 하는데.
“다시 한 번 물어본다. 너 잘못한 거 뭐야!”
정말 오늘은 그냥 조용히 지나가고 싶었다.
그래서 진심을 담아 조용히 말했다.
“아~ 진짜. 너 찐따냐? 좀 꺼지라고. 엉아가 그냥 보내준다잖아~ 오늘 운 좋은 줄 알고 가라고, 쫌.”
진심이 느껴졌는지 말이 없어졌다.
하지만..
“...”
나를 노려보는 그 눈빛이 자기는 다 안다는 것 마냥 심문하는 듯이 느껴져 내 자존심이 시궁창에 처박힌 것 같은 기분이다.
나를 우습게 아는지 해서 강하게 나가면 쫄아서 가겠거니 하는 마음에 쌍욕을 퍼부었다.
“너 진짜 죽고 싶냐? 아~시발, 너 내가 누군지 알고나 하는 소리야?
이런 개 쌍것이 그냥 보내줄 때 갔어야지 이 시발 놈아~! 넌 지금, 판단 잘못한 거야~.”
“...”
무시하는 것인지 아무런 대꾸도 없는 놈이 얼굴을 구기며, 내 말과 행동이 우스운 듯 입가가 비틀어졌다.
평소였으면 그냥 무시했을 법한 반응이었지만, 지금 내 마음은 평소와 같지 않고 울화가 치밀어 분을 풀고 싶은 마음이 비집고 올라와 결국 터졌다.
“안 되겠다. 너 오늘 좀 맞아야겠다.”
“흥! 그래? 이제 본심이 나오시나?”
그 말을 기다렸다는 듯이 그제 서야 대꾸한 놈.
마치 같잖은 듯이 비웃으며 말하는데, 참 어이가 없다.
다짜고짜 와서 한다는 말이 잘못한 게 뭐냐?
그걸 나한테 물으면 어쩌라고.
“네가 자초한 거야!”
지금, 이 상황이 어이가 없다.
가뜩이나, 오늘 오후 반장과 있었던 일로 인해, 나 자신에게 정말 실망해서 기분이 영 좋지 않았다.
이미 되돌릴 수는 없지만, 그 상황에서 사과 한마디 하지 못하는, 아집으로 가득 찬 자신의 모습을 후회했고.
한심한 행동을 통제하지 못하는 자신의 무력함을 비관하고, 비웃었다.
그러던 중에 어디서 굴러먹다 온 건지 알지도 못하는 놈이 와서는 신경을 긁고 있다.
난 잘못한 것이 너무도 많단 말이야.
내 기억에는 저놈의 얼굴도 없으니 원한을 산 것도 아닐 텐데.
나도 이제.. 예전처럼 평범했던 때로 돌아가고 싶다고.
다시 친구들과 즐겁게 웃으며,
같이 운동도 하고,
점심시간에는 같이 밥도 먹고,
학교 끝나고는 같이 게임도 하고,
이미 몹쓸 짓을 저질렀지만.
좋아하는 여자 친구랑 데이트도 하고, 맛있는 것도 먹으러 다니고.
어쨌든, 다들 생각하는 그런 평범한 학창 시절을 보내며 추억을 쌓고 싶다 이 말이야.
도대체 어디서부터 틀어진 건지,
다시 되돌릴 수 있다면 그때로 돌아가고 싶은데,
주변에서 정말 도와주지 않는다.
한번 양아치는 영원한 양아치라나 뭐라나.
저놈이 던진 질문은 지금 나의 심리 상태와 그 시기에 절묘하게 맞는 질문이다.
마치..
나의 심장을 후벼 파는 것 같았다.
그래서 더 못나게 말이 나가는 것 같다.
설령 속마음을 말하고 싶다 하더라도, 생전 첨 본 놈에게는 더더욱 말하지 못하겠다.
뭐, 그럴 용기도 없고 말이다.
한편으로.
잘못한 것을 다 말한다면 모든 죄가 용서받을 수 있을 것 같은 묘하게 설레는 느낌을 받긴 했다.
하지만, 역시나 내 마음속에 자리 잡고 있는 그놈의 아집이 나의 본심을 다시 가두려 한다.
“야, 박동욱, 마지막으로 물어본다. 너 잘못한 거 뭐야?”
헐~ 마지막으로 묻는단다.
꼴통이다.
이 정도 하면 보통은 꼬리 내리고 그냥 가는데 이놈은 다르다.
뭐 믿는 구석이 있나 보다.
하. 정말 이런 거 이제는 그만하고 싶은 마음이 간절할 뿐...
그래, 나 잘못한 거 너무 많다.
너무 많아서 지금 다 말할 수가 없다고.
겉으로 내뱉지 못하고 속으로만 삼키며 결국 입 밖으로 욕지거리만 나온다.
비참해져 찡그린 얼굴로 물었다.
“너.. 시발... 도대체 뭐야....”
그런 내 모습을 보며 피식 웃는다.
“너 잡으러 온 사람이다. 정의의 사도.”
어이가 없다.
정의의 사도?
그렇게 말한 그는 나를 향해 쇠도 해 왔다.
그런 그의 모습을 보고 정신이 번쩍 들어 눈을 부릅뜨곤 그의 움직임을 쫓으려 했다.
.
어둠이 찾아온 어느 한적한 골목 어귀에 두 눈을 감고 고른 숨을 쉬며 누워서 조용히 생각에 잠겼다.
오늘 정말 심신이 만신창이네, 원 없이 당했구나.
이상한 일이다.
학교 짱인 내가 오늘 된통 당한 것이다.
그래도 기분은 나쁘지 않았어.
아까 그놈이 반장 전화번호를 알고 있었고, 나는 난생처음으로 사과란 것을 해 봤다.
사실 사과하기 전에 엄청난 두려움을 느꼈지만..
반장이 나의 사과를 받아 줄까..?
나를 증오하지 않을까..?
욕을 하지는 않을까..?
혹시 부모님에게 말한 거 아닐까..?
등등 여러 가지 생각들이 복합적으로 다가와 두려움으로 변했다.
하지만
떨어지지 않는 입술을 열고
미안하다고, 용서해 달라고,
사실 아까 일부러 그런 게 아니고
넘어질 것 같아 본능적으로 버둥거렸던 건데 거기 네가 있을 줄 몰랐다고,
근데 주변에 보고 있는 눈들을 의식한 나머지
내 아집 때문에 좋지 못한 소리로 내 속마음을 포장 한 거라고.
마치 속사포를 쏘듯 쏟아 냈다.
그렇게 이야기하고 전화를 끊으려는데,
반장이 나를 불렀다.
괜찮다고, 자기는 다치지 않았으니까 걱정하지 말란다.
그 말을 듣고 가슴이 무언가로 꽉 막힌 기분이 들었다.
이상해지는 기분을 들키지 않기 위해,
서둘러 고맙다고 말하고 빠르게 전화를 종료했다.
그 뒤에 정말 주체할 수 없는,
생전 처음 느껴보는,
배꼽에서부터 꿈틀꿈틀 올라오는 뜨거운 감정이 느껴졌다.
그리곤 어느새 인지 내 양 볼을 타고 뜨거운 눈물이 흐르고 있었는데.
처음으로 그렇게 눈물을 흘려봤다.
분명 내 생활은 쉽사리 바뀌지 못할 것임을 안다.
주변에 자리 잡은 나에 대한 인식이 그리 쉽게 바뀌지 않을 것이고, 나 또한 아집으로 인해 쉽게 변하지 않을 것이니.
하지만 처음부터 쉬운 게 없는 것처럼 나도 한발 한발 나아가겠다.
아, 이미 한 걸음은 걸었나?
그리고. 앞으로 그놈이 도와주겠다고 했으니까.
그래도, 제법 괜찮은 놈인 것 같네.
“고맙다.”
조용히 혼자 속삭이고 자리를 털고 일어서 집으로 한 걸음 한 걸음 걸어갔다.
마치, 자신의 변화를 위해 한 걸음씩 앞으로 나아가는 것과 같이, 무거운 마음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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