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들은 운동장을 가로질러 학교 교문으로 질주한다.
운동장에 고인 빗물이 아이들 다리로 마구 튀지만 아이들은 아랑곳하지 않은 채 교문을 향해 달려간다.
교문 앞에 다다른 아이들은 닫힌 교문을 보고 잠시 멈칫하다가, 이내 한 명씩 교문을 넘기 시작한다.
민, 향이 먼저 넘어가고, 마지막으로 욱이 교문을 넘는다.
교문을 넘어 학교 밖으로 나가자 아이들은 신이 나서 더욱 힘껏 뛰기 시작한다.
한참을 뛰던 아이들은 숨이 차는지 이제 빠른 걸음으로 길을 재촉한다.
“이렇게 도망칠 수 있는 것을, 왜 아무도 도망을 안 가?”
향이는 알 수 없다는 표정을 지으며 말한다.
민은 그 말에 향의 얼굴을 보며 진지하게 말한다.
“향아, 도망쳐 나가도 더한 현실만 눈앞에 닥쳐와.
갈 곳 없는 아이들은 결국 길거리에서 생활하게 되고, 먹고 살기 위해 나쁜 짓에 손을 대지.
그럼 경찰한테 잡혀서 이리로 돌아오거나, 소년원에 가게 되겠지.
또는 더 나쁜 사람들한테 이용당하게 되어 더 절망에 빠진 삶을 살게 될 수도 있어.”
“민아, 너 어떻게 그리 잘 알아?
대단한데?”
“아냐, 이거 사실 네가 나한테 말해 준거야.”
“내가?
언제?”
민은 어이없는 표정을 짓는 향을 향해 ‘씩’ 웃기만 하다 속도를 내서 좀 더 빨리 걷는다.
민과 향이 앞서 걸어가고, 욱이 뒤를 따른다.
민과 향은 욱이 큰 성인 남자는 아니지만, 함께 있다는 것만으로도 든든한 느낌이 든다.
짙은 어둠이 서서히 걷힌다.
이제 곧 날이 밝아질 시간이다.
비가 그친 후라, 공기 중에는 습기가 가득 차 있는데, 마치 조그마한 물방울들이 스프레이로 분사되어 날리는 거 같이, 달리느라 발그스레 해진 아이들의 볼에 달라붙는다.
아이들은 보육원이 있는 학교 앞 큰 도로를 따라 한참을 걷는다.
한 30분 정도 걸었을 무렵, 아이들은 버스 역에 도착하고, 첫차 버스 시간을 확인한다.
‘다섯 시 반’
아직 이십여 분의 시간이 있다.
민은 허겁지겁 가방을 뒤집어 털고, 사탕과 과자, 그리고 빼빼로 과자 상자들이 떨어진다.
그런데 빼빼로 상자의 모양이 이상하다.
날렵한 종이 팩이 아니라 배가 좀 볼룩하고, 팩 자체가 뜯겨서, 테이프로 밀봉되어 있다.
민은 빼빼로 상자 하나를 손에 쥔다.
테이프로 발라져 있는 부분들을 손톱으로 긁어 떼고는 상자를 연다.
그런데, 빼빼로 상자 안은 과자가 아니라 노란 오만 원짜리 돈으로 가득 차 있다.
“와!”
향과 욱은 놀라서, 감탄사와 함께 눈이 동그래진다.
하지만 민은 무덤덤한 표정으로 돈을 본다.
“이게 뭐야. 원장 뒷돈이잖아.
은행에 가면 추적되니까, 돈을 이렇게 뒤로 챙겨놓은 거 아냐?”
향이가 흥분해서 말한다.
“사실, 나 원장이 경관한테 그거 3개 주는 거 봤다.”
민은 감정의 동요가 없이 말한다.
“미친 거 아냐. 맨날 우리한테 죽이랑 감자랑 김치만 먹이더니, 그 돈으로 이렇게 모았나봐.”
“윽윽.”
욱은 민이 가방에 든 빼빼로 상자를 세어 보다가, 고개를 흔든다.
하지만 곧 상자 하나를 들어보더니, 민이 들기에는 무거운 거 같아 자신의 가방으로 옮긴다.
“고마워, 욱아.”
욱은 별거 아니란 듯이 이빨을 보이며 씩 웃는다.
“이제 곧 우리 버스 탈 시간 다 되니, 이거로 먹을 거, 필요한 거 넉넉하게 사자.
거기 가면 살 곳이 없어.”
민의 제안에 아이들은 고개를 끄덕이며, 서둘러 짐을 챙기고 편의점 안으로 들어간다.
아이들은 라면, 삼각 주먹밥, 그리고 천하장사 소시지 한 통과 새우깡, 그리고 그 외 간식 거리와 음료를 충분히 고른다.
아이 셋이 한 아름 물건을 가득 안고는 편의점 카운터에 올려놓는다.
편의점 새벽 아르바이트를 하던 남자는 밤을 새 빨갛게 충혈된 눈으로 입이 찢어져라 하품하며, 아이들을 내려다 본다.
그리고 남자는 느리게 물건들 바코드를 찍는다.
“아저씨, 우리 버스 타야 되요.”
“좀 더 빨리요.”
“윽윽윽!”
아이들은 초조한 듯 남자를 재촉한다.
“그래그래.
다 합해서 6만 2천원이야.”
“여기요.”
민이 오만 원짜리 두 장 돈을 건네준다.
남자는 옷차림이 남루한 아이들이 그렇게 큰돈이 있다는 사실에 눈이 커진다.
그리고는 갑자기 호기심이 가득한 눈초리로 아이들을 본다.
“너희 부모님은 어디 계시니?”
“집에 계시죠.
오늘 학교에서 학습 활동 가서, 저희가 간식 당번이라 미리 장 좀 보기로 했어요.
빨리 주세요.
버스 타야 해요.”
민이 말을 둘러댄다.
“어, 그래, 여기 있다.
참 너희 학습활동 어디로 가니”
그 때 밖으로 나가던 향이 찢어진 눈을 더 길게 찢으며 환하게 웃으며 말한다.
“지리산으로요!”
“아 그래, 그럼 그렇지.
이 동네에서 가봤자 지리산이지 뭐.
잘 다녀오렴.”
남자는 손을 흔들어 배웅한다.
아이들은 큰 봉지를 서로 나누어 들고는 사람이 없어 그냥 정류장을 지나치려는 버스를 잡아 탄다.
그 무렵 보육원 사람들은 아직도 깊은 잠에 빠져 있다.
아이들이 탄 버스는 굽이굽이 난 길을 따라 깊은 산속으로 들어간다.
시간은 흘러 아침 7시가 된다.
보육원 내 아이들은 여느 때와 마찬가지로 일어나 잠자리를 정리하고, 화장실로 가서 씻기 시작한다.
아이들은 원장이 주도하는 조회를 준비하기 위해 일사 분란하게 움직인다.
원장은 검은 세단을 몰며 보육원을 향하는 길이다.
원장은 아이들의 군기를 어떻게 잡을지 아침부터 고민 중이다.
아니, 콧노래가 나오는 모습을 보니 즐거운 상상 중인 것 같다.
“민이, 향이, 욱이 그것들 셋이 요즘 너무 붙어 다니는데.
요 쥐새끼 세 마리가 무슨 꿍꿍이를 가지고 있는지 모르겠어.
오늘부터 좀 잡아볼까?
아 맞다.
민이 아빠가 병원에서 강제 퇴거되고 사설 기관으로 이송되는 게 오늘이라고 했나?
이 이야기하면 고년이 어떤 표정을 지을까?”
원장은 사악한 웃음을 띤 채 보육원 뒤에 주차를 한다.
자동차 소리가 들리자, 아이들은 일제히 복도 앞에 나란히 선다.
아직 아침 조례 시간보다 15분이나 앞선 시각이지만, 아이들은 경직되어 대기한다.
오늘은 머리에 물도 묻혀 평상시보다 더 단정한 모습이다.
원장이 예정보다 빨리 도착하자, 과장은 급히 정문으로 뛰어 온다.
정문 밖에서 원장은 됐다는 듯 손을 올리고, 직접 카드키를 보안 기기에 댄다.
기기는 ‘삐삑’ 하며 소리를 낸다.
그리고 열쇠로 문을 여는데, 그만 보안 기기의 방범 시스템에 걸려 고시원 전체는 ‘애애앵’하는 소음에 휩싸인다.
열린 줄 알았던 보안 기기가, 다시 작동해버린 것이다.
“야, 김 과장!
이게 뭐야!”
원장은 당황해서 정문을 연 채 소리를 지르고, 과장은 다급하게 호주머니에서 보안 카드를 찾는다.
하지만 호주머니 안에는 카드가 없고, 김 과장은 당황한다.
급한 마음에, 원장의 카드를 받아 보안 경보 설정을 해제한다.
김 과장의 핸드폰으로 보안 회사에서 연락이 오고, 김 과장은 문제가 없다는 말을 한다.
아침 출근부터 기분이 상한 원장은 보안 회사와 통화하는 김 과장을 밀치고 원장실로 들어간다.
원장은 약간 상기된 얼굴로 항상 입는 조끼를 입고는 오른쪽 주머니에 손을 집어넣는다.
뭔가 이상하다.
오른쪽 호주머니에 넣어둔 열쇠가 잡히지 않는다.
그 때 급하게 왼쪽 호주머니를 뒤지고, 열쇠가 손에 잡힌다.
“뭐야?!”
원장의 미간이 찌푸려지고, ‘아차’ 하는 생각에 주위를 다급하게 돌아본다.
그 때 아이들이 먹다 버린 사탕 껍질이 보인다.
원장의 얼굴이 시뻘게지면서 황급히 책상 서랍으로 다가선다.
급히 서랍장을 당기니, 잠겨 있어야 할 서랍이 아무 저항 없이 툭하고 열린다.
열려진 서랍장 속에는 아무것도 없이 텅 비어 있다.
“아아 아악!
김 과장!
김 과장!
김 과장!
이게 뭐야!
아아악!”
원장이 돼지 멱따는 소리로 꽥꽥 거리며 소리를 지르면서, 과장을 부른다.
원장의 비명 소리가 보육원에 가득 차고 울린다.
아이들은 원장 비명 소리를 듣자 복도에 서 있던 아이들의 몸이 더 경직되고 두리번거리던 눈빛이 앞에 선 아이의 뒤통수에 고정된다.
과장이 후다닥 원장 방으로 들어가자, 원장은 과장의 몸을 두 주먹으로 마구 때리기 시작한다.
“이게 뭐야!
너 어떻게 관리를 하고 있는 거야!
이거 어떻게 할 거야!
빨리 누가 했는지 확인해서, 안에 있던 물건들 찾아서 채워 넣어!
아니면 너 죽고 나 죽는 거야!”
원장은 목에 핏대를 세우면서 과장의 귀에 소리를 지른다.
김 과장은 열린 원장 서랍이 비어 있는 것을 확인하자, 이제야 어떤 상황이 벌어졌는지 이해한다.
그 때, 호주머니 속에 없던 보안 카드가 기억난다.
그리고 급히 허리춤을 더듬자, 끊어진 벨트 끈이 만져진다.
“씨X”
남자의 얼굴은 바로 벌겋게 달아오르고 화로 실룩거려진다.
“바로 조치하겠습니다.”
과장은 몸을 돌려, 2층 아이들 숙소로 두 칸, 세 칸 뛰어 올라간다.
김 과장은 복도에 선 아이들을 바라본다.
김 과장은 화가 너무 나 말을 더듬기 시작한다.
“너, 너, 너희,,, 들 중, 누가 그랬어?
빨,,,리 안,, 나와?!”
김 과장의 소리에 아이들은 영문도 모른 표정으로 고개를 흔들 뿐이다.
김 과장은 상급생 책임자의 얼굴을 노려보며, 고개를 끄덕인다.
“점호 시작!”
상급생 책임자가 평상시보다 더 큰 목소리로 외친다.
“하나, 둘, … 십팔!”
맨 앞에 있는 아이가 하나, 외치니 다음 아이들이 순서대로 숫자를 부른다.
맨 끝에 있는 아이가 ‘십팔’ 하는 소리에 더 이상 숫자가 진행하지 못하고 멈춰 선다.
원래 ‘이십일 점호 끝’으로 끝나야 하는 구호가 멈춘 것이다.
“뭐,,,뭐야, 왜 십팔이야!
이십일,,이 되,,되어,,야 하잖,,아.
뭐야! 누가 없는 거야?!
과장이 더듬거리며 소리를 지른다.
상급생 책임자는 화난 과장의 기에 눌리지만, 눈치를 보며 확인한 사항을 말한다.
“민, 욱, 향이 없습니다.”
“이런 쥐새끼들!”
“초,,,, 초등부는 엎,,드려 뻗,쳐!
중등부 상,,, 상급생들은 강목 가,,,가지고 와서, 애,, 애들 정,, 신 훈련 시켜!
그리고 상급생들! 너,, 희는 내,, 가 직접 교육 시키마!”
과장의 말에 초등부는 엎드리고, 중등부 상급생들 5명은 일사 천리로 강목을 가지고 와서 아이들의 정신 개조 명목으로 폭력을 행사한다.
아이들이 강목으로 맞는 모습을 보며, 어느 정도 화를 다스린 과장은 말 더듬는 것이 누그러진다.
“너희가 애들을 어떻게 관리했길래 쥐새끼 같은 3학년 아이들이 사고치고 도망쳐 버린 거야?
이 새끼들, 너희가 군기가 바짝 안 들어 있으니 밑에 애새끼들이 사고치고 도망간 거 아냐!”
과장의 질책에 상급생 아이들의 눈에 핏발이 선다.
강목을 더 힘차게 휘두른다.
과장한테 받을 폭력을 저학년 아이들을 대상으로 발산하는 것이다
방학 시작 첫날, 보육원 전체는 상급생들의 정신 훈련에 보육원은 시끄럽다.
하지만 보육원 안에서 울려 퍼지는 소리는 멀리 교문 밖으로 소리가 새어나가지 않고, 사람들은 아무 것도 알아차리지 못한 채 학교 앞을 지나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