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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연재 > 현대물
호인지몽(胡人之夢) : 사람이 되어 삶을 보내던 꿈.
작가 : 하늘물
작품등록일 : 2019.9.2

화자는 자신의 이야기를 표현하지 못했다.
세상을 살아가는 방법이라 여겼다.
하지만, 그건 잘못된 방법이었다.
끝내 이야기 하지 못하고 나비처럼 곳을 향해 날아올랐다.

“나비가 날아왔다.
그가 떠나온 곳은 가장 밝게 빛나던 별.
약육강식의 세계로 찾아온 나비.”

 
2막 [그러나, 조그만 날게 짓으로 바람을 일으켜 잡풀 하나라도 움직여 보고 싶었다.]
작성일 : 19-09-02 19:49     조회 : 228     추천 : 0     분량 : 31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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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러나, 조그만 날게 짓으로 바람을 일으켜 잡풀 하나라도 움직여 보고 싶었다.]

 

 

  오늘은 유독 바람이 거세게 분다. 점퍼를 입었음에도 바람을 피하기는 힘들었다.

 

  잠시 뒤 회사 동료가 숙취 가득한 몰골로 출근했다. 궁금하다. 술이 좋은 것인지, 술을 먹을 수밖에 없는 것인지. 그도 아니면, 취해야만 세상을 바로 볼 수 있는 것인지. 하지만, 묻지 않았다. 그럴 용기도 없었고, 답을 듣고 난 뒤의 대처법도 몰랐으니까.

 

  긴급 출동이 들어왔다. 동료의 출동 차례지만 그는 요지부동. 결국, 그동안 목구멍까지 차오르던 불만이 기어코 터져 나왔다.

 

  “야, 네가 나갈 차례인데 왜 내가 가야 하는 거야.”

 

  속이 시원했다. 비록 소리가 작아 동료가 들었는지 모르겠지만, 만족감에 가득 차 출동을 나갔다. 가는 동안에도 기분은 좋았다. 이런 기분이던가. 잔뜩 상기된 마음으로 목적지에 도착했다. 다행히 약속된 시간보다 조금 일찍 왔다. 그런데 정차해 있는 차량이 눈에 익었다. 저번의 펑크 문제로 출동했던 차량이다. 운전자가 불만 가득한 표정으로 팔짱을 끼고 서 있어 불현듯 불안감이 엄습했다. 도대체 무엇이 저 여자를 화나게 했는지 갑갑해진다. 다시 목구멍을 비집고 나오는 무언가를 억지로 막았다. 심호흡하고 운전자에게 다가갔다.

 

  “안녕하세요. 시동이 안 걸린다고 연락하셨죠.”

 

  여자의 미간이 좁혀지며 구겨진다. 필시 이 여자는 모든 불만을 떠안은 자일 것이다. 불만을 가득 품은 여자가 대뜸 호통쳤다.

 

  “알면서 물어보는 거야! 내가 전화했잖아! 시동 안 걸린다고! 잔말 말고 빨리 시동이나 걸어! 바쁘다고!”

 

  이럴 줄 알았지만, 가슴 깊은 곳에서 다시금 무언가 꿈틀대며 올라온다. 다시 갑갑함이 느껴진다. 꾸역꾸역 삼켜본다. 간신히 진정돼 여자에게 짧게 대답하고 서둘러 움직이려 몸을 돌렸다. 한데, 목구멍까지 올라와 참아내던 무언가가 기어이 입 밖으로 쏟아져 나오려 했다. 의지를 무시하듯 몸 또한 멋대로 움직였다. 다시 시선에 여자가 보였다. 얼굴이 화끈하게 달아오르는 것이 느껴지고 기어코 참아내던 무언가가 쏟아져 나간다.

 

  “바쁘면 차 점검이나 잘하고 다니던가!”

 

  여자는 순간 팔짱이 풀어지며 멍한 얼굴이 됐다. 의지를 벗어난 내 행동에 당황해 서둘러 시동을 걸어 조치를 끝낸 뒤 사무실로 향했다. 가는 동안 이상하게 조금 전 벌어진 일에 대한 뒷일은 고민스럽지 않았다. 내가 왜 그러한 행동을 했는지에 대해 고민스러울 뿐이었다. 정확히 알 수 있는 건 없었다. 단지 변하려 한다는 것뿐. 내가 추구하던 삶의 방식이 조금씩이지만 분명 변하려 하고 있었다. 왜일까. 어떤 일로 인해서건 이 현상이 좋은 일인지, 나쁜 일인지는 모르겠다.

 

  복잡한 마음을 뒤로하고 사무실에 도착했다. 사장의 호출이다. 두려웠다. 조마조마한 마음으로 사장실로 향했다.

 

  다행히 꾸지람을 듣거나 불이익을 받지는 않았다. 단지, 당분간 주중 출동을 나가지 못한다. 주말 당직 출동은 있겠지만 오히려 내게는 더 좋은 상황이었다. 묘한 희열이 느껴진다. 그래서 더 혼란스럽다. 지금까지 사회적 불이익에 대한 두려움으로 인해, 삶의 방식까지 사회가 지향하는 대로 맞춰 왔다. 내 생각이 틀린 것이었나. 복잡한 심경이다.

 

  차 한 대가 들어온다.

 

  “안녕하세요. 승현아, 안녕. 잘 지냈지? 점검 좀 부탁해.”

 

  그녀가 정비소로 차를 가져 왔다. 그녀와의 만남은 운명 같았다. 차량에 문제가 발생해 견인 요청이 있었고 내가 직접 차를 견인해 왔었다. 그리고 운명처럼 콩깍지가 쓰였었다. 그 뒤로 좋은 관계로 서로를 알아갔다. 그녀는 내가 참 착한 사람이라고 했다. 그러나 만남은 그리 오래가지 않았다. 시간이 지날수록 내 삶의 방식을 답답하게 생각해 수차례 바꾸라고 했었다. 하지만 쉽지 않은 일이었다. 그동안 그녀가 알고 있던 나의 착함이란 장점은 답답함에서 비롯된 오해로 밝혀졌다. 결국, 그녀의 선택은 이별이었다. 그런데, 무슨 생각인지 그 뒤로도 그녀는 정비소를 꾸준히 찾아왔다. 못마땅했지만, 감정을 입 밖으로 꺼내지는 못했다. 점점 더 어색해져 얼굴을 마주하기 힘들었다. 하지만, 그녀는 달랐다. 그녀는 자신을 제외한 다른 사람들의 환대를 받으며 항상 웃음을 보였다. 그때마다 배속이 덥수룩했다. 체한 것 마냥, 답답하고 힘겨웠다. 지금도 다르지 않다.

 

  점검이 끝나고 그녀가 차를 기다리고 있다. 그녀에게 차량을 인도하기 위해 이동했다. 그리고 그녀에게 운전대를 넘기고 어렵게 입을 열었다.

 

  “이제, 그만 왔으면 좋겠어.”

 

  그녀의 눈동자가 잘게 흔들렸다. 그것도 잠시, 다시 초점이 또렷해지고 내 시선을 직시했다. 난 그녀의 애절한 시선을 마주하지 못하고 화단 쪽으로 고개를 돌려 피했다. 깊고 긴 숨소리와 함께 그녀의 속삭임이 들렸다.

 

  “왜, 이제야 말하는 거야. 앞으로는 절대로 감정에 솔직해져야 해. 이젠, 정말 잘 지내 승현아.”

 

  그녀의 목소리가 귓가를 배회한다.

  그녀의 차량이 가버렸다. 끝내 그녀의 시선은 마주하지 못했다. 그녀의 속삭임에 떨림이 있었다. 울먹였다. 눈물을 보고 싶지 않았다. 지금까지 부러 찾아왔었던가. 가슴을 쥐어짜는 듯 뻐근함이 느껴진다.

 

  화단으로 시선을 옮겼다. 푸릇한 잡풀로라도 마음을 다독이고자 했다. 아무 생각 없이 잠시 그대로 있고 싶었다. 시선에 뿌연 안개가 자리 잡기 시작한다. 한참을 바라보기만 했다. 뿌연 안개 너머 무언가 아른거린다. 하얗고 조그만 무언가 움직인다. 아주 작은 움직임. 무엇일까. 안개가 사라지고 초점이 돌아왔다. 하얀 애벌레가 고개를 흔들고 있었다. 다가가 바라보자 어제저녁 그 녀석이다. 외로웠던가. 힘들게 홀로 야생을 살아가는 애벌레가 가여워 보였다. 보금자리를 찾아줄까. 짧은 고민에 결단이 섰다. 이 녀석을 담을 것이 필요했다. 사무실에 안 쓰는 투명 플라스틱 통이 떠올랐다. 가져와서 녀석이 살아갈 수 있는 환경을 만들기 시작했다. 모래 조금. 나뭇가지들과 싱싱한 잎사귀들. 이 정도면 충분하겠지. 조심스럽게 녀석을 통에 옮겨 담았다. 뭐가 좋은지 이리저리 머리를 흔들며 춤을 춘다. 좋은 동무를 얻은 기분이다. 아무 말도 아무 행동도 필요 없이 바라만 봐도 위로가 되는 동무. 녀석도 그렇게 생각하겠지. 조금은 뻐근한 마음이 누그러졌다.

 

  집으로 향하는 언덕. 옆구리에 질러 넣은 투명한 통. 어느새 나무 잎사귀에 대롱대롱 달린 애벌레 고치가 보인다. 보금자리를 찾은 것인지 그곳에 고치가 되어 자리를 잡았다. 분명 내일이면 나비가 되겠지.

 

 
작가의 말
 

 「나비가 날아왔다.

  그가 떠나온 곳은 가장 밝게 빛나던 별.

  약육강식의 세계로 찾아온 나비.

  성체가 되어 자신의 후손을 남기기 전까지 그곳에서 처세를 잘하며 살아가야 했고, 살아남아야 했다.

  그러나, 조그만 날게 짓으로 바람을 일으켜 잡풀 하나라도 움직여 보고 싶었다.

  하지만, 나비는 저 멀리 행복이 가득한 그곳으로 날아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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