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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연재 > 무협물
회귀불사지체
작가 : 서은하
작품등록일 : 2018.12.31

목숨을 걸고 강호를 주유하는 진운의 이야기.

 
5. 이별
작성일 : 18-12-31 17:30     조회 : 381     추천 : 0     분량 : 54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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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진운은 꼬박 이틀 밤낮을 누워있었다. 아직 온몸엔 멍자국이 가득했지만 내부는 빠르게 안정을 찾아갔다.

 이가장 비전의 호흡법 때문이었다.

 덕분에 그는 죽음과 살인의 충격에서도 빠르게 빠져나왔다.

 하지만 겨우 일상생활이 가능한 수준에 지나지 않았다. 진운은 아직도 그때만 생각하면 진저리를 쳤다.

 “으으......”

 그는 분명 이전에도 싸운 경험이 많았다. 맞기도 하고 때리기도 했다. 그의 주먹에 맞아 뼈가 부러진 놈도 있었다.

 하지만 이번엔 달랐다.

 입안 가득 차올랐던 오살도의 피. 칼날이 육신을 갈라내는 감촉. 죽어가던 상대의 초점 없는 눈.

 호흡법이 아니었다면 며칠을 악몽에 시달렸을지 몰랐다.

 그는 오살도를 상대하던 기억에 몸서리치다 자신의 죽음에 대해서 생각했다.

 ‘분명히 죽었었는데......’

 그는 기억을 더듬었다.

 오살도의 비웃음 섞인 말과 함께 휘둘러진 칼. 곧이어 뒷목에서 느껴지던 화끈한 통증.

 순간 세상이 뒤집어지고 목이 잘린 자신의 몸뚱이가 눈앞에 어른거렸다.

 잘려진 목에는 어머니의 유품인 경옥 목걸이가 아슬하게 걸려 있었다. 그리고 그것은......

 희미하게 빛나고 있었다.

 ‘목걸이! 제갈공명!’

 진운은 그의 목걸이를 움켜쥐었다.

 목이 떨어지고 난 뒤 찾아온 어둠. 그 끝에 나타난 제갈량의 모습.

 아무리 생각해도 환상이나 헛것이 아니었다.

 5년전 무후사에서 본 그 모습이었다.

 ‘회혼의 술...... 진짜 그 주술 때문에 살게 된 것일까?’

 진운이 고민을 하던 중 소미가 들어왔다.

 “이제 몸은 좀 어떠니?”

 진운은 몸을 일으키며 대답했다.

 “괜찮아요. 이젠 뛰어다녀도 되겠는데요?”

 “그래......다행이구나.”

 진운은 억지로 밝게 웃으며 말했다.

 “얼른 나가서 일해야죠.”

 소미는 그런 진운을 쳐다보며 말했다. 굳은 표정에 굳은 목소리다.

 “진운아.”

 “네.”

 “네가 죽인 사람. 누군지 얘기 들었지?”

 못 들을 리 없었다. 동네방네 떠벌리기 좋아하는 기녀, 홍진이 어젯밤 그에게도 찾아왔던 것이다.

 덕분에 진운은 자신이 죽인 사람이 누구인지 알았다.

 “......네.”

 “그 사람, 대흥방의 무인이랬어. 대흥방의 무인이 네 손에 죽었단 걸 알면 언제 이곳으로 쳐들어올지 몰라. 그래서......”

 진운은 뒷말을 듣고 싶지 않았다.

 “큰 이모......”

 “여길 떠나거라.”

 “이모. 그놈들, 별것 아니에요. 이모도 보셨잖아요. 제가 이기는 거.....”

 “진운아.”

 “아니, 꽁꽁 숨어 지낼게요...... 이모 제발... 여기 있게 해주세요.”

 “쫓아내는 게 아니란다. 우린 널 지켜줄 수 없어.”

 소미는 손에 들린 물건을 탁자에 내려놓으며 말을 이었다.

 “여기 새 옷과 행낭이야. 행낭엔 건포랑 피풍의(避風衣:비바람을 피할 목적으로 둘러 입는 옷)도 들었다. 은자도 조금 넣어뒀으니 그만하면 노자는 충분할거야.”

 “이모......”

 “후...... 애초에 널 거두지 말았어야 했는지도 모르겠구나. 네가 있어야 할 곳은 여기가 아니야. 가거라. 가서 학문을 배우던, 무공을 배우던, 그게 아니면 또래들과 뛰어놀아도 좋으니...... 이 시궁창 같은 곳을 벗어 나거라.”

 “하지만...!”

 저는 다시 고아가 되는걸요.

 진운은 차마 뒷말을 하지 못했다.

 “몸이 괜찮다니, 오늘 안으로 나가렴. 대흥방이 들이닥치기 전에.”

 그 말을 끝으로 소미는 등을 돌렸다.

 문을 닫는 소리가 진운의 가슴을 짓눌렀다.

 

 진운은 지체하지 않았다.

 그는 소소정에 머물러 봐야 모두가 다칠 뿐이란 걸 알았다. 더구나 대흥방이 쫓기 시작했다면 한시라도 빨리 움직여야 했다.

 그는 소소정을 뒤로한 채 무거운 발걸음을 뗐다.

 빳빳한 가죽 신발이 땅을 스쳤다.

 묵직한 행낭을 매고 연녹색 비단유삼을 펄럭이며 걷는 게 흡사 과거를 보러가는 유생의 모습이었다.

 마을 밖, 융중산으로 향하는 오솔길로 접어들기 전, 작은 여인 하나가 따라붙었다.

 “진운아!”

 자기를 부르는 목소리에 진운이 고개를 돌렸다.

 루화였다.

 그녀는 눈가가 촉촉했다. 용케 떨어뜨리지 않은 눈물이 큰 눈 가득 고였다.

 “루화 누님.”

 “가는 거야?”

 “네. 큰 이모는요?”

 루화는 피식 웃으며 말했다.

 “방에 틀어박혔어. 많이 슬픈가봐. 큰언니가 우는 건 처음 봤어.”

 “어쩌죠? 지금이라도 돌아가면......”

 “돌아오긴 무슨! 괜찮아. 큰언니잖아.”

 “대흥방에서 찾아온 놈들이 난동이라도 부리면 어쩌려고요.”

 “어머. 우릴 못 믿는 거니? 네 얘기는 안할 거니까 걱정 마.”

 “그게 아니라......”

 갑자기 한 발짝 더 다가온 루화가 진운의 두 손을 잡았다. 그녀는 맞잡은 손을 바라보며 말했다.

 “무당산으로 방향을 잡는 게 좋을 거야. 그 놈들이 혹시 널 찾아내더라도 설마 무당에서 칼부림을 하진 않을 테니까. 무당파에서 무공을 배울 수 있다면 더욱 좋고.”

 “......”

 “방금은 소미언니가 해준 말이야. 그리고 이건......”

 루화는 갑자기 고개를 들어 진운의 입에 입을 맞추었다.

 그 돌발적인 입맞춤에 진운은 어찌할 바를 몰랐다. 매일 맡던 여인의 분 냄새가 아찔하게 느껴졌다.

 애처롭게 떨리는 루화의 입술이 그의 입술도 떨게 만들었다.

 쿵쾅쿵쾅 심장이 아프게 뛰었다.

 한참 만에 입술을 땐 루화가 말했다.

 “이건 내가 주는 선물이야...... 이 다음은 돌아오면 마저 하자.”

 환하게 웃는 그녀의 입가로 눈물방울이 떨어졌다.

 진운은 그 눈물을 닦아주고 싶었지만 그럴 수 없었다.

 그녀가 황급히 몸을 돌려 눈물을 훔쳤기 때문이다.

 진운에게 등을 보인 루화는 울먹이는 목소리로 말했다.

 “얼른 가. 그리고 이 다음에 대흥방 따위가 두렵지 않은 남자가 되면. 그 때 돌아오렴.”

 진운은 그녀의 목소리만으로 느낄 수 있었다.

 그녀에게 다음은 없다고. 이대로 영영 이별일 거라고.

 하지만 진운은, 그렇게 말하고 돌아가는 루화를 잡지 못했다.

 그저 우두커니 서서 멀어지는 루화를 보다 몸을 돌렸다.

 발걸음이 무거웠다.

 

 * * *

 

 녹슨 듯 불그스름한 대도를 등 뒤로 맨 사내, 적도상인 장기홍은 돌 위에 걸터앉아 수하의 보고를 듣고 있었다.

 눈을 감고 팔짱을 낀 채 가만히 듣던 그가 부복한 수하에게 물었다.

 “그래 마지막으로 본데가 어디라고?”

 “융중 외곽에 있는 소소정이란 기루입니다.”

 그는 인상을 찌푸렸다.

 “소소정?”

 “한때 양양에서 유명한 기생이었던 소미라는 년이 운영하는 기루입니다. 퇴기들 끼리 모여 사는 허름한 기루인데, 그중에 한 년을 벽산 부단주가 눈독 들였나 봅니다.”

 수하의 대답에 장기홍은 한쪽 눈을 슬며시 뜨며 말했다.

 “내가 취미생활은 안륙 안에서 해결하라 했을 텐데?”

 “그것이......”

 “뭔가 이유가 있나?”

 “예. 원래 연향정에 있던 년이 거기로 도망친 모양입니다. 그래서 거기까지 찾아갔다가......”

 “행방불명이다?”

 “네. 단주님.”

 “미친놈. 융중이면 무당산이 지척인데 거기가 어디라고.”

 “그곳 점소이놈과 싸웠다는 얘기가 있습니다만 그건 믿을게 못되고, 벽산이 사라진 후 기루가 요 며칠 문을 닫았답니다. 아마 부단주가 기루에서 깽판을 부린 뒤 근처 어딘가에서 취미 생활에 열중하고 있는 게 아닐까요?”

 “지랄. 그놈 지나간 곳에 흔적이 없던 적이 있나?”

 “......아뇨”

 “만약 그랬다면 벌써 소문 퍼져서 그놈 뒤치다꺼리나 하고 있었겠지.”

 말을 마친 장기홍은 오살도가 그 동안 벌였던 행각이 기억나는지 인상을 팍 썼다.

 한참을 찡그린 채로 생각하던 그는 문득 떠오른 게 있는지 수하에게 물었다.

 “헌데, 벽산과 싸웠던 게 점소이라 했나?”

 “네. 소문입니다만. 근방에선 제법 주먹으로 유명하다는데 아직 약관도 못 넘은 데다 무공도 모르는 놈이랍니다.”

 “오살도 벽산이 점소이랑 싸우고 행방불명이란 말이지...... 좋아, 직접 가봐야겠어. 준비해.”

 “네? 말씀드렸다시피 그건 소문일 뿐입니다.”

 “그러니까 더더욱 가 봐야지.”

 “무당파와 너무 가깝습니다. 소문이 신경 쓰이신다면 그냥 애들 시켜도......”

 장기홍은 수하의 말을 끊으며 말했다.

 “너 적흥단 그 이리 같은 새끼들이 조용히 처리할거 같나?”

 “......죄송합니다.”

 “알았으면 갈 준비나 해. 눈치 빠른 애들로 몇 놈 추려봐. 흐. 적흥단 부단주를 때려눕힌 점소이라......”

 장기홍은 낮게 웃었다.

 

 * * *

 

 대흥방의 행사는 빨랐다.

 진운이 떠난 지 이틀도 되기 전에 적흥단 무사들이 나타난 것이다. 그것도 적흥단주 장기홍이 직접.

 “그래서 어디 갔는지 모른다?”

 장기홍의 싸늘한 말투에 소미는 침을 꿀꺽 삼켰다.

 오살도의 살기도 매서웠지만 이 남자의 위압감은 차원이 달랐다. 주변이 얼어붙는 기분이 들 정도였다.

 소미는 겨우 입을 열어 대답했다.

 “네. 정신을 차렸을 때는 둘 다 사라진 뒤였어요.”

 소미의 말을 듣는지 마는지, 장기홍의 눈은 바닥을 살피고 있었다.

 그는 한쪽 무릎을 꿇고 얼룩덜룩한 바닥을 손으로 쓸더니 손끝의 냄새를 맡았다.

 장기홍은 여전히 바닥을 보며 말했다.

 “다른 사람들은 어때? 다친 곳은 없나?”

 “네, 기녀들은 모두 무사하답니다.”

 “그런데 왜 여태 문을 닫았지?”

 날카로운 질문에 소미는 대답할 말을 찾지 못했다.

 “그건......”

 “열심히 피를 지웠군. 걸레가 시뻘겋게 됐겠어. 흐. 둘이 싸운 게 맞나?”

 소미는 다급하게 변명하듯 말했다.

 “그... 그럼요. 바닥에 피가 흥건했어요.”

 그제야 장기홍이 씩 웃으며 소미의 눈을 쳐다봤다. 그 눈빛에 소미는 심장이 얼어붙는 것 같았다.

 장기홍은 천천히 몸을 일으키며 말했다.

 “그래. 아직도 냄새가 진동해. 이 정도 피라면 둘 다 죽었어도 이상하지 않겠어. 헌데 둘 다 시체도 없었다? 그건 말이 안 돼.”

 “그거야...... 대흥방 무사님이라면 시체 한 구 엎고 뛰는 정도는 할 수 있잖아요?”

 “당연히 그 정도는 할 수 있어. 헌데 오살도는 아니야. 그놈은 그런 짓 안 해. 특히 남자 시체는. 그놈이 만약 이곳 점소이를 죽였다면 육살도가 되었어야해. 이렇게 행방불명 되는 게 아니라.”

 소미는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

 “그렇담 죽은 놈이 벽산이라는 건데...... 혼자서 벽산을 죽이고 시체까지 옮겼을 리 없고, 조력자가 있었겠지? 그래서 내 결론은 이거야. 점소이 놈이 오살도를 죽이고 너희가 시체를 숨겼다. 어때. 비슷한 것 같나?”

 장기홍이 말을 마치며 회심의 미소를 지었다.

 소미는 눈을 질끈 감았다.

 “흐. 사실 오살도 놈이 어찌되건 알바 아니야. 방주 처남만 아니었어도 부단주는 못할 놈이었으니. 그런데 그 놈이 점소이한테 졌다는 사실은 알려지면 안 된단 말이지. 더불어 그놈 복수라도 해줘야 방주가 납득 할테고...... 해서 그놈을 어디로 숨겼는지는 알려줘야겠어.”

 소미는 떨리는 목소리를 감추며 말했다.

 “...몰라요.”

 “그래. 그럴 줄 알았지. 그렇담, 다른 년들도 모르는지 볼까?”

 그는 말을 마치자마자 수하들에게 손짓을 했다. 그러자 그들은 소소정의 모든 기녀들을 끄집어냈다.

 끌려나온 기녀들은 적흥단의 대도 앞에서 벌벌 떨었다.

 그 모습을 기분 좋게 보고 있던 장기홍은 낮은 목소리로 모두에게 말했다.

 “점소이 놈이 어디로 숨었는지 알고 있는 년은 얼른 대답하는 게 좋을 거야. 이년 손톱이 다 빠지는 꼴을 보고 싶지 않거든.”

 그가 말을 끝내며 손짓하자 수하들이 소미의 사지를 붙들고 입에 재갈을 물렸다.

 갑자기 몸을 제압당한 소미는 두려움에 몸을 떨었다.

 장기홍은 소미의 입에 재갈이 단단히 물렸는지 확인하며 말했다.

 “난 이쪽에는 취미가 없어서 말이야. 소리가 별로 듣고 싶지 않거든. 빨리 끝내자구.”

 그의 협박에 기녀들은 사색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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