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을 뜨자마자 누가 나를 흔드는 느낌을 받았다. 그것보다도 내가 꾼 꿈이 더 문제였다. 나일지도 모르는 사람이 용과 주스를 마시고 온몸에 발작이 나면서 쓰러졌다. 내가 어제 먹으려다 떨어트린 그 용과 말이다.
금방이라도 헛구역질을 할 것 같았다. 꿈에서 온 고통이 고스란히 느껴지는 듯했다. 나는 이를 악물고 애써 몸 안부터 나오는 고통을 참기 시작했다. 차라리 꿈처럼 기절이라도 했으면 좋을 것만 같았다. 최소한 이 고통이 맨정신으로 온전히 느껴지진 않으니 말이다.
숨을 쉬어보지만 돌아오는 건 속에서부터 올라오는 고통뿐이었다. 숨만 쉬어도 위에서 위액이 입까지 올라왔다. 그것을 고통스럽게 다시 삼켰다. 몇 초 지나지 않아 다시 위액이 올라왔다. 다시 삼키려 해도 계속된 흔들거림으로 인해 입 밖으로 나오고 말았다. 나는 몸을 앞으로 빼며 위액을 뱉었다. 위액은 고물상 바닥에 떨어졌다. 후두둑 떨어지는 소리가 너무나 듣기 싫었다.
위액을 뱉어내고 겨우 숨을 쉬었다. 위액이라도 뱉어내니 속이 조금 괜찮아졌다.
고개를 돌려 나를 흔든 것이 무엇인지 보았다. 역시, 내 옆에 있던 로봇이었다. 로봇은 끝까지 내 팔을 잡고 흔들고 있었다. 나는 반쯤 신경질이 나 있는 상태에서 말했다.
“뭐야?”
나의 말에 로봇은 얼굴에 글자를 띄웠다.
‘지금 저기 쓰러져 있던 사람이 일어났어.’
로봇이 띄운 글자를 반도 읽지 못한 채로 한승현이 쓰러트린 사람의 방향으로 몸을 돌렸다.
그 사람은 머리에 손을 올리고는 주위를 두리번거렸다. 지금 자신이 어디에 있는지도 모르는 것 같았다. 그 사람이 어떤 표정인지는 알 수가 없었다. 이젠 주위는 어두워졌고, 하늘에는 해 대신 달이 떠 있었기 때문이다.
나는 숨을 죽이고 그 사람을 향해 시선을 고정했다. 정말 쥐 죽은 듯이, 숨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내가 생각하기에 숨을 쉬지 않은 것도 같았다.
계속 저 사람을 본다 한들 내가 지금 고물상을 나갈 수도 있는 건 아니다. 그래도 저 사람 또한 시위단일 테니 한승현 대신 패고 싶었다. 로봇은 내 마음을 읽지 못하기에 나를 가만히 두었다. 마치 그러라는 것 같았다.
지금 나가서 저 사람을 패고 싶은 마음에 몸이 움찔했을 때, 고물상 문이 절그럭 소리를 내더니 조금씩 문이 열리기 시작했다. 나는 결국 제자리에 있기로 한다. 문이 열리고 누군가가 고물상 안쪽으로 들어왔다.
“그래서, 그 기계를 찾긴 찾았냐?”
익숙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젠장, 또 한승현이다. 한승현은 두 손을 코트 주머니에 넣은 후 고물상 안으로 들어갔다.
“말해.”
한승현이 말했다.
“찾았어, 못 찾았어?”
“그, 그게…….”
“찾았냐고 못 찾았냐고!”
한승현은 목이 쉴 듯이 소리쳤다. 한승현은 조금씩 날 고물상으로 밀어 넣은 부하 쪽으로 다가갔다. 부하는 한승현을 보며 뒤로 물러서는 것이 보였다. 한승현이 코트 주머니에서 손을 뺐다. 나는 그 광경을 말없이 지켜보고만 있었다.
한승현이 부하를 바라보았다. 그리고는 발로 그의 부하의 오른쪽 정강이를 찼다. 부하는 중심을 잃은 채로 고물상 바닥에 넘어졌다.
한승현이 그의 부하에게 정신이 팔린 것이 한눈에 보인다. 도망칠 타이밍을 잡으면 된다. 몸을 고물상 철문 쪽으로 돌렸다. 그러자 로봇이 내 어깨를 잡았다. 나는 잠시 깜짝 놀랐지만 급하게 진정시킨 후 로봇을 보며 최대한 조용히 말했다.
“왜?”
‘어디 가는 거야?’
로봇은 모르겠다는 뜻으로 어깨까지 들썩였다.
“여기서 나가야지.”
나는 다시 한승현의 눈치를 살피며 말했다.
‘그럼 나는?’
로봇이 띄운 글자를 읽고는 갑자기 고민에 빠지고 말았다. 저 로봇을 데리고 나가면 안 그래도 온갖 욕을 먹고 있는데 저 로봇을 데려가면 정말 돌을 맞을 수도 있다. 오히려 나를 보며 욕했던 사람들이 시위단에게 신고를 하지 않는다는 것이 고마울 정도였다. 하지만 기적처럼 고장나지 않은 저 로봇을 데려가면 돌을 맞아 죽든 시위단에게 잡혀 죽든 둘 중 하나일 것이다. 나는 이내 결정을 했다. 어차피 처음부터 답은 하나였다.
저 로봇을 버리고 이 망할 고물상을 벗어나는 것이었다.
나는 로봇의 손을 뿌리치고 조금씩 천천히 로봇 무더기를 벗어나 걷기 시작했다. 시선은 한승현을 향해 있을 수밖에 없었다. 한승현은 고물상 바닥에 쓰러져있는 자신의 부하를 쳐다보고 있었다. 단단히 화가 난 듯했다.
내가 로봇 무더기를 거의 다 지나갔을 쯤, 다시 그 로봇이 생각났다. 젠장, 그러면 안 될 텐데. 나는 괜히 마음 약해지는 소리 하지 말자 다짐했다. 다시 로봇이 나에게 보여준 글자들이 떠오르고 말았다.
다른 ‘사람’들 보다는 무섭지 않아.
그 문장을 본 이후로 머릿속에서 지워지지 않았다. 마치 바위가 쪼개고 쪼개어 모래가 되도 없어지지는 않은 것처럼 머릿속에서 아무리 분해하고 분해해도 머릿속에 깊게 자리하고 있었다.
나는 결국 로봇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그 로봇은 그 자리에 가만히 있었다. 과연 저 로봇이 무슨 생각을 하고 있을까. 나를 어떻게 생각할까. 과연 정말 나를 인간처럼 봐줄까 등 수없이 많은 질문들이 내 머릿속을 휘저었다.
고개를 까닥였다. 따라오라는 뜻이었다. 과연 저 로봇이 내 행동을 알아들었을까 싶었다. 로봇은 기다렸다는 듯이 내 앞으로 따라왔다. 로봇이 따라오는 걸 보자마자 다시 시선을 한승현 쪽으로 돌렸다. 총을 꺼내들며 부하에게 총구를 겨누고 있었다. 뭔가 소리를 내고 있었는데 웅얼거리는 소리밖에 들리지 않았다.
나는 조금씩 로봇 무더기를 빠져나왔다. 고물상 문은 한승현의 등을 바라보고 있었기에 상관없지만 그의 부하가 나를 알아채지 않을까 노심초사했다. 최대한 소리를 내지 않으며 걷고 있어도 한승현의 귀에 들릴 것 같았다.
몇십초가 지나자, 겨우 로봇 무더기를 빠져나왔다. 로봇은 아직 로봇 무더기에서 빠져나오지 못했다. 언제부터였는지는 모르겠지만 고물상에 조명이 비춰져 있었다. 대여섯 개가 있었는데, 하나같이 사선으로 빛을 비췄다.
문으로부터 거리는 약 5미터 쯤 되어 보였다. 잘만 뛰면 네 걸음 안으로 문밖으로 나갈 수 있다. 그리고 문을 닫는 것이다. 그러면 한승현은 그대로 고물상에 갇힐 것이다. 고물상 밖으로 나오는데 시간이 좀 걸리겠지.
“이제 고물상 문밖으로 뛸 거야.”
나는 거의 들리지 않을 정도로 뒤도 돌아보지 않고 로봇에게 말했다. 로봇은 몇 초간 대답이 없었다. 나는 순간 로봇이 말을 할 수 없다는 것을 깜빡했다. 다시 고개를 로봇 쪽으로 돌리자 역시나 로봇은 자신의 얼굴에 글자들을 띄웠다.
‘진짜? 저 사람들한테 걸리면 어떡하게?’
“잘만 뛰면 돼, 잘만.”
이 말을 하고는 나는 긴장감에 사로잡혔다. 두 다리의 대부분이 기계라고 해도 나는 이 기계들을 믿지 않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지금은 믿어야 했다. 뭐하나 잘못 되면 한승현한테 총을 맞아 죽을 테니까. 나는 최대한 조용히 말했다.
“셋에 뛰는 거야. 하나.”
하나를 말하고는 몇 초가 둘을 세지 않았다. 마음에 준비가 되지 않았다. 그래도 다시 카운트다운을 했다.
“둘”
이젠 셋을 외쳐야 한다. 정말 심장이 터질 것만 같았다.
“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