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은 다시 버스를 타고 지리산으로 향한다.
차창 너머로 이제는 조금 익숙해진 광경이 지나간다.
하지만 민은 창 밖에는 시선을 두지 못한 채, 자신의 흉터가 사라졌다는 사실에 대해 골똘하게 생각한다.
‘상처가 없다는 것은 욱은 결국 죽지 않았을 수도 있을 거야.
그럼 욱은 이 현실 속 어디엔가 존재할 수도 있어.’
잠시 숨을 죽이고 창밖을 바라본다 민은 생각을 정리한다.
‘만약 꿈속에서 엄마를 찾는다면 결국 아빠도 돌아가시지 않고, 우리 식구는 함께 할 수 있을 거야.’
생각이 여기까지 다다르자, 가슴 속에서는 희망이라는 나무가 자라기 시작한다.
지옥과도 같았던 10년을 보상받을 수 있는 기회이고, 억울하게 돌아가신 엄마와 아빠를 다시 찾을 수 있는 기회인 것이다.
그렇게 차갑게 식었던 민의 가슴은 뜨겁게 두근거리기 시작한다.
차는 시원하게 뚫린 고속도로를 타고 달린다.
시간은 지루하게 지나고, 간밤에 제대로 쉬지 못한 민은 좌석 깊숙이 기대어 앉는다 .
그리고 시원한 에어컨 바람이 민의 이마와 몸을 시원하게 달래고, 버스가 달리며 흔들거리는 움직임을 느끼자 민은 어느새 곤하게 잠에 든다.
어디론가 빨려 들어가는 느낌이 들다, 이내 정적이 찾아온다.
민의 귓가에는 바람 소리가 들리고, 나뭇잎 소리, 그리고 산새 소리가 들린다.
반짝이는 햇살이 움막 사이로 비집고 들어오고, 민의 눈을 간지럽힌다.
민이 힘겹게 눈을 뜨자, 옆에 잠을 자고 있는 욱과 향이 보인다.
그 때 밖에서 뭔가 바스락 거리는 소리가 난다.
“아이, 시바, 누가 이걸 깼노!”
민을 경찰서로 신고한 바로 그 심마니이다.
민은 다급하게 향과 욱을 깨운다.
향과 욱도 지난 이틀간의 산행이 고단했던 듯 눈을 힘겹게 뜬다.
“뭐야?”
“우리 빨리 나가야 해!
심마니가 왔어.”
민의 말에 향과 욱은 다급하게 일어나 짐을 챙기고 배낭을 멘다.
그리고 민이 문을 살짝 열자, 저 멀리 깨진 술병을 뒤적이는 심마니의 모습이 보인다.
심마니는 몸을 돌리고 뒤적이고 있어, 지금 도망치면 될 것 같다.
민이 향과 욱을 향해 고개를 돌려 까닥하고는, 문을 열고 달리기 시작한다.
그리고 욱과 향도 민을 따라 달리기 시작한다.
바스락거리며 수풀과 나뭇가지를 밟으며 뛰어가는 소리에 심마니가 몸을 돌려 본다.
그 때 심마니는 아이들 셋이 뛰어 가는 것을 본다.
“이 쥐새끼들!
너희들이 그랬구나!
잡히면 가만히 안 둘 거야!”
심마니는 아이들을 향해 달리기 시작한다.
심마니가 무섭게 질주하고, 아이들과 거리는 빠른 속도로 좁혀지기 시작한다.
그 때, 산에서 들개들이 무섭게 짖으며 내려온다.
그리고 아이들을 보호하며 쫓아 뛰어가던 심마니의 길을 막는다.
잇몸을 드러내며 나지막하게 으르렁 거리는 개들을 향해, 심마니는 굵은 나무 막대를 하나를 줍더니 손에 쥐고 몸을 낮춘다.
“뱀소주 대신 너희들 잡아 개소주나 해서 팔아먹어야 겠구나, 흐흐흐.”
심마니는 눈을 번뜩이며, 개를 잡을 태세를 한다.
개들이 심마니를 향해 덤벼들고, 심마니는 개들의 옆구리와 머리를 향해 나무를 가격한다.
“깨갱!”
개들이 타격을 받자 괴롭게 소리 지르며 바닥에 떨어진다.
그 중 회색과 흰색 털이 섞인 중형견이 이마를 맞고 코에서 피를 흘리며 바닥에 나동 군다.
향으로부터 맨 처음 소시지를 받아먹은 개다.
“20만원!”
심마니는 신이 나서 소리 지르고, 옆구리를 맞은 개들은 낑낑 거리며 피하고, 다른 개들이 이빨을 드러내며 짖으며 심마니를 향해 뛰어 든다.
심마니는 개들의 급소를 향해 나무를 휘두른다.
그리고 개들이 피를 토하며 바닥에 떨어질 때마다, 심마니는 소리친다.
“40만원!
60만원!”
“깨갱, 깽깽!”
“개가 반려견이라고?
가족이라고?
큭큭, 웃기고 있네.
그럼 버리지 말아야지, 먹지 말아야지, 패지 말아야지, 크크큭!
정력에도 좋고, 기력을 보강하는 데도 좋은 개소주!”
흥이 난 심마니는 바닥에 나뒹구는 개들을 발로 툭툭 건드린다.
9마리 남짓했던 개들 중 3마리가 쓰러지고, 한번 씩 심마니의 나무에 맞은 개들은 쉽게 심마니를 향해 덤비지 못하고, 몸을 낮춘 채 으르렁 거리며 뒷걸음질 친다.
그 때 입이 까맣고 몸이 누런 대장 개가 나타난다.
“하!
넌 근수가 꽤 나가겠는데?”
흥분한 목소리와는 달리, 큰 개의 몸집에 위압감을 느낀 심마니가 개에 눈을 고정한 채 공격에 대비한다.
심마니와 개 사이 팽팽한 대치가 시작된다.
그 때, 수풀 사이로 뱀 한 마리가 스르륵 하며 나타난다.
노란색 몸에 검은색 얼룩무늬가 있는 뱀이다.
검은색 얼룩무늬는 말발굽 모양으로 마치 검은 둥근 원 속에 노란색 다이아몬드가 새겨져 있다.
지난 밤 민과 욱, 향이 놓아준 그 뱀이다.
뱀은 큰 개에 집중하고 있는 심마니 뒤로 조용하게 다가간다.
큰 개가 맹렬하게 심마니를 향해 짖기 시작하고, 심마니는 나무를 한 손에 치켜들고는 개한테 다가간다.
뱀은 심마니 뒤를 천천히 기어가는 듯싶던 차, 순식간에 몸을 세워 입을 쫙 벌린 채 심마니의 장딴지를 향해 달려든다.
그리고 심마니 장딴지를 입에 한 가득 문다.
“아악!”
뱀의 이빨이 얇은 심마니의 바지를 뚫고 다리에 박히고, 뱀의 이빨에서 누런 독이 흘러나와 심마니의 몸에 흘러 들어간다.
병 속에 갇히면서 더더욱 독기를 머금게 된 맹독이라 그런지, 독의 색이 샛노랗다.
심마니는 장딴지를 물고 있는 뱀을 바라보고, 미처 손 쓸 새가 없이 온 몸이 경련하듯 떨리기 시작한다.
부들부들 떠는 심마니는 그 자리에 쓰러지고, 수풀 사이에서 경련이 계속된다.
심마니는 경련이 더 심해지는 듯 하더니, 차츰 멎어간다.
그리곤 몸이 멈추고 더 이상의 미동도 없다.
결국 자신이 잡은 개들 사이에 쓰러져 숨을 거둔다.
뱀은 차가워진 심마니 몸에서 입을 떼고, 스르륵 수풀 사이로 들어간다.
입이 검은 누런 큰 개와 나머지 들개들도 심마니의 마지막 숨을 바라보고, 몸을 돌린다.
그리고 아이들이 뛰어 올라간 산길로 쫓아가기 시작한다.
그 시각, 원장과 과장, 그리고 사냥꾼도 열심히 산을 오르고 있다.
앞서 가던 사냥개들은 아이들의 흔적을 열심히 쫓아 올라간다.
사냥개들은 갑자기 서서 크게 짖더니, 커다란 고목나무를 계속해서 돌며 짖는다.
“저 똥개들이 왜 저리 짖어?
똥이 마려운가?”
“크크큭, 그런가 봅니다.”
원장과 김 과장은 땀을 흘리며 고목나무를 사이에 두고 빙글빙글 도는 개들을 향해 비웃는다.
“저 개들, 유명한 외국산 사냥개 종자요.
거기다 나랑 수백 차례도 더 넘게 사냥한 베테랑들이요.
저건 뭔가 찾았다는 뜻이오.”
발끈하는 사냥꾼의 말에 원장과 과장은 더 이상 말을 하지 않고 ‘킥킥’거리며 웃기만 한다.
고목나무로 다가서자, 사냥개들은 사냥꾼 근처로 꼬리를 흔들며 쫓아온다.
사냥꾼은 개들이 빙글빙글 돌았던 곳을 조심히 걸어본다.
그리고 사냥꾼은 원장과 남자를 향해 손짓한다.
원장과 남자가 다가가자, 사냥꾼은 고목나무 뒤로 사라져 버린다.
“뭐야?”
어리둥절하며, 사냥꾼을 쫓아간 원장과 남자는 갑자기 드러나는 조그마한 오두막집 보다는 집 앞 나무에 놀란다.
“아니, 무슨 집 앞에 이런 큰 나무가 있어?”
“그러게요.
그냥 칵 베어 큰 길을 내는 게 좋을 거 같은데요.”
“역시 우리 김 과장.
합리적으로 사고할 줄 알지, 큭.”
원장과 남자가 마당으로 들어서자, 사냥꾼은 방안을 둘러다보며 아이들이 있었던 흔적들을 찾아보고 있다.
방 안에서 나온 사냥꾼은 아이들이 먹다 버린 쓰레기 껍질을 꺼내 보여준다.
“여기에 있었던 건 확실 한 거 같소.”
“약삭빠른 것들.”
분노에 찬 원장이 중얼거리고, 그 소리를 들은 사냥꾼은 의심스러운 표정으로 원장을 쳐다본다.
그 때 사냥개들이 집 뒤에서 크게 짖는다.
“뭐 또 찾았나 보군.”
사냥꾼은 개들을 쫓아 집을 돌아 뒤로 가자, 개들은 민과 아이들이 원장의 돈을 숨긴 담벼락 앞에서 짖고 있다.
사냥꾼은 개들이 짖는 담장 근처를 손으로 짚어가며 유심히 보기 시작한다.
아이들이 숨긴 돌 근처에 사냥꾼의 손이 다다랐을 때, 원장과 남자가 다가온다.
사냥꾼과 사냥개의 모습을 보던 원장과 과장은 비아냥거리기 시작한다.
“아이들이 여기에다 오줌을 쌌나?”
“아니면 담벼락 안에 들쥐들이 기어 다니나 봐요.
사냥개들이 들쥐 잡는 거 아니에요?”
“이거 무슨 혈통 있는 개라더만, 맡는 냄새 족족 다 짖어대는 거 아냐?
킥킥킥.”
“큭큭큭.”
빈정 상한 사냥꾼은 담벼락을 더듬는 손을 거두고 개들에게 명령한다.
“가자.”
하지만, 개들은 낑낑대며 앞발로 담장 아래를 긁어댄다.
“키키킥.”
“크큭, 큭.”
원장과 남자의 웃음소리는 더 커진다.
사냥꾼은 그 자리를 떠나 버리고, 멀리 대문 근처에서 개들을 부른다.
“이리 와.”
낑낑 거리던 개들 중 한 마리가 사냥꾼이 부르자 어쩔 수 없다는 듯 뛰어 가고, 나머지 한 마리도 못 이기는 듯 따라 뛰어간다.
“역시 개는 개인가 봅니다.
모자라요.”
“그렇지?
큭큭큭.”
원장과 남자는 사냥꾼을 따라 마당을 통해 집 밖으로 나간다.
과장은 지나가다 한 발로, ‘장군님’ 이라 불리는 큰 고목나무를 크게 찬다.
원장과 남자가 서로 웃으며 나무 앞을 지나쳐 갈 때, 마치 고목나무는 자신이 지키는 영역을 무단 침범한 사람들을 향해 내려다보며 부르르 떠는 듯하다.
이내 사냥개들은 저 멀리 앞서 달려가 또다시 짖기 시작한다.
“저건 아이들 냄새인가?
멧돼지 냄새 맡은 거 아냐?”
하지만 원장은 이제 곧 아이들을 잡을 생각에 기분이 좋아진다.
그 때 머리 위로 군 부대에서 파견한 듯한 헬리콥터가 지나가는 소리가 들리고, 원장과 남자는 눈을 찌푸리며 하늘을 쳐다본다.
그리고 그 둘은 눈이 마주치며 의미심장한 눈빛을 나눈다.
“얼른 서두르자고요!”
김 과장은 원장의 눈치를 보며 사냥꾼을 향해 소리 높여 말하고, 원장과 남자의 말에 빈정 상한 사냥꾼은 뒤도 돌아보지 않고 속도를 내며 걷기 시작한다.
민과 향, 욱도 산을 따라 올라가고 있다.
숨이 차서 가쁜 호흡을 들이 마시고 내쉰다.
두 아이들도 숨을 가쁘게 쉬고, 이마에는 송골송골 땀이 맺혀 있다.
“이 길 맞아?”
민의 뒤를 힘겹게 따르던 향이 툴툴 거린다.
“엄마가 계속 꼭대기로 올라가면 된다고 하셨어.”
“그러니까, 이 길이 꼭대기로 가는 길이 맞냐고.”
“응, 그게…”
“윽윽.”
민의 말문이 막힐 때, 욱은 손을 들어 저 너머 뾰족한 산봉우리를 가리킨다.
“그래, 그래.
맞게 가고 있는 거 같아.”
향은 단념한 듯 말한다.
“어서 가자!”
민은 재촉하듯 향에게 이야기한다.
그 때 멀리서 개 짖는 소리가 나고, 입이 검고, 몸이 누런 큰 개가 꼬리를 흔들며 아이들을 향해 곧장 달려 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