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명하기 쉽지 않네요. 천국은 다른 차원의 우주라고 해두죠.”
“다중우주요?”
“우리 세계의 공간과 시간을 초월하는 고차원 우주는 우리가 볼 수 없는 곳이죠. 하지만 어떤 에너지는 그곳에서 우리 우주로 흐르고 있어요. 영혼도 그 에너지의 일종이죠.”
“그럼 영혼은 5차원 우주로 들어갈 수 있다는 말인가요?”
“혁신적인 일부 끈 이론 학자들은 우리 우주가 고차원 우주의 막에 맺힌 물방울 같은 거라고 가정해요. 모든 입자와 에너지는 각자의 차원에 묶여 있죠. 하지만 중력은 막을 뚫고 넘나들죠.”
“중력은 영혼이 아니잖아요.”
“영혼도 어쩌면 일종의 중력자로 구성된 걸 수 있어요. 다른 우주에서 오는 힘 말이에요.”
“좋아요. 어쨌든 어르신은 그 5차원 우주의 막을 뚫고 들어가고 싶은 거죠?”
도솔선사가 박수를 딱 쳤다.
“바로 그거예요. 심리학자 양반. 에너지 흐름은 거스를 수 없어요. 영혼이 5차원 우주로 들어가면 다시 돌아올 순 없어요. 나중에 다른 생명으로 또 이 우주에 오게 되겠죠. 하지만 저는 막을 뚫고 들어가서 보고, 다시 에너지 흐름을 거슬러서 이 세계로, 나 자신에게로 돌아오고 싶은 거죠. 3차원에 묶여 있는 육체는 할 수 없지만 에너지인 영혼은 할 수 있어요.”
“허무맹랑합니다.”
“저 혼자서는 불가능해요. 당신처럼 영혼에너지가 강한 사람과 힘을 합치기 전에는.”
“그렇게 보고 싶어 하는 이유가 뭡니까?”
“그곳은 거대한 에너지의 바다일 거예요. 영혼이 몸 밖으로 잠시 나가기만 해도, 그러니까 5차원 에너지의 흐름을 잠시 느끼기만 해도 수많은 능력이 생겨요. 그런데 5차원 우주 안으로 들어갔다 나온다면, 거대한 능력이 생길 수도 있죠.”
“그러니까 능력을 갖고 싶은 거군요?”
“아뇨. 그냥 알고 싶어요. 보고 싶어요. 그것뿐이에요.”
“제가 그걸 도와야 하나요?”
도솔선사가 일어섰다.
“나중에 말씀 드리죠. 이제 좀 주무세요.”
도솔선사가 방을 나갔다.
박찬혁은 이불을 펴고 누웠다.
잠이 오지 않았지만 그렇다고 깨어 있는 것도 아니었다.
박찬혁은 잠과 현실의 경계를 헤매고 있었다.
몽롱한 의식에 도솔선사가 찾아와서 똑같은 말을 되풀이 했다.
여분차원, 에너지, 막, 영혼 따위 시답지 않은 단어들이 머리 속을 기어다녔다.
“혜경아, 자고 싶어.”
박찬혁이 중얼거렸다.
서서히 날이 밝았다.
어디선가 멧비둘기들이 울어대기 시작했다.
**
날이 새자 파란 운동복을 입은 두 사람이 박찬혁을 데리러 왔다.
한 사람은 비쩍 마른 남자고 한 사람은 뚱뚱한 여자였는데 두 사람의 얼굴이 묘하게 닮아 있었다.
둘 다 사십대로 보였다.
남자는 물론 여자도 귀밑을 밀어 올린 상고머리였고, 째진 눈에 광대뼈가 불거져 있었다.
박찬혁은 그들에게 물었다.
“두 분은 남매신가요?”
마른 남자가 말했다.
“남매라니요. 저희는 여기 와서 처음 만난 사이입니다. 저는 혜강이라고 합니다.”
뚱뚱한 여자가 말했다.
“저는 연화라고 합니다. 일종의 법명이죠. 속세의 이름은 잊은 지 오랩니다.”
혜강이라는 이름이 낯익었다.
박찬혁은 머리속으로 혜강이라는 이름을 곱씹었다.
이 형사와 만났던 커피숍이 떠올랐다.
이 형사는 혜강이 도솔선사의 오른팔이라고 말했다.
그래서인지 도솔선사가 혜강을 대하는 태도는 친동생처럼 스스럼없었다.
혜강과 연화는 박찬혁을 여관 밖으로 데리고 나왔다.
아침에 본 여관 건물은 더 흉측했다.
여관은 어둠의 장막을 벗어버리고 아침 햇살 아래 더러운 피부를 드러냈다.
밤에 검은색으로 보였던 이끼는 청록색이었다.
외벽엔 잔금들이 수없이 나 있고 타일이 떨어져 나가거나 깨진 곳도 많았다.
박찬혁이 물었다.
“이 여관에는 손님이 우리밖에 없습니까?”
혜강이 대답했다.
“그럴 리가요. 이래봬도 손님이 꽤 찾아옵니다.”
“대정그룹이 멋있는 수련원을 차려줄 생각은 못 했나 보죠?”
“눈에 보이는 건 아무 것도 아니에요.”
“그래도 츄리닝 대신 도포를 입으세요. 방에 불상이라도 하나 갖다 놓으시고요.”
혜강이 하하 웃었다.
연화도 하하 따라 웃었다.
“눈에 띄지 않는 장소가 필요했습니다.”
그들은 건물 뒤편의 주차장으로 갔다.
박찬혁은 혜강이 운전하는 봉고차를 타고 산속 도로를 달렸다.
산비탈 밑에 꽤 넓은 하천이 보였다.
초목에 둘러싸인 강이 아침 햇살을 받아 반짝이며 바람 가는대로 물살을 일으켰다.
혜강이 말했다.
“이 강은 지방하천이지만 꽤 유명합니다. 야청천이 원래 이름인데 금불천라고도 하죠. 고려 시대 때 유명한 선사가 이 호수에 금불상을 숨겨 놨다고 해서 그런 별명이 붙었습니다. 태백산맥 줄기인 야청봉 밑에 있어서 경관이 수려해요. 저기서 여름엔 물놀이 축제, 겨울엔 산천어 축제를 여는데 관광객이 꽤 몰려듭니다.”
차는 5분쯤 더 달려 멈췄다.
주변은 온통 콩밭이었다.
유기농 콩을 키우는 듯 콩 줄기 사이로 우렁이와 메뚜기들이 보였다.
콩밭 입구에 축사 같은 건물이 보였다.
시퍼런 콩잎들의 바다에 블록으로 만든 난파선이 떠 있는 것 같았다.
도솔선사가 그 건물 입구에 서 있었다.
박찬혁은 도솔선사를 따라 건물 안으로 들어갔다.
안에서 보니 건물은 축사가 아니라 버려진 공장에 가까웠다.
외벽은 무너지기 직전이지만 그 안의 기기는 모두 새 것이었다.
건물 한가운데 물탱크가 반짝거렸다.
자동밸브가 달린 두 개의 관이 스테인리스 물탱크에 연결돼 액체를 쉽게 주입하거나 빼낼 수 있었다.
물탱크 건너편은 통제실이었다.
유리로 된 작은 방에 여러 개의 눈금을 단 전자기기가 설치됐다.
탱크 안의 상황을 보여주는 작은 모니터도 있었다.
박찬혁은 뚱뚱이와 홀쭉이에게 물었다.
“여기서 뭘 하나요? 절 토막 냈다가 다시 이어 붙이나요?”
도솔선사가 대답했다.
“초심자 단계입니다. 수련에 들어가기 전 단계죠.”
“이건 수련이 아닌가요?”
“네. 당신은 아직 본격적인 수련에 들어갈 능력이 없습니다. 여기서 당신은 어떤 느낌을 얻어야 합니다.”
“느낌이요?”
“영혼이 육체를 떠날 때의 느낌이요. 그걸 단서로 수련을 시작해야 합니다.”
박찬혁은 도솔선사의 지시에 따라 옷을 벗었다.
청바지와 티셔츠를 벗고 팬티만 남겼다.
“저 안에서 뭘 해야 하나요?”
이번엔 혜강이 설명했다.
“저 탱크 안에 사람의 체온과 온도가 똑같은 물이 들어갈 겁니다. 빛도 완벽히 차단되죠. 아무 것도 보이지 않는 물속에서 당신은 다른 우주에 들어간 느낌을 받을 겁니다. 거기서 그냥 누워 있으면 돼요.”
“누워 있으라고요?”
“네. 느낌을 얻을 때까지 물속에 떠서 누워 계세요.”
“느낌을 못 얻으면요?”
“피부가 퉁퉁 불어서 물속에 풀어지겠죠.”
혜강과 연화가 웃었다.
두 사람의 똑같은 웃음소리가 지하실에 울려 퍼졌다.
박찬혁은 구명조끼를 입고 탱크 입구에 있는 철 계단을 올라갔다.
“당신들도 이런 단계를 거쳤나요?”
연화가 대답했다.
“물론이죠. 쉽지만은 않았어요.”
“이런 설비를 갖추려면 돈이 꽤 들겠는데요.”
“후원자가 있습니다.”
혜강이 탱크의 문을 열었다.
탱크 안으로 들어가자 완벽한 어둠이 박찬혁을 감쌌다.
아무 것도 보이지 않았다.
손을 눈앞에 흔들어도 보이지 않았다.
탱크 어딘가에 있는 스피커에서 혜강의 목소리가 들려 왔다.
“누우세요.”
박찬혁은 누웠다.
탱크 바닥이 차가워 등에 오한이 번졌다.
“이제 물이 들어올 겁니다. 당황하지 마세요. 누운 채로 물속에 떠 있으면 됩니다. 이 탱크는 안전하게 설계됐습니다. 억지로 무념무상을 유지하려고 하지 마세요. 그저 생각이 떠오르는 대로 놔두세요.”
조금 뒤 관에서 꼬르륵 소리가 들렸다.
바닥부터 천천히 미지근한 물이 들어 왔다.
물은 바닥을 흥건히 적시고 조금씩 수위를 높여서 박찬혁을 떠오르게 만들었다.
탱크에 물이 반쯤 차오르자 관이 닫혔다.
박찬혁은 우주에 떠 있는 것 같았다.
아무 것도 보이지 않고 중력도 느껴지지 않았다.
시간이 지나자 방향감각이 사라졌다.
어디가 위고 어디가 아래인지, 자신이 들어온 입구가 어디고 혜강의 목소리가 들린 쪽이 어디인지 박찬혁은 감을 잡을 수 없었다.
크기에 대한 감각도 사라졌다.
박찬혁은 높이 2미터의 물탱크가 아니라 대양 한가운데 떠 있는 것 같았다.
반대로 자신은 티끌보다 작아졌다.
박찬혁은 자신의 몸뚱아리가 손가락 하나로 눌러죽일 수 있는 벌레처럼 느껴졌다.
시간이 얼마나 흘렀을까.
시간에 대한 감각도 사라졌다.
물탱크에 들어온 것이 까마득한 옛날 같았다.
박찬혁은 영원 속에 갇혀 허우적대고 있었다.
살아 있다는 느낌이 들지 않았다.
온몸의 살이 썩어버리고 해골만 남아 떠 있는 느낌이었다.
박찬혁은 생매장당했다고 생각했다.
아무리 애써도 밝은 기억이 떠오르지 않았다.
괴상한 이미지들만 잔뜩 떠올랐다.
뇌를 파먹는 구더기, 갈비뼈를 으스러뜨리는 보아뱀, 쥐들이 득실거리는 구덩이, 낙엽을 바스락거리며 기어오는 지네 같은 것들이 나타났다 사라졌다.
어둠이 조금씩 뭉쳤다.
뭉친 어둠이 점점 커지더니 거대한 형상을 만들었다.
괴물이었다.
어릴 적 그림책에서 본 기가노토사우르스와 닮은 그것이 천천히 다가와 검은 송곳니로 목을 물어뜯었다.
“내보내 줘!”
박찬혁은 숨이 막혔다.
팔을 저으려고 했지만 움직이지 않았다.
갑자기 몸이 뒤집혔다.
물이 코와 입으로 쏟아져 들어 왔다.
스피커에서 혜강이 소리쳤다.
“몸을 돌려, 이 병신아!”
박찬혁은 버둥거렸다.
그 순간 어디로 어떻게 몸을 돌려야 할지 알 수 없었다.
숨이 막혀 헐떡일수록 더 많은 물이 들어왔다.
몸이 무거워져 땅 밑으로 떨어지다 갑자기 가벼워져 하늘로 치솟았다.
온몸이 풀어지는 느낌이 드는 순간 환한 빛이 들어왔다.
박찬혁은 정신을 잃었다.
눈을 떠 보니 박찬혁은 지하실 바닥에 누워 있었다.
혜강의 긴 얼굴과 연화의 넓적한 얼굴이 박찬혁을 내려다보았다.
두 사람 모두 눈살을 찌푸리고 있었다.
콘크리트 바닥은 차가웠다.
박찬혁의 온몸에서 바닥으로 물이 뚝뚝 흘러내렸다.
박찬혁은 혜강에게 물었다.
“이제 다 끝났습니까?”
혜강과 연화가 동시에 고개를 저었다.
그들 뒤에서 도솔선사의 목소리가 들렸다.
“물에 불린 미역 꼴이군요.”
박찬혁은 일어나 앉았다. 도솔선사가 다가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