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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연재 > 판타지/SF
기계와 인간 사이
작가 : 소설쓰는중
작품등록일 : 2019.8.25

이 작품은' 4차 산업혁명으로 인해 로봇들의 직업대체율이 90퍼센트 이상이 오른다면?' 이라는 생각에서 시작한 작품입니다. 그리고 시위단이라는 조직이 무력으로 로봇들을 몰살시킨 후의 이야기를 담고 있습니다.

(부제 같은 경우는 원고엔 1,2 같은 숫자만 썼으므로 좀 이상할 수도 있을 것 같아요.)

 
9장-꿈(2)
작성일 : 19-09-15 14:19     조회 : 301     추천 : 0     분량 : 74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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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는 지금 버스 안에 있다. 내 친구와 함께. 글을 쓰려 하지만 하도 써지지 않아 불렀다. 친구의 이름은 박예은. 같은 작가다. 물론 쟤는 대학을 다니며 글을 쓰고 있고, 나 같은 경우는 대학 대신 일을 선택했다. 대학을 다녀야 인세를 더 받는다고 하는데, 괜히 그 인세 조금 더 받아서 대학 등록금 낼 필요는 없다고 생각한다.

  “뭔 생각해?”

  내 친구가 나를 부른다.

  “어? 어.” 나는 애써 친구의 질문에 대답한다.

  “왜 여기까지 만나자고 한 거야? 그것도 모자까지 풀 눌러쓰고.”

  나는 검은 아디다스 모자를 눌러쓴 상태이다. 이런 복잡한 곳에서 날 알아보는 사람이 있으면 귀찮아진다.

  “왜? 누가 너 알아볼까봐?”

  예은의 말에 흠칫했다. 로봇의 도전장을 받은 도전장을 받았다는 이유만으로 무명 작가에서 인기 작가 수준으로 관심이 높아졌다. 그 덕분에 내가 쓴 ‘내 첫 번째 소설’이 불티나게 팔려 베스트셀러에서 이젠 밀리언셀러까지 갈 수도 있다고. 정말 어떻게 써야 사람들에게 인기가 있을까 하며 아이디어를 짜내려 쓴 두 번째 소설이었다. 첫 번째는 이름도 짓지 못한 짧은 단편 소설이었다.

  “야, 아무도 너 못 알아봐.”

  맞는 말이다. 뉴스에서도 내가 누군지 정확히 언급하지 않았다.

  예은은 팔을 뻗어 내 모자를 뺏으려 한다. 나는 필사적으로 손으로 모자를 더욱 누른다. 예은은 미소를 띠며 한 번 더 내 모자를 뺏으려 하자 나는 아예 몸을 예은으로부터 멀리 움직인다. 그러자 예은은 몸을 내 쪽으로 움직여 결국엔 내 모자를 빼앗는다.

  예은은 빼앗은 모자를 흔들었다. 나는 다시 모자를 가져오려 팔을 뻗지만 예은은 반대쪽 손으로 모자를 이리저리 보내며 뺐지 못하게 한다. 어쩔 수 없이 모자를 쓰지 않기로 한다.

  버스 안에서 연서시장이라는 안내음이 들리고 나와 예은은 버스에서 내린다. 그리고 나는 바로 지하철역 안으로 들어간다.

  “야, 너 어디 가려고?”

  “반대쪽. 횡단보도가 여기 주위엔 없잖아.”

  예은은 마지못해 나를 따라간다.

  “지하철역 좀 별론데. 가끔씩 노숙자들도 보이잖아. 타는 사람은 없고. 그냥 차 타고 오지 그랬어. 너 운전 잘하잖아.”

  “그래도 반대쪽으로 가는 방법이 여기 말곤 없잖아.”

  지하철역으로 들어가는 계단을 내려가자마자 지하철역 광고판에는 로봇의 인권을 보장해달라는 광고판과 그 옆에 로봇을 쳐부수자는 광고판이 함께 걸려 있다. 지금 여기에도 사람 반, 로봇 반 정도로 있는 것 같은데, 대부분은 지하철 이용이 무료인 노인과 몸이 불편한 노인들을 보좌해주는 로봇이 다이다. 그마저도 몇 년 사이 지하철을 타는 사람들의 수는 하루에 열 댓 명 이하로 줄어들었을 것이다.

  요즘의 로봇들은 성능에서나 지능에서나 사람보다 높은데다가 업무 능력도 높기에 이미 서울시 시청에서는 인력의 대부분을 로봇으로 바꾼지 오래였다. 상식적으로 일반 사람의 임금의 반절 정도만 주면 되는 로봇을 쓰지 않을 이유는 없기 때문이다. 게다가 공무원의 90퍼센트를 로봇으로 대체하겠다는 말까지 나왔으니 말이다.

  결국 너무 급작한 변화로 인해 대부분의 사람들이 일자리를 잃었다. 공무원부터 시작해 회사원, 막노동까지. 다행히 내 부모님은 심리학자와 상담가로 인해 그런 피해를 보지는 못했다. 그러나 내 옆의 예은은 그런 피해를 톡톡히 본 사람들 중 한명이다. 그런데도 전액 장학금으로 대학을 간 것을 생각하면 정말 대단하다는 생각이 절로 난다.

  로봇이 사람들의 일자리를 가로채기 시작한지 5년 정도가 지나자 기업들의 이익은 배가 되지만 사람들의 소비 활동이 줄어들고, 경제는 점차 낮아지기 시작했다. 로봇의 생산활동은 인간을 당연히 능가하기에 나라와 기업은 부자가 되어가도 GDP는 몇십년 전의 IMF 수준까지 떨어지고야 말았다. 사람들은 당연히 반발을 표했고, 시위까지 해가며 로봇의 직업률을 낮추라고 해서야 정부는 로봇들의 직업률을 낮췄다. 그게 겨우 2년 전 일이었다.

  로봇의 직업률을 낮추고 겨우 경제가 활성화되자 이번에는 로봇들이 자신들의 임금을 일반인 공무원 정도로 달라는 요구를 하고 이젠 인권도 보장해달라는 추세이다. 초반에는 이미 부정한 대우를 받고 있던 로봇들만이 불만을 표출했지만 몇 달 전부턴 거의 대부분의 로봇까지 불만을 표출하기 시작했다. 그래서 전 세계적으로 로봇을 완전히 없애버리자는 말들이 커지고 있는 추세이고 실제로 로봇들을 부수고 다니는 사람들도 있곤 한다. 그런 사태가 반복되기에 서로가 서로를 어떻게 바라보는지에 대해 알기 위해 내가 로봇이랑 글로서 대결을 하는 것이다.

  “야, 근데 우리 어디 가냐?” 예은은 하품을 길게 내뱉는다.

  “그 있잖아, 여기 나오면 바로 나오는 서점.”

  “뭐, 연신내 문고? 거기 갈려고 겨우 여기까지 온 거야?”

  “어.” 나는 뻔뻔하게 대답한다.

  “아오 저…‥” 예은은 반쯤 인상을 찌푸린다. 같은 작가여도 예은은 워낙에 책은 인터넷에서 사는 성격이고 나는 서점 같은 데에서 책을 사는 성격이기에 매번 서점 가자고 하면 별 핑계를 대며 서점에 가지 않았던 예은이었다.

  “이럴 거면 나를 왜 부르는 거야.” 예은의 말에 힘이 쫙 다 빠져있다. “네가 한 번도 나랑 같이 안 가서 그랬다.”

  나는 예은을 보며 잠시 억울한 표정을 지었다. 예은 역시 억울한 표정을 지었다. 나는 반쯤 장난으로 지은 표정이지만 예은은 진짜였다.

  “야, 나 종강했어. 원래는 집에서 쳐 자고 있을 시간이라고.” 예은은 나를 노려보며 말한다. 마치 남이었다면 죽여버리고도 남았을 것 같다. 결국 예은의 말에 한 발 물러서기로 한다.

  나는 지하철역 계단을 올라가며 말한다.

  “알겠어. 서점 갔다 오면서 마실 거라도 사줄게.” 예은은 내 말을 듣고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기분이 풀렸다는 뜻이다.

  “저기 쥬씨에서 사자”

  예은은 건물에 작게 위치해있는 쥬씨 매점을 가리키며 말한다. 알았다, 알았어. 예은이 손가락질한 쥬시 매점을 보았다.

  나와 예은은 그렇게 교보문고 서점으로 들어간다. 계단 몇 개를 내려가서 교보문고에 들어가는 문을 열어 들어간다. 그러자 수많은 책과 사람들, 서점 점원들인 로봇이 보인다. 예은은 한숨을 쉰다. 그리고는 바로 팔을 내 어깨에 올리고 몸을 내 쪽으로 옮긴다.

  “나 쓰러질 것 같아.” 예은이 힘없게 말한다, 나는 내 어깨에 올라가 있는 예은의 팔을 치우며 말한다.

  “오버 하면 안 사준다.” 나의 말에 예은은 바로 곧게 선다.

  계속 칭얼대는 예은과 함께 서점을 둘러본다. 예은은 단순히 내 옆에서 서점 안을 이리저리 둘러본다.

  “근데 넌 뭔 책 살려고 온 거야?”

  예은은 반쯤 눈을 감은 채로 말한다. “음... SF책이나 하나 살라고.” 나는 SF책이 있을 곳을 둘러보며 말한다. 로봇이 일상화 된지도 벌써 10년이 넘었는데 아직도 로봇에 관련된 소설은 SF로 분류되곤 한다.

  몇십 걸음 정도를 걸어도 SF에 관련된 책은 코빼기도 보이지 않는다.

  예은은 또다시 칭얼댄다.

  “그냥 인터넷에서 사자, 응? 나 너무 힘들어.” 예은의 계속된 칭얼거림에 나는 결국 제일 가까이에 있는 벤치에 앉기로 한다. 예은은 기다렸다는 듯이 벤치에 앉는다. 예은의 표정이 밝아지기 시작한다. 마치 어린아이 하나를 데리고 온 느낌이다.

  나 역시 벤치에 앉는다. 다시금 차분하게 주위를 둘러보자 사람들이 자리를 잡아 책을 읽고 있다. 물론 서점에서는 흔히 보이는 광경이다.

  나는 과연 사람들이 무슨 책을 읽는지 살펴본다. 개인적으로 내가 쓴 소설이면 좋겠지만 사람들은 내가 생각하기에 시시콜콜한 일상을 담은 소설책을 읽고 있다. 예전에 한 번 작가의 일상을 담았다는 소설을 읽은 적이 있는데, 정말 시시콜콜하기 그지없었다. 이야기의 분위기가 차분하고 잔잔했는데, 나와는 맞지 않는 부류의 소설이었다. 게다가 소설에 나오는 작가는 대학교에서 공부와 소설을 쓰는 걸 동시에 하며 미래에 대한 고민이 주가 되는지라 결국엔 예은에게 준 책이었다.

  “저 사람들이 너 책이라도 봐?”

  예은이 한쪽 눈썹을 치켜들고 말한다.

  “아니. 그냥 뭐 읽고 있나 해서.”

  나는 사람들이 읽는 책을 보며 말한다. 고개를 돌려 벤치 옆의 책 진열대에서 읽을 만한 책을 고르기 시작한다. 한동안 예은은 움직이지도 않을 것 같고, 인터넷에서 책을 사려는 마음도 커진다. 그러자 눈에 익은 책 한 권이 보인다. ‘아이, 로봇’이다. 나는 잠시 ‘아이, 로봇’ 주위의 책을 본다. 모두 상당히 SF스러운 이름과 책표지를 가진 책들이다.

  “야, 여기 SF책들 다 있네.” 책 진열대에서의 책들을 이리저리 들어 보며 말한다.

  “어, 진짜네?”

  예은은 놀라면서도 SF책 진열대 사이에서 책 한 권을 꺼낸다. ‘모털 엔진’이었다. 예은이 꺼낸 책을 보고 나 역시 책을 한 권 골랐다. ‘기계의 마음은 어떨까“ 이다. 작가는 아마 영국 사람일 것이고, 작년에 영화화 제작이 결정된 소설이라고 한다.

  나는 벤치에서 일어난다. 이미 책은 골랐고, 집에 가서 읽으며 글을 쓰면 된다.

  예은은 나를 보며 말한다.

  “왜? 벌써 가게?”

  “그럼 가야지 뭐. 책은 골랐잖아.”

  나는 책을 한손에 들며 말한다.

  “나 이거 좀만 읽으면 안 돼?”

  “그럼 쥬씨 안 사준다.”

  내 말에 예은은 자신이 집은 ‘모털 엔진’을 다시 책 진열장에 두고 벤치에서 일어난다.

  나는 고른 책을 계산대에 가져다 놓는다. 계산대에 있는 것은 당연히 로봇이다. 몇 십 년 전에 개봉한 ‘아이, 로봇’ 영화에 나오는 NS-5 같았다. 로봇은 책 뒷부분에 있는 바코드를 찍는다. 신기한 점은, 로봇의 팔을 갖다 대면 바코드가 찍힌다.

  “14,500원입니다.”

  로봇의 기계음이 들려온다. 나는 지갑을 들어 그 사이에 있는 신용 카드를 로봇에게 건넨다. 로봇은 신용카드를 받고는 카드를 다시 자신의 팔에 꽂는다. 몇 초 뒤에 삐빅 소리가 들리자 로봇은 다시 카드를 빼고 나에게 준다. 카드를 받으면서 찝찝한 느낌이었다.

  ‘결제하는 방식이 좀 뭐 같네.’ 신용카드를 지갑에 도로 넣는다.

  로봇은 비닐봉투를 꺼내 책을 넣어주고 나에게 준다. 나는 비닐봉투를 받으면서도 찝찝함을 지울 수가 없다.

  “그럼 이제 쥬씨 가야지?”

  예은이 기대감을 품은 채로 말했다.

  “그래, 가자. 가.” 나는 정말 귀찮게 말한다.

  교보문고 문을 나서자 햇빛이 내 눈을 가린다. 가을인데도 햇빛은 아직 한여름 같다. 나는 손으로 햇빛을 가린다. 계단 몇 개를 다시 올라서고 쥬씨 쪽으로 몸을 돌린다. 쥬씨 매점 쪽으로 걸어가며 예은에게 뺏겼던 모자를 기억해낸다.

  “모자 좀 주지?”

  나는 예은의 손에 아직도 들려있는 모자를 보며 말한다. “음... 먼저 사주면.” 나는 예은의 말에 어이없어 하며 걷는다. 다시 뺏고는 싶은데 예은의 운동신경을 따라올 수는 없다. 예전에 그랬고, 지금도 그러니까. 나는 쥬씨 매점을 향해 더 빨리 걷기 시작한다.

  “근데 굳이 그 책을 여기까지 와서 사야겠어?”

  쥬씨 근처에 다다르자 예은이 다시 불평하듯이 말한다.

  “그래도 여기가 책이 제일 많고 그만큼 고를 수 있는 책의 종류가 많아지니까. 그리고, 이런 때 아니면 언제 밖에 나가겠냐.”

  나의 말에 예은은 수긍하는 듯이 자신이 대학에서 겪은 일들을 나열한다. 딱히 재밌지는 않다.

  쥬씨에 도착하자 예은은 곧바로 종업원에게 주문을 한다. “딸기 라떼랑...” 예은이 내 쪽으로 고개를 돌려 말한다.

  “넌 뭐 마실래?”

  예은의 말에 잠시 고민을 한다.

  “어? 어, 난 그냥 용과 주스 마실래.”

  나는 메뉴판에서 그냥 보이는 대로 말한 것이었다. 용과가 이름만 들어봤지, 먹어본 적은 없기 때문이다.

  예은은 내 말을 듣고는 종업원에게 말한다. “딸기 라떼랑 용과 주스 주세요.”

  “네, 크기는 무엇으로 하시겠습니까?”

  로봇의 음성이 다시 귀에 들려오니 괜히 이상한 생각이 든다. 과연 원래 저 일을 하던 사람들은 모두 해고된 건가? 어릴 때부터 로봇들이 일하는 것을 봐서인지 내 또래의 사람들은 로봇이 어디서든 보여도 이상하게 생각하지 않는다. 지금의 노인이나 나의 부모님이 어릴 때만 하더라도 로봇이 직업을 가진다는 말 자체를 들은 적도, 말한 적도 없다고 한다. 그들의 생각보다 빨리 진척된 직업 로봇 산업에 그들은 그대로 당할 수밖에 없었다고.

  “뭐해? 받아.”

  예은의 말이 내 생각을 끊어 버린다. 일단 방금까지 한 생각을 집어넣고 예은이 준 음료수를 받는다. 예은에게 받은 음료수의 양을 보고 놀란다.

  “야, 너 큰 걸로 했어?”

  예은은 빨대로 딸기 라떼를 마시며 말한다.

  “어, 왜?” 예은은 그러면서 딸기 라떼를 한 번 더 쭉 빨아들인다. 벌써 20퍼센트는 마신 듯하다.

  “나 이거 다 못 마실 거 같단 말이야. 이건 나한테 너무 많아.” 나는 용과 주스의 양을 다시 본다. 역시, 아무리 마셔도 다 마시지는 못할 것 같다.

  “원래 네가 사는 건데, 내가 돈 냈어. 그니까 다 마셔라.”

  “네가 샀다고? 아니 왜?”

  결국 빨대를 물고 용과 주스를 마시기 시작한다.

  “네가 저번에 밥 한 번 사줬으니까. 에이, 괜히 사줬나 보네. 기억 못하는 거 보니까.”

  맞다. 저번에 내가 예은이 돈이 없다고 대학교 주변 식당에서 밥을 사준 적이 있다. 메뉴가 뭐였는지는 기억이 나진 않는다.

  나와 예은은 서로의 음료수를 마시며 다시 버스 정류장을 향해 인도를 걷는다. 빨대로 쭉 용과 주스를 올리자 용과 과육이 씹힌다. 맛은 잘 모르겠지만 몇 번 쭉쭉 들이켰다.

  “근데 넌 종강하면 자기만 할 거야?”

  “어, 넌 절대 느끼지 못할 것이다. 이게 얼마나 좋은 건지.”

  나는 쿡쿡 웃으며 버스 정류장으로 걸어간다.

 

  20분 후, 이미 용과 주스를 한참 다 마신 후다. 몸에서 좀 이상한 느낌이 드는 건 이때부터다. 계단을 내려가며 온 몸이 간지러워졌고 머리가 띵해진다.

  “너 왜 이렇게 팔을 긁어?”

  “그러게, 갑자기 몸이 간지럽냐.”

  예은에게 말을 하면서도 팔을 긁고 있다. 왜 이리 간지러운지 모르겠다. 머리는 너무 답답해진다. 머리에 먼지 같은 것이 잔뜩 낀 것 같다.

  정류장에 도착하자마자 나는 살짝 휘청거리다 겨우 중심을 잡고 다시 선다. 다리가 계속 후들거린다. 결국 정류장에 있는 벤치에 앉는다. 정신이 끊어질 것 같다. 아무 말도 나오지가 않을 정도다. 나는 숨을 가쁘게 내쉰다.

  팔을 내려다본다. 붉은 반점들이 내 팔을 휘감는다. 갈수록 붉은 반점들이 늘어난다.

  예은은 나를 보며 놀란 듯한 소리를 내며 말한다.

  “이거 위험한 거 아니야? 야, 빨리 병원 가야겠다.”

  이젠 말하기도 힘들다. 아니, 숨쉬기조차 힘들다. 공기가 식도 안으로는 들어가지가 않는다.

  “내가 119에 전화 할 테니까 좀만 참아.”

  예은의 말을 들어도 대꾸할 수가 없다. 주위의 소리는 들리지도 않고 예은의 목소리도 웅얼거린다.

  내가 예은 쪽을 보려 몸을 돌리려는 순간, 정신세계에서 무언가 뚝 끊기는 느낌을 받는다. 예은이 다급히 누군가에게 전화를 받는 모습이 보인다. 나는 중심을 잃고 쓰러진다.

  그 후엔 보이는 거라곤 암흑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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