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oading...
1일간 안보이기 닫기
모바일페이지 바로가기 > 로그인  |  ID / PW찾기  |  회원가입  |  소셜로그인 
스토리야 로고
작품명 작가명
이미지로보기 한줄로보기
 1  2  3  4  5  6  7  8  9  10  >  >>
 1  2  3  4  5  6  7  8  9  10  >  >>
 
자유연재 > 일반/역사
오솔길
작가 : 엔보이
작품등록일 : 2019.9.2

오늘날까지 우리 인간이 걸어온 길.
끊임없이 이어지고 있는 갈등과 폭력의 역사.
태초의 시대로 거슬러 올라가 그러한 갈등과 폭력 속에서도 희망을 품고 살아간 한 사람에 대한 이야기를 그려보고자 합니다.

 
단원 2. 저주.(3)
작성일 : 19-09-10 20:30     조회 : 257     추천 : 0     분량 : 7389
뷰어설정 열기
뷰어 기본값으로 현재 설정 저장 (로그인시에만 가능)
글자체
글자크기
배경색
글자색
맑은고딕 나눔고딕 돋움 굴림 궁서 바탕
13 15 17 19 21

  다음날 아침에 본 세상은 새하얬다. 잠시 내 처지를 잊고 그 순수한 아름다움에 취할 만큼 세상이 그리도 하얬다. 이렇게 때 아닌 절경이 펼쳐져 있으니 팔자 좋은 나모들이라면 필시 또 어딘가에 모여 풍류를 논하려 들 것이다. 그러나 온통 하얘진 세상을 바라보는 내 마음은 급격히 차가워진 기온만큼이나 시리고 또 시렸다. 그것이 아마도 보리울 사람들 대부분의 마음일 것이다. 그럴 수밖에 없었다. 올해 농사는 시작부터 초를 치게 생긴 것이니.......

  그나마 다른 마을에서 소작을 붙이는 사람이나 마을 저지대에 논밭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은 피해가 조금 덜할 테지만 마을 고지대에 논밭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에겐 피해가 이만저만이 아닐 터였다. 눈이 내리는 동안 밤잠을 설쳐가며 눈과 씨름했을 그들을 생각하니 안타까운 한숨이 절로 나왔다. 아마도 오늘 훈련은 물 건너 간 듯 했다. 이런 아름다운 풍경을 다만 아름다움으로 받아들일 수 있는 것도 그만한 여유가 있는 사람에게나 가능한 일이다.

  나는 언제쯤 그런 여유를 가질 수 있을지, 지금 이 순간만큼은 모든 것이 다 원망스러웠다. 본래라면 훈련을 하고 있어야 할 시간, 나와 동무들은 아침 일찍부터 촌장님 댁에 모여들었다. 오늘과 같은 일을 예견하여 이미 어제 약속이 되어 있던 일이다. 자신들이 어제 훈련을 마치고 나눈 이야기들 중에는 이상한 꿈에 대한 이야기도 있었지만, 사실 그보다는 무섭게 내리기 시작하는 눈에 대한 이야기가 더 많았다.

  이해할 수 없는 악몽이야 한 세상 떨어진 꿈나라세상 이야기였지만, 하늘에서 내리는 눈은 당장 눈앞에 닥친 현실이었기 때문이다. 밤새 눈이 내린다는 최악의 가정 하에 우리는 그에 대한 대비를 하지 않을 수 없었고, 아마도 오늘 우리의 하루 일과는 종일 마을을 돌아다니며 눈을 치우는 일이 될 터였다. 가장 먼저 큰 피해가 예상되는 가정에 방문해 최대한 많은 도움을 주고, 그 다음으로 훈련장과 그로 통하는 주요 길목을 치우는 것이 우리가 세운 일차 목표였다.

  이것은 단순히 마을 사람들에게 도움을 준다는 의미를 넘어 확실하게 우리의 존재와 그 역할을 각인시킬 기회이기도 했다. 분대장이자 같은 단테 구성원으로서 자신들이 항상 그들을 생각하고 있다는 것과, 또 이렇게 큰 어려움이 닥쳤을 때에 힘을 합쳐 함께 헤쳐 나가는 것이야말로 이 마을에 단테가 세워져야 할 가장 큰 이유라는 것을 이번 기회를 통해 사람들이 확실히 알아주었으면 싶었고, 또 실질적으로도 그렇게 해야 하루 빨리 훈련이 재개될 수 있었기 때문이다.

  나와 동무들은 우선 고지대에 위치한 논밭으로 향했다. 그곳에는 역시나 밤잠 설치며 애면글면했을 마을 사람들이 한창 열심히 눈과 씨름 중이었다. 그들 중에는 어리의 친척도 보였는데, 그들 역시 고지대에 개간한 논밭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이다. 나와 동무들은 그들에게 다가가 먼저 곰살갑게 인사를 한 후 앞장서서 그들의 일을 돕기 시작했다. 자신들이 비록 바깥으로 나돌기는 하지만 기본적으로 농사일에 무지한 사람들이 아니었다.

  모두가 태생이 농투성이로 지금과 같은 상황에서 무엇이 가장 급하고 무슨 일을 먼저 해야 하는지 정도는 말하지 않아도 다 알고 있었다. 우리는 가장 먼저 작물의 피해를 줄이기 위해 작물 위를 덮은 눈을 옆쪽 고랑으로 치우는 일에 열중했다. 그렇게 어리네 친척 식구들 논밭을 포함하여 영선 씨, 수호 씨, 마치 씨, 도을 씨 등 단테에 소속된 병사들의 가정을 방문해 도움을 주었다.

  그들은 모두 생각지 못한 도움에 깊이깊이 감사의 인사를 전해왔는데, 비록 몸은 힘들었지만 그래도 뿌듯했다. 남을 돕는다는 것이 사실 이렇게 기쁘고 뿌듯한 일이었다. 내가 진실로 보리울 사람들이 깨닫기 바라는 것 또한 바로 그러한 것이었다. 어려울 때 서로 돕고 큰 일이 생겼을 때 힘을 합쳐 해결하는 것. 이웃끼리 서루 우애하며 사는 것. 어찌 보면 마을 생활의 가장 기본이라 할 수 있는 그것이 보리울에는 전혀 없었다.

  내 입으로 이런 말 하는 것이 속상하긴 하지만 다른 마을 사람들이 흔히 하는 말처럼 보리울은 떠돌이 유민들이 모여 만든 마을이라 그런지 사람들 저마다 말투도 조금씩 다르고 기본적으로 나만 살고보자는 식의 저열한 심성이 바탕에 자리하고 있었다. 그러다보니 마을 이웃 중 누군가가 아무리 큰 횡액을 당하더라도 먼저 다가가서 심심한 위로의 말 한마디를 건네기 보단 혹여 자신들에게까지 해악이 미칠까 발길을 뚝 끊어버리는 것이 이곳 사람들의 일상적인 모습이었다.

  없이 사는 사람들끼리 서로 조금 더 우애하고 의지하며 살면 좋으련만, 현실은 오히려 그 반대이니 실상 보리울이 그토록 무시 받고 천대받는 데에는 그들 스스로가 자초한 면도 없다고만은 할 수 없었다. 여러 번 말했듯 보리울은 애초에 시작이 유민들이 부대밭 일구어 만든 마을이다. 유민들이란 결국 무슨 사연이 있든 간에 제 고향을 잃고, 혹은 버리고 떠난 사람들이고, 그것은 결국 현재의 사회적 통념상 비난받아도 어찌할 수 없는 일이었다.

  외적이 쳐들어오건, 혹은 하늘과 땅이 무너지는 재해가 일어나건, 자신이 발붙이고 사는 땅을 목숨으로 지키는 것이 예부터 이 나라와 민족에 전해 내려오는 최우선적 가치임을 생각해 보면 그 가치를 져버린 보리울 사람들이 비난받는 것은 어쩔 수 없었다. 하지만 그것도 어디까지나 일 세대에나 해당되어야 할 이야기였다. 지금은 이미 충분한 세월이 흘렀고, 지금 이 마을에 살고 있는 사람들 대부분은 모두 그 일 세대 개척민들의 손자뻘 정도밖에 되지 않았다.

  그 긴 세월동안 얼마나 많은 고난과 설움이 이 마을에 켜켜이 쌓였겠는가. 나는 그 정도면 충분하다고 생각한다. 뭐 좋은 거라고 그런 저열한 삶을 자손들에게까지 대대손손 물려준단 말인가. 이미 행정상으로도 보리울은 명실상부하게 다미군 관할에 속해있었고, 이제 사람들의 의식만 좀 더 변한다면 보리울이 진정한 이 군현의 식구로 거듭나는 것도 불가능한 일은 아니었다. 그 첫걸음이 바로 자신이 그토록 세우고자 노력하는 단테였다.

  단테만 생긴다면, 이 마을에도 단테라는 것이 생긴다면, 누구도 이 보리울을 예전처럼 홀대할 수만은 없을 터였다. 당장 먹고사는 문제보다 지금 이 문제가 훨씬 더 중요할 수 있다는 것을 나는 이 마을 사람들이 꼭 알아주기를 바랬다. 이른 아침부터 점심나절까지 보리울 곳곳을 돌아다니며 하루 종일 눈을 치우고 다닌 자신들은 허기를 채울 틈도 없이 곧장 다음 장소로 향했다. 목적지는 다름 아닌 현재 단테 훈련장으로 쓰이고 있는 달맞이 공터였다.

  눈이란 것이 막 쌓였을 때 서둘러 치워야지, 어중간하게 시일을 지체하여 뜸이라도 들었다간 더욱 치우기가 힘들어지기 마련이었다. 각자 손에 든 가래와 싸리비를 무기처럼 휘두르며 눈밭의 포위를 뚫고 전진하고 있을 무렵, 우리들은 멀찍이서 마을로 들어오고 있는 한 무리의 사람들을 보게 되었다. 열댓 명이 더 되어 보이는 적지 않은 무리였는데 한 눈에 봐도 타지에서 온 사람들로 사람마다 봇짐을 한 가득 짊어지고 있는 모습이 눈에 띄었다.

  양옆으로 논밭이 펼쳐진 마을 어귀의 좁은 길목에서 우리들은 잠시 후 자연적으로 마주하게 되었다. 얼마나 먼 길을 여행해온 것인지 그들이 두르고 있는 방한용 겉옷에 그득 쌓여있는 더께가 그들 여행의 고단함을 짐작케 해주었다. 길이 좁아 지나갈 수 있는 인원이 한정적이다 보니 상대적으로 인원이 적고 몸이 홀가분한 우리가 그들이 먼저 지나갈 수 있게 길옆으로 자리를 비켜 주었다. 그러자 그들 선두에 있던 자가 얼굴을 가린 겉옷 쓰개를 거두고 내게 고개 숙여 인사를 해왔다.

  그 모습이 사뭇 정중하고 드러난 얼굴이 깨끔한 것이 보부상이 아닌가하고 미루어 짐작하던 내 판단이 틀린 것 같았다. 어쨌든 인사를 받은 처지에 그냥 모른 척 할 수만은 없는지라 나도 마주 목례하여 답을 하니 그는 처음부터 우리를 그냥 지나칠 생각이 없었던 듯 잠시 일행들을 멈춰 세우고 내게 말을 건네 왔다.

 

  “잠시 길 좀 물어도 되오리까?”

  “그러시지요.”

  “눈이 오는 바람에 길이 낯설어 아무래도 길을 잘 못 든 것 같은데 여기서 다미군 사당으로 가려면 어디로 가야 하오리까?”

  “다미군 사당이라면 저기 보이는 산 넘어 번리란 마을이 있는데, 그곳에서 대로를 통해 가시다보면 쉽게 찾으실 수 있을 겁니다.”

  “고맙습니다.”

  “별 말씀을요.”

 

  짧은 문답이 오가고 그들이 다시 걸음을 옮기기 시작했다. 그런데 괜한 호기심일까. 나는 유독 그들의 정체가 신경 쓰여 내 앞을 스쳐 지나는 사람들 개개인의 면면을 유심히 살펴보고 있었다. 그런데 그 와중에......

 

  쏴 아 아 아

 

  “!?”

 

  어디선가 갑자기 세찬 바람이 불어와 순간적으로 눈보라가 일었다. 그 바람에 마침 내 앞을 지나던 사람의 겉옷 쓰개가 환하게 걷혔는데...... 뜻밖에도 그렇게 드러난 사람의 얼굴은 머리를 길게 늘어뜨린 여인의 모습을 하고 있었다. 갑작스런 상황에 당황한 나와 그의 시선이 순간적으로 마주쳤다. 그런데 왠지 모르게 익숙한 눈빛에 나는 실례인줄 알면서도 그에게서 시선을 떼지 못하였다. 그런 나를 그도 의아스럽게 바라보았다.

 

  “거의 다 온 것 같으니 조금만 더 서두릅시다! 오늘은 오랜만에 뜨뜻한 방에서 좀 쉬어야 하지 않겠습니까?”

 

  앞서 무리를 이끄는 자의 채근과 함께 그들이 자리를 뜨고 난 이후에도 나는 한참을 같은 자리에 서서 그들의 뒷모습을 바라보았다. 왜 이렇게 아쉬운 마음이 드는지 몰랐다. 무언가 기억이 날듯하면서도 잡히지 않는 기억의 편린들이 바람에 흩날리는 눈발처럼 내 머릿속을 어지럽히고 있었다. 그런데 그런 내 모습이 동무들에게는 다르게 보였나 보다.

 

  “아아! 형님도 역시 사내였구려. 하도 목석같이 굴기에 그런 쪽으로는 전혀 관심이 없는 줄 알았는데.......”

  “정말 그런 거야? 정말 그런 거라면 내 지금이라도 당장 쫓아가 이름과 사는 곳이라도 물어보고 올게.”

  “쯧!”

 

  어리와 토끼풀의 짓궂은 장난에 나는 혀를 참으로써 대답을 대신했다. 혀를 차는 것이 내가 정말 기분이 나쁠 때 보이는 습관임을 동무들도 잘 알고 있기에 더는 장난을 치지 않았다. 시종 진지한 내 표정에 보리가 사뭇 궁금한 듯 질문을 해왔다.

 

  “정말 왜 그래? 혹시 아는 사람이야?”

  “아니.”

  “한데 왜 그렇게 넋을 놓고 있는 거야?”

  “아무것도 아니야. 그냥 저들이 뭐하는 사람들일까 생각하고 있었어. 혹시 저들이 누구인지 알겠어?”

  “글쎄...... 가만 보니 여인들도 제법 섞여있더라고. 여인들이 저리 객지를 돌아다니는 일은 드문 일인데.......”

 

  이야기 중에 시솔이 잘난 체를 하며 끼어들었다.

 

  “나는 짐작 가는 사람들이 있소이다.”

  “누구?”

 

  나와 보리가 동시에 물었다.

 

  “저들이 짊어진 봇짐을 살피지 못하였소? 걸음을 옮길 때마다 어디선가 방울 소리도 들리던 걸.”

  “그래서 누구?”

  “여인들이 적지 않게 섞여있고, 방울이 달린 악기를 챙겨 다니는 사람들이 누가 있겠소?”

  “...... 맞고 말할래, 그냥 말할래?” “으이그, 딱 보아도 연희자들 아니오.”

  “연희자들? 저들이?”

 

  그러고 보니 연희자라면 그럴 법도 했다. 해마다 전국을 떠돌며 기예를 팔러 다니는 그들이라면 남녀가 무리지어 다니는 것도 이상한 일은 아니었다. 하지만 내가 그를 쉽게 떠올리지 못한 데에는 처음에 나와 짧게 이야기를 나눈 자만하여도 그 몸빛이라든가 말투가 방정맞고 검질긴 연희자로는 보이지 않았고, 더욱이 나와 눈이 마주쳤던 여인은 그 미색이며 음전한 자태가 오히려 나모가 여인들만 못지않아 보였기 때문이다.

  일반적으로 연희자들에 대한 인식이나 대우가 떠돌이 유민들과 크게 다르지 않은 것을 보면, 그 정도 되는 인물들을 보고 연희자를 떠올리기란 쉽지 않았다. 그에 대해 시솔에게 의문을 표하니,

 

  “그야 보통 연희자들이 아니니 그렇겠지. 방금 그들이 길을 물을 때 어디를 묻더이까?”

  “사당을......”

 

  그제야 나는 시솔이 말하고자 하는 바를 이해했다. 보통의 연희자들이라면 결코 사당의 위치 따위를 물어볼 리가 없었다. 그들의 주요 고객은 시장이나 주막거리 상인들, 그도 아니면 가을걷이가 끝난 농민들이지 사당과는 도저히 인연이 있을래야 있을 수가 없었다. 그러나 그들 중에도 유독 사당과 특별한 관계를 가지고 있는 이들이 있었으니 그들이 바로 나라의 부름을 받아 순례 공연을 다니는 국연희들이었다. 이 나라 최고의 연희자들로 손꼽히는 그들이라면 아까 보았듯 비범한 품새나 몸빛도 이해하지 못 할 일만은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오오! 그렇다면 저들이 바로 그 유명한 국연희들이란 말이야?”

  “그렇다면 이 군현에서 곧 공연을 할지도 모르겠네. 보니까 여인들 미색이 제법 빼어나던데, 우리도 한번 보러 가는 것이 어떻겠어?”

  “공연을 언제 하는 줄 알고?”

  “그거야 곧 있으면 여리꾼들을 통해 홍보를 할 터이지.”

 

  동무들이 흥분해서 떠드는 것과는 달리 나는 그들에 대한 관심이 급격히 식어가는 것을 느꼈다. 그들의 정체를 알고 흥미가 사라졌기 때문이다. 국연희인지 뭔지는 몰라도 내게 있어 연희자는 그저 연희자일 뿐이었다. 연희자. 해마다 전국을 떠돌며 기예를 팔러 다니는 사람들. 말이 좋아 기예를 파는 것이지, 실상은 동냥아치와 크게 다름이 없는 사람들이 바로 그들이었다. 무엇 하나 팔게 없으니 몸에 익힌 재주나마 파는 것일 테고, 연희녀들의 경우 재주보다 그들의 몸뚱이를 더 쳐준다는 것은 알 만한 사람은 다 아는 이야기였다.

  그런 그들이 대단하다고 해봤자 얼마나 대단하겠는가. 연희자들의 기원은 이 나라가 큰 난리를 겪었을 당시 집도 잃고 땅도 잃은 사람들, 그러니까 유랑민이 된 사람들이 서로 의지하며 정처 없이 떠돌다가 고향에서 걸립하던 재주로 하찮은 재주나마 선보이며 구걸을 하고 다니기 시작한 것에서 유래되었다. 그만큼 연희자를 업으로 삼는 사람들의 바탕은 지난하기 그지없는 것으로 언뜻 기예를 판다는 것이 대단하게 들릴 지도 모르나 실상 그 처지나 대우는 몸 팔아 먹고사는 기생들만 못한 것이 바로 그들이었다. 그들에 대한 관심을 완전히 거둔 나는 여전히 호들갑을 떨고 있는 동무들을 조용히 시켰다.

 

  “이제 그만들 해. 하루해가 아쉬운 이때에 우리가 한가롭게 공연이나 보러 갈 시간이 어디 있냐?”

 

  그런데 그 말이 그저 빈 말은 아니었는 듯 생각 외로 동무들 표정에서 진한 아쉬움이 묻어나왔다. 나 역시 그들의 심정을 모르는 바는 아니었다. 요 며칠 제대로 쉬지도 못하고 일만 해온 터에 한번쯤 마음 놓고 즐기고 싶은 그들의 마음도 충분히 짐작이 갔다. 주는 것 없이 부리기만 하는 것 같아 그들에 대한 고마움과 미안함이 컸지만, 그럼에도 곧 다가올 시간 앞에 마음 편히 쉴 수는 없다는 게 내 입장이었다.

 

  “나중에, 얘들아. 사열을 무사히 끝내고 나면 마을 사람들 전부 모아 크게 한번 잔치를 열자. 그때 연희패도 불러서 한번 신명나게 놀아보자고.”

  “그게 정말이오?”

  “약속할게.”

 

  연희패를 불러 잔치를 연다는 말에 한순간에 동무들 표정이 모두 환해졌다. 시르죽어 있을 때는 언제고 또 그렇게 금방 환해지는 동무들의 표정을 보면서 나는 왠지 코끝이 찡해지는 것을 느꼈다. 항상 마을을 위한답시고 희생을 강요하는 것 이외에 정작 그들을 위해 나는 무엇을 해주었는지....... 나는 마음속으로 동무들에게 고맙다고, 또 미안하다고 몇 번이나 되풀이해서 말했다.

 
 

NO 제목 날짜 조회 추천 글자
17 단원 4. 복수.(4) 2019 / 10 / 4 264 0 4460   
16 단원 4. 복수.(3) 2019 / 9 / 30 255 0 6669   
15 단원 4. 복수. (2) 2019 / 9 / 25 267 0 4649   
14 단원 4. 복수. (1) 2019 / 9 / 23 230 0 6473   
13 단원 3. 검계.(2) 2019 / 9 / 19 268 0 7304   
12 단원 3. 검계.(1) 2019 / 9 / 16 264 0 6052   
11 단원 2. 저주.(6) 2019 / 9 / 15 259 0 4213   
10 단원 2. 저주.(5) 2019 / 9 / 12 276 0 8942   
9 단원 2. 저주.(4) 2019 / 9 / 11 272 0 6828   
8 단원 2. 저주.(3) 2019 / 9 / 10 258 0 7389   
7 단원 2. 저주.(2) 2019 / 9 / 9 265 0 4494   
6 단원 2. 저주.(1) 2019 / 9 / 8 280 0 9328   
5 단원 1. 운수 좋은 날.(5) 2019 / 9 / 6 258 0 5122   
4 단원 1. 운수 좋은 날.(4) 2019 / 9 / 5 264 0 6434   
3 단원 1. 운수 좋은 날.(3) 2019 / 9 / 4 287 0 5741   
2 단원1. 운수 좋은 날. (2) 2019 / 9 / 3 264 0 7441   
1 단원 1. 운수 좋은 날.(1) 2019 / 9 / 2 405 0 9821   
이 작가의 다른 연재 작품
등록된 다른 작품이 없습니다.

    이용약관   |   개인정보취급방침   |   이메일주소 무단수집거부   |   신고/의견    
※ 스토리야에 등록된 모든 작품은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습니다.
※ 본사이트는 구글 크롬 / 익스플로러 10이상에 최적화 되어 있습니다.
(주)스토리야 | 대표이사: 성인규 | 사업자번호: 304-87-00261 | 대표전화 : 02-2615-0406 | FAX : 02-2615-0066
주소 : 서울 구로구 부일로 1길 26-13 (온수동) 2F
Copyright 2016. (사)한국창작스토리작가협회 All Right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