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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연재 > 무협물
회귀불사지체
작가 : 서은하
작품등록일 : 2018.12.31

목숨을 걸고 강호를 주유하는 진운의 이야기.

 
8. 무평(1)
작성일 : 18-12-31 17:32     조회 : 393     추천 : 0     분량 : 69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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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노도인의 이름은 무평.

 이제는 이름조차 희미해진 전진파의 19대 장문인이라 했다.

 장문인이라 해봐야 문도 하나 없지만.

 그는 지금은 비록 쓰러져가는 문파지만 언젠가는 강호에 이름을 드높일 것이라 말했다.

 그리고 전진파의 장대한 역사와 무공의 강함을 자랑했다.

 한편으론 무당과 화산은 위선자들이라며 온갖 욕지거리를 해댔다.

 “졸렬하고 비겁한 놈들. 내가 직접 찾아갔으면 그쪽에서도 장문인이 마중 나와야 격이 맞을 거 아냐! 어디서 굴러먹은 장로한명 딸랑 보내서 하는 말이 뭐? 비밀? 비이이미일?”

 그렇게 투덜대면서 그는 화산파에서 받았다는 지혈산으로 진운의 상처를 지혈했다. 물론 그가 싸움도중 삼켰던 영약 또한 무당파의 것이었다.

 구파를 욕하면서도 구파가 준 물건은 잘만 쓴다.

 괴팍한 노인네였다.

 땅에 주저앉아 치료를 끝낸 그는 당당하게 목숨의 빚을 갚으라고 말했다.

 두 눈을 빛내면서.

 

 별수 없이 진운은 피풍의로 상처를 대충 감은 채 무평을 엎고 내려가야 했다.

 진운을 구하느라 내력을 쏟아냈더니 한발자국도 움직일 수 없다는 게 그 이유였다.

 그나마 화산파에서 받았다는 지혈산이 잘 듣는지, 상처가 아프지 않은 게 다행이라면 다행이었다.

 무평은 진운의 등에 업혀 가면서도 쉴 새 없이 전진파 자랑을 해댔다.

 “그러니 왕중양 조사께서 세우신 전진파야 말로 도가무학의 시초다 이 말이지.”

 진운은 그런 무평의 말을 한 귀로 흘리며 말했다.

 “네. 네 맞습니다. 어르신. 근데 이제 어디로 가죠?”

 그들의 눈앞에 갈림길이 좌우로 펼쳐져 있었다. 좌측으로 난 길은 사람의 흔적이 많이 보였지만 오른쪽은 척 봐도 약초꾼들이나 다니는 소로(小路) 같았다.

 무평이 말했다.

 “서쪽. 서쪽으로 가자.”

 “서쪽이......”

 “오른쪽 길이다.”

 “근데 왜 이쪽으로......”

 “아 대흥방 놈들이 동쪽으로 사라졌으니 우린 서쪽으로 가야할게 아니냐. 이놈아!”

 진운은 대흥방이란 말을 듣자 저도 모르게 몸을 떨었다. 자신에게 죽음을 두 번이나 안겨준 놈들이니 두려움이 생기는 것도 당연했다.

 하지만 진운은 티내지 않으려 애쓰며 말했다.

 “놈놈 하지 마세요! 저도 이름 있습니다.”

 “그래 오냐. 네 이름자나 한번 들어보자.”

 “진운이에요. 진운.”

 “진(震:벼락,천둥)운(雲:구름)이라... 예라이 썩을 놈. 이름자에 비가 한 가득이니 주변사람 벼락 맞힐 이름이로다.”

 “어르신. 거 말씀을 해도 참...... 자꾸 이러시면 놓고 갑니다!”

 “뭐 임마? 구명지은에 대한 보답이 이거밖에 안돼?”

 “하아...... 무당파에 가야되는데.”

 “무당파? 그놈들이 얼마나 비겁한 놈들인 줄 아느냐?......”

 또 시작이었다.

 진운은 무당파를 입에 올린 자신의 입을 책망하며 묵묵히 발걸음을 옮겼다.

 

 * * *

 

 무당산의 정상, 천주봉을 향해 오르다 보면 높게 이어진 계단과 그 끝에 자리한 두 개의 기둥을 볼 수 있다.

 대문처럼 서 있는 두 기둥 사이를 지나면 수백의 세월을 품은 돌바닥이 객을 반긴다.

 큰 공터를 이룬 돌바닥 위로 듬성듬성 자리한 전각들.

 넓은 터에 세워진 낡은 건물들은 지나온 세월의 발자취를 느낄 수 있음과 동시에 검박함이라는 단어가 절로 떠오르는 모습이다.

 이곳이 중원 도가무학의 중심, 무당파다.

 

 진운이 무당산에 발을 들이기 불과 몇 시진 전.

 고요한 무당에 객이 방문했다. 미리 서찰을 통해 알렸으니 불청객이라 할 수는 없지만 그 목적이 그리 달갑지만은 않았다. 그 손님이 보낸 서찰에는 비도(比道), 즉 도를 견주어보자는 말 하나가 담겨 있었다.

 무당 산문에 서서 뒷짐을 지고 선 이는 들고 있던 붉은 봉투를 와락 구겼다.

 ‘이 무당이 우습게 보였단 말인가.’

 소매가 넓은 새하얀 장포에 하얗게 샌 머리. 큰 키와 더불어 길게 늘어진 수염까지.

 신선 같은 풍채의 노인이었다.

 노인은 무표정한 얼굴을 유지한 채 자신을 갈무리 했다. 오직 뒷짐을 진 소매 사이로 비치는 구겨진 봉투만이 노인의 은은한 노기를 드러낼 뿐이었다.

 비도(比道)를 써놓은 그 붉은 서찰은 무당파가 처음 받은 것이 아니었다. 반 년 전에는 화산파가, 그 전에는 종남이, 그보다도 이전에는 사천의 여러 문파들이 그 봉투를 받았다. 그리고 그 때마다 어김없이 한명의 손님을 맞이했다.

 그 손님은 뻔뻔하게도 도를 핑계로 비무를 행했다. 그렇게 구파에 비무를 걸고 다녀 얻은 별호가 비무선자.

 그자가 기어이 무당파에 이른 것이다.

 신선같은 노인의 눈에 계단을 올라오는 방문객이 비췄다. 회색 도복을 입은 생쥐 같은 몰골의 늙은이다.

 체구에 맞지 않게 큰 도복이 펄럭였다. 새치 가득한 머리에 왼손에는 검을 들었다. 그 검의 손잡이는 옥으로 투박하게 장식되어 있었다. 전진파의 신물로 유명한 검, 녹옥이다.

 ‘저자가 비무선자로군.’

 백의의 노인이 상념에 잠긴 사이 객은 벌써 산문 앞에 당도했다. 계단 아래에 마주선 그는 검을 쥔 채 양손을 모아 내밀며 말했다.

 “전진파 19대 장문인 무평이 도를 견주러 왔소만.”

 강퍅한 얼굴에 어울리는 카랑카랑한 목소리다. 입을 움직일 때 마다 가느다란 회색 수염이 흔들거렸다.

 백의의 노인은 편지를 소매에 숨기고 정중히 포권하며 자신을 소개했다.

 “본도는 무당파 장로 탁무자라 하오.”

 비록 지금은 세가 기울었다지만 한 때는 도가무학의 중심이었던 전진파. 그 장문인을 비무선자라는 멸칭으로 부를 수는 없는 노릇이다.

 탁무자는 무평을 비도선인이라는 말로 좋게 포장했다.

 “비도선인께서 무당까지 오셨구려.”

 회색옷의 노인네, 비무선자 무평은 마주한 고개를 갸웃하며 말했다.

 “나는 분명 장문인을 청했는데. 그새 장문인이 바뀌었나?”

 “허허. 장문인은 이미 선도에 접어들어 호승심을 버린 지 오래라오. 그대의 도는 이 탁무자가 상대해 드리리다.”

 “탁무라...... 아, 무당은검! 무당은검이로군. 사제에게 장문인 자리를 넘겨준 대사형으로 유명했지 아마?”

 무평의 말은 비아냥에 가까웠다. 칼칼한 고음이 무당산에 울려 퍼졌다.

 하지만 탁무자가 이정도 격장지계에 넘어갈 만큼 만만한 인물은 아니었다.

 그는 너털웃음을 지으며 중후한 목소리로 말했다.

 “허허. 본인이 부족함을 깨달았을 뿐이외다. 탁료사제의 그릇은 무당을 품고도 남으니, 본도는 그저 분수를 알고 행할 따름이오.”

 “그러니 나도 분수를 알고 당신이나 상대하라는 말이군.”

 무평의 말투는 여전히 비아냥조였다.

 한때 도가 무학의 정수라 불리던 전진파의 전인이 이런 심성이라니. 탁료는 이런 자를 친히 맞상대해주려 했단 말인가.

 -도를 논함에 있어 상대의 지위가 무슨 상관이겠습니까.

 탁무는 문득 사제의 허허로운 목소리를 떠올렸다. 사제를 말린 것은 다시 생각해봐도 적절한 판단이었다.

 “허허허. 도를 논함에 있어 상대의 지위가 무에 중요하겠소.”

 탁무는 장문사제가 했던 말을 그대로 읊으며 비무선자를 타일렀다. 물론 상대는 그런 걸 신경 쓸 사람이 아니었다.

 비무선자는 양손의 소매를 슬며시 걷으며 말했다.

 “흥. 화산만큼이나 꼿꼿한 양반이로구만.”

 “화산에서는 현상진인이 나섰다던데. 그와의 비무... 아니 비도는 어떠했소?”

 “크흐. 그는 콧대가 높을 만 했지. 과연 화산파다웠어. 무당의 태극혜검은 과연 그 정도가 될까?”

 화산을 높이고 무당은 의심한다. 탁무자의 인내심을 시험하는 도발이었다. 허나 그는 섣불리 화내지 않았다.

 어차피 상대도 검을 맞대기를 원하는 바. 실력으로 눌러주면 될 일이다.

 “허면, 내 대무당의 도를 알려드리리다.”

 “얼마든지.”

 스르릉.

 무평은 말을 마치자마자 검을 빼들었다. 손잡이 끝에 투박한 옥장식이 달린 검, 녹옥이다. 허름한 청회색 검집에서 나온 검은 투박한 생김새와는 달리 은은한 예기를 품고 있었다.

 하지만 이곳은 무당파의 입구. 도가의 성지에서 감히 검을 휘두르는 일이 용납될 리가 없었다. 게다가 뒤로는 가파른 돌계단이다. 비무를 할 만한 공간이 아니었다.

 탁무진인은 오른쪽 손바닥을 쫙 펴 보이며 무평을 제지했다.

 “허나 이곳은 아니오. 내 도를 논하기 좋은 공터를 알고 있으니 그리 가십시다.”

 탁무는 무평을 지나쳐 계단을 내려가기 시작했다. 백색 장포가 바람에 펄럭였다. 허리를 꼿꼿하게 펴고 뒷짐을 진 손, 그 손을 덮은 하얀 소매가 나풀대며 붉은색이 언뜻 비쳤다. 구겨진 서찰이었다.

 철컥.

 무평은 녹옥을 회수해 검집에 꽂아 넣고는 말없이 탁무자의 뒤를 따라 나섰다.

 계단을 내려가는 그의 눈빛이 형형하게 빛나고 있었다.

 

 * * *

 

 백의의 노인, 탁무자는 작은 오솔길로 비무선자 무평을 안내했다. 오솔길의 입구는 울창한 수풀에 가려져 탁무자의 안내 없이는 찾기가 힘들 듯 했다. 더구나 그곳에는 하얀 운무가 끼어 있었다.

 “기문진이군”

 무평이 나지막이 중얼거렸다. 그 또한 도가의 진전을 이은 자. 같은 도가의 술법을 눈치 채지 못할 리가 없었다.

 “어째. 화산파랑 하는 짓이 똑같구만.”

 “험험......”

 탁무자는 무평의 비아냥을 듣고도 그저 헛기침을 하며 길을 안내했다. 부끄러운 일이지만 무평의 말이 맞았다. 무당파는 화산파의 흉내를 내고 있었다.

 그 동안 다른 문파에서는 무평을 얕잡아 봤다.

 문도 하나 없는 망한 문파의 장문인.

 전대의 무학을 제대로 잇지 못한 반쪽짜리 전인.

 그것이 비무선자에 대한 세간의 평가였다. 때문에 사천의 문파들은 망신을 제대로 당했다. 장로급도 안 되는 제자를 보냈다가 철저히 패배한 것이다.

 하지만 화산파는 달랐다. 신중하게 무평의 무위를 계산해서 이길 수 있는 자를 보냈고, 혹시 모를 사태를 대비해 비밀리에 비무를 진행했다.

 무당파는, 아니 무당의 장로들은 화산의 방식이 현명하다 느꼈다. 이런 방식이라면 혹여 패배한다고 해도 무당의 명예는 지킬 수 있다.

 이기면 무당의 승리, 지면 개인의 패배.

 물론 무당은검이 패배할 리도 없다. 그의 태극혜검은 장문인의 아래가 아니었으니.

 탁무자가 무평을 이곳으로 인도한 이유였다.

 오솔길을 따라 한참을 걸어 들어가자 사방 십여장 크기의 너른 공터가 나타났다. 곧게 뻗은 삼나무들이 울타리처럼 쳐진 비밀 연무장이었다.

 탁무자가 그 한가운데서 말했다.

 “자. 이정도면 도를 견주기에 적당한 장소 아니오?”

 연무장을 소개하는 탁무진인의 말을 무평이 받아쳤다.

 “과연 아무도 못 찾을 만한 곳이야. 그리도 세간의 이목이 두려웠나?”

 “허허. 도를 견주는데 방해꾼이 있다면 거슬리지 않겠소?”

 “흥. 체면치례는 그쯤 하지? 차라리 화산은 솔직하기라도 했어.”

 비무선자는 화산파 현상진인과의 비무를 떠올렸다.

 현상진인은 입장을 분명히 했다. 이렇게 능구렁이처럼 웃으며 은근슬쩍 은밀한 장소로 안내하진 않았다는 말이다.

 화산파를 들먹이며 짜증내는 무평의 말에 탁무자는 그제야 본의를 드러냈다.

 “후...... 좋소. 본도는 무당의 발전을 위해 장문직도 마다한 사람이오. 무당의 명예가 실추되는 일은 절대 하지 않는다 이 말이오.”

 “웃기는군. 패배했다는 증인을 남기지 않겠다? 내가 떠벌리고 다니면 어쩔 텐가.”

 “내 별호가 은검인 걸 잊으셨소? 무당 장문인보다 얼굴보기 어렵다는 게 바로 나 탁무자란 말이지. 당장 어디 가서 ‘무당은검과 비무를 해서 이겼다’고 말해보시오. 믿어주는 사람이 누가 있는가.”

 탁무자의 어투가 살짝 달라졌다. 아마 이것이 탁무진인 본연의 모습.

 “화산보다 한술 더 뜨는데.”

 “비도선인께서도 문파의 명예를 위해 이런 기행을 하는 것이 아니오? 피차일반이니 너무 탓하지는 마시구려.”

 “흥. 져도 손해 보지 않겠다는 심보가 마음에 안들뿐이다!”

 말을 뱉음과 동시에 검집에서 녹옥을 빼드는 무평. 탁무자 또한 자신의 검에 손을 가져다 대며 말했다.

 “물론 나도 질 생각은 없소. 오시오.”

 탁무자의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무평이 녹옥을 움켜쥐고 달려들었다. 회색옷이 잔영을 일으키며 펄럭였다. 무평의 어깨위로 반월을 그린 녹옥이 탁무자의 견정혈을 노렸다.

 쨍!

 과연 무당은검은 만만치 않았다. 반쯤 뽑은 검으로 녹옥의 진로를 차단 한 뒤, 검을 완전히 뽑으며 무평의 진력을 흘려 보냈다. 가볍게 원을 그리는 유의 움직임. 절묘한 발검이었다.

 무평은 첫 일검이 막힌 뒤에도 아랑곳 하지 않고 연거푸 세 번을 찔러 들어갔다. 빛살 같은 쾌검이 탁무자의 요혈을 노렸다.

 허초가 아닌 제대로 공력이 실린 찌르기다. 탁무자는 거목의 뿌리처럼 다리를 붙박은 채 손목의 움직임만으로 비껴냈다.

 따다당!

 최소한의 힘으로 필요한 만큼만 밀어내는 부드러운 방어초. 하지만 무평도 이 정도는 예상 했다는 듯 다음 수를 펼쳤다. 일원검법의 절초들이 무평의 손에서 펼쳐졌다.

 “하앗!”

 녹옥이 장쾌한 기운을 담고 탁무자의 전신을 노렸다. 탁무자는 검으로 원을 그리며 맞섰다.

 무평의 검이 좌상을 노리면 어느새 따라온 탁무의 검이 막아선다. 그러면 무평은 연환초식으로 허리춤을 베어가고 탁무는 그 또한 비껴낸다.

 무평은 공세, 탁무는 수세였다.

 그렇게 순식간에 오십여초의 공방이 지나갔다

 본디 전진파의 무공은 중양심법을 기반으로 중용의 묘리를 살린 무공이다. 강유가 조화롭고 진퇴가 자유로운 것이 그 특징. 허나 무평의 움직임은 강과 쾌에 중점을 두고 오로지 전진할 뿐이었다.

 끊임없는 무평의 공세에도 탁무자의 검로는 흔들림이 없었다. 천천히 원을 그리는 검. 그 검은 수세를 유지한 채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아니 오히려 밀어내고 있었다. 탁무의 검은 오직 막고 흘려낼 뿐인데 압박을 받는 쪽은 무평이다. 유능제강, 부드러움으로 강함을 제압하는 묘리. 절정에 이른 태극혜검이었다.

 무평은 다급해졌다.

 ‘크읏! 이대로는......!’

 탁무자가 천천히 압박해 들어온다. 부드러운 듯 하면서도 무겁기가 태산 같다. 거목처럼 우뚝 서있는 것 같은데 어느새 사위를 점하고 들어온다. 정중동. 극상의 보법이다.

 무평은 압박을 떨치기 위해 발악적으로 검을 뿌렸다. 초식이 거칠어졌다.

 파가가각

 무평의 검초가 땅을 가르기 시작했다. 무리한 내력운용에 검의 회수가 자유롭지 못한 까닭이다.

 무평은 점차 운신의 폭이 좁아졌다. 서서히 좁혀오는 태극혜검의 기운에 숨을 들이 삼켰다.

 “흡!”

 천천히 움직이는 상대의 검이 투로를 차단하고 있다. 녹옥의 검로는 물론이고 보법의 진행방향까지. 도저히 앞으로 나아갈 수가 없다.

 ‘어느새......!’

 연무장 구석까지 몰렸다.

 그는 인정해야했다. 탁무의 무공은 자신보다 위. 애초에 이길 수 있을만한 상대가 아니었다.

 하지만.

 ‘이대로 물러설 순 없지.’

 무평은 공세를 멈추고 검을 회수했다. 대상을 잃은 탁무자의 검 또한 자연스레 멎었다.

 잠시간의 정적.

 탁무자의 검을 노려보던 무평이 이를 악문 채 말했다.

 “느긋하시군. 이것까지 막아내는가 보겠다.”

 “그러시오.”

 탁무진인의 말은 무미건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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