향의 엄마는 매서운 눈으로 향을 노려보더니, 향이의 뺨을 세차게 때린다.
‘착!’
뺨 맞는 소리와 함께 향은 바닥에 넘어지고, 향의 엄마는 투명한 스타킹을 신은 발로 향의 배를 세게 한 대 찬다.
“야야, 애 큰일 나겠다.”
할머니가 바닥에 누워 있는 향을 향해 달려들어, 몸을 둥글게 말아 향을 보호한다.
“미친년이 정신을 못 차려?
네가 같이 가야 저 놈한테서 좀 더 빼낼 거 아냐?
에이, 썅.”
남자가 안 들리게 눈을 부라리면서 향을 향해 욕하고는, 남자를 놓칠 새라 방에서 나가 버린다.
문 밖에서 향의 엄마와 그녀의 남자 친구의 대화가 고스란히 향과 향의 할머니 귀에 들린다.
“자기야, 아냐, 쟤 아빠가 개또라이였어.
내가 고딩 때 순진했는데, 일진이었던 걔가 날 이렇게 만든 거야.
하지만 괜찮아,
이제 자기가 있잖아.”
“됐고, 재는 절대로 집에 데리고 오지마라.
재수가 없으려니까, 커억, 퉤!”
곧 밖에서는 차 시동 거는 소리가 들린다.
향의 엄마와 엄마의 남자 친구는 할머니와 향에게 아무런 인사도 없이 차를 몰고는 향이 할머니 집을 떠난다.
향은 조용히 침묵을 지키고 있다가, 떠나가는 차 소리를 듣고 나서야 할머니 품에 뛰어 들어가 심하게 울기 시작한다.
“할마, 할마!
으아앙!”
“아이고, 내 새끼.”
“으으윽, 으아앙, 할마!
내가 삐약이 목을 비틀어 버렸어.
어떡해, 어떡해!
어떡해..
어어어어엉.
너무 너무 미안해서 어떡해, 미안해, 미안해.
미안해, 삐약아!”
“아이고, 우리 새끼, 왜 그랬노.
아이고, 불쌍한 것.
그렇게 매일 밥 주고 닭장 치워가면서 그렇게 예쁘게 키워 놨는데, 왜 그랬노?”
삐약이를 죽였다는 향의 죄책감에 할머니의 눈에도 눈물이 가득 찬다.
“내가 그렇게라도 안 하면 엄마가 날 끌고 데려가 버릴 거 같았어.
안 돼, 난 저 여자랑 그리고 저 남자랑 같이 살면 난 어떻게 될지 몰라.
할마도 알잖아!
그리고 날 왜 엄마한테 버리려고 해.
그러지마.
나 할마 없이는 못 살아!
엉엉엉, 할마!’
할머니는 감정적으로 격해진 향을 꼭 안고 달래준다.
”그래도 재가 니 엄마다.
해준 거 없어도 니 엄만데, 델꼬 간다는 것을 내가 어떻게 말리노.
아이고 우리 새끼, 괜찮다.
괜찮고, 향이 니가 잘한 기다.
삐약이는 우리 저기 감나무 밑에 묻어주자.
다음에 좀 더 좋은 곳에서 태어날 끼야.
그리고 이 할미는 향이를 안 떠날 거니 걱정 마라“
“꺼억, 꺼억, 꺼억..!
감정이 주체할 수 없도록 터져 나온 향은 할머니 품속에서 심하게 운다.
그리고 할머니는 그런 향이 진정할 수 있게 꼭 껴안고 등을 부드럽게 어루만진다.
곧 향은 눈물을 그치면서 깊은 잠에 든다.
입을 ‘헤’ 벌리고 자는 모습이 영락없는 어린 아이이다.
하지만 향은 할머니가 어디론가 가버릴 거 같은 불안감 때문에 할머니 소매를 놓지 못하고 있다.
할머니는 그런 향의 이마를 연신 쓰다듬다가, 향이 불안해지지 않도록 그 옆에 조심스럽게 누워서 불도 끄지 않고 잠을 잔다.
하지만 곧, 불이 켜진 방 가운데에 하얀 얼굴과 꺾인 관절을 가진 끔찍한 형체가 나타난다.
그것은 할머니와 향을 내려다보고 있다.
“앗, 저것은!”
민은 놀라 소리 지른다.
“쉿, 조용해.
파란색과 보라색이 가장 풍부해지고 있어.
이런 맛은 자주 맛보지 못하는 거야!”
반디는 속삭인다.
그 때, 잠이 갑자기 깬 향이는 쭉 찢어진 눈을 번쩍 뜬다.
그 순간 방 가운데에 서 있던 관절 꺾인 존재는 사라지고, 향의 눈앞에는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다.
“뭐야?
저승사자야?”
황급히 일어난 향이 다급한 마음에 할머니의 코에 손을 대고 숨결을 확인한다.
할머니의 숨결이 고른 것을 확인한 향은 할머니 품에 더 깊게 파고 들며 잠에 든다.
다음날 날이 밝고, 이른 아침 향이는 일어나서 학교 갈 준비를 한다.
세수도 하고, 옷도 다 갈아입었다.
하지만 할머니는 여느 때와 다르다. 머리가 흐트러진 채 이불 한가운데 앉아 있다.
향은 할머니 옆에 다가가 작은 손으로 할머니의 이마를 짚는다.
한층 더 쪼글쪼글해진 이마를 향의 작고 고은 손으로 덮는다.
“할마, 뭐해? 어디 아파?”
향이 묻는다.
그리고 할머니 앞으로 다가가 얼굴을 바라보는데, 할머니는 평상시와는 다른 멍한 표정으로 앉아 있다.
할머니는 향과 눈을 맞추면서 배시시 웃는다.
“할마, 왜 그래?”
“미옥이? 내 동생 미옥이니?”
갑작스럽게 바뀐 할머니의 모습과 말에 향의 머릿속이 백지장처럼 하얗게 된다.
“할마, 그건 나 아냐!
미옥이 할머니는 할머니 동생이잖아!
어렸을 때 돌아가셨다며?
난 향이야.
할머니 손녀라고!”
그 때 할머니 앞에 앉아 있던 향은 이상한 느낌을 받는다.
무릎을 펴고 서니, 향의 바지는 뭔가에 젖어 축축해져 있다.
“뭐야?
이불은 왜 이리 축축해?
할마, 오줌 싼 거야?
할마, 갑자기 왜 이래!”
당황한 향이는 할머니를 향해 소리친다.
하지만 할머니는 아무 말 없이 배시시 웃기만 한다.
“할마!”
향은 할머니를 흔들며 소리를 지른다.
하지만 할머니의 반응에 차도가 없자, 향은 급히 오줌에 젖은 이불을 돌돌 말아 밖으로 싸서 가지고 나간다.
할머니는 젖은 속옷을 입고, 집 밖으로 나간 향을 따라 일어나서 밖으로 나가려고 한다.
향은 급히 집 안으로 들어와서 할머니를 붙잡고 밖으로 못 나가게 막는다.
“할마, 이러지마.
할마 이렇게 아프면, 우리 진짜 헤어져야 해.”
향의 할머니는 여전히 배시시 웃으며 밖으로 나가려고 하고, 향은 할머니가 못 나가게 필사적으로 온 몸으로 할머니의 몸을 밀고 있다.
그리고 민의 주위는 보라색과 푸른색의 기운이 점점 더 진해진다.
“향아...”
민은 향의 비극적인 순간을 보고는 너무 가슴이 아파 온다.
민은 비로소 향의 시니컬하고, 독단적이며, 고집이 센 모습이 어디에서 기인한 것인지 이해하기 시작한다.
짙은 보라색과 푸른색의 기운이 점차 걷혀지고, 민이 보고 있던 향과 향의 할머니의 모습이 투명해지면서 사라진다.
“반디, 어떻게 된 일이야?”
민은 반디를 향해 소리친다.
“으아앙.
너무 괴로워!
이게 뭐야?”
반디가 갑자기 비명을 지르며 소리친다.
그리고 잠시 민은 허공에서 허우적거리는 느낌을 받다가, 갑자기 뒤로 나동그라지며 엉덩이를 바닥에 찧는다.
정신을 차려보니 민이 향으로부터 떼어 놓기 위해 잡았던 반디는 괴로워서 몸을 바닥에 뒹굴고 있다.
또한 그 반디 뿐만 아니라 다른 반디들도 마찬가지로 땅 바닥 위를 괴로워하며 뒹굴고 있다.
자세히 보니, 바닥에 까맣게 깔린 개미떼들이 반디들의 몸 위를 올라가 그 작은 입으로 마구 물어뜯고 있는 것이다.
민은 괴로워하는 반디들의 모습에 연민을 느끼지만, 향과 욱을 보호하기 위해 어쩔 수 없다.
민은 향과 욱의 옆으로 다가서고, 민은 향의 얼굴을 보자 안쓰러운 마음이 들어 손을 꼭 잡는다.
갑자기 손을 잡는 민을 향은 찢어진 눈을 더 가늘게 뜨고 바라보다, 향은 괴로워하는 반디를 향해 시선을 돌린다.
민과, 향, 욱은 나란히 서서 스무 명이 넘는 반디들이 괴로워하는 모습을 바라본다.
반디들은 몸을 좌우로 비틀면서, 바닥을 기며 제두뢰타에게 다가간다.
“제두뢰타, 너무 괴로워.
도와줘.”
“제두뢰타, 온 몸에 개미들이 파고 들고 있어.
살려줘.”
“제발.”
반디들은 제두뢰타를 고통에서 구원해달라고 도움을 요청한다.
“일어나!
일어나라고!”
제두뢰타는 괴로워하는 반디들의 고통에 아랑곳하지 않고, 반디들을 다시 세우려고 하지만, 이미 온 몸이 개미로 덮인 반디들은 더 이상 아무것도 하지 못한 채 바닥을 뒹굴 뿐이다.
점차 반디들은 거머리같이 길쭉한 형태에서 다시 아이의 얼굴로 돌아가기 시작한다.
물론 몸은 원래대로 거머리의 형상이다.
괴로움에 가득한 아이의 얼굴에 그만 민과, 향, 욱은 고개를 돌린다.
반디들은 꼬리로 바닥을 마구 휘졌더니, 꼬리부터 땅바닥 아래로 파고 들어가기 시작한다.
반디들이 하나씩 땅 바닥 속으로 들어가더니, 결국 머리 뒤통수까지 땅바닥 속에 묻는다.
그리고 스무 명이 넘는 반디들이 일제히 입을 하늘을 향해 쩍 벌린다.
곧 민과 향, 욱이 처음 본 반디들의 모습인 흙으로 빚은 것으로 바뀐다.
하지만 처음과는 달리 바닥은 수분이 하나도 없이 바짝 마른 모습으로 갈라지기 시작하고, 아이들의 얼굴도 함께 미세한 틈이 생기며 갈라진다.
아이들을 뒤덮었던 개미들과, 주위를 가득 채운 개미들은 반디들이 들어간 갈라진 땅의 틈새 사이로 들어가 사라진다.
민은 그 중 흙으로 변한 한 반디에게 다가가 입 속에 손을 넣는다.
그리고 반디의 입 속에서 손을 빼자, 영롱하게 빛이 나는 무언가를 손에 쥐고 있다.
민의 손에 쥐고 있는 건 무지개 빛으로 찬란하게 빛을 내는 조개이고, 그 크기는 아이들의 손바닥 크기만 하다.
향과 욱은 민의 손에 쥔 것을 보고 깜짝 놀란다.
하지만 민은 향을 향해 내민다.
“향아, 이거 너 거야.”
민은 향에게 다가가 무지개 조개를 건네주자, 제두뢰타가 비명을 지르기 시작한다.
“안 돼!
그건 내 거야!“
날카로운 비명 소리에 민과, 향, 욱은 제두뢰타를 쳐다본다.
허공에 떠 있는 제두뢰타의 몸이 좌우로 뒤틀리기 시작한다.
동시에 제두뢰타의 눈동자의 형태가 바뀐다.
고양이 눈동자였다가, 염소의 눈동자였다가, 바닥으로 납작하게 눌린 타원형으로도 바뀐다.
그랬다가, 아주 가느다란 검은 동공이 있는 노란 눈으로 바뀐다.
그리고 푸른빛으로 광택이 나던 피부가 쩍쩍 갈라지기 시작하더니 비늘로 덮이기 시작한다.
“꺄아악!”
얼굴의 형태가 도마뱀의 것과 유사하게 바뀌면서, 제두뢰타는 비명을 지르더니 곧 입에서는 기다란 혓바늘이 나오며 날름거리기 시작한다.
결국 매끄러운 피부는 모두 비늘로 바뀌고, 손은 마치 조류의 발과 같은 모습으로 바뀐다.
제두뢰타의 변한 모습을 본 아이들은 순식간에 얼어 버린다.
“저거 뭐야?”
“도마뱀 아냐?”
“윽윽.”
아이들은 당황해서 각자 한 마디씩 이야기한다.
제두뢰타가 혀를 날름거릴 때마다 ‘쉭쉭’ 거리는 소리가 난다.
그 모습을 보던 민이 제두뢰타를 향해 말한다.
“반디들이 사라지니, 제두뢰타 너에게 깃든 아미타 생명의 에너지가 사라진 거야.”
민은 제두뢰타를 빤히 바라보며 말한다.
그러자 제두뢰타는 민을 빤히 바라보며 대답한다.
“나에게 무지개 조개를 줘.
원래 그건 네 것이 아니잖아.“
“응, 내 것이 아니라, 향의 것이야.”
“응?”
제두뢰타와 민의 대화를 듣던 향은 어리둥절해 한다.
“향아, 그건 너의 에너지이니, 삼켜버려.
괜찮아.
내 말 들어. “
“응.”
“안 돼!”
제두뢰타가 외마디 비명을 지른다.
하지만 동시에, 향은 고개를 끄덕이고는 무지개 조개를 입 안에 집어 넣는다.
그리고 무지개 조개가 향의 목을 내려가 몸속으로 들어가자, 몸 안에서는 찬란한 빛이 뿜어져 나온다.
곧 향의 두 눈에서 눈물이 나오기 시작하더니, 구슬처럼 계속 눈에서 흘러 떨어진다.
“민아, 이게 뭐지?
나도 모르게 눈물이 계속 나와,
잊고 있었던 감정들이 느껴져.
낯설고 두려운 느낌도 있지만 너무 그립고 따뜻한 감정이야. “
“향아, 너의 기억들이야.
네가 네 뒤에 꼭꼭 숨기고 있었던 기억들.
그건 너의 또 다른 모습이니 잊지 말아줘.“
“정말?
고마워, 민아.”
향은 연신 흘러나오는 눈물을 닦고, 민은 그 모습을 따뜻하게 바라본다.
그리고 욱은 눈에서 계속 흘러내리는 향의 눈물이 신기한지 향의 얼굴에서 눈을 뗄 줄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