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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연재 > 일반/역사
오솔길
작가 : 엔보이
작품등록일 : 2019.9.2

오늘날까지 우리 인간이 걸어온 길.
끊임없이 이어지고 있는 갈등과 폭력의 역사.
태초의 시대로 거슬러 올라가 그러한 갈등과 폭력 속에서도 희망을 품고 살아간 한 사람에 대한 이야기를 그려보고자 합니다.

 
단원 4. 복수.(3)
작성일 : 19-09-30 14:20     조회 : 255     추천 : 0     분량 : 666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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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하사기령에 들어서 신 씨 일행과 헤어진 나는 관도를 따라 다시 몇 개의 군현과 관문을 지나 요석에 도착하게 되었다. 이틀 동안의 강행군에 다리는 조금 저려왔지만 힘들다거나 고단함을 느끼지는 못했다. 생전 처음 고향을 벗어나 본 내게는 눈에 보이는 모든 것이 새롭고 신기했기 때문이다. 다미군보다 훨씬 크고 번화한 도시를 마주할 때는 내가 그동안 얼마나 작은 세상에 갇혀 있었는지를 새삼 깨달을 수 있었고, 유명한 관광지이고 한 한탄강을 건널 적에는 산과 강이 어울려 빚어내는 그 아름다운 정취에 온통 마음을 빼앗겼다.

  그러나 그럴수록 내 마음 한구석은 점점 무거워지는 것이 동무들의 생사도 알 수 없는 지금 이 상황에서 혼자 그러한 감정을 느끼는 것조차 무척 죄스럽고 사치스럽게 여겨졌기 때문이다. 청성산에 터를 잡은 검계들로 인해 오랫동안 골머리를 앓아온 요석은, 그래서인지 관문 입구에서부터 삼엄한 경계가 느껴졌다. 요석에 들어서자마자 곧장 토벌군 주둔지로 향한 나는 선전관을 찾아뵙고 토벌군에 자원할 의사를 밝혔다.

  그가 일러주는 대로 몇 가지 서류를 작성하고 난 후 나는 대합실로 안내되었다. 대합실에는 나처럼 타향에서 온 사내들이 두려움과 기대가 섞인 눈빛으로 서로를 경계하듯 탐색하고 있었다. 그들 중에는 한눈에도 촌티 나고 허술해 보이는 자들도 있었고, 흡사 왈패와 같아 보이는 이들도 있었지만 더러 접근하기 어려운 날선 기도를 보이는 자들도 있었다. 제각기 보이는 모습은 다르지만 그들 대부분이 청운의 꿈을 가지고 자원해온 사내들일 터였다.

  이러니저러니 해도 아직까지 이 나라에서는 실력 있는 무인들을 우대해 주고 있었다. 장돌뱅이 신 씨가 이야기 한 것처럼 먹고 살길이 막막해 어쩔 수 없이 자원하는 곳이 나랏군이라면, 토벌군은 그래도 실력 있고 출세욕 있는 무인들이 모이는 곳이었다. 그들 사이에 들뜬 열망이 내 눈에도 선명하게 보였다. 대합실에 모인 사내들 중에는 저들끼리 인사를 나누며 미리 친분을 다지는 이들도 보였지만 나는 구석에 혼자 조용히 앉아 있었다.

  언제 죽을지 모르는 사람들끼리 새로이 친분을 나누고 싶은 마음은 없었다. 나는 오로지 검계들을 상대할 순간만을 머릿속으로 그리고 있었다. 이 마음속 분노를 머지않아 그들에게 쏟아낼 수 있다는 생각에 한껏 마음이 달아올랐다. 내게 목표가 있다면 나를 이렇게 만든 자들에게 내가 아직 살아있음을 알리는 것이다. 그들이 잡초처럼 짓밟고 간 보리울에서 사니 한 명이 죽지 않고 살아남아 그들에게 칼을 겨누고 있다는 것, 그 사실을 그들에게 확실하게 알려주고 싶었다.

  그래서 나를 건든 것을, 죽이지 않은 것을 꼭 후회하게 만들어주고 싶었다. 토벌군에 자원해 들어간 첫날, 나를 비롯한 여러 사내들은 특별한 일 없이 간이막사로 구성된 대합실의 찬 바닥에 누워 잠을 청했다. 그리고 다음날 아침, 선전관이 알려준 대로 병사들 몇몇이 나타나 각기 자대배치가 끝난 인원들을 차출해갔다.

 

  “다미군 보리울에서 온 반디.”

  “예.”

  “자네는 칠 기대 오 분대 소속이네. 이 사람을 따라 가면 되네.”

  “알겠습니다.”

 

  신병들을 인수하기 위해 각 기대에서 한 명의 선임들이 나와 대기하고 있었다. 그런데 특이하게도 다른 선임들 뒤에는 벌써 사람들이 여럿 줄을 서 있는데 내가 배치된 곳에는 나를 제외한 단 한 명의 인원도 보이지를 않았다. 뭔가 이상한 마음에 나는 내 앞에 선임을 잠시 살펴보았다. 묘하게 서늘한 눈빛을 가진 사내였다. 비쩍 마른듯 하면서도 키가 크고 골격이 튼튼해 보이는 것이 제법 옹골차 보였는데 무언가 이곳에 모인 다른 이들과는 어울리지 않는 묘한 분위기를 가지고 있었다.

  실제로도 그런 것이 다른 선임들은 저들끼리 이야기도 나누고 장난도 치고 하는데 그에게는 아무도 접근하는 사람이 없었다. 나는 거기에 무언가 이유가 있을 거라 짐작했지만 지금 당장은 아무 것도 알 수 없었다. 자대 배치가 모두 끝나고 나는 선임을 따라 칠기대가 머무는 막사로 안내되었다. 그를 따라가며 느낀 점은 주둔지 내 다른 막사와 달리 칠기대의 막사가 상당히 외진 곳에 따로 떨어져 있다는 것이다.

  생활관 문을 열고 들어가니 퀴퀴한 냄새와 함께 경계어린 눈빛으로 나를 바라보는 사내들이 눈에 들어왔다. 그러나 아무도 나를 보고 아는 체를 하거나 인사를 하는 사람이 없었다. 자신을 데리고 온 선임 역시 말이 없기는 매한가지였다. 흔한 자기소개라도 시킬 법 하건만 아무도 말을 건네는 사람이 없으니 나는 다만 제 자리에 앉아 멀뚱히 있었다. 알 수 없는 긴장감이 생활관 내에 흐르고 있었다.

  그 이유는 곧 밝혀졌다. 생활관 문을 열고 정복을 갖춰 입은 다간 한 명이 들어왔다. 쉬어 하는 구령과 함께 나를 데리고 온 선임이 경례를 하였다. 아마도 그가 이곳의 분대장이리라.

 

  “쉬어. 칠기대 오분대 생활관 개인정비 및 휴식 중.”

  “쉬어. 반디가 누구냐?”

  “접니다.”

  “그래, 네가 이번에 들어온 신병이구나. 환영한다.”

  “.......”

  “이곳의 분위기가 다른 곳과는 많이 다르다는 것을 너도 오면서 느꼈을 것이다. 우선 그거부터 설명을 하지. 네가 느낀 것처럼 이곳은 다른 기대와는 조금 성격이 다르다.”

  “무엇이 어떻게 다르단 것인지요?”

  “이곳은 본디 자원병이 오는 곳이 아니야. 왜냐면 이곳은......”

 

  그가 다른 병사들을 둘러보며 말했다.

 

  “죄인들의 집합소거든.”

  “!?”

 

  그의 설명에 따르면 칠기대는 전부 죄인들로 이루어진 부대였다. 나도 그런 부대가 있다는 것을 알고는 있었다. 죄를 지은 죄인들이 형벌을 받거나 옥살이를 하는 대신 더러 군부에 투입되어 형량을 채우는 경우가 있었다. 한데 왜 내가 이런 곳에 오게 배치되었는지는 아무리 생각해 보아도 알 수가 없었다.

 

  “그게 말이야, 부탁을 받았어.”

  “예?”

  “너를 꼭 이곳에 넣어주기를 바라는 분이 계셨다. 개인적으로는 과거 내 단테 선배이자 지금은 영금위 금원으로 계시는 오로 선 자 되시는 분이 말이야.”

  “아......!?”

 

  나는 그의 집무실로 안내되어 보다 자세한 사정을 들을 수 있었다.

 

  “봐라. 이것이 금원께서 내게 보낸 서신이다.”

 

  나는 그가 내민 서신을 살펴보았다. 거기에는 다미군 보리울에 사는 반디라는 청년이 토벌군에 자원해 오거든 칠기대에 넣어달라는 내용이 쓰여 있었다. 그 황당한 내용도 내용이지만 나는 그보다 그가 나를 이토록 신경 쓰는 이유가 더 궁금했다. 공사가 다망할 그가 아무런 연고 없는 나를 위해 이런 서신까지 써 보낸다는 것이 일반적으로 이해할 수 있는 일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나로서도 무척 의아하고 이해가 안가는 부탁이었지. 왜냐하면 칠기대는 말했다시피 죄인들로 구성된 부대이니만큼 가장 위험하고 힘든 임무에 투입되기 마련이거든. 때문에 나는 금원께서 자네에게 무슨 개인적인 원한이 있나 싶었는데...... 이걸 보면 또 그것도 아닌 것 같고.......”

 

  그의 손가락이 서신의 끝부분을 가리키고 있었다. 거기에는 만약 내가 원하지 않을 시 다른 기대에 배치해도 좋다는 이야기가 적혀 있었다. 나는 그것을 보고서 금원께서 대체 무슨 생각으로 이런 서신을 보낸 것인지 도무지 종잡을 수가 없었다. 한참을 고민하다가 생각난 것이 그와 나누었던 마지막 대화이다.

 

  ‘죽는 것이 두렵지 않다라....... 정말 그런 각오라면 세상에 못 할 일이 없겠지. 하지만 나는 말로만 그런 자들을 너무 많이 봐와서 말이다. 너는 네가 한 말에 책임을 질 수 있겠느냐?’

 

  단순히 나를 시험하려는 것일까? 하지만 그렇다고 이런 번거로운 일을 한단 말인가? 아무리 생각하고, 또 생각해보아도 나는 그의 생각을 조금도 헤아릴 수가 없었다. 이것이 선의인지, 혹은 악의에서 비롯된 것인지, 그도 아니면 단순한 유희이든지간에 당장은 내게 그것을 알아볼 식견이 없었다. 허나 선달들의 유희에 놀아날지언정 당장 내게 그것이 조금이라도 동무들에게 다가갈 기회가 된다면 나는 기꺼이 그 장단에 놀아날 마음의 준비가 되어 있었다.

 

  “자! 그래서 어찌하겠느냐? 이곳에 남겠느냐, 아니면 다른 정상적인 기대로 가고 싶으냐?”

  “이곳에 남겠습니다.”

 

  고민 없이 이어진 내 대답에 그가 재미있다는 듯 씩 웃으며 나를 바라보았다.

 

  “아무래도 그분과 너 사이에 내가 모르는 무언가가 있는 듯 하구나. 좋다! 앞으로 잘해보자. 나는 칠기대장 슬아 막지다.”

 

  그가 내게 손을 내밀어 악수를 청해왔다. 별거 아니었지만 나는 그 작은 행동 하나에서 그가 신분이나 격식에 크게 얽매이지 않는 사람이라는 것을 파악할 수 있었다. 마주잡은 손에서 힘찬 기운이 느껴졌다.

 

  “다미군 보리울에서 온 반디입니다.”

  “그분이 너를 눈여겨보시는 데에는 그럴만한 이유가 있겠지. 사정은 모르지만 네가 그분을 실망시키지 않았으면 좋겠구나.”

  “저 그런데...... 한 가지 질문 좀 여쭤 봐도 괜찮겠습니까?”

  “물론이다.”

  “다름이 아니라 칠기대 대원들이 모두 죄인들이라 하셨는데 그렇다면 그들은 무슨 죄를 지은 자들입니까?”

  “그들 대부분은 영금위에서 신병이 인도되어 온 자들이야.”

  “!?”

  “왜, 무슨 문제가 있나?”

  “영금위는 주로 검계들을 단속하는 기관이 아닙니까? 그곳에서 신병이 인도되었다 함은 그들 역시 검계들이란 뜻입니까?”

  “아니, 그건 아니네. 설마 검계들에게 이 같은 회생의 기회가 주어지겠는가? 다만 아주 연관이 없다고만은 할 수 없는 것이 그들 역시 한때 검계 혐의를 받던 자들인 것은 맞네. 검계들과 연관되어 있을 것으로 의심이 되거나, 혹은 가족 중에 검계가 한 명만 있어도 연대책임에 의해 모두가 실형을 받게 되지. 대부분 그런 자들이 혐의를 벗기 위해 선택하는 방법이 바로 이렇듯 토벌군에 자원해 들어오는 것이야.”

  “.......”

  “하니 분대원들과는 말썽 없이 잘 지내도록 하게. 그들이 비록 죄인 신분이기는 하나 실력만큼은 인정할만한 자들이라네. 공공연한 비밀이지만 가장 위험한 임무에 먼저 투입되는 칠기대 병사들의 생존율이 다른 기대 병사들보다 훨씬 앞선다는 사실을 아는가? 배우고자 한다면 그들에게도 충분히 배울 점이 있을 거야.”

 

  생활관으로 돌아온 나는 말없이 묵묵히 앉아 있었다. 기대장 앞에서 내색은 안했지만 생각할수록 어이가 없었다. 검계들에게 복수하기 위해 군에 자원해 들어왔더니 눈앞에 원수들일지도 모르는 자들이 동료랍시고 있는 상황이었으니 말이다. 비록 이들이 진짜 검계는 아니라 할지라도 조금이라도 그러한 혐의가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나는 이들에게 괜한 적개심이 들었다. 그런 내 태도와 눈빛에서 보이는 적의를 아마 그들도 느꼈을 것이다.

  모두가 나를 의식하면서도 쉽게 접근하지는 못하는 가운데 나를 이곳으로 데리고 온 선임자가 가장 먼저 내게 다가왔다.

 

  “기대장님께 대충 이야기는 들었네. 자세한 사정은 모르나 일단 한 식구가 되었으니 잘 지내보세.”

  “.......”

  “비록 우리 처지가 조금 다르기는 하나 곧 함께 전투를 치를 사이에 서로 인사는 나누어야겠지. 먼저 내 소개부터 하지. 나는 오 분대에서 분대장을 맡고 있는 호세라고 하네.”

  “.......”

  “...... 자네 이름은 뭔가?”

  “나는 별로 그러고 싶은 마음이 없으니 우리 서로 상관하지 맙시다.”

  “.......”

  “이봐! 분대장님한테 그게 무슨 말버릇이냐?”

  내 한마디에 생활관 분위기가 순식간에 험악해 졌다. 다른 분대원들 모두가 나를 살벌하게 노려보는 가운데 호세라는 사람은 크게 당황하지 않고 대원들을 진정시켰다. 내 말 한마디에 보이는 그들의 반응을 살펴보면 그들 사이에 우애가 상당히 깊은 듯했다. 그가 다시 내게 말했다.

 

  “자네가 우리 분대에 들어온 이상 그럴 수는 없는 일이네. 전장에서 대원들 간의 화합과 소통이 생명과 직결된 문제임을 자네도 단테 생활을 해봤다면 모르지 않을 것 아닌가?”

 

  반박할 수 없는 정론이다. 사실 방금 내가 한 짓은 단테나 군대 같은 조직체에서는 결코 용납 받을 수 없는 행동이었다. 그럼에도 내 행동이 이리 엇나가는 것은 지금 내 마음이 스스로 통제가 잘 안 되고 있기 때문이다.

 

  “나에 대해 기대장님께 어디까지 들으셨소?”

  “...... 자네가 고향에서 겪은 일에 대해서라면 알고 있네. 참으로 안된 일이더구만.”

  “그렇다면 내가 왜 이러는지도 짐작하시겠소.”

  “.......”

  “단도직입적으로 묻겠소. 당신들은 검계와 무슨 관련이 있소?”

 

  갑작스런 내 질문에 분대장은 물론 다른 대원들까지 모두 당황한 표정이었다. 아마도 그 문제에 대해 내가 이렇게까지 직접적으로 질문해올 줄은 몰랐나보다. 그러나 나는 지금 이 문제를 여기서 짚고 넘어가지 않으면 결코 이들과 함께할 수 없을 것 같았다. 그때 지금까지 이 상황을 가만히 지켜만 보고 있던, 가장 나쎄가 들어 보이는 왜소한 인물이 혼잣말하듯 무슨 말을 중얼거리기 시작했다. 그 말이 알 수 없는 힘을 가지고 이 자리에 있는 모두를 집중하게 만들었다.

 

  “우리는 검계가 아니어. 대체 왜 우리가 검계라는 거여?”

  “.......”

  “참말로 이해가 안 돼봅서. 나는 그저 고향에서 잘 살고 있던 기밖에 없는디...... 어느 날 갑작 쳐들어와 우리 보고 검계라하믄 우리보고 어쩌란 말이어? 많이 죽었재. 참말로 많이 죽었어. 어째 사람을 그리 쥐 잡듯이 죽일 수 있단 말이어? 내 동무 사을이도 죽고 옆집 할매도 죽고 귀염둥이 율곡이도 죽고 다 죽어버렀재. 대체 우리가 뭔 죄를 졌당가? 나는 고것 좀 누가 알려줬으면 좋겄어.”

 

  누구를 대상으로 하는지 모를 그의 중얼거림은 그것으로 그치지 않고 계속되었다. 그의 이야기는 대부분 누군가의 억울한 죽음을 이야기하고 있었다. 누구는 숨어 있다 굶어 죽고, 누구는 잡혀가서 처형당해 죽고, 누구는 끔찍한 고문을 당해서 죽었다는 진실인지 허구인지 모를 이야기들이 그의 고저 없는 목소리를 타고 끊임없이 흘러나오는데, 이들에게는 이 상황이 익숙한 듯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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