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이 되네.. '
이번에도 바람에 약간 흩날리는 원하의 곱슬머리는 원하를 더 매력적으로 보이게 했고 흰셔츠를 청바지에 넣어 입은 모습은 청량해 보였다.
“은서씨!”
원하가 은서를 발견하고 손을 크게 휘저었다.
“기다렸어요?”
“아뇨. 별로 안기다렸어요.”
“근데 신기하지 않아요? “
“뭐가요?”
“처음본사람, 아니, 모르는사람옷에 커피쏟았는데 친구하자해서 친구되고 이렇게 같이 어디간다는 자체가 신기하지 않아요?”
“그런가?”
원하는 머리를 긁적이며 말했다.
“원하씨한테는 이런일 종종있는일이에요?”
“아뇨, 저도 처음이에요. 하하 우리가 만나게 된 과정이 조금 독특하긴하지만 좋은데요? 영화나 드라마같지 않아요? 진짜 오늘 날씨도 그렇고 은서씨도 그렇고 영화같네요.”
“음.. 맞아요. 영화.. 영화좋네요.”
“그럼 우리 영화볼래요? 오늘 시간 괜찮아요?”
은서는 손으로 입을 막고 한참을 웃었다.
“왜웃어요? 나 웃긴말했나?”
원하도 멋쩍게 따라웃으며 말했다.
“아뇨, 아니 시간 괜찮냐는 말을 너무 빨리한거 아니에요? 영화다보고 물어보시지 그러셨어요 아하하”
“아.. 그런가요? 그럼 시간괜찮다고 이해하면 되는거죠?”
“네! 저오늘 시간많아요! 원하씨 직장인이에요?”
“네. 그렇죠. 은서씨는요?”
“저도에요. 그럼 우리 오늘 각자하고 싶은거 다할래요?”
“하! 좋아요! 혼자여서 못하고 시간없어서 못했던거 다합시다!”
원하가 잇몸까지 드러내며 활짝웃었다.
그러고서는 둘은 몇분동안을 말없이 영화관을 향해 걸어갔다.
“그런데 은서씨는 내가 무슨일 하는지 안궁금해요?”
“음.. 일단 오늘은 안궁금할래요.”
“안궁금할거라는 말은 궁금하지만 억제하겠다는 건가요?”
“네. 안물어볼거에요. 원하씨는 내가 무슨일하는지 궁금해요?”
“어.. 네.. 근데 은서씨가 안궁금할거라니까 저도 오늘은 안궁금할래요.”
두사람은 피식거리며 웃었다.
“그러면 은서씨 영화 뭐좋아하는지는 궁금한데 말해줄래요?”
“판타지 좋아해요. 어바웃타임이나 나의소녀시대같은?”
은서가 머리카락을 손빗질하며 말했다.
“어바웃타임이랑 나의소녀시대가 판타지요? 레이첼 맥아담스 나오는 그 어바웃타임 말하는거 맞죠?”
원하가 이해가 안된다는듯이 고개를 오른쪽으로 45도쯤 기울이며 말했다.
“네! 레이첼 맥아담스랑 도널 글리슨이 주연인 어바웃타임 그거 맞아요. 그리고 나의소녀시대의 주연은..”
“왕대륙이랑 송운화! 맞죠?!”
“네! 맞아요. 보셨어요?”
“그럼요! 봤죠! 그런데 어떻게 그 두개가 판타지에요? 멜로 영화아닌가?”
원하의 당황스러워하는 모습에 은서는 피식 웃었다.
“맞아요. 근데 저에겐 로맨스랑 멜로가 판타지에요. 현실에서 그런 사랑이야기 못들어봤어요. 자신의 인생을 걸고 사랑하고 또 자기들의 세계를 만들고 그안에서 행복하게 살잖아요. 서로다른 사람이 만나 공통점을 찾아 새로운 세계를 만들어 도란도란 사랑하는 일은 판타지 아닌가요?“
“아.. 그렇네요.”
“원하씨는 해봤어요? 그런 사랑?”
“음..은서씨가 말하는 그런사랑.. 안해봤어요. 제연애는 절절하지도 않고 차갑지도 않고 그냥 미지근했어요. 상대나 나나. 그래서 낯설어요. 은서씨가 말한 그런 사랑방식. 가끔 헷갈릴 때가 있어요.”
“뭐가요?”
은서가 고개를 사십오도 기울이며 궁금하다는 듯이 말했다.
“영화가 현실을 반영한걸까. 현실이 영화를 반영한걸까.”
“영화가 현실을 반영했죠. 근데 음.. 원하씨 말도 맞는것 같아요. 영화를 따라하기도 하죠. 현실에서. 그들이 입는옷, 행동, 말투같은거... 그렇네요. 현실도 영화속 삶을 반영하기는 하네요. 그쵸?”
“맞아요. 어? 영화관 도착했는데.. 어떻게 할래요?”
“뭘.. 어떻게 해요?”
“어.. 그러니까.. 무슨영화를 볼거냐고 물어본거에요.”
“바로 볼 수 있는걸봐요.”
“장르상관없이?”
“네. 장르 상관없이”
“오케이! 갑시다!”
“비장하네요?”
“공포영화보게 될까봐 긴장한거에요.”
“그럼 공포영화 제외! 가죠!”
은서는 말이 끄나기 무섭게 무인매표소로 달려갔다. 뛰어가는 은서의 뒷모습은 머리카락이 굴곡이 지며 흔들렸고 발목까지 오는 롱스커트도 바람에 살랑댔다. 롱스커트가 살랑이며 나오는 바람은 다시 한번 원하의 심장을 간질거리기에 충분했다.
'저사람의 세계는 알록달것같아.' 라고 원하는 생각하며 은서의 뒤를 따라갔다. 매표소로 갔더니 은서는 이미 표를 구입하고 표를 뒤로 숨기고 있었다.
“무슨영화에요?”
“비밀이에요!”
은서는 장난기 가득 머금은 얼굴로 미소를 지었다.
“네? 그런게 어딨어요! 알려줘요.”
“아니요. 싫어요. 영화값은 내가 낼게요. 대신 원하씨는 들어가기 전까지 무슨영화인지 모르는걸로 하죠? 어때요?”
“음.. 그래요. 근데 은서씨 독특한거 알죠?”
“당연하죠! 원하씨도 만만치 않은거 알죠?”
“당연하죠! 뭐 안먹을거죠?”
“당연하죠! 지금 들어가야하거든요. 근데 원하씨 뭐드시고 싶으면 팝콘같은거 사드셔도 되요. 광고시간동안에 팝콘 살시간정도는 충분하거든요.”
“아니에요. 저는 영화보면서 뭐안먹어요. 집중이 잘안되서.”
“그럼 들어갑시다!”
은서와 원하는 영화관에 들어갔다. 원하는 자리에 앉았지만 스커트의 날개짓에 의한 바람때문에 심장이 간질거려 영화에 집중하지 못할것같다고 예상했다.
영화는 여자와 남자의 사랑이야기였다. 영화가 끝나면 은서가 '우리는 판타지장르를 봤네요' 라고 할것같았다. 영화 속 두남녀는 두사람만의 세계를 만들어 그안에서 먹고 자고 싸우고 멍때리고 일하며 살았다. 영화가 15세 관람가였는지 스킨십은 키스까지만 했다. 영화속 두남녀는 키스를 마치고 카페주인 밖에 없는 카페에 들어가 가장 아늑한 의자에 나란히 앉아 커피와 아이스크림을 시키고 그걸 나눠먹으며 대화를 나눴다.
-나 아침에 태어난사람같아.
-너 밤 열한시 사십팔분에 태어났다며.
-맞아. 근데 너랑 입을 맞추고 나니까 새벽이슬이 떨어지는 그 시간에 태어난 기분이야. 상쾌해.
-그 이유를 알려줄까?
-뭔데?
-우리가 소주를 먹고 키스를 해서그래.
-재미없어.
-나도 그렇게 생각해. 미안. 근데 너와의 입맞춤은 나를 이렇게 쓸데없는 농담을 하는사람으로 바꿔버렸어.
-칭찬이야 욕이야?
여자주인공은 왼쪽손으로 턱을 괴며 남자주인공을 바라보며 말했다.
-칭찬.
-칭찬인 이유를 구체적으로 알려주겠어?
-난 원래 농담을 안하는 사람이야. 하지만 난 재미도없는걸 알지만 농담을 하려고 노력하잖아. 원래의 나와는 다르게 반대로 변했지 난. 넌 날 변화시켰어. 난 변화를 사랑해.
남자주인공은 오른손으로 턱을 괴며 말했다.
-나보다 더?
-너보다 덜.
-좋아.
-사랑해.
-난 사랑해보다 더.
영화를 보면서 원하는 은서의 모습을 살며시 바라보았다. 은서는 영화가 재밌는지 반짝이는 눈으로 미동도 없이 스크린만을 바라보고 있었다. 영화를 보고 있는데 은서가 원하의 팔을 툭툭건드렸다. 원하가 두눈을 크게 뜨며 '왜요?'라고 표정으로 말했다. 그러자 은서는 원호의 머리를 자신쪽으로 가져와 입을 귀쪽으로 갖다댔다.
“영화보는데 방해해서 미안한데 이타이밍에 영화제목을 말해주고 싶어서요.! 제목은 너는 아름다워에요. 대답은 사양할게요. 영화 재밌게 봐요.”
은서는 아무일 없다는 듯이 다시 반짝이는 눈을 스크린에 고정하고 미동도 없는 자세로 돌아갔다. 원하의 심장이 다시 간질거렸다. 아까보다 더 심하게 얼굴이 살짝 붉어졌는데 영화관이 어두워서 다행이라고 원하는 생각했다.
영화가 끝나자 은서는 기지개를 피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원하씨, 영화 어땠어요?”
“재밌었어요. 제목도 좋았구요. 너는 아름다워. 좋아요. 근데 배안고파요? 난오늘 한끼도 못먹어서..”
“저두 오늘 한끼도 못먹었어요. 한끼도 못먹었으니까 몸무게가 오백그람은 줄어들어있겠죠?”
“아뇨. 오천그람은 줄어들었을걸요? 오천그람 다시 채우러 갑시다!”
“밥은 원하씨가 사는거?”
“그래요. 이번엔 제가 무작정 데려가도 되는거죠?”
“지금 저 따라하는거에요?”
“네 저 은서씨 따라하는거에요.”
“헤헤, 좋은자세에요. 가요. ”
은서와 원하는 서로를 바라보며 웃었다.
“그런데 동네 온지 얼마 안되셨다면서 근처 식당은 아나봐요?”
“몰라요.”
“네? “
“그냥 무작정 들어가는거에요. 무작정 들어갔는데 맛있으면 좋고 맛없으면 조금 먹고 나가서 다른거 먹고 하면 되니까.”
“오! 좋아요! 사실 저도 이동네 산지 얼마 안됬어요.”
“아! 그래요?”
두사람은 아무말 없이 한참을 걸었다. 정적이 흘렀지만 숨막혀 기절하는 사람은 없었다. 정적이 때로는 아름다운 것이구나 라는 생각을 두사람중 한사람은 생각하고 있었고 한사람은 어떤 것을 먹어야 좋을지 고민하고 있었다.
“우리 저기로 들어갈까요?”
원하가 먼저 정적을 깼다. 그가 말하는 '저기'는 중세유럽풍인 인테리어로 시선을 압도하는 이태리레스토랑이었다.
“좋아요.”
은서는 원하가 문열어주는 매너를 보여줄 틈도 없이 문을 얼른 열고 들어갔다.
원하는 은서에게 짧은 시간에 많은 감정을 느끼고 있는 자신이 조금 당황스러웠다. 당황스러웠지만 표내지 않고 자리에 앉아 메뉴판을 들여다봤다.
“은서씨 맥주 좋아해요?”
은서는 입이 귀에걸리며 말했다.
“너무요.”
“여기 주문할게요!”
보라색 머리칼을 하고 줄이 달려있는 안경과 피어싱의 조화가 참잘어울리는 레스토랑직원이 두사람의 테이블로 다가왔다.
“네~ 주문받겠습니다.”
“로제 빠빠델레 파스타, 등심스테이크, 데일리 샐러드 이렇게 주세요. 아, 맥주도요.”
“네~ 로제 빠빠델레 파스타, 등심스테이크, 데일리 샐러드요. 스테이크 굽기는 어느정도로 해드릴까요?”
“미듐으로 주세요.”
“맥주는 칭따오, 스텔라, 카스 있는데 뭘로 드릴까요?”
“칭따오요? 양식집에?”
“네, 사장님 맥주취향이 칭따오여서 칭따오도 갖다놓으셨더라구요. 칭따오도 양식이랑 꽤 잘어울려요.”
“신기하네요. 칭따오주세요.”
“네~”
직원이 가고 은서와 원하는 서로의 눈을 바라봤다. 은서는 만약 이게 영화라면 자신이 여자주인공이라면 이사람에게 '좋아해요.'라고 고백했을지도 모르겠다고 생각했지만 자신은 현실에 살고 있으니 괜히 맛있는음식먹고 체하지말자 라고 타이르며 고백은 하지 않기로 했다.
아까 그직원이 맥주를 가져와 병따개로 맥주를 따는데 뚜껑이 공중에서 정확히 세바퀴반으로 돌고 테이블 중앙으로 떨어졌다.
“맥주 나왔습니다.”
직원은 놀랍지도 않은지 아니면 자신의 개인기인건지 태연하게 병뚜껑을 앞치마 주머니에 넣었다.
“네, 감사합니다.”
은서는 직원의 얼굴을 바라보며 인사를 했다. 원하는 은서를 보며 자꾸만 근질거리는 심장을 더이상은 주체할 수 없을 것같았다. 원하의 얼굴이 자꾸 붉어지자 은서는 걱정어린 눈빛으로 원하를 바라봤다.
“저.. 원하씨? 왜이렇게 얼굴이 빨개요? 혹시 아까 아침에 젖은옷입고 있어서 감기기운든거 아니에요?”
원하는 자신의 심장이 이러다 터질수도 있을것같다는 생각이들어 맥주부터 한잔 쭉 들이켰다. 그리고 그는 말했다.
“미리 사과할게요. 부담스럽게 해서. 반한것같아요. 은서씨랑 눈이 마주치거나 옷자락이 스치거나 은서씨 목소리, 향기가 제게 들어올때마다 심장이 간질거려요. 이거 반한거 맞죠? 처음부터 이럴생각은 아니었어요. 반할계획없었는데..”
은서의 얼굴도 붉어졌다. 그리고 그녀는 말했다.
“좋아해요. 원하씨 아름다운 사람이거든요.”
그와 그녀의 공통점이 생겨났다. 앞에 있는 사람에게 반했다는 것. 이게 그들의 첫번째 공통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