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당산은 융중산과 달랐다.
융중의 몇 배는 됨직한 크기였다. 봉우리에 봉우리가 끝도 없이 이어져 한눈에 담지도 못 할 정도였다.
진운은 무당산의 시작이 어디부터인지도 알 수 없었다.
다만 정상을 향해 오르막을 걸을 뿐이었다.
“헉...헉......”
거친 숨을 뱉으며 내딛는 발걸음, 성큼성큼 걷는 걸음에는 초조함이 가득했다. 그는 연신 걷는 와중에 뒤를 봤다. 누군가 쫓아오고 있었다.
대흥방일까?
고민은 소용이 없었다. 지금은 어서 무당산으로 몸을 옮겨야 했다.
“이쪽이다!”
뒤에서 외침이 들렸다.
어느새 말소리가 들리는 위치까지 온 것이다.
진운은 전속력으로 달리기 시작했다. 지칠 대로 지친 폐가 끊어질 듯 아파왔지만 멈출 수는 없었다. 이대로 대흥방의 손에 걸리면 뼈도 못 추릴 게 분명했다.
그에게 방법이라곤 어떻게든 무당파의 문을 두드리는 것이 전부였다.
‘대체 산문이 어딘거야?’
그가 고민하는 사이에도 대흥방의 무리는 착실히 거리를 좁혔다.
애초에 변변한 신법도 없이 무인들을 뿌리 칠 수는 없었다.
온통 오르막이라 허벅지가 터질 듯 아팠다. 숨이 턱 끝까지 차올랐지만 진운은 쉬지 않았다.
‘살아남아야 해!’
어머니의 당부가, 소미가 준비해준 행낭이, 루화가 해준 입맞춤이...... 모두가 그의 삶을 바라고 있었다.
허나 그 바램이 무색하게도 적흥단 무사들의 대도는 그의 발걸음보다 빨랐다.
이미 거리를 좁힌 무사가 곧장 도를 뿌렸다.
휭!
“으헉!”
그는 넘어지듯 고개를 숙여 가까스로 피했다. 하지만 난관은 지금부터였다.
휘잉! 휘잉!
연이어 휘둘러진 도가 그의 몸을 노렸다. 그 뒤로도 이어진 연환격을 아슬아슬하게 피해냈지만 마지막 도에 결국 등을 내주고 말았다.
“크으윽!”
연녹색 유삼이 갈라지고 그 틈으로 피가 스며 나왔다. 그나마 뼈는 무사한 게 다행이었다.
진운은 스스로를 다독였다.
‘얕다! 괜찮아!’
그러면서도 그의 다리는 쉬질 않았다.
여전히 무당파의 산문을 찾는 걸음이다.
그 꼴을 보던 대흥방의 무인이 말했다.
“쥐새끼 같은 놈.”
무인은 느긋했다.
어느새 대도를 든 자 셋이 더 붙은 것이다. 발견했다는 외침을 듣고 모여든 모양이었다.
대흥방의 무인들은 여유롭게 진운을 포위해갔다. 개중에 한명은 다른 무인들을 불러올 모양인지 산 아래로 뛰었다.
진운은 서서히 조여 오는 포위를 피해 앞으로 또 앞으로 내달렸다.
“헉...헉!”
목구멍이 폐에서 나온 공기를 쉴 새 없이 뱉어냈다. 심장이 입 밖으로 튀어나올 것만 같았다.
피를 흘린 탓인지, 긴 산행에 때문인지 눈앞이 흐릿했다.
이대로 발을 멈추면 죽는다.
눈을 감으면 죽는다.
진운의 머릿속에 죽음이라는 두 단어가 떠오를 때 쯤 희미한 시야에 잡히는 게 있었다.
저 멀리 나무기둥 옆, 회색 옷.
사람이었다. 그것도 희끗희끗한 머리에 허름한 도복을 입은 노도인.
‘도...인? 무당파!’
진운의 눈이 번쩍 뜨였다.
무당산에서 도인이라면 무당파밖엔 생각할 수 없었다.
작은 체구에 강퍅해 보이는 얼굴, 허옇게 난 수염이 영락없는 노 고수의 모습이었다.
진운은 지푸라기라도 붙잡는 심정으로 그 노인을 불렀다. 숨이 차 목소리도 제대로 나오지 않았다.
“어르신! 헉헉... 어르신!”
가부좌를 틀고 앉아있던 회색옷의 노인은 탐탁찮은 표정을 지으며 감았던 눈을 떴다. 진운은 노인에게로 달려가며 필사적으로 소리쳤다.
“살려주세요! 살려주세요. 어르신!”
“뭔 소란이야? 누가 쫓아오기라도 하는 것처럼.”
카랑카랑한 노인의 목소리는 다분히 신경질적이었다. 휴식을 방해받은 자의 짜증이 역력했다.
허나 진운은 그런 것 따윌 신경 쓸 때가 아니었다.
“네? 네네! 쫓아오는 거 맞습니다! 살려주세요. 도사님!”
노인은 진운을 위아래로 쓱 훑어보더니
“에잉. 덩치 값도 못하는 놈일세.”
하며 자리를 털고 일어났다.
그래도 구해줄 생각이 없진 않은 듯, 쫓아오는 대흥방의 무리들을 보며 말했다.
“무당산에서 살기를 흘리고 돌아다니다니, 저놈들도 제정신은 아니구나.”
진운은 속으로 쾌재를 불렀다.
그가 나서는 폼이 무당파의 은거고수쯤 돼 보였던 것이다.
‘살았다! 지푸라기가 아니라 동아줄이었어! 감사합니다. 진무대제님!’
진운은 마음속으로 연신 무당의 신선들에게 감사의 인사를 올렸다. 그는 엉금엉금 기어 노인의 뒤로 몸을 내 뺐다.
노인은 허리춤에 메어진 검을 빼들고 몸을 풀 듯 이리저리 휘둘렀다.
손잡이에 투박한 옥장식이 박혀진 검은 휙휙 소리를 내며 공기를 갈랐다. 그것을 본 진운이 감탄하고 있는 사이 대흥방의 무인들이 도착했다.
쫓아온 무인들은 셋이었다. 하나같이 큰 대도를 어깨에 걸치고 있었다.
하지만 단번에 진운의 숨통을 끊을 것 같던 기세는 어디로 갔는지 그들은 조심스럽게 눈치를 봤다.
눈앞의 노인이 무당파의 인물인지 살피는 것이다. 만일 그렇다면 점소이 하나 붙잡는 게 문제가 아니라 사지 멀쩡히 돌아갈 걱정부터 해야 할 판이니.
노인은 계속해서 허공에 검을 휘두르고 있었다. 인상을 찌푸리며 뿌려대는 검의 궤적이 예사롭지 않았다.
대흥방 무인들이 우물쭈물하는 사이 노인은 혼잣말을 중얼거렸다.
“쯧쯔. 영 마음에 안 드는구먼.”
눈앞의 무인들은 안중에도 없는 눈치였다.
결국 그들 중 가장 나이가 많아 보이는 무사가 나섰다.
“혹시, 무당파의 도사님이십니까?”
조심스런 질문에 노인은 얼굴을 와락 구기며 고개를 돌렸다.
“무당?”
“예. 혹 무당의 도인이시라면......”
노인은 대흥방 무인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대뜸 고함을 질렀다.
“에이! 개떡 같은 무당 말코 놈들!”
욕하는 걸 보아하니 무당파는 아닌 듯 했다. 하지만 아직 확답을 얻지 못한 무인은 조심스럽게 한 번 더 물었다.
“무당파가 아닙니까?”
“날 무당파 같은 위선자 놈들이랑 엮다니! 네놈들은 눈이 어떻게 된 게냐?”
‘무당파가 아니다!’
그제야 그들은 확신 할 수 있었다. 하기야 노인의 복색이 무당파라기엔 이상했다. 무당파의 특징이라는 눈처럼 하얀 도복은커녕 검 손잡이에 달린 장식조차도 무당파의 것이 아니었다.
그들은 그제야 조였던 긴장을 풀고 본색을 드러냈다.
“옘병 괜히 쫄았네.”
“노친네가 돌았구만.”
험악한 말을 내뱉으며 도를 건들거린다.
그러자 마음이 다급해진 것은 진운이었다.
‘동아줄인줄 알았는데!’
대체 왜 무당파가 아닌 도사가 무당산에 기웃거린단 말인가! 진운은 부여잡았던 동아줄이 다시 한줌 지푸라기가 된 심정이었다.
진운의 심정을 아는지 모르는지, 노인은 태연하게 말했다.
“네놈들은 어디 놈들이냐?”
앞에 선 무인이 거들먹거리며 말했다.
“대흥방의 위인들이시다.”
“대흥방? 그건 또 뭔 개뼉다귀 같은 데야? 칼을 그렇게 무디게 휘둘러서야......”
“노친네 하나 조지기엔 충분해!”
말과 동시에 무인 하나가 도를 휘둘렀다. 부웅 하는 소리와 함께 거대한 도가 노인의 정수리를 향했다. 노인의 몸을 세로로 쪼갤 듯한 살벌한 기세다.
노인은 검을 머리위로 들었다. 허나 그 검은 거대한 도를 막기엔 너무도 빈약해 보였다.
진운은 눈을 질끈 감았다.
‘나 때문에 괜히 어르신이 휘말렸구나!’
검 째로 쪼개지는 노인의 모습이 상상되자 마음이 불편했다.
챙!
“헛!”
하지만 예상과는 다른 소리가 들려왔다.
진운이 슬며시 눈을 뜨자 놀라운 광경이 펼쳐졌다.
노인의 검이 대도를 막아낸 것이다. 대도는 심지어 무인의 손을 떠나 바닥을 뒹굴고 있었다. 저 얇은 검으로 대도를 어찌 튕겨냈는지 상상조차 가지 않았다.
다른 무인들 또한 당황하긴 마찬가지였다. 깜짝 놀란 표정이 모든 걸 말해 주고 있었다.
그러는 사이 노인의 검은 민활하게 움직여 상대의 어깨를 찔렀다.
무인은 손쓸 틈도 없이 어깨를 내주고 말았다. 동료가 피를 흘리며 쓰러지자 그제야 다른 무인 두 명이 도를 휘둘러 왔다.
종횡으로 들이치는 합격(合擊)이다.
노인은 가볍게 한 발짝 움직여 아래로 내려치는 도를 피하는 한편 검을 휘둘러 횡격을 흘려냈다.
간단히 도를 흘려낸 동작만으로 상대의 자세를 무너뜨린 노인은 빠르게 두 무인의 어깨를 찔렀다.
먼저 쓰러진 무인과 똑같은 위치다.
눈 깜짝할 사이 세 명의 무인이 오른쪽 어깨에 피를 흘리며 쓰러졌다.
놀랍도록 빠른 검이었다.
노인은 검을 회수하고는 허리에 손을 짚으며 앓는 소릴 냈다.
“끄응. 이깟 놈들 처리하는데도 힘이 드는고만. 빌어먹을 무당 말코놈.”
대흥방의 무인을 상대하고서 어째서 무당을 욕하는지 알 수 없었지만 진운은 그저 감사할 뿐이었다.
“어르신 감사합니다! 이 은혜 잊지 않겠습니다.”
진운이 고개를 조아리며 감사를 표하는데도 노인의 표정은 좋지 않았다.
그는 산 아래를 바라보며 중얼거렸다.
“에구구. 한 놈 또 온다. 저놈은 한가락 하는 것 같은데.”
그 말에 진운은 노인을 따라 고개를 돌렸지만 보이는 것은 없었다.
진운이 의아해 하고 있을 때 대뜸 노인이 호통을 쳤다.
“네놈은 대체 뭔 일을 저지른 게냐?”
“네?”
구해주면서도 걸핏하면 화내는 게 성깔이 보통이 아닌 노인네였다.
“뭔 짓을 했기에 저놈들이 네 목을 노리냔 말이다!”
“그게... 제가 대흥방의 무인을 죽여서......”
“뭣이?”
노인은 진운의 대답이 의외였는지 유심히 그를 살피기 시작했다. 일순 노인의 눈이 빛나는 듯 싶더니 이내 기가 찬다는 듯 중얼거렸다.
“쯧쯔. 이런 어리숙한 녀석한테 죽었단 말이야? 대흥방이라고 했나?”
“네!”
진운은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 그러자 노인은 별 볼 것 없다는 듯 말했다.
“흥. 허접하기 짝이 없는 문파로구나.”
그때였다.
“흐. 허접하다니 노인장.”
멀리 산 아래서 모습을 드러낸 무인. 먼 거리에도 나지막이 흘리는 목소리가 또렷하게 들렸다.
적흥단주 장기홍이었다.
그는 빠르게 두 사람에게로 접근해 왔다. 붉은 대도를 어깨에 걸치고 여유롭게 움직이는 것 같은데 어느새 노인의 앞에 당도해 살벌한 기운을 피워냈다.
이가장의 호흡법 때문인지 진운은 단번에 위험을 감지 할 수 있었다.
‘고수다!’
허나 노인의 감상은 다른 듯 했다.
“뭘 이렇게 꾸물대?”
“여유라고 해 두지. 행색을 보아하니 무당의 인물 같지는 않은데, 노인장?”
“이놈이나 저놈이나 무당파부터 입에 담는구나. 이 몸이 어딜 봐서 무당말코 같으냐!”
“흐. 그렇담 피차 무당파는 거북하단 얘긴데. 그냥 귀찮게 하지 말고 저 친구를 내주는 게 어때?”
“흥. 네놈 똘마니들이나 내줄테니 그거 가지고 썩 꺼져.”
“늙은이가 제 몸 보신할 줄을 모르는군.”
대화는 거기까지였다.
노인을 무시하는 말을 뱉었던 장기홍이었지만 그는 조금의 긴장도 늦추지 않았다.
쓰러진 부하들은 모두 오른쪽 견정혈을 찔렸다. 동일한 부위만 노려 일검에 제압하는 무위. 노인의 무공이 대흥방 무사들과는 까마득하게 차이가 난다는 말이다.
허나 자신 또한 대흥방에서 가장 호전적이라는 적흥단의 단주다. 장기홍은 질 마음이 없었다.
그는 내력을 끌어올리며 노인의 출수에 대비했다.
선공은 노인부터였다.
“흥!”
코웃음 치며 찌르는 검은 무섭도록 빠르고 정교했다.
장기홍은 황급히 고개를 뒤로 빼며 도를 휘둘렀다. 노인의 검공을 쳐냈다 싶었는데 손 끝에 걸리는 감각이 없었다.
‘헛!?’
그가 헛바람을 삼키는 틈에 노인의 검이 연거푸 중단을 노렸다. 장기홍의 반응을 예상했다는 듯 검을 회수한 뒤 재차 찔러온 것이다. 검의 회수와 출수가 믿을 수 없을 만큼 부드러웠다.
장기홍은 상체를 틀어 검을 피함과 동시에 그의 대도로 노인의 팔뚝을 찍어 내렸다.
픽 하고 핏물이 튀었다.
노인의 팔뚝은 멀쩡했다.
오히려 피를 본 것은 장기홍이었다.
노인이 뻗었던 검을 회수하며 장기홍의 가슴팍에 가느다란 혈선을 남긴 것이다.
진퇴가 자유로운 공방일체의 무공이었다.
아무래도 노인은 생각보다 더 대단한 무위를 지닌 것 같았다. 장기홍은 잔뜩 긴장하며 노인의 검을 연이어 받아냈다.
노인의 공격은 송곳 같았다. 구석구석 정교하게 찔러오는 검에 정신을 차릴 수가 없었다. 그의 팔다리 곳곳에 가느다란 혈선이 그어졌다.
시간이 지날수록 늘어나는 것은 장기홍의 상처 뿐이었다.
그가 휘두르는 도는 허공을 가를 뿐이고 노인의 검은 매번 그의 허점을 찔러 들어왔다.
도검의 부딪힘이 없는 공방이 이어지길 몇 차례.
카앙!
별안간 날카로운 금속음이 퍼졌다.
오른쪽 옆구리를 찔러오는 검을 장기홍이 대도의 넓적한 면으로 막은 것이다.
“큿!?”
그동안 장기홍이 맞받아 칠 만 하면 도격을 흘려내던 노인이 이번에는 검을 회수하지 않았다.
장기홍은 의구심이 들었다.
‘어째서?’
장기홍은 그의 내력을 한껏 끌어 올려 검 째로 밀어내려 했다.
그그그극
검끝이 도면을 긁으며 기분 나쁜 소리를 냈다.
‘흠? 내력이...?’
장기홍은 영리한 자였다. 그는 대번에 느낄 수 있었다. 상대의 검 끝에서 전해오는 내력이 툭 툭 끊어지고 있었다.
기가 이어지지 않는다는 얘기다.
‘노친네! 내상을 입었구나!’
그의 생각대로 노인의 상태는 정상이 아니었다.
그러고 보니 그저 허름해 보였던 옷 군데군데 단면이 예리하게 잘려진 데가 있었다.
세월이 만든 것이 아니라 최근에 생긴 흔적이다.
어디서 싸움이라도 하고 온 모양이었다.
기쾌하게 들이치던 검격들은 내상을 감추려던 것이 틀림없었다.
거기까지 생각이 미치자.
“타핫!”
그는 한줄기 기합성을 내며 전신의 힘을 폭발시켰다.
그러자 텅! 하는 소리와 함께 검이 튕겨 나갔다. 노인 또한 그 힘을 감당하지 못하고 삼장이 넘는 거리를 물러나야 했다.
노인의 입에서 기어코 기침과 함께 선혈이 뿜어져 나왔다.
“쿨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