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미 환하게 밝아진 아침 햇살 사이로 아이들 셋이 4층 건물의 옥상 위로 허겁지겁 뛰어 올라온다.
다급한 표정의 아이들은 어디로 가야할지 몰라 우왕좌왕한다.
"우리 이제 어떻게 해야 하지?"
짧은 단발머리 민은 울상이 된 표정으로 욱과 향에게 말한다.
말을 하지 못하는 욱은 부리나케 주위를 둘러보다가, 옥상 난간 쪽으로 뛰어 가 아래를 내려다본다.
삐쩍 마른 몸의 향은 잽싸게 올라온 입구 쪽으로 돌아가 상황을 살핀다.
그 때 건물 안에서 성난 남자와 아이들의 소란스러운 소리가 들린다.
"너 이 새끼들, 잡히면 죽었어!"
욕지거리와 소음들이 혼잡하게 섞인 소리가 점점 더 가까워진다.
"민아, 욱아, 우리 그만하자!"
눈이 찢어진 향은 옥상 문을 급하게 닫고 온 몸으로 막으며 날카롭게 소리를 지른다.
하지만 욱은 이미 옥상 난간을 넘고 있다.
난간을 넘은 민은 왼손으로 난간을 잡고 오른손으로 민을 향해 오라는 듯 손을 내민다.
투명한 갈색 눈동자가 민을 향해 웃음 짓고, 민은 욱에게 다가가 손을 잡는다.
민은 욱의 손을 잡고 난간을 넘어간다.
욱은 지지대를 찾아 조금씩 건물을 타고 내려가고, 민은 욱을 따라 조금씩 아래로 내려간다.
비가 그쳤지만, 빗물에 젖은 벽은 미끄러워 벽을 타고 내려가는 두 아이의 모습은 위태롭기만 하다.
그 때, 향이 막고 있던 옥상 문이 열리고, 옥상은 성난 남자와 상급생 아이들로 북적댄다.
성난 남자도 민과 욱을 따라 건물 밖 벽에 매달리고, 두 아이들을 따라 내려가기 시작한다.
성인의 큰 키와 긴 팔, 다리를 이용하니 이내 아이들을 쉽게 따라잡는다.
남자는 씩 웃으며 민을 잡기 위해 손을 뻗는다.
그 때 욱은 남자를 피해 민을 자기를 향해 잡아당기고, 민은 그만 발을 헛디딘다.
민이 휘청하는 순간 욱은 민을 끌어당겨 품에 안고, 그만 둘은 바닥으로 떨어진다.
둘은 화단 옆 중앙 입구와 이어지는 시멘트 바닥으로 떨어진다.
민은 바닥에 떨어지면서 오른쪽 머리가 바닥에 스치듯 부딪히고, '삐이이익'하는 굉음이 머릿속에 울린다.
그리고 관자놀이를 지나 피가 흘러 눈가에 맺히기 시작한다.
하지만 민은 비틀거리며 몸을 일으켜 자신을 안고 있는 욱을 본다.
욱의 머리에서 흘러나온 피가 시멘트 바닥을 적시고 있다.
욱이 민을 보호하며 두 팔로 꼭 안고, 바닥에 떨어진 것이다.
"안 돼, 욱아. 안 돼!"
민은 욱을 흔들며 깨우려고 하지만, 미동도 하지 않는다.
"악, 안 돼!
욱아, 욱아!"
이내 1층으로 내려온 남자와 상급생 아이들은 울부짖는 민을 욱이에게서 떼어놓는다.
투명하리만큼 아름다운 욱의 눈동자는 멍하니 파란 하늘만을 응시하고 있다.
민은 갑작스러운 욱의 죽음과, 자기 때문에 욱이 죽었다는 생각에 모든 것이 무너진다.
10살이라는 어린 나이에 겪은 상실이라는 감정 속에서 자신을 주체하지 못하고 울부 짖기만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