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곳의 이름은 쇠별마을이었다.
소를 많이 키워 사람들이 그렇게 불렀다고 한다.
오래 전 기억을 뒤적거려도 다른 마을보다 소가 많지는 않았다.
농사짓는 마을이야 거름 때문에 항상 진한 똥내가 머무는 게 당연했다.
다만 짐작으로 쇠별마을에서는 섣달 그믐에 한 번 강변에서 거한 소시장이 열렸는데 파장이후 제야 전까지 매번 마을 아이들을 동원하여 푸짐하게 쌓인 소똥을 치워야 했다.
그런 퇴비들 덕분인지 소똥마을엔 고추 오이 호박이며 배추 무 고구마 등 농작물도 실하게 잘 달리기도 했다.
다만 쌀농사는 간신이 자급자족할 정도로 변변찮았는데 어른들 얘기로는 물이 시원찮아서 그렇다고 했다.
몇 년 동안의 꾸준한 가뭄으로 널따란 강 자취가 무색할 정도로 간간이 실개천이 흐를 뿐이었다.
우리가족이 마을에 이사 왔을 때도 겨울 가뭄이 한창이었다.
그 동안 거쳤던 다른 지방과는 달리 온화한 기후였다.
남쪽에서 이사 올 적에는 분명 눈보라가 한창인 겨울이었는데 그곳에서 우리는 홀겹의 옷과 이불을 덮고 지냈다.
선친께서는 그런 좋은 날씨가 화산때문이라고 했다.
마을은 그야말로 첩첩산중으로 천혜의 요새처럼 산들로 둘러 쌓여 있었다.
그 중에서도 마른 꼬챙이처럼 길게 솟은 큰 산이 있었는데 위의 민머리에서 가끔 연기와 요란한 소리를 뿜어내며 화산활동을 했다.
흔들 그네처럼 지축이 휘청거리면 정신이 홀릴 정도로 아득한 연기며 증기가 마을안팎을 메워댔는데 이런 현상이 자그마치 200년이 넘게 지속된 것이라 마을 사람들은 예사로 그런 거려니 하고 넘기는 것이었다.
자기들끼리 산신령 속이 좋지 않아 방귀와 트림을 한다는 우습지도 않은 전설을 만들어 믿기도 하면서.
처음엔 그런 것들이 너무 불안해서 견디기 힘들었지만 1년이 지나자 나도 어느새 익숙해져 버렸다.
오죽하면 소똥을 치운 제야의 달밤, 뱀처럼 구불구불한 산길에 희끄므레한 안개가 봄밤의 배꽃이 번지는 것처럼 산의 이끝에서 저끝까지 퍼지는 걸 보면서도 지축이 흔들릴 때까지 몇 번의 숫자를 세어야 할지를 두고 아라비아 도령과 내기했을까?
그 때 우린 선친의 충고대로 좀 더 빨리 달아나기 연습을 해야 했었다.
그랬더라면 머릿 속에서 같은 밤을 몇 번이고 되풀이 할 일도, 두렵고 가슴 아플 일도 없었을 텐데, 대신 웃을 일이 더 많았을텐데….
모든 일이 지나 오랜 후, 우연히 문헌에서 한문으로 쓰인 ‘우슬현’ 옆으로 작게 기록된 ‘쇠별마을’을 발견했다.
그 별 것도 아닌 문자를 보는 순간 느닷없이 가슴이 벅차더니 울컥하며 머리와 입으로 한꺼번에 속의 것이 터져 나왔다.
나는 정신을 잃을 때까지 통곡했다.
그것은 그제야 내가 잃은 것의 의미를 알게 되었다는 의미였다.
아직도 선명하다.
달밤 아래 안개 속에서 불 주위를 돌며 춤을 추고 노래하던 신비한 무리- 그 중 가장 아름답고 가장 빛났으며 가장 강했던 한 남자!
그는 도둑과 현자의 왕, 쫓겨난 귀신과 도깨비들의 수호신이며 살아있는 천족의 마지막 제왕이라 불렸다.
그러나 내게는 우슬현처럼 이 지상에서 홀연히 사라져 버린 신화였으며 동시에 버림받은 첫사랑이었다.
비록 평생 그 억울한 무게에서 헤어날 수 없었지만 이젠 그조차도 행복임을 알기에 다음 생, 혹은 다른 차원의 어딘가에서 그가 읽어 줄 것을 기대하며 이 기록을 남긴다.
그가 이 글을 읽고 나를 더 미워할지 사랑할지 알 길이 없지만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