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회사 30층에 있는 사장실
지성은 창문 밑으로 내려다보니, 아찔한 광경에 현기증을 느꼈다.
그 밑으로 추락할 것 같은 공포감.
그럼에도 불구하고 밑을 내려다보자 회사 옆에 새로 건축한 건물 안에는 사람들이 넘쳐나기 시작하고 있었다.
‘새로운 일이 잘 될 것 같군....세 번째 면접을 시작해서 직원 구하고, 첫 번째 면접을 먼저 본 사람들의 교육이 끝나는 중이라고 해도 미리 예약하기로 한 손님들로 바글바글하다니...’
그는 1년 전의 일을 생각했다.
그때까지만 해도 이렇게까지 회사가 번창할 줄은 생각하지 못 했었다. 결국 지성은 그 당시에 사건을 해결 해줄 힘이 없어서 그녀를 죽음까지 몰고 간 범인을 못 찾았고, 사건은 자살 사건으로 단정되어버리고 말았다.
그 이후, 죽을 고비를 넘긴 그녀는 마음의 병이 심각해진 탓에 실어증이 걸린 것도 모자라서 당시에 왜 떨어져서 다쳤는지 조차 잊어버렸다. 의사의 말로는 충격이 심한 탓에 기억하고 싶지 않은 부분만 기억하지 못 한 것이라고 지성은 그렇게 들었다.
그 뒤론 그는 너무나도 힘든 생활을 했어야 했었다. 지성을 거부하는 그녀를 달래주며, 여러 가지를 구경시켜주고, 세지도 못 할 만큼 얘기를 나누었다.
덕분에 지금은 어느 정도 많이 좋아져서 자신에게 꽤나 의지하는 중이고, 사람들과 마주 할 수 있을 정도까지 회복된 상태가 되었다.
다만, 아직 마음의 상처가 회복되지 않는 부분이 남은 상태여서 말을 못 하고 있지만 그나마 그 부분만 빼면 많이 좋아진 것이라고 지성은 그렇게 생각했다.
하지만 그 외에도 회사를 일으켜 세우기 위해서 노력해야 할 것도 산더미였다.
그러나 걱정도 잠시 일뿐.
그녀에게 이끌린 것처럼 지성은 우연치 않게 7명이나 되는 사람들을 만나게 되었다. 그 사람들의 도움으로 그는 회사를 일으켜 세우는 데에 성공했었고, 그녀를 지킬 사람들도 찾는 수고를 덜 수가 있었다.
“지금도 생각해보면....그녀가 자기 자신에게 준 기적일지도 모르겠군...”
‘언젠가는...그녀를 죽이려 한 범인을 빨리 잡을 수 있길 바랄 뿐이다...’
『똑--!똑---!』
누군가가 사장실의 문을 노크하는 소리가 들려왔다. 그쪽으로 시선을 바꾸며, 지성은 노크한 자에게 말했다.
“들어오게!”
“실례하겠습니다.”
사장실 안으로 들어온 이는 알카이드였다. 그리고 그를 이어 들어온 두 사람. 알리오스와 자신이 그토록 기다리던 여성.
“어서와, 루테아.”
“아...”
아스포델리네 루테아(Asphodeline lutea)...지성이 지어준 예명이었다.
본명을 숨기고 싶어 했기에 그가 그녀를 위해 탄생화로 지어준 예명...
루테아는 그를 보자마자 안겨들었다. 그 모습을 보며, 지성은 헛웃음을 했다.
“내가 그렇게도 보고 싶었어?”
“어....어...우...”
애써 표현하려했던 그녀는 자신의 입 밖으로 나온 말에 실망스런 표정을 지었다. 마치 지성이 싫어하는 것은 아닐까? 라는 생각을 하는 것 같아 보였다.
“그래, 보고 싶었구나. 나도...!”
그런 실망한 얼굴을 한 루테아를 그는 두 손으로 안아서 들어올렸다. 그런 뒤 사장실에 있어야 할 책상 대신 있는 침대 겸 소파에 앉혀두며 자신의 말을 이어 했다.
“보고 싶다고 말하고 싶구나.”
그러면서 지성은 그녀의 손등에 입맞춤을 했다.
변화가 없던 얼굴이 새빨간 사과처럼 된 루테아는 입만 버금 거릴 뿐이었다. 그런 광경을 알카이드와 알리오스는 아무렇지 않게 보다가 시선을 바꾸고 사장실에 배치된 자신들의 일터로 갔다.
“아침부터 화끈하네요.”
“그러게 말이다. 우리들은 신경 쓰지 말고 일에 집중하는 것이 좋을 것 같다고 생각한다.”
“그러네요...”
이내 누군가가 문을 강하게 열고 들어왔다.
“모두들 좋은 아....쿨럭!!!”
“!?”
사장실로 들어온 이로 인해 아침부터 달궈졌던 분위기가 깨져버렸다. 그 덕분에 알카이드는 잔소리를 늘어놓으며, 사태 수습부터 하고 있었다.
“정말이지, 약을 좀 잘 챙겨먹으라고 일일이 말해두었잖습니까!! 이게 뭔 추태입니까!!!”
“훌쩍...잘못했습니다...”
“지금 당장 약 먹도록 하세요!!”
“네엡~!!”
젊고 어린 목소리의 여성. 페크다였다.
희귀병으로 인해 자주 피를 토하기 때문에 늘 약을 먹어두고 있다. 약만 먹으면 건강한 사람들과 다를 바가 없을 정도로 정상 적으로 보였다.
허나 약을 먹어둬야 하는 사실을 가끔 잊어버린 탓에 피를 토해버리고 만다. 그 덕분에 다들 놀라는 것이 일상이 되어버렸을 정도였다.
“자, 페크다. 물이다.”
“아, 감사합니다. 알리오스씨.”
알리오스가 준 물을 입에 머금고 보기만 해도 많아 보이는 약들을 입에 전부 털은 그녀는 그대로 같이 삼켰다.
그래서 인지, 목구멍으로 넘어가는 것이 잘 보였다.
“아침부터 피를 보게 하지 말게...너무 놀라서 심장이 떨어질 뻔 했네.”
“죄송합니다. 사장님...”
“아...아...”
루테아는 걱정되는 눈길로 페크다의 얼굴에 희미하게 묻은 핏자국을 자신이 가지고 있던 물티슈로 닦아주었다.
“감사합니다. 아가씨. 전 괜찮아요. 걱정 마세요.”
“그런고로....앞으로도 걱정시키지 않게...! 약을 잘 챙겨 드세요!! 알겠습니까!?”
“네...네엡!!”
어지간히 놀란 눈으로 페크다는 알카이드의 남은 잔소리를 더 들어야만 했다.
알리오스는 한 숨을 내쉬며, 근처에 있었던 다른 소파에 앉으면서 다리가 아픈 것인지 주무르고 있었다.
“알리오스씨, 다리가 많이 아프시다면 병원에 가시는 편이 좋을 것 같습니다만...”
“괜찮습니다...조금만 쉬면 통증이 없어질 테니, 업무에 지장이 없을 것입니다.”
그것은 새빨간 거짓말.
그는 다리가 안 좋아서 페크다와 함께 병원에 자주 간다. 페크다는 수혈 및 검진하기 위해서, 알리오스는 재활 치료하기 위해서였다.
최근에 그가 치료하는 내내 통증을 많이 호소하고 있다고 지성은 담당 의사에게 들었다.
‘요즘 상태가 많이 안 좋으신 것 같은데...일부러 안 말 하시는 거 보면...루테아에게 크게 걱정을 끼치고 싶지 않다는 것 일까...’
어느 정도 시간이 지나자, 다들 각자의 일을 시작했다. 페크다는 서류 정리, 알리오스는 앉아서 업무에 필요한 서류 작성.
루테아는 지성의 옆에서 노트북으로 무언가를 보며 노트북에 있는 키보드를 열심히 치고 있었다.
그 사이에 알카이드는 사장실의 구석에 준비된 찻잎과 찻잔, 찻주전자를 꺼내들고서는 찻잎을 찻주전자에 넣고, 따듯한 물을 따르기 시작했다.
어느 정도 시간이 지난 후에 알카이드가 다른 이들을 보며 말했다.
“오늘은 녹차로 준비해보았습니다. 뜨거우니, 천천히 마시도록 하세요.”
주전자에 있던 내용물을 찻잔에 따른 후, 그는 다른 이들에게 나눠주었다.
“고맙군. 잘 마시겠네.”
“역시 알카이드씨~! 차 맛이 훌륭해요!”
“잘 마시도록 하지.”
칭찬에 약한 탓인지, 그는 아무런 말조차 못 했다. 루테아는 입으로 바람을 불면서 천천히 차를 마셨다. 알카이드는 그런 모습을 보며, 만족한 얼굴로 그녀에게 다양한 모양의 쿠키를 건네주었다.
“이것도 같이 드시도록 하세요. 아가씨.”
“어...아아....”
알카이드가 준 쿠키를 조용히 한 입 베어 먹다가 이내 다른 하나를 집어서 페크다에게 건네주었다.
“아가씨!? 절 주시는 건가요?? 감사합니다! 잘 먹겠습니다!!!”
기쁜 얼굴로 페크다는 자신의 입으로 쿠키를 베어 물며 먹었다. 쿠키를 조금 씩 먹어두던 루테아가 묵묵히 노트북을 보다가 시무룩한 얼굴로 지성에게 노트북의 화면을 보며 가리켰다.
“우우...”
“응? 뭔가 모르는 것이 있어?”
지성은 그녀에게 다정하게 노트북 화면을 보며 천천히 설명을 해주었다. 그러는 동안 그녀는 화면에서 눈을 떼지 않고, 설명을 들었다. 그러다가 누군가가 노크를 하면서 들어왔다. 눈매가 날카로운 여성과 나이가 꽤나 든 할아버지가 지성에게 다가왔다.
“수고하셨습니다. 메그레즈, 미자르씨. 꽤 오래 걸렸네요?”
“아침 일찍이 면접을 보러 온 사람들을 본 것 뿐이지만 정말 많더군요.....”
“그 전에 점심 식사 시간이 너무 지났기에 잠시 휴식차로 왔습니다.”
“아...그랬지...”
일하는 동안 시간을 모르던 지성은 벽에 걸린 시계를 바라보았다. 1시 20분. 루테아와 다른 이들이 온 시각은 10시 30분. 시간이 너무 빠르게 지나간 것 같았다.
덕분에 그는 몸을 풀면서 기지개를 했다.
“슬슬 배고파질 시간이로군요...”
“네, 아직 면접을 보지 않은 이들은 식사 후에 보기로 했습니다.”
“꽤나 까다로운 면접이라서 그런지 젊은이들이 땀을 많이 흘리더군요.”
“그렇겠죠. 면접에 중요한 테스트가 자신에게 얼마나 욕심이 심한가? 안 심한가? 그런 것이니까요.”
알카이드는 찻잔과 찻주전자를 정리하고 다른 사람들을 둘러보며 말했다.
“그럼 시간도 늦었지만, 슬슬 점심을 준비할까요?”
“그래야겠지. 루테아도 슬슬....”
그의 말의 끝이 흐려지자, 다들 일제히 루테아에게 시선이 향했다. 어느새 인가 지쳐서 잠든 그녀는 목을 계속 앞으로 흔들어 대고 있었다.
모두 조용히 웃으며, 베게와 이불을 준비해두기로 했다.
지성은 깨지 않도록 조심히 루테아를 눕혀두자, 알카이드가 베게를 미리 그 사이에 껴놓아서 루테아가 베고 자도록 해두었다.
그 뒤에 이불을 조심히 덮어둔 것을 본 지성이 다섯 명에게 손짓으로 사장실의 밖으로 나가자는 신호를 내보냈다. 다들 그것을 이해하고 조심히 밖으로 나왔다.
“그럼 저는 페크다와 미자르씨, 메그레즈씨와 함께 식 재료를 구하러 가겠습니다.”
“그래, 나는 알리오스와 함께 저쪽 휴식 실에 있는 커피숍에 있도록 하지.”
“아뇨, 저도 따라....”
“안 됩니다.”
단호히 알리오스의 말을 싹둑 자르고 알카이드가 거절했다. 그는 당황한 기색으로 쳐다볼 뿐이었다.
“맞아요! 알리오스씨, 아까부터 다리가 아파보였다고요!? 그 상태로 식 재료를 구하러 돌아다니는 것은 안 된다고요!”
“페크다의 말이 맞습니다. 그리고 아가씨와 마스터를 지킬 사람은 최소한 한 명이라도 남는 편이 좋을 것이라 생각합니다.”
“그렇지만...”
“호호호....걱정 할 필요가 없습니다. 저희들에게 맡기고 알리오스는 편히 쉬도록 하세요.”
“상태가 안 좋아져서 위급한 상황에 도움이 안 되면 저희들이 곤란합니다. 그러니, 편히 쉬도록 하십시오.”
그때서야 그는 고집을 꺾을 수밖에 없었다.
“알겠다...아가씨와 사장님의 곁에 있도록 하지.”
그 말을 끝으로 그 이후로 알리오스는 아무런 말도 안 했다.
4명이 한꺼번에 식재료를 구하러 가버린 사이에 지성은 휴식 실에 있는 커피숍에서 커피를 주문해둔 뒤, 직원에게 진동 벨을 받고 알리오스가 앉은 자리에 같이 앉았다.
그런 뒤 의사에게 전해들은 말을 생각하며, 지성은 걱정하는 말투로 알리오스와 이야기를 나누기로 했다.
“알리오스, 자네 말이야.”
“네. 뭔가 용건이 있습니까?”
“그게 말이지....요새 치료받을 때마다 통증을 강하게 호소한다고 이전에 담당 의사에게 들었네.”
“그...그렇습니까?”
“너무 참지 말게. 그럴수록 더 걱정하는 것은 나랑 다른 이들....특히나 루테아가 심하게 걱정할 것일세.”
“죄송합니다...”
그는 얼굴을 숙인 채로 바닥만을 볼 뿐. 지성을 보지 못 하고 있었다.
이야기를 하던 도중에 진동 벨이 울리자, 지성은 알리오스의 등을 토닥이며 커피를 가지러 갔다. 그 사이에 언제 깬 것인지, 루테아가 왔었다.
“아가씨, 깨어나셨습니까? 좀 더 주무셔도 괜찮으실 텐데...”
“........”
커피숍에 다른 사람들이 있어서 인지, 그녀는 말을 못 하고 있었다. 알리오스의 옆에 있었던 의자에 앉은 그녀는 조심히 자신의 등 뒤로 숨겨둔 무언가를 알리오스에게 건네주었다.
“이건?”
“........”
“저에게 주는 선물입니까?”
조용히 루테아는 아래, 위로 고개를 끄덕였다. 리본으로 간단하게 상자를 묶어서 예쁘게 포장된 것을 알리오스가 리본을 풀면서 예쁜 리본 포장모습이 사라졌다.
리본을 푼 직후, 상자를 연 그는 깜짝 놀란 채로 상자 안의 내용물을 물끄러미 보고만 있었다.
“이...이것은...”
“루테아!? 언제 와 있었던 거야? 그나저나 알리오스, 그것은...?”
말문이 막혔는지, 조용한 그의 얼굴을 자세히 보자 울 것 같았지만 애써 참는 모습이 보였다. 지성은 아무런 말없이 커피를 내려놓으며 상자 안을 들여다보았다.
그 안에는 루테아가 직접 만든 것인지, 박음질이 좀 엉성했지만 열심히 만든 티가 나는 안대였다.
안대에는 자수로 푸른 꽃무늬를 새겨 둔 것이 보였다.
‘그런 건가...루테아가 미자르씨의 따님이신, 알코르씨에게 부탁해서 무언가를 만드는 것은 종종 보긴 했었는데...이걸 만든 것이었군...게다가 자수까지...’
“좋은 선물을 받았군. 알리오스.”
“네...”
지성은 자신의 카드를 건네주면서 루테아에게 마시고 싶은 것을 주문하라고 잠시 보낸 뒤, 그는 조용히 알리오스를 달래주어야만 했다.
한편, 회사에서 차를 타고 15분을 달려서야 나오는 큰 마트로 간 네 사람은 마트 안을 둘러보고 있었다. 그 와중에 미자르가 싱글 벙글 웃고 있자, 페크다는 의아한 채로 물어보았다.
“할아버지, 저희랑 장보는 게 즐거우신 건가요?”
“뭐, 그것도 즐겁긴 합니다만...사실은 말이죠. 지금 쯤 타이밍 좋게 아가씨께서 깨어나시면 알리오스에게 선물을 주고 있지 않을까? 란 생각이 들어서요.”
“뭐라고요!? 아가씨께서 선물!? 그렇다는 것은 나에게도...!”
“그렇다고 메그레즈씨에게는 줄 선물은 없을 겁니다.”
알카이드의 냉정한 말에 그녀는 시무룩한 채로 주변의 식재료만을 볼 뿐이었다.
“헤에...무슨 선물 일까나?”
“뭐, 나중에 보면 알겠죠. 그런데 미자르씨는 그걸 어떻게 아시는 거죠?”
“제 딸이 알려주었거든요. 아가씨께서 알리오스씨에게 선물을 주고 싶어 해서 도와주었다고 말이죠.”
“아, 역시 알코르씨...아가씨에게 늘 가르쳐주시고, 여러 의미로 도와주시죠...”
“그것이 우리 딸의 즐거움이죠. 또 아가씨가 도움이 필요하거나 배우고 싶으신 게 있으시면 언제든 가르칠 준비를 하겠다면서 말이죠.”
알카이드는 진지하게 생각했다. 그것은 즐거움이 아니라 그저 단순한 목적으로 가르치는 것이 아닌가? 싶었다.
‘그분은 아가씨가 나중에 사장님이랑 결혼하고 난 뒤에도 별 탈 없이 지낼 수 있도록 신부 수업을 하시는 것 같은데....다들 눈치 못 챈 건가...?’
다들 언젠가는 알지도 모른다며 그는 생각은 접어두고 점심 메뉴를 생각하면서 식 재료를 세 사람이랑 같이 고르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