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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연재 > 무협물
회귀불사지체
작가 : 서은하
작품등록일 : 2018.12.31

목숨을 걸고 강호를 주유하는 진운의 이야기.

 
20. 양양(3)
작성일 : 19-01-29 00:00     조회 : 350     추천 : 0     분량 : 596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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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진운과 당희지의 싸움이 끝났을 무렵이었다.

 “저기다!”

 멀리서 들린 외침과 함께 구경꾼들 사이로 길이 열렸다. 그 끝에는 박도와 방패를 든 수십의 군졸이 달려오고 있었다.

 반갑지 않은 손님이었다.

 진운은 당희지를 제압하던 손을 풀고 재빨리 어린 소매치기에게로 다가갔다. 바닥에 박힌 검을 회수한 그는 소년의 들어 옆구리에 끼곤 그대로 내뺐다.

 그는 병사들이 쫓아오는 이유를 생각했다.

 어젯밤 관청 담을 넘은 사실이 들켰을 리는 없고, 아마 시장 한복판에서 난장을 벌인 탓이 아닐까.

 어쨌거나 잡혀서 좋을 건 없었다. 비록 6년전 일이라 하나 살인을 저지른 몸이고, 앞으로 감옥에서 소미를 빼내야 하는 입장이니 말이다.

 헌데 이상한 것은 그를 쫓아 당희지도 도망치고 있다는 사실이었다.

 “너는 왜?”

 “알거 없어 이 변태자식아!”

 사실 당희지 스스로도 명확한 이유가 있는 것은 아니었다. 그저 가출소녀의 본능이었다.

 그들은 관도를 따라 서쪽으로 달렸다. 도시 중심에서 빠져나와 인적이 드문 길로 접어들 무렵이었다. 그들의 왼편에서도 소리가 들렸다.

 “저쪽이다!”

 처음 시장에서 마주쳤던 군졸들은 이미 한참이나 멀어진 뒤였다. 지금 소리는 다른 병사들이 분명했다.

 진운은 옆에서 다가오는 병사를 피해 반대편 골목으로 방향을 틀었다. 헌데 골목 너머에서도 군졸들이 열을 맞춰 움직이는 소리가 들렸다. 그들을 찾는 병사가 성 곳곳에 퍼져있는 듯 했다.

 진운은 재빨리 주변을 살폈다. 골목을 이루는 한쪽은 벽돌 담장이었고 다른 쪽은 3층짜리 건물외벽이었다. 진운은 곧장 돌담을 향해 몸을 띄웠다. 순식간에 하늘로 솟구친 그는 담장을 발판삼아 반대편으로 몸을 날려 3층 전각의 지붕위에 안착했다. 옆구리에 사람을 끼고서도 바람 같은 몸놀림이었다.

 남겨진 당희지는 입술을 잘근 깨물었다. 앞뒤로 커져가는 발소리가 병사들의 등장을 예고했다. 그녀는 잠시 지붕을 쳐다보고는 진운을 따라 몸을 날렸다.

 돌담을 딛는 것 까지는 얼추 비슷한 움직임이었다. 하지만 그 다음이 문제였다. 지붕을 향해 힘껏 도약했지만 그녀의 발이 닿기에는 모자랐다. 당희지는 손을 뻗어 매달리려 했지만 그조차도 역부족이었다.

 그녀의 몸이 속도를 잃고 아래로 떨어지려는 찰나

 덥석

 진운의 손이 그녀의 팔뚝을 잡아 올렸다.

 어렵사리 지붕위로 올라간 그녀는 대뜸 화부터 냈다.

 “누가 도와달래?”

 진운은 그저 검지를 입술위에 올리고 조용하라는 눈치를 줬다. 지붕아래에서는 골목 양 끝에 나타난 관병들이 말을 주고받고 있었다.

 “그쪽으로 나온 사람 없었습니까?”

 “없었어.”

 “이 근처에서 사라졌습니다!”

 진운은 목소리를 낮춰 당희지에게 물었다.

 “대체 왜 따라온 거야?”

 “따라온 거 아니거든? 너야말로 왜 도망치는데?”

 진운은 딱히 설명할 말이 생각나지 않았다. 6년 전에 사람을 죽여서, 곧 감옥에서 사람을 빼낼 예정이라 말할 수는 없었다.

 “그거야 뭐......”

 진운이 얼버무리는 사이 당희지가 아래쪽에 턱짓을 하며 말했다.

 “저놈들, 나 찾는 중일걸?”

 “수백의 관군이 너 하나 때문에? 그렇게 대단해 보이진 않는데.”

 “아니. 맞아. 난 당문의 사람이니까.”

 가문에 대한 자부심이 대단했다. 더불어 그녀 자신에 대한 과대평가였다. 진운은 고개를 설레설레 저었다.

 그때 아래에서 관군을 지휘하는 자가 크게 외쳤다.

 “이 근방이다! 샅샅이 찾아라. 녹색 옷이다!”

 녹색 옷이라면 당희지 뿐이다.

 진운은 어이없는 표정으로 당희지를 쳐다봤다. 당희지는 어깨를 으쓱하며 말했다.

 “거봐. 내 말이 맞지? 아무튼 당숙은 내가 없어져 봐야 걱정을 한다니까.”

 말하는 게 딱 가출을 한 모양이었다.

 “가출소녀 찾는 것 치곤 병사가 너무 많은데?”

 “외출이야. 당숙이 내 걱정에 병사들을 푼 거지.”

 당희지가 진운의 말을 받아쳤다. 하지만 진운은 여전히 의아했다. 당충선에게 그만한 능력이 있는가는 둘째 치고, 병사들의 기색이 삼엄한 까닭이다.

 관병들이 이리저리 흩어지는 소리가 들리고 그들을 지휘하던 이마저 자리를 뜨자 당희지는 지붕 한쪽에 널브러진 소년을 가리키며 말했다.

 “저건 왜 들고 온 거야?”

 소년은 진운의 속도를 감당하지 못하고 기절해 있었다. 진운은 퀭한 얼굴의 소년과 당희지를 번갈아 보며 말했다.

 “물어볼 게 있어서, 너한테도.”

 “물어본다고 해서 내가 대답해 줄 거 같아?”

 “아니.”

 “근데?”

 “따라온 건 너잖아. 난 쟤만 데려왔는데?”

 “이... 이익!”

 “큰소리 내지마, 들킬라.”

 “너, 내가 돌아가면 당숙에게 다 말할 거야. 내 가슴 만졌다고.”

 “하아...... 그러세요.”

 그는 당장 눈앞에서 열을 내는 당희지보다 관군의 움직임이 더 신경 쓰였다.

 

 * * *

 

 쾅!

 내려친 주먹이 탁자를 흔들었다.

 “그깟 년 하나 못 잡고 뭣들 하는 게야!”

 양양성 관청 집무실에 앉아 화를 내는 이는 좌 참정 홍승윤이었다. 볼이 홀쭉하고 두 눈이 움푹 들어간 해골 같은 인상의 중년인이다. 정계욱이 지병을 앓은 뒤부터 호북성 대부분의 일은 그가 맡고 있었다. 그의 시커먼 두 눈이 앞에 선 수하들을 훑었다. 그들은 그저 고개만 조아릴 뿐이었다.

 “서쪽으로 갔다고?”

 홍승윤의 질문에 성내 치안책임자가 대답했다.

 “네. 서쪽문은 막아뒀습니다.”

 “그들은 무림인이야! 성벽 경계도 늘려. 강으로 도망칠 수 있으니 나루터도 통제해!”

 “예. 대인.”

 “성 곳곳에 방을 붙여. 포정사를 독살한 놈의 일행이라고. 금의위에는 지원 요청했나?”

 그러자 이번엔 문약한 인상의 관리가 말했다.

 “금의위 보단 우선 동창에 파발을 띄웠습니다. 마침 동창 난화대주가 근처에 있다하여......”

 “동창이? 그들이 여긴 왜? 아니, 아무튼 잘됐군. 꺼림칙하긴 해도 그들의 손을 빌리는 수밖에. 북경 금의위는 너무 멀어.”

 “헌데......”

 “뭔가?”

 “아직 그들이 흉수라고 단정 지을 수는......”

 그 말에 홍승윤의 주먹이 다시 한 번 탁자를 내려쳤다.

 “이번 건은 암살이야! 의원들도 입을 모아 포정사의 병세와 상극인 약재가 발견됐다고 하지 않았나. 게다가 그들이 범인이 아니라면 뭣 하러 도망을 쳤겠느냐 말이야!”

 “하오나.”

 “당가년과 함께 도망쳤다는 놈 또한 공범임에 분명해. 그놈이 탈출을 도운 게 틀림없어.”

 홍승윤의 불같은 눈길에 관리는 입을 다물었다.

 “감히 벌건 대낮에 고관을 독살해? 간도 큰놈들.”

 탁자위의 주먹이 떨었다.

 

 * * *

 

 당희지를 찾는 병사들은 줄지 않고 점점 늘기만 했다. 진운과 당희지는 지붕사이를 뛰어넘어 허름한 이층 건물로 숨어들었다. 창틀이 비틀어져 아귀가 맞지 않아 제대로 닫히지도 않는 곳이었다.

 오래된 서점이었다. 사람은 없고 곰팡내만 가득했다. 청결에 민감한 당희지가 투덜거렸지만 큰 소리를 내진 않았다. 아직은 가출을 그만둘 생각이 없는 듯 했다.

 한쪽 구석에 자리 잡은 진운은 소년을 흔들어 깨웠다. 소년이 실눈을 뜨며 신음을 냈다.

 “으으......”

 짐짝처럼 들려 다닌 게 고된 모양인지 몸을 뒤척이던 소년은 이윽고 시야에 진운이 들어오자 놀라 헛바람을 삼켰다.

 “히...히익!”

 진운은 발을 버둥거리는 소년을 진정시키며 말했다.

 “쉬이... 해치려는 게 아냐. 내가 너 구해줬잖니.”

 동시에 그는 턱짓으로 옆의 당희지를 가리켰다. 소년은 당희지에게 붙들렸을 때가 떠올랐는지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내가 물어볼 게 있어서 그래. 저 누나한테도 물론이고.”

 그리고 당희지도 들으라는 듯 목소리를 키워 말을 이었다.

 “난 저 양양 관청의 내부가 무척 궁금한 사람이야. 관청 안쪽을 구경하고 싶은데 내가 무슨 수로 들어가겠어? 그래서 거길 가봤던 사람의 얘기라도 듣고 싶어. 무슨 말인지 알겠지?”

 소년은 기어들어가는 목소리로 대답했다.

 “근데 전 관리들 중엔 아는 사람이 없는 걸요.”

 “관리들만 관청을 드나드는 건 아니잖아.”

 그러자 옆에서 듣고 있던 당희지가 끼어들었다.

 “아하. 그래서 날 쫓아왔구나. 관부에 아는 사람이 필요해서?”

 진운은 귀찮은 듯 손을 저으며 말했다.

 “쫓아온 건 너고.”

 “아니거든?”

 “맞아. 네가 따라왔잖아.”

 “아냐! 너야말로 왜 숨어 다녀? 병사들이 쫓는 건 난데. 나랑 같이 다니려고 숨은 거잖아!”

 당희지의 반박에 진운은 할 말을 잃었다. 듣고 보니 그랬다. 그는 숨을 이유가 없었다. 병사들이 찾는 건 당희지였지 자신이 아니었다.

 ‘그러게. 왜 그랬지? 얘한테 물어볼게 있어서?’

 자문해 봤지만 대답은 ‘아니다.’였다.

 한바탕 싸워 관계도 틀어진 마당에 그가 바라는 것을 들어줄지도 의문이고 그에겐 대안이 있었다. 숨어 다니는 게 도움 될 리 없었다.

 그럼에도 숨었다.

 감이었다. 직감. 병사들의 분위기가 그랬다. 도저히 집나간 여자애 찾아다니는 움직임이 아니었다.

 동창의 눈을 피해 도망치던 나날, 대흥방에게 쫓기던 그 때. 그 분위기였다.

 “그냥. 느낌이 안 좋아.”

 “흥! 느낌은 무슨. 나 쫓아 온 거면서. 좋아. 내가 너 도와줄게. 내가 당숙한테 한마디만 하면 너 관청으로 들여보내 줄 수 있어. 물론 날 희롱한 죄로. 포승줄에 묶여서!”

 진운은 눈살을 찌푸렸다. 도저히 말이 안 통했다. 그는 답이 없는 당희지와의 대화는 접어두고 소년을 향해 고개를 돌렸다.

 “우리가 어디까지 얘기했더라?”

 “으...... 날 무시해? 진짜 가서 얘기할거야!”

 진운은 한숨을 쉬었다.

 “하... 맘대로 해라. 추천하진 않지만.”

 “나 진짜 간다?”

 “예~ 살펴가세요~”

 점소이가 손님 배웅하듯 한 말에 당희지는 이를 앙다문 소릴 냈다.

 “으으! 두고봐!”

 그녀는 그 말을 남기고 성큼성큼 책장을 지나쳐 계단으로 향했다. 씩씩대는 소리가 계단 아래로 내려가자 진운은 고개를 저었다.

 “어후. 당가독의 그 아저씨도 고생이 많겠어. 그나저나 얘기는 마저 해야지.”

 진운은 소년을 바라보며 하던 말을 이었다.

 “뭐 생각나는 사람 없어?”

 “모... 모르겠어요.”

 “너 쟤한테 배수짓(소매치기) 하다 걸렸지?”

 소년은 흠칫했다.

 “헉! 아무것도 안 훔쳤어요.”

 “그건 못 훔친 거고. 그러니까 너처럼 물건 훔치다 걸려서 붙잡혀 들어간 사람이 있을 거 아냐.”

 진운이 노린 바가 이것이었다. 어린 꼬마가 홀로 대담하게 사람들의 주머니를 털 리 없다. 밑바닥의 생리가 그랬다. 범죄자들은 끼리끼리 모이는 법. 소매치기라는 가지를 타고 더듬어 가면 삼사년쯤 옥살이 했을 커다란 줄기가 나올 터였다.

 소년은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모... 몰라요.”

 “그래, 넌 어려서 모를 수도 있겠다.”

 소년은 열심히 고개를 끄덕거렸다.

 “네. 전 아무도 몰라요.”

 “그러면 이 짓거릴 시킨 사람 있잖아? 걘 알 수도 있겠네?”

 진운의 마지막 말에 소년의 얼굴은 사색이 되었다.

 

 * * *

 

 당희지는 씩씩대며 거리를 나섰다. 벽돌 담장으로 격자진 골목엔 인적이 드물었다. 외진 곳이라 관병들도 눈에 띄지 않았다. 그나마 있는 몇몇 사람마저 그녀의 눈치를 보며 피했다.

 자신이 화난걸 알았기 때문이리라. 그녀는 그렇게 생각했다.

 그것이 익숙한 반응이었다. 성도에서는 누구나 그녀의 눈치를 봤다. 헌데 오늘은 아니었다. 그녀의 오빠인 당석호야 말할 것도 없고 당충선 또한 그녀만을 혼냈다. 심지어 진운마저도 그녀의 분노에 무덤덤했다.

 ‘으으! 두고 봐 내가 너 무릎 꿇고 빌게 만들어 줄게.’

 그렇게 다짐한 것과는 달리 그녀의 몸은 곧장 정계욱의 저택으로 향하지 않았다. 저질러 놓은 일이 있으니 만큼 돌아갔을 때 혼날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그녀를 지배하기 시작했다. 한편으로는 뒤늦게라도 진운이 쫓아와 용서를 구하길 바랬다.

 그 탓에 그녀의 발은 계속해서 같은 골목을 맴돌았다. 헌데 어째 시간이 지날수록 분위기가 이상했다. 특히 사람들의 시선이 그랬다. 성도에서처럼 두려워하는 눈빛이 아니었다.

 약간의 경계심과 적의.

 그녀는 문득 진운의 말이 떠올랐다.

 - 그냥 느낌이 안 좋아.

 느낌이 안 좋았다. 그제야 그녀는 주변을 자세히 살폈다. 한쪽 벽에 몇 안 되는 사람이 붙어 서서 그녀와 벽면을 번갈아 보고 있었다. 그녀는 그곳을 향해서 성큼성큼 다리를 뻗었다.

 그녀가 다가가자 사람들은 놀란 숨을 들이키며 흩어졌다. 그들이 보던 벽에는 방이 붙어있었다. 그녀는 방에 적힌 글을 읽어 내려갔다.

 “호북 포정사 독살 공범 당희지!?”

 그녀는 아연했다.

 그 옆으로는 녹색경장차림에 은비녀, 그녀의 키를 포함한 인상착의가 설명돼있었고 상아색 도복의 남자와 동행중이라는 말까지 있었다.

 “이게... 무슨......?”

 당황할 틈도 없었다. 골목 저편에서 관병들의 발소리가 들린 것이다. 그녀는 소리가 나는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그곳에는 정계욱의 호위무사를 포함한 관군들이 달려오고 있었다.

 당희지는 무작정 반대방향으로 몸을 날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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