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아...”
입김이 새었다.
정확히 시야의 절반 즈음, 복잡한 스카이라인 위로 새까만 밤하늘이 펼쳐져 있지만, 은하수를 찾아볼 수 있다는 것도 이제는 옛날이야기인가보다. 요즘은 밤이 찾아오면 밤하늘과 도시는 뒤바뀌어버리니까, 저 밑으로 까마득히 고인 도시만이 은하처럼 점점이 빛날 뿐인 것이다.
녹아내린 서슬 퍼런 조명의 빛들, 물감이 되어.
아주 느릿하게, 하지만, 거대하게, 넘실거리며― 빽빽이 늘어선 유리 건물들 사이를 유랑한다. 여유란 없다. 신장도, 덩치도 모두 뒤죽박죽. 기계장치를 얽어놓은 듯 복잡하다.
쓸리는 바람에 살갗이 시려온다. 침수된 도시의 파도 탓이려나, 생각해봤지만, 역시나 파도는커녕 물방울 하나조차 부서지지 않고, 서로 얽혀 꾸물대는 게으른 뱀들 마냥 담담하게 도시를 집어삼키고 있었다.
“아름답지 않나요?”
옆에 서있던 여비서가 나에게 물었다.
“......”
뭐, 아름답냐고 묻는다면 역시 아름다웠지만
뭐랄까 이건....
아름다움보다는, 압도적인 심해의 미지 속에서, 두려움과 함께 싹트는 경외 비스무리한 것에 더 가까웠다.
“―후.”
짧은 숨에 몽글, 입김이 빠져나와 하늘로 올랐다.
그새 얼어붙었는지, 별들 대신 반짝거리고는, 또 퍼렇게 녹아버렸다.
“...들어가자고.”
“네.”
여비서와 나는 유리로 만든 대문을 열고, 은빛 성채의 발코니에서 실내로 이동했다.
쓸데없이 육중한 대리석 탁자 위에는 서류들이 잔뜩 쌓여 있었다.
“이건?”
“탄원서입니다. 최근 외국인 노동자들을 위해 재정된 몇 가지 법들 때문에 이번에는 중소기업 측에서 불만이 올라오는 모양이에요. 이 앞에 지금 한창인 시위가 바로 그 건에 관한 거랍니다.”
“......”
머리가 지끈 아파왔다.
“진짜 못할 짓이네 이거.”
“최근에는 언론이 중소기업보다는 외국인 노동자들 측에 더 눈독을 들이고 있으니 아직까진 그대로 유지하는 게 낫지 않을까요. 아님 일단 눈속임으로....”
“저기.”
“네?”
내 쪽으로 고개를 돌린 여비서의 눈을 바라보며, 나는 물었다.
“비서 씨는 이렇게 될 거 알고 시작한 일인가?”
“....모르지는 않았죠. 애초에 이 바닥에 모르고 시작한 사람이 있긴 할까요.”
“난 모르고 시작했네만.”
“아...”
살짝 당황한 그녀가 말끝을 내렸다.
“몰랐다기보다는, 뭔가 뚜렷한 게 하나쯤은 있을 줄 알았지.”
“......그러네요, 생각해보니.”
“설마 알았을까, 모래알보다도 배는 많은 것들 중에, 정말 단 하나도 없을 지.”
“........”
나는 눈을 서류에 내리깐 채 작은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나, 그만둘까?”
그녀는 답했다.
“선택은 의원님 몫이지만, 어딜 가든지 크게 달라질 건 없을 거라고 생각해요.”
다시 침묵이 이어졌다.
서류 위로 탁하게 퍼진 동공. 도시의 소음이 작게 들려오고 있었다.
충돌하고, 부스러져, 사방으로 튀겨대는 그 소리는
파도와 쏙 빼닮아 있었다.
“도장은 어디 있지?”
“첫째 서랍에 넣어뒀습니다.”
마치 약속이라도 한 것처럼, 잠시 새어나왔던 어리광은 그 파도소리에 당연하단 듯이 묻어두고서. 우리는 서류검토를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