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숭이 부하들의 환대를 받으며, 뻘쭘하니 서 있기를 한참.
자아도취 상태에서 빠져나온 녀석이, 조작을 통해 본거지로 통하는 입구를 열었다.
스응-
원숭이들이 만들었다고 하기엔, 소리없이 열리는 입구의 기술력이 너무나도 뛰어났다.
살짝 기가 질린 나는, 입구 내부에 들어서서는 아예 입도 뻥긋하지 못할 정도로 놀라버렸다.
이곳이 본래 아리아의 주거 공간인게 아닌가... 하는 의문이 들 정도로, 좁아터진 아리아의 작업실과는 비교 자체를 할 수가 없었다.
우끽! 우끼끽!
우리를 보좌한답시고 따라온 원숭이들이, 이곳저곳을 가리키며 우끼끽 거린다.
괜히 몸집을 부풀리며 떠드는 게, 꼭 자랑을 하는 것 같아보였다.
-조금만 더 가면 도착한다.
"알았다."
응가 녀석이 뭔가 말을 한 것 같았지만, 내 주의는 녀석이 아니라 주변을 향해 있었다.
입구를 통해 들어온 공간은, 솔직히 내 눈에는 엡실론 저리가라 할 정도였다.
이곳 통로의 폭은 엡실론에서 로봇으로 뚫고 들어갔던 통로와 비슷했다.
높이는 확실히 엡실론쪽이 압도적이었지만.
그리고 너저분하다거나 볼품없다거나 하지 않았다.
쓰레기 매립지 안에 있는 공간이라고는 믿을 수 없을 정도의 깔끔함.
어디 특출나게 모난 곳 하나 없었고, 통짜로 만들었다는 착각이 들 정도로 이음새 따위를 잘 찾아볼 수 없었다.
그것만 해도 놀랄만 하지만, 더욱 놀라운 광경은 문이 닫힌 후에 벌어졌다.
화악-
암전이 됨과 동시에, 주변이 급격히 밝아져왔다.
그것은 단순히 불을 끄고 켜는 수준이 아니었다.
사방을 가로막고 있던 통로의 벽이, 투명해짐과 동시에 바깥의 풍경을 보여주었다.
그 풍경이라는 것도, 밖으로 나가면 보일, 그런 쓰레기 매립지의 모습을 생각하고 있다면 오산이다.
바깥의 풍경에선, 쓰레기의 '쓰' 자도 볼 수 없었다.
그야말로 녹음이 우거진 풍경!
하늘에선 엡실론의 빛이 내리쬐고 있고, 바람에 몸을 맡긴 풀떼기들이 넘실넘실 춤을 춘다.
가끔가다 바람의 손짓에 의해 나뭇잎들이 떨릴때면, 우수수- 하는 효과음이 들려오는 것 같은 착각이 들 정도였다.
[후와~ 진짜 멋지다아.....]
거대한 숲에 들어와 산들바람을 맞는 느낌이다.
쓰레기가 보이질 않으니, 들어오기 전에 느꼈던 음울함은 눈을 씻고 봐도 찾아볼 수 없었다.
이곳에 떨어지고 나서부터, 어딜가도 금속품들만 가득이었다.
정도가 다르긴 하지만, 하루라도 금속을 눈에 담지 않고 산 적이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본래 마나를 다루고, 자연친화적인 재료들을 사용해 생활을 하던 샹그릴라 행성이라고는 상상할 수도 없을 정도로, 온통 금속 천지였다.
그나마 지어둔 건물이 아까워, 옛 방식으로 지은 건물들이 많이 남아있긴 했다.
하지만 살아 움직이는 것들은 거진 금속때기를 하나씩은 달고 다니고 있다.
금속은 빛을 반사한다.
무광택 처리라는 기술이 있긴 하지만, 그것은 돈이 많이 든다.
때문에 서민에 불과한 지상층 인간들은, 그냥 옷가지 따위로 가리는 것으로 빛의 반사를 최소화 했다.
하지만 그럼에도 감출 수 없는 부위는 존재하는 법.
금속에 의해 반사된 빛은, 사람들이 다니는 거리를 더욱 밝게 비춰주었다.
그런 만큼, 빛에 노출이 자주된 눈은 피로를 호소했다.
가끔가다 응가 녀석처럼 아예 금속을 노출한 채로 다니는 사람들도 적지 않았기에, 눈의 피로는 더해져만 갔다.
이쪽 세상은 선글라스가 발달하지 않았기에, 나와 제로스는 타인에 비해 더한 피로감을 느낄 수 밖에 없었다.
선글라스가 발달하지 않은 이유는 간단하다.
사람이라면 많든 적든 보유하고 있는 '마나' 가, 적당한 피로 정도는 해소해주기 때문이다.
여하튼, 그런 눈 아픈 곳만 전전하다가, 이렇게 녹음이 우거진 평화로운 풍경을 보니, 절로 눈의 피로가 풀리는 느낌이다.
우끽! 우끼!
원숭이들은 마나를 타고나지 못한다.
그래서 그런지, 이런 쪽으로 기술이 발달한 것 같았다.
... 원숭이한테 과학 기술이라니... 좀 아이러니 하지만, 눈에 보이는 결과가 말해주고 있었다.
다른 원숭이들은 몰라도.
적어도 응가 녀석과 그 밑에 있는 원숭이들의 과학 기술력은, 아리아의 뺨을 쳐도 될 수준이라는 것을.
[그나저나... 니들 혹시 내말 들리는 거니?]
욱끼! 우끼끼!
아까부터 묘하게 내가 중얼거릴 때마다, 부하 원숭이들이 우끽 거렸다.
바깥 풍경 구경하느라 바뻐, 녀석들이 우끽 거리는 말든 신경 쓰지 않고 있었지만, 지금은 신경 쓰인다.
그것도 무척이나.
[야, 응가야. 쟤네 지금 내말 들린다고 하는 거니?]
-....
우끼익!
질문은 응가에게 했건만, 대답은 다른 녀석들에게서 들려왔다.
그나저나, 거의 제로스 급으로 대답을 꼬박꼬박 해주던 녀석이, 뭔 일로 묵묵부답이래?
설마...?
[야야, 너 지금 이름 그렇게 불렀다고 내 말 씹는 거냐?]
-....
이번에도 대답은 다른 놈들이 대신 해왔다.
그런데 반응하는 게, 꼭 지들이 욕을 먹은 것마냥 흥분된 모습을 보이고 있었다.
[....니들도 내 말 들리는구나... 이런 제엔장... 내가 원숭이들이랑만 대화가 가능한 상태라니...]
"나도 있다."
[아, 맞다. 너도 있었지... 그게 아니 잖아! 왜 하필 원숭이랑...]
인간을 비롯한 다른 동물들에겐 내 말이 안들린다.
이미 몇번이고 시험해 봤기에, 아주 잘 알고 있다.
내 말을 유일하게 알아먹는 종족은 원숭이 뿐이다.
...그러고 보니, 어째선지 나도 원숭이들이 하는 말(?)을 대충이나마 알아들을 수 있는 것 같기도....하고...?
[아무리 그래도 그건 아니지! 내가 원숭이도 아니고! 어떻게 쟤들 말을 알아듣는데?!]
우끼우끼! 우끼끼! 우끼-익!
[아, 그래. 내가 미안하다. 니네 대장 이름 그따구로 불러서.]
....
다그쳐오는 말에, 나도 모르게 대답을 해버렸다.
가슴 속 깊은 곳에서 치밀어오는 자괴감이, 내 머릿속에서 집 하나를 구해 들어가버렸다.
그렇게 눌러 앉아버린 자괴감.
나는 땅주인으로서, 멋대로 눌러앉아버린 자괴감을 어찌할까 고민했다.
고민은 짧았다.
절벽 아래로 떨어져 버린 내 자존심이, 결정을 내리는데 한몫했다.
[그래! 나 원숭이랑 대화한다! 불만있냐!]
"불만 없다."
제로스 넌 좀 빠져!
우끼끼익! 우꺄우꺄!
[아, 알았다고! 응가...가 아니라, 운드가르야! 내가 미안하다! 원숭이들의 대장인 너한테! 그런 몹쓸 이름으로 불러서 미안하다!]
-...알면 됐다.
[그래! 용서해줘서 고마워!]
-내 이름은 운드가르다. 그것만 명심하고 있으면 된다.
[응! 알겠어!]
그렇게 내가 원숭이들과 대화를 나눌 수 있다는 사실을 인정하는 과정이 지나갔다.
인정을 하고나니, 뭔가 후련하기도 하고, 아프기도 했다.
그래도 뭐 어쩌랴. 이미 망가질 대로 망가진 몸인데, 뇌가 이상해져서 원숭이 말을 알아듣는 것 정도야...
[아흑흑흑!!]
-다 왔다.
이런 피도 눈물도 없는 놈!
사람이 이렇게 구슬프게 울고 있는데, 위로 한마디 없냐!
타악-
하지만 나의 마음 상태와는 상관 없이, 제로스는 움직였다.
무빙워크의 끝에서 내린 우리는, 준비되어 있던 호버 크래프트에 탑승했다.
호버 크래프트는 부드럽게 미끄러지며, 아래로 아래로 내려갔다.
그 와중에 정말 다양한 시설들을 곁눈질로나마 볼 수 있었다.
시설에 따른 원숭이들의 부가적인 설명을 들어가며, 내려가길 한참.
목적지에 도착한 우리는 드디어 단단한 지면을 밟을 수 있었다.
[우와아~! 대단하네요! 운드가르님!]
제로스가 발을 내딛는 것과 동시에 터져나온 감탄사.
그렇다.
나는 이곳에 이르기까지, 원숭이의 위대함(?)을 엿볼 수 있었다.
내 입에서 튀어나온 이 감탄사는, 그들의 위대함을 깨달은 뒤에 튀어나온, 아주 자연스러운(?) 처세술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