핸드폰에서 알람이 울린다. 잠에서 깨는데 반도 깬 상태가 아닌 것 같다. 나는 졸린 마음으로 말한다.
“빅스비! 알람 꺼!”
핸드폰은 알람을 멈췄다. 며칠 전부터 알람을 끄기 귀찮아서 쓰는 기능인데 꽤 좋다.
다시 잠을 자려 하는데 누군가가 나를 부른다.
“일어나야지.”
이미 일어나 있지만 눈꺼풀은 이미 닫힌 채다. 나는 몸을 뒤집고는 또다시 잠에 빠져드려 한다. 그렇게 몇 분이 지나자 다시 어디선가 말이 들려온다.
“일어나!”
나는 애써 팔을 뻗어 침대 옆에 있는 책상 위를 훑는다. 책상 어딘가에서 내 핸드폰이 만져진다. 핸드폰을 잡고 몸을 돌리고는 전원 버튼을 켜 지금이 몇 시인지 확인한다. 7시 30분이다. 겨우 7시 30분이라니. 원래는 8시 40분 정도에 일어나줘야 하는데 말이다. 순간적인 졸음으로 들고 있던 핸드폰을 떨어트린다. 핸드폰이 내 얼굴에 정확히 떨어진다. 눈에서부터 코까지 찡한 느낌이 생겨버린다. 손은 핸드폰을 든 높이에서 내려가지 않고 손만을 부들거린다.
나는 얼굴에 떨어진 핸드폰을 치우고 미간 쪽을 꼬집는다. 덕분에 잠은 확실히 깼지만.
침대에서 반쯤 일어나 이불을 치운다. 여전히 코는 찡한다. 손가락들을 서로 끼고 팔을 높게 치켜세워 기지개를 핀다. 시원한 느낌이 팔 구석구석에 퍼진다. 팔꿈치 쪽이 살짝 땡기기도 한다. 손가락들을 풀고는 팔을 다시 아래로 내린다. 나는 입술을 조금 삐죽거린다.
방 창문 사이로 빛이 들어온다. 따뜻한 기운이 내 얼굴에 들어온다. 눈까지 빛이 들어와 눈을 살짝 감는다. 눈을 감아도 따뜻한 느낌은 여전히 느껴진다. 하품을 크게 한번 하고는 침대 밖으로 나간다. 침대 밖으로 내려가자마자 나는 책상 위에 있는 노트북을 확인한다. 전원 버튼을 누르고 비밀번호를 입력한다. 노트북 화면은 비밀번호 입력 화면에서 윈도우 바탕화면이 아닌 어떤 글이 써져 있는 한글 프로그램이 떠 있다. 눈살을 찌푸려 노트북 화면의 왼쪽 하단을 본다.
27/28쪽
나는 경악을 해댄다. 겨우 27쪽만을 썼다니. 시간은 겨우 2달 밖에 남지 않는다. 기계랑 글로 상대를 하기로 했는데 말이다. 무엇보다도 이걸 전 세계가 주목을 하고 있다는 점이다. 40년 정도 전에 바둑과 게임으로 인간을 이긴 인공지능이 이번에는 로봇의 뇌를 담당하면서 소설을 쓴답시고 도전장을 내밀었다. 그 도전장을 받아들인 사람이 바로 나고.
나는 정확히 어디까지 썼는지 본다. ‘우리는 로봇과의 일을 끝마치려 한다.’ 젠장, 원래대로면 두 페이지 정도는 더 써져 있어야 한다. 재빨리 의자에 앉아 노트북 키보드를 두드리기 시작한다.
인공지능과의 승부에서 있는 룰이 몇 가지 있다.
첫 번째, 인간은 기계에 대한 시각에 대해서 쓰고, 기계는 인간에 대한 시각에 대 해서 글을 써야 한다.
두 번째, 필요하다면 비판만을 하되, 비방은 하지 않는다.
세 번째, 단지 서로의 시각을 알기 위해서일뿐, 절대 갈등을 불러일으킬 내용은 쓰지 않는다.
생각보다 꽤 정교한 룰이다. 그런데 기계가 직업률의 80퍼센트를 차지한 상황에서 로봇들이 생존권을 요구하는 마당에, 과연 두 번째와 세 번째의 룰은 지켜질지 의문이다. 세 가지의 룰을 모두 지키면서 쓰는데 사람들이 내 글을 읽으며 좋은 반응을 해줄까? 정확히 말하면, 절대 아니다. 이미 인간과 기계 사이에서는 갈등이 심해진 상태이다. 그런 상황에 평화적인 글을 쓰면 호응은커녕 욕만 먹을 것이다. 그렇기에 웬만하면 비판의 내용을 중심으로 쓰려 한다. 그건 상대 인공지능 쪽도 같겠지.
“아침 안 먹어?”
문 밖에서 다시 말이 들려온다. “안 먹어.” 소리치듯이 말한다. 다시 글을 쓰기 시작한다.
나는 30분간 쓰고 지우고만 반복한다. 도저히 내 뜻대로 써지지 않는다. 비판적인 내용을 쓰려 하면 계속 비방과 비난만이 이어진다. 고민만이 이어진다. 등을 의자 끝까지 민다. 의자 등 부분도 같이 뒤로 빠진다. 그리곤 눈을 감고 생각한다. 과연 내가 기계라면 인간이 나를 어떻게 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