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들 옆에는 입이 검은 누런 큰 개가 나란히 걷기 시작한다.
아이들 가까이 서니, 개가 얼마나 큰지 확연히 드러난다.
머리의 높이가 아이들의 겨드랑이에 약간 못 미치는 거 같다.
“이 개는 잡종이야?”
민이 향에게 묻는다.
향은 길게 찢은 눈으로 눈동자를 좌우로 굴리더니 말한다.
“잘은 모르겠지만, 옆집 할아버지가 외양간에서 이런 개를 함께 길렀던 거 같아.
도사견이라나?
소를 지키기 위해 몸집 키운 개인데, 대부분 여름 되면 다 잡아 먹지.
이렇게 보여도 순해.”
향이 쓰다듬어 주기 위해 손을 내밀자, 하지만 꼬리를 엉덩이 사이에 집어넣고 손을 피해 먼 발치로 도망간다.
계속 부르지만 절대 곁을 내주지 않는다.
“메리!
괜찮아, 이리 와!”
향은 이제 그 큰 개를 ‘메리’ 라고 부른다.
큰 개는 메리라는 이름에 귀를 쫑긋 거리고 향을 본다.
욱은 개의 가랑이에서 성별을 확인한다.
“윽윽, 윽!”
욱은 메리의 엉덩이를 향해 손가락질 하면서 향을 향해 소리를 낸다.
하지만 향은 민과 욱을 향해 아무런 감정이 없는 얼굴로 말한다.
“메리란 이름의 개가 사나운 걸 본 적 없거든.
괜찮아.
얘처럼 큰 개는 그렇게 다스려야 해.
메리!”
단호하게 부르는 소리에 개는 주춤거리며, 향의 옆에 다가온다.
“봐! 알아 듣잖아.”
향은 흐뭇하게 보며 웃는다.
향의 곁에 다가온 메리는 갑자기 민을 보더니, 그녀의 곁으로 다가온다.
긴장한 민은 목 뒷덜미에서 땀이 나는 것을 느낀다.
메리라고 불리는 큰 개는 망아지처럼 깡충거리며 민의 목덜미, 어깨, 겨드랑이 냄새를 맡는다.
그러다 민의 엉덩이에 코를 박고 냄새를 맡기 시작한다.
개는 기분이 좋은지 꼬리에 힘을 더 주며 세차게 흔든다.
“아! 뭐야?!”
민은 갑자기 엉덩이 사이에 닿는 메리의 코가 주는 감촉에 소스라치게 놀라며 소리를 지른다 .
하지만 향과 욱은 민과 메리의 모습을 보고 놀리듯이 웃는다.
“얘 좀 어떻게 해봐.”
민의 말에 욱이 손바닥으로 메리의 엉덩이를 한 대 때리고, 큰 개는 화들짝 놀라며 아이들로부터 멀어진다.
“고마워, 욱아.
그런데 다른 개들이 안 보이네.”
“윽윽.”
“그러게.
우리가 먹을 게 다 떨어져서 안 따라 오는 게 아냐?”
“그럼 저 큰 개는?”
“음, 그건, 날 새로운 보스로 받아 들여서?”
“윽윽.”
“그래, 말도 안 돼, 큭큭.”
향이 내뱉은 보스란 말에 민과 욱은 어이없다는 듯 웃는다.
“뭐, 어쨌든!”
아이들의 반응에 토라진 향이 앞서 걸어가고, 민과 욱, 그리고 메리가 그 뒤를 쫓아간다.
평지가 이어지며 무난하게 산을 타는 듯 했다가, 가파른 돌멩이 산이 눈앞에 펼쳐진다.
두 시간 즈음 아이들은 가파른 길을 기다시피 올라가며, 돌멩이 산과 씨름한다.
발을 헛 디딛자 돌멩이들이 아이들의 발 밑에서 아래로 떨어지고, 뒤에서 따라오는 메리는 떨어지는 돌멩이를 피해 뛰어다닌다.
“길이 왜 이래?”
향은 한 발자국 걸을 때마다 투정을 부린다.
민과 욱은 힘이 들어 더 이상 향의 투정을 받아주지 않고, 묵묵히 산을 올라간다.
어느 새 향도 힘이 드는지, 말수가 줄어든다.
커다란 바위가 나타나고, 아이들은 자신의 허리 높이의 턱을 기어 올라간다.
더 이상 올라갈 수 있는 길은 보이지 않는 것 같다.
“애들아, 이리와 봐!”
민이 큰 바위 옆으로 난 좁은 돌멩이 길을 따라 급하게 뛰어가며 손짓한다.
향과 욱은 지친 다리를 끌고 민이 향한 곳을 쫓아간다.
시원한 물소리가 들린다.
크지는 않지만, 작은 폭포가 흘러내리며, 연못과도 같이 고인 계곡이 나타난다.
하지만 아래쪽은 낭떠러지로, 가파른 절벽 사이로 물이 졸졸 거리며 떨어진다.
“아래는 떨어지면 위험하니, 조심해!”
민이 소리치고, 향과 욱은 시원한 물을 만나자 환호하며, 물속으로 뛰어 들어간다.
메리도 다급하게 물가로 뛰어와 허겁지겁 물을 마신다.
작은 연못 속 물 깊이는 무릎 밖에 안 되고, 아이들은 성큼성큼 걸어가 작은 폭포 속에 몸을 기댄다.
시원한 물줄기가 아이들 머리 위로 쏟아진다.
“으아, 너무 차가워!”
민과 향은 센 물살과 차가운 물의 온도를 못 참고, 그만 물줄기에서 몸을 빼지만, 욱은 남자애라 그런지, 시원한 물살을 좀 더 즐긴다.
“우리 여기서 좀 더 놀다 가면 안 돼?”
향과 욱은 민의 눈치를 보며, 말한다.
“그래, 여기서 쉬었다가 가자!”
민의 말에 향은 환호하며, 손으로 물을 튕기며, 아이들은 물놀이를 시작한다.
온 몸이 흠뻑 젖자 산행을 하느라 뜨겁게 달궈진 몸이 식는다.
충분히 물놀이한 아이들은 혹시 무지개 조개가 있을까 물속을 찾아본다.
하지만 무지개 조개 대신 조그마한 물고기들이 아이들의 발 근처에 다가와서, 마치 먹이를 먹는 듯 발을 쫀다.
“아이, 간지러워.”
아이들은 물고기를 잡으려고 한손 가득히 물을 뜨지만, 물고기들은 빠르게 헤엄쳐 도망쳤다가, 이내 다시 아이들 발에 모여든다.
민이 물고기에 정신이 팔린 향과 욱에게 말한다.
“이거 여기 산꼭대기에서 흘러내리는 물줄기인거 같아!
이 물줄기 쫓아가면, 무지개 조개를 찾을 수 있을 거 같아.”
“와, 진짜.
이제 다와 가는 거 같아.”
“윽윽.”
민은 단호하게 말한다.
“혹시 큰 등산 가방이나, 사람의 흔적을 찾으면 말해줘.
사실 난 아직도 엄마를 찾을 수 있을 거라 생각해.”
“알겠어.”
“윽윽.”
“그런데 민아, 무지개 조개를 어떻게 찾지?
그건 물속에 있는 거야?
어떻게 생겼어?”
향이 묻자, 민은 꿈결에 본 관절 꺾인 형체가 가져간 아빠의 무지개 조개를 떠올린다.
“내가 기억하기론, 그것은 아주 찬란한 빛을 내.
그런데 이상하게도 그 빛을 바로 쳐다봐도 눈이 안 아파.
아마 무지개 조개는 분명히 화려한 빛을 내고 있어서, 우리가 쉽게 발견할 수 있을 거야.”
“와, 신기하다.”
향과 욱은 민의 말에 황홀한 표정이 된다.
땀이 식은 아이들은 신이 나서 물줄기를 따라 올라가기 시작한다.
아이들과 한참 떨어진 조용한 지리산 속에서 사냥개 짖는 소리가 울려 퍼진다.
산새들은 사냥개 소리를 피해 푸드득 거리며 날아간다.
지친 기색이 여력한 사냥꾼이 앞장서고 원장과 김 과장이 사냥개의 뒤를 쫓아 뛰어 간다.
사냥개들이 멈춰서 짖고 있는 곳은 심마니의 움막이다.
사냥꾼, 원장, 과장은 뛰어 다가오자, 사냥개들은 낑낑대며 문을 긁는다.
원장이 움막을 급히 열지만, 그 안에는 아이들은 이미 사라지고, 녹다가 남은 촛불 심지만이 남아 있을 뿐이다.
“아악!”
또 놓쳤다는 생각에 분이 찬 원장이 얼굴이 붉어진다.
그 때, 개들은 움막과 떨어진 곳에서 맹렬하게 짖고, 사냥꾼은 개들을 쫓아 나간다.
원장과 과장은 움막 안에 남아 둘러본다.
김 과장은 선반에 놓인 뱀 술병을 탐욕스럽게 바라보다 원장에게 말한다.
“원장님, 여기 뱀술이 있어요.”
“호오, 자양강장에 좋다는 뱀술.
하나 따봐.”
과장은 다급히 죽은 뱀과 버섯, 인삼이든 술병을 연다.
그리고 술병을 원장에게 전달하고, 원장은 혹시 사냥꾼이 움막에 들어올까 싶어 급하게 꿀꺽꿀꺽 들이킨다.
“쥐새끼 같은 것들.
이것들이 내 돈을 갖고 잔치를 벌였어.
잡기만 해봐. 내 이것들을!”
“이 쥐새끼들 빨리 찾아 족쳐야겠어요.”
과장이 원장으로부터 술병을 건네받고, 크게 한 모금 마신다.
“원장님, 제가 그 민이, 고년 버릇 좀 잡아도 될까요?”
“내가 김 과장 그런다고 뭐라고 한 적 있나?
그렇게라도 해서 버릇이 고쳐진다면 해야지.
그건 과장이 알아서 할 문제야.”
둘은 사악한 웃음을 짓고, 움막은 잠시 그늘에 지는 듯 어두워지듯 깜박 거린다.
원장과 과장은 서로 병을 주고받으며 벌컥벌컥 술을 마신다.
그 때 밖에서 다급한 사냥꾼의 목소리가 들린다.
“여기!
여기 사람이 죽어 있어요!”
사람이 죽어 있다는 말에 원장과 김 과장은 사냥꾼에게 달려간다.
사냥개들은 흥분을 감추지 못하고 짖어대고, 수풀 사이에 웬 남자가 쓰러져 있고, 주위에 중형견 3마리가 죽어 있다.
“아니, 어찌된 일이에요?”
원장은 연민이라고는 전혀 없는 표정으로 사냥꾼에게 말하고, 사냥꾼은 그러한 원장을 업신여기듯 바라본다.
"심마니인 거 같은데, 그만 들개들 잡다가 변이 생긴 거 같소.
딱히 들개한테 물린 흔적도 없고.”
사냥꾼이 어깨에 멘 총으로 죽은 심마니의 몸을 건드린다.
그 때 종아리에 바지가 말려 올라가고, 시퍼렇게 멍이든 부위가 보인다.
“살모사한테 물렸군.
참나 심마니가 살모사한테 죽임을 당하다니.
업보지, 업보야, 쯧쯧.”
사냥꾼이 혀를 차며 말한다.
"하하, 아이들에게 별일 없으니 다행이네요."
"그렇죠? 하하하."
원장과 남자는 행여나 사냥꾼이 경찰한테 신고한다는 이야기를 할까 긴장한다.
“저기, 여긴 있다가 아이들 찾아보고, 내려올 때 신고하면 안 될까요?”
“이것 보소.
이 사람도 가족이 있을 거 아니요?
깊은 산에서 급사했는데, 죽은 사람 처리는 해 줘야지.”
“에헤이, 그러는 와중에 아이들이 절벽에서 떨어진다던지, 아니면 배고픔 또는 갈증에 쓰러져 있을 수도 있잖아요.
경찰에 연락하면 시간만 더 지체 되요.”
"그건 그렇지만.
여기에서 경찰 기다렸다가 같이 아이들 찾는 게 어떻소?”
원장과 과장의 눈의 빛이 난다.
남자가 주먹을 쥐고 한 발자국 다가선다.
그 때 원장이 한 손으로 과장을 저지하고는 사냥꾼 앞에 선다.
“사실 경찰들이 찾고 있답니다.”
“그럼 우린 여기서 뭐 하는 거요?”
“아이들이 보육원 근처 편의점에서 금고에 손을 댔다는 의심을 받고 있어요.
그래서 경찰이 아이들 찾기 전에 저희가 먼저 찾아서 아이들과 확인해 보려 구요.
저는 우리 아이들을 믿거든요.
경찰은 저희가 여기 있는 거 몰라요.”
“아이들이 몇 살이라고 했소?”
“이제 고작 10살이에요.”
“10살, 우리 손자가 8살이오.”
“맞아요, 어린 아이들이에요.
괜히 경찰한테 넘어가서, 할 말도 못하고 기죽는 것 보다는 우리가 먼저 찾아서 확인하려고요.
진짜 절도를 했으면 벌을 받아야죠.”
원장의 말에 사냥꾼은 오른 손으로 총을 움켜쥔다.
“알겠소.
갑시다.
아이들이 더 급한 거 같소.
내일까지 아이들 추적하고, 그 이후 이 사람 시체가 발견되면 다행이고, 아니면 내가 신고하면 되는 거고.
갑시다!”
사냥꾼은 몸을 돌린다.
그리고 사냥꾼은 죽은 시체와 개들 냄새로 아이들 냄새를 잊어버린 사냥개들에게 다시 한 번 아이들의 체취를 맡게 한다.
사냥개들은 한참 뱅글뱅글 돌며 냄새를 맡기 시작하더니, 힘차게 달리기 시작한다.
그리고 사냥꾼과 원장, 김 과장 역시 사냥개를 따라 속도를 내 아이들을 쫓기 시작한다.
움막 안에서는, 검은 음영이 움막 안에 짙게 깔리기 시작하더니, 빨간 눈과 입이 있는 검은 그림자가 움막 벽바닥에서 스멀스멀 올라오더니, 움막을 가득 채운다.
그리고 원장과 남자가 마신 뱀술 병 안에 든 뱀이 몸을 뒤틀기 시작하는데, 죽은 줄 알았던 뱀의 입 사이로 혀가 나와 날름거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