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럼 우리 서로한테 고백한건가요?”
은서가 어색한 웃음을 지으며 머리를 만지며 말했다.
“그런것 같은데요?”
원하도 어색한 웃음을 지으며 잔에 맥주를 따랐다.
“짠 할래요?”
원하가 잔을 들며 말했다. 은서도 잔을 들어 일방적으로 원하의 잔에 자신의 잔을 부딛힌 후 얼른 맥주를 들이켰다. 원하도 그런 은서를 보고 맥주를 원샷으로 들이켰다.
“술 시원하게 드시네요.”
“원하씨두요. 맘에 들어요.”
두사람은 서로를 마주보고 웃었다. 두사람의 볼이 붉어진건 맥주에 담겨있는 알코올성분 때문에 그런것인지 아니면 심장의 간질거림때문에 그런것인지는 알 수 없었다. 그러던 중 보라색머리를 한 직원이 음식을 가지고 두사람의 테이블로 다가왔다.
“실례하겠습니다.”
보라색머리의 직원은 조심스럽게 음식을 테이블에 놓고 약간의 미소를 지어보이고 자리를 떠났다. 직원이 자리를 뜨자 은서가 음식을 그릇에 덜며 원하에게 물었다.
“저 직원분은 남자분일까요, 여자분일까요?”
“글쎄요. 잘 모르겠네요. 왜요? 궁금해요?”
원하는 손으로 면도가 잘되어있는 아랫턱을 쓰다듬으며 말했다.
“음… 조금요? 보라색머리 저렇게 잘어울리는 사람 처음봤거든요.”
은서는 약간의 짖궂은 표정으로 말했다.
“흠.. 그럼 직원분한테 직접 물어볼수는 없으니까 보라색머리가 잘어울리는 멋있는 사람이라고 생각할까요. 우리?”
“음.. 저도 우리가 그러는게 좋을것같아요. 음식이 식기전에 얼른 먹어요!”
“그럴까요. 우리?”
은서는 상큼한 미소를 지어보이고 파스타를 돌돌말아 입에 넣었다.
“어때요? 맛있어요?”
“너무요! 원하씨도 얼른 먹어요!”
두사람은 한참을 음식에만 집중하다 그릇의 바닥이 보일때 쯤 입을 뗐다.
“큼! 우리 너무 밥만 먹은거 아니에요?”
원하가 은서가 맥주잔에 맥주를 따르며 말했다.
“원래 사람은 한가지 일에 집중할 때 제일 멋있는법이죠.”
“아, 맞죠! 은서씨 은근 웃겨요. 저.. 술 더먹고 싶은데 펍같은곳가서 더 마실래요? 피곤하시면 집에 가셔도되요.”
“저도 술좋아해요! 가요 가! 근데 여기서 한병만 더 마시고 가면 안될까요?”
“당연히 되죠! 여기요~”
보라색머리가 잘어울리는 직원이 맥주를 들고 다가왔다.
은서가 놀라며 물었다.
“저희가 맥주 시킬지 어떻게 아셨어요?”
“아, 서비스로 드리려했는데 시키시려고 하신거였어요?”
직원이 능청맞은 웃음을 지어보였다. 정말 보라색처럼 빠져드는 웃음이었다.
“감사합니다.”
원하와 은서가 동시에 말했다. 그리고 마주보며 어떻게 동시에 말할 수가 있냐는 듯이 꺄르르 웃음을 터뜨렸다.
“즐거운시간 보내세요.”
보라색머리가 잘어울리는 그들은 사랑스러운 그들을 뒤로 하고 다시 자신의 자리로 돌아갔다. 그리고 생각했다.
'예쁜사람들.'
은서와 원하는 다시한번 잔을 부딛히고 맥주를 마셨다. 안주거리는 떨어졌지만 그게 불만인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취기가 올라 자신이 서로가 더 솔직해졌으면 하는 마음 뿐이었다. 잠시 서로에게서 눈을 떼고 밖을 바라보니 비가 내리고 있었다.
“어? 비온다!”
은서의 눈이 동그랗게 커졌다.
“헐! 우산있어요?”
“아뇨, 없어요. 오늘 비온다는 소식없었는데..”
원하가 곤란해하며 머리를 긁적였다. 그 사이에 은서는 남아있는 맥주를 정확히 반으로 나눠 자신의 잔과 원하의 잔에 따랐다.
“마셔요!”
원하는 순순히 은서의 말을 들었다. 술을 다 마시자 은서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화장실 가시게요?”
“아뇨! 우리 이만 밖으로 나가요!”
“네? 밖이요? 지금 비오는데?”
“네! 비오니까 나가요!”
“은서씨 취한거 아니죠?”
“음.. 잘모르겠지만 확실한거는 내가 기분이 엄청 좋다는거에요. 기분이 좋으면 나가야죠! 직장인이 이렇게 들뜬다는거 쉽지않죠. 이밤이 지나고 내일밤은 출근의 악몽으로 불행하게 보낼 직장인을 위해 나갑시다!”
은서는 말을 마치고 가방을 들고 문앞쪽으로 걸어나갔다. 원하도 황급히 가방을 들고 카운터로 갔다.
“계산할게요.”
“맛있는 식사 되셨나요?”
보라색 머리를 한직원이 차분하게 물었다.
“엄청요.”
원하가 계산을 마치고 카드를 받고 은서가 있는쪽으로 가려는데 직원이 갑자기 팔을 붙잡았다.
“왜.. 왜 그러세요..?”
“아.. 죄송해요.”
직원이 팔을 황급히 놓았다. 그리고 그에게 향수를 쥐어줬다.
“응? 이걸 왜 저한테..?이제 곧 필요하게 되실거에요.”
직원이 의미심장한 미소를 지어보였다.
“필요하게 될거라구요?”
원하가 의심의 눈빛을 보냈다.
“키스하게 될거에요. 두사람, 그런데 좋은향 마시면서 해야죠. 가져가요. 뿌려요. 키스를 위해서!”
원하는 직원의 말에 그저 웃기만하고 정중히 인사하며 향수를 은은하게 뿌리면서 문앞에 서있는 키스하고 싶은 사랑스러운 그녀에게 달려갔다. 그녀는 그의 손목을 확잡고 레스토랑 문을 열어 빗속으로 들어갔다. 그리고 그 둘은 빗속을 달렸다. 레스토랑이 서서히 멀어졌고 골목사이에서 주차된 차들이 비를 맞으며 두 남녀를 바라봤다. 한참을 달리던 은서가 멈춰서서 원하의 손목을 놓아줬다. 그리고 숨결을 가다듬고 말했다.
“키스하고 싶어요!”
원하는 숨을 고르다가 저절로 숨이 멈춰섰다. 기침이 나왔다.
“콜록…! 네?! 뭐라구요?”
“원하씨가 너무 아름다워서 키스하고 싶다구요! 우리 지금 키스안하기에는 너무 아까워요!”
원하는 레스토랑 직원의 말이 생각났다. 곧 키스를 하게 될거라는 그사람의 말. 이럴줄 알았으면 향수를 뿌리고 올걸 이라며 후회를 잠시했지만 눈 앞에 있는 아름다운 그녀를 보니 후회는 금방 잊혀졌다. 그러고서는 젖어있는 은서의 머리카락을 살며시 쓰다듬고 얼굴은 두손으로 감쌌다. 그리고 자신의 입술로 그녀의 입술을 감쌌다. 입을 맞추는 동시에 두사람은 기분나쁘지 않은 어지러움을 느꼈다. 특히 은서는 입맞춤이 처음이어서 그런지 손을 허둥댔다. 원하는 눈을 감고 있음에도 그녀의 손위치를 눈치챘는지 은서의 얼굴에서 손을 떼고 은서의 손깍지를 꼈다. 비를 맞아서 체온이 낮아진 탓인지 은서의 손끝은 차가웠다. 원하는 은서의 입술에서 자신의 입술을 떼어냈다. 그리고 빗물에 젖어있는 은서의 얼굴을 아주 부드럽게 쓰다듬었다. 둘의 모습은 너무 아름다웠다.
“은서씨, 저는 구원하이고 스물여덟이에요. 직업은 별기업 경영팀에서 일하고 있구요. 친구는 많이 없는 편이에요. 지금은 이동네에서 자취하고 있구요. 취미는 그나마 있는 친구들이랑 술마시는거에요. 키는 179센치구요. O형이에요. 그리고 은서씨한테 반했어요. 내가 지금 최대한 말할 수 있는내신상정보에요. 날 좋아해줄 수 있겠어요?”
은서는 원하의 말을 듣고 빗물의 젖은 그의 얼굴을 부드럽게 쓰다듬으며 말했다.
“원하씨! 저는 박은서구요. 스물다섯살이에요. 드라마작가지망생이구요. 생계를 위해 카페에서 일하고 있어요. 제가 정말 사랑하는 친구는 두명이에요. 저도 술마시는 거 좋아하고 음악듣는일도 사랑해요. 강아지도 사랑해요. 원하씨한테는 반해있는 상태구요. 이게 제가 말할 수 있는 저에요. 저한테 반했다니 당신이 너무 사랑스러워요!”
은서는 말을 마치고 원하가 미소 지을틈도 주지않고 다시한번 그의 입술에 가볍게 입을 맞췄다.
“우리 이제 어떻게 되는거에요?”
“은서씨, 그럼 나랑 사귀어 줄래요? 서로 알아가는 시간이 너무 부족한것 같긴하지만 지금 사귀자고 안하면 난 진짜…”
“사귀어요! 우리 사귀어요! 이제 알아가면 되요! 우린 서로를 구체적으로 알아가고 사랑할 수 있을것 같아요. 좋아해요!”
은서는 빗소리가 자신의 목소리를 묻을거라 생각했는지 유독 목소리를 높였다. 큰 목소리는 원하의 귀를 지나 혈관을 타고 심장과 뇌에 박혔다.
'좋아해요.’
마음속으로는 좋아한다는 말을 그녀에게 쏟아부어내고 싶었지만 억제했다.
원하는 은서의 차가워진 손을 붙잡고 집방향쪽으로 걸음을 옮겼다.
“근데, 집이 나랑 같은방향이에요? 은서씨?”
“아까 그 카페근처 말하는 거에요?”
“네.”
“네, 그쪽이에요. 원하.. 아니 오빠는요?”
예상치못한 오빠라는 말에 원하의 입이 귀에 걸릴듯했다.
“나두요.”
“우리 이제 집가는거에요?”
“그래야할것 같아요 더 놀고 싶긴한데 은서씨 손이 너무 차가워서 안될것 같아요. 비도 오고 얼른 집가서 씻고 쉬어야 감기안걸려요.”
“그래요. 오늘은 말을 듣기로 하죠.”
비가 내렸지만 오늘 사랑에 빠진 두남녀에게는 큰문제가 되지 않았다. 오히려 특수적인 효과라는 느낌을 받기까지해 오히려 비가 더 좋았다. 단지 원하의 곱슬이 더심해진것과 은서의 화장이 조슴씩 지워지는것만 뺀다면? 그렇게 비를 맞으며 걷다가 집에 도착하게 되었다.
“이제 다왔다.”
“그렇네요. 저 건물이에요?”
“네, 오빠는 저기 건물이에요?”
“오, 어떻게 알았지? 히히”
“헤헤. 이제 들어가봐요. 어.. 내일 점심에 시간되요?”
“네, 먼저 들어가요. 얘기를 더하고싶은데 비가 너무 많이와서 안되겠어요.”
“네. 연락할게요.”
“들어가요!”
두 남녀는 그렇게 각자의 집으로 돌아갔다. 그저 서로가 감기에 걸리지 안았으면 하는 마음뿐이었다.
*은서의 집
“꺄아아아아아아악! 이게 말이되냐?? 이게 말이되냐고!”
은서는 오늘 하루를 도저히 믿을 수가 없어 비명만 질러댔다. 옆집과 아랫집 등 층간소음은 전혀 신경쓰지 않는듯했다. 아마 옆집사람은 주먹 불끈 쥐고 분노를 억제하고 있었을지도 모른다.
“키스했다..”
은서는 본인이 원하와 키스한것이 믿겨지지 않는지 머리에서 빗물이 뚝뚝 떯어지는 것도 모르고 화장대 앞에서 거울을 보며 입술을 만지작 거렸다. 그러고는 얼굴이 붉어졌는데 모습이 마치 물에젖은 장미같았다.
'띠리링, 띠리링'
은서의 핸드폰에서 벨이 울렸다.
“여보세요?”
“여보세요? 은서씨! 뭐하고 있었어요?”
“아, 저..는.. 그냥 그냥 있었어요.”
은서는 키스한 사실이 믿기지 않아 소리지르고 있었다고는 말을 못하겠는지 말을 더듬거렸다.
“씻었어요?”
“아뇨, 아직요. 원하씨는요?”
“어, 저두요. 비맞아서 찝찝하죠? 그러면 씻고 다시전화해도 되요.”
“아니에요! 해요. 전화..”
은서와 원하의 휴대폰 사이로 둘의 설레임이 교류했다.
“그럴까요? 윌 내일 점심은 뭐먹을까요? 술먹어서 일찍은 못일어나겠죠? 음.. 한 두시쯤에 만나면 은서씨 배고프려나? 오늘은 양식먹었으니까 내일은 한식 먹을래요?”
“히히, 원하씨 한가지씩 천천히 말해요. 뭐가 그렇게 급해요.”
은서가 사랑스러운 웃음을 흘렸다. 원하는 그 웃음소리를 듣고 달려가서 또 보고싶다고 생각했다.
“아.. 얼른보고싶다…”
“잉? 오글거려요!”
은서는 낯간지러운지 귀까지 빨개졌다.
“어? 은서씨는 나 안보고 싶어요?”
우너하가 다소 섭섭하다는 말투로 말했다.
“아니.. 보고싶긴 한데.. 아니.. 난쫌 이런거 부끄럽다고 해야하나?”
“풉..! 그럼 자주해야겠다. 적응되게!”
“원하씨 이제 얼른 씻고 자요. 감기걸리겠어요.”
“아.. 알겠어요.”
원하가 아쉽다는듯 말을 느릿하게 질질끌었다.
“그럼 우리 내일 두시까지 커피자리에서 봐요!”
“알겠어요.”
“잘자요. 보고싶어요.”
은서는 말을 마치고 원하의 숨결이 들릴틈새도 없이 전화를 얼른 끊고 배개로 핸드폰을 집어던졌다. 곧이어 자신도 몸을 침대에 던지려다 빗물에 젖어 그것만은 자제하기로 하고 욕실로 들어갔다. 욕실로 들어가 노래를 흥얼거리며 샤워를 했다. 아까의 어지러움이 아직 가시지 않은것인지 머리에 샴푸칠을 하다 멍을 때리고 몸을 행구다가도 멍을 때리고 이후에도 몇번을 더 멍을 때리다 한시간만에 샤워를 마쳤다. 하긴 첫연애에 첫키스라면 충분히 저럴만도 할것같다.
은서는 침대로 들어가 배개를 원하로 생각하는지 틈새도 없이 꼭 끌어안고 깊은 잠에 들었다. 꿈에서도 원하를 또 만날 수 있기를 바라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