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일까. 다른 집안과 달리 우리 집은 친척이나 사촌이 유달리 없었다. 본래 아슬라령 물하군에서 나라 땅을 경작하며 살았다는 아버지와 어머니는 환국력 이십이 년, 식량을 약탈하기 위해 나랏을 넘어온 외구들에 의해 일가친척 대부분을 잃게 되었다고 한다. 당시 그 지역에서 꽤 오랫동안 큰 전쟁이 나는 바람에 많은 피난민들이 발생하였고, 어버이도 그 대열에 끼어 물풀처럼 정처 없는 생활을 이어가다가 당시 일영가의 가주였던 일영 미립에게 구제되어 그 댁 미손으로 들어가게 되었다.
그 후 일영가에서 십여 년 간 미손으로 일했고 중간에 불미스러운 일로 쫓겨나 자립하기까지 또 한 번 어려움이 있었으나, 어쨌든 지금은 허름한 집일망정 한마지기 정도 되는 작은 텃밭이나마 가꾸며 살아가는 부족할 것 없는 가정이었다. 어버이는 누이와 내 앞에서 당신 가족들에 대한 이야기를 한 번도 상세히 하신 적이 없지만 가끔씩 누이와 나를 앉혀놓고 하시는 말씀들 중에 그분들 가슴에 서린 그리움, 혹은 한 같은 것이 짐작되는 부분이 있었다.
“소은아, 반디야. 너희는 되도록 일찍 혼인을 하여라. 그래서 자손들을 많이 나아 한 집에서 복닥거리며 살자꾸나. 그리하면 자식들일랑 이 어미가 어떻게든 죽는 날까지 건사해 줄 터이니 아이들 먹여 살릴 걱정일랑 하지 말고 무조건 많이 나아야 한다. 알겠느냐? 그것이 이 어미의 소원인즉.”
외로운 집안. 어머니 말씀으로는 당신에게만 자매가 두 분, 남자 형제가 세 분 계셨다는데 나는 지금껏 그분들 성함조차 제대로 들어본 적이 없었다. 다만 간혹 그분들에 대한 이야기가 나올라치면 어머니의 눈가가 촉촉해 지는 것이 아마 난리 통에 모두 돌아가셨거나 소식이 끊긴 것이 아닐까 추측해볼 뿐이다. 그렇게 전쟁 난민으로 의지가지없던 어버이를 미손으로 본가에 들여 준 전대 가주님이 어버이에게는 평생의 은인으로 남았는지.......
지금도 어버이는 세상 떠난 그 분의 기일만 되면 흰 삼베옷을 고이 차려입고 고인을 기리었다. 지금도 그렇지만 당시에는 더욱 외지인들에 대한 배척과 경계가 심했을 때라 헐벗고 굶주렸을 어버이에게 전대 가주가 내민 손길은 이 각박한 세상에서 느낄 수 없는 더없이 따뜻한 온정이었으리라. 그 시기에 나는 아직 태어나지도 않았을 시기라 당연히 내게는 살 곳을 찾아 헤매던 어버이의 절박함이라든가, 하루 끼니를 걱정해야 했던 고단한 삶의 기억 같은 것은 존재하지 않았다.
하지만 당시 어버이와 함께 고스란히 그 고난을 함께했던 누이는 어버이의 사연 많은 삶을 꽤나 구체적으로 기억하고 있는 듯 했다. 그래서 나이답지 않게 일찍 셈이 든 누이는 어렸을 때부터 종종 내게 이런 말을 하곤 하였다.
“반디야. 우리는 꼭 훌륭하게 커서 어버이께 효도해야 해. 어버이가 이날 이때까지 얼마나 고생하신 줄 아니? 그걸 안다면 너도 동리를 돌아다니며 동무들과 장난이나 치러 다니지는 못 할 거야.”
누이는 가끔 내가 부럽다고 이야기 할 때가 있었다. 좋은 시절만 보고 자란 내가, 어버이와 떨어져 눈칫밥 먹어본 적 없는 내가 너무 부러워 얄미울 때가 있다고 했다. 자기는 젖먹이 시절부터 수시로 남의 집에 맡겨져 어버이와 떨어져 지내야 했다고 하는데, 한 달에 한두 번 정도 찾아오는 어버이 품에 잠시 안겼다 다시 떨어질 때의 설움이란....... 그때의 설움은 세월이 흐른다고 잊혀지는 게 아니라서 아직까지 누이의 마음 한 켠에 고스란히 남아있다고 한다.
그러나, 물론 누이에 비할 바는 못 되겠지만 내 삶도 그리 평탄하고 늘 좋기만 했던 것은 아니다, 내 삶의 시작도 그래봤자 남의집살이하는 미손의 자식이었을 뿐, 어버이가 지나온 사연 많은 삶이라든가 누이의 설움 가득한 눈물까지야 없겠지만 내가 보낸 세월 역시 나만이 감당해야 했던 어려움과 고단함이 있다. 내 어린 시절 기억의 거의 전부를 차지하고 있는 일영가는 당시 다미군에서 이대 째 군수를 맡고 있던 일영 미립의 본가로 당시에도 그랬고 지금도 그렇고 이 지역에서는 가장 권위 있는 가문중의 하나였다.
나는 네 살이 되기 전까지 안채에 딸린 작은 방안에서 자랐고 그곳에서 누이가 나를 포함 세 명의 영아들을 돌봤다. 안채에서도 조금 깊숙한 곳에 위치한 그 곳은 특별히 영아들을 위해 존재하는 방으로 그곳에서 유모를 도와 영아들을 보살피는 것이 당시 어렸던 누이의 주된 일과였다. 본디 바깥채에서 생활하는 미손의 신분으로 내가 특별히 안채에서 머물 수 있던 것도 그 때 뿐이었는데, 그렇다고 내가 일영가 아이들과 똑같은 대우를 받았던 것은 아니다.
주인댁 영아들이 눕는 자리에 비단이 깔린 푹신한 금침이 깔려있다면 내 밑에는 그저 얇은 면포 한 장뿐이었고 특히 먹는 것에서 큰 차이가 있었으니....... 철없는 내가 보채는 것이 안쓰러워 누이가 몰래 그들 몫의 음식을 내게 준적이 있었는데 어느 날인가 그것을 유모에게 들켜 하루 종일 치도곤을 당하는 모습을 지켜본 이후로는 난 그들의 어떤 것도 탐내지 않는 강한 자제력을 갖추게 되었다. 아무 것도 모를 어린 나이에 말이다.
그만큼 신분의 차이란 크고 또 엄격한 것이라 아무리 어린 영아라 할지라도 그 규칙은 엄격하게 적용이 되었다. 그런 환경 속에서 우리들 미손의 자식이 그들과 자신의 차이를 깨닫게 되는 것이고, 그것을 지극히 당연한 삶으로 받아들이게 되는 것이다. 그 과정에서 필시 남모를 설움과 눈물이 따라야 하는 것이고....... 네 살이 되면서부터는 나도 그곳에서 나와 바깥채에서 생활하게 되었다. 누이는 계속 그곳에서 아이들을 돌봤고 어버이는 일과 시간에 워낙 바쁘다보니 사실상 낮 시간에 나를 돌봐줄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그러나 차라리 외로울지언정 콧대 높은 일영가 아이들과 같은 곳에서 뒹구는 것 보다는 훨씬 나았다. 그런 내가 주로 시간을 보낸 곳이 바로 바깥채에 딸린 작은 뒤뜰이었는데, 그곳은 다소 비좁긴 하지만 사람들 왕래가 거의 없는 곳이라 누구 눈치 볼일 없이 혼자 놀기에는 적당한 곳이었다. 어쩔 수 없이 선택한 장소이기는 하나 그곳에 대한 내 기억은 꽤나 정겹고, 또한 그리움으로 가득하다.
담장 아래 은행나무 두 그루가 나란히 심어져 있고 그 아래 철쭉이라든지 이름 모를 화초들이 비좁은 화단 틈틈이 채워져 있는 곳. 아침이면 새들이 날아와 나무 위에서 노래를 부르던 곳. 나는 그 작은 공간에서 애벌레나 개미 따위를 쫓으며 하루해를 보낸 기억이 많다. 그리고 언제부터인지는 모르지만 그곳에 나 아닌 또 다른 사람이 자연스럽게 섞여 있었다. 아침이면 은행나무에 찾아오는 새들처럼 언제부턴가 늘 그곳에 나타나던 사람. 그곳을 떠올릴 때면 자연스럽게 함께 떠오르는 얼굴. 그곳에 그가 있었다. 그의 목소리가 들린다.
“반디야.”
“.......”
“반디야!”
“아! 깜짝이야.”
“너 또 개미 따라다니고 있냐?”
“...... 예.”
“아이고, 넌 무슨 사내아이가 그렇게 데데하냐? 사내라면 좀 다른 것에 관심을 가져야지.”
“.......”
“안되겠다. 너하고 같이 곤충 연구하는 것도 오늘로 끝을 내야지. 너에게 보여주고 싶은 것이 있으니 그만두고 나를 따라 와 봐.”
“......?”
“뭐 해? 어서 따르지 않고.”
“저는 안채에는 이제 들어가지 못해요.”
그랬다. 그는 나와는 신분이 다른 사람이었다. 그런데도 그는 여느 다른 도련님들과는 달리 내게 무척 살갑게 굴며 나와 가까워지기 위해 노력했다. 언젠가 뒤뜰에서 혼자 놀고 있는 나를 발견한 이후로 어떤 호기심이 동한 것인지 날마다 나를 찾아와 이건 뭐냐, 저건 뭐냐 그가 모르는 벌레 이름들을 묻기도 하고, 내가 오랫동안 연구한 개미들의 조직과 계급, 생활방식에 대한 이야기를 들으며 감탄을 자아내기도 했다. 한데 오늘은 다 그만두고 저를 따라오라는 것이다. 그때 마침 뒤뜰에 있는 창고에서 보습을 손보고 있던 마름이 우리 대화를 듣고는 내게 크게 꾸중을 하였다.
“이 녀석! 도련님께서 따라오라면 당장 따를 것이지, 무슨 되도 않는 말을 하는 것이야?”
난데없는 불호령에 내가 움찔하는데 도련님은 불시지간 그에게 더 큰 목소리로 호통을 쳤다.
“이놈! 너야말로 지금 누구 앞에서 소리를 지르는 것이냐!?”
“아니, 저는 그저 저 녀석이 도련님께 버릇없이 굴기에......”
“네가 뭔데 내 아우에게 그따위 소리를 지껄인단 말이냐? 한번 혼이 나 볼 테야?”
“!? 죄송합니다, 도련님!”
마름이라 하면 가문 내 모든 미손들을 관리, 감독하는 자로 우리네에게는 무섭기가 범보다 더한 사람일진대 그런 그에게 한참 나이어린 그가 호통을 치는 모습이 어린 내게는 그렇게 멋있어 보일 수가 없었다. 그는 나를 안채 깊숙한 곳까지 안내하면서 안채에 위치한 여러 장소들을 소개해 주었는데, 그중에서도 그는 온갖 서적이 잔뜩 쌓여있는 책방과 신심을 단련하는 곳 위주로 내게 알려주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그의 방에 도착해서는 내게 이런 말을 해주었다.
“보았니? 이것이 일상적인 나모들의 삶이야. 하루하루 배움에 힘쓰는 것이....... 어제와 다른 오늘, 오늘과 다른 내일. 이것이 거의 모든 나모들이 지향하는 지침이지. 지금까지는 내가 너를 쫓아다니며 너의 삶을 배워보았으니 이제부터는 네가 나를 따라다니며 내 삶을 한번 배워보지 않을래?”
그러더니 그는 책상 앞에 앉아 담담한 목소리로 책을 읽어 내려갔다. 별 다른 말은 없었다. 나는 다만 그 앞에 앉아 가만히 그를 바라보고 있었을 뿐이다. 마치 그가 처음에 내게 그러했던 것처럼 말이다. 그날 이후로 나는 그를 따라다니면서 그의 옆자리를 지키게 되었다. 그때 나는 나이가 어렸기에 그것이 엄청난 특혜라는 사실을 알지 못했다. 내가 선택받은 소수의 미손이 되었다는 사실을 나는 가족들이 내게 해주는 이야기를 통해 차츰 알아갔다. 누이는,
“너는 정말 운이 좋은 줄 알아야 해. 대체 어떻게 도련님 눈에 든 것이니?”
하며 나를 부러워했고 어버이는,
“도련님을 모시는데 조금도 소홀함이 있어선 안 된다. 어버이를 대하는 것처럼 항상 정성을 다하려무나. 알았느냐?”
하며 내게 신신당부를 하셨다. 수펄이라는 말이 있다. 본래 수컷 꿀벌을 뜻하는 말이나 미손들 사이에서는 나모가 자재의 눈에 들어 힘든 일에서 벗어난 미손들을 속되게 이르는 말. 그때부터 나는 곁 식구들에게 자주 그 소리를 들으며 자랐다. 정식 명칭은 예담이라 하여 동무가 필요한 나모가의 어린 자손들에게 말동무도 되어주고, 가댁질 하는 재미도 알려주는 친근한 존재. 하나 그 근본은 결국 곁에서 시중드는 미손에 불과한, 오직 나모가 자손들의 외로움을 달래기 위해 만들어진 같잖은 소임.
나도 머리가 여물수록 사람들이 나를 부를 때 쓰는 예담이니 수펄이니 하는 말뜻을 인지해 갔지만, 사실 그와 내 관계는 단순히 도련님과 예담이라는 두 단어로 풀이되기에는 많은 무리가 있었다.
“이제 글은 좀 읽고 쓰겠니?”
“네. 이제 많이 늘었어요.”
“서둘러 익혀야 할 거야. 기본을 다 익히면 또 약법이란 것이 있으니 그것까지 떼어야 어느 정도 책을 읽는데 무리가 없을 거야.”
“네.”
“그런데 지금 내 방에 우리 둘 말고 혹 다른 사람이 있니?”
“아니요?”
“한데 왜 계속 말을 높이는 거야? 약속했잖아. 우리 둘만 있을 때는 너나들이하기로.......”
“하지만......”
“하지만 뭐?”
“어머니께서 그건 있을 수 없는 일이라 하셨어요. 그리고 저 또한 그래선 안 된다고 알고 있고요.”
피식
“그건 하나만 알고 둘은 모르는 소리다. 너 지난번에 내게 나처럼 되고 싶다 말한 적이 있지?”
“그야......”
“그렇다면 반디야. 그렇게 되기 위해선 지금 네 마음가짐이 중요한 거야. 너와 나를 구분하는 신분의 법도, 그것도 결국 사람이 만든 것일진대 이 나라의 잇산은 처음부터 잇산이었고, 이 나라에 존재하는 숱한 나모귀족들 또한 처음부터 그런 높은 자리에 있었겠니? 그들은 다만 준비가 되어 있었고, 그렇기에 남들보다 먼저 기회를 잡을 수 있었던 것뿐이야. 그리고 반디야. 이건 네게만 말해주는 건데 앞으로 세상은 더욱 빠르게 변할 거야. 머지않아 새로운 세상이 올 거라고....... 그때가 되면 신분보다는 사람의 능력이 우선시되는 세상이 될 것이고, 본인이 노력하기에 따라 누구라도 높은 자리에 오를 수 있게 될 거야. 정말 그런 세상이 올 거야. 그러니까 반디야. 너는 준비를 하고 있어. 새로운 세상이 왔을 때 그러한 세상이 필요로 하는 인재가 되어 있으란 말이야. 그러기 위해서 가장 중요한 것이 무언지 아니?”
“...... 모르겠어요.”
“그것은 믿음이야. 나는 귀하다. 나는 귀한 사람이다. 그런 마음가짐을 항상 지니고 있어야 해. 설령 다른 사람들이 너를 무시하고 깔보더라도 너 스스로 네가 귀한 사람임을 잊지 않는다면, 네가 스스로를 믿고 포기하지 않는다면 너는 언제고 정말 그런 사람이 되어 있을 거야. 본래 하늘학의 원본 첫 장에는 이런 경구가 기록되어 있었대. 사람의 높고 낮음은 그 사람의 신분이나 직위에서 비롯되는 것이 아니요, 그것은 오직 그 사람이 가진 품새와 마음가짐에서 비롯되는 것이라고....... 그러니까 반디야. 너는 네 스스로를 낮추지 말고 살아. 너 스스로를 존중하면서, 네가 귀한 사람임을 잊지 말고....... 내가 이제껏 보아온 너의 모습은 나모가의 적장자인 나보다 못한 것이 하나도 없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