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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연재 > 라이트노벨
당신과 나의 시간
작가 : 이로공
작품등록일 : 2018.12.10

「평행세계라고…, 들어보셨나요?」

내가 긍정의 의미로 고개를 끄덕이자 그녀는 말을 이어갔다.

「음……, 평행세계와는 조금 다를 수도 있는데…
간단하게 하나의 세상에 두 개의 시간이 흐른다고 생각하시는 게 더 편하실 수 있어요.」

세상은 하나의 시간을 가지고 있었다.
그러나 어떤 '사건'을 계기로 하나의 시간은
A시간대의 세상과 B시간대의 세상, 둘로 나뉘게 된다.

 
-9-
작성일 : 18-12-19 21:26     조회 : 363     추천 : 0     분량 : 55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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맑은고딕 나눔고딕 돋움 굴림 궁서 바탕
13 15 17 19 21

 

 토요일.

 매서운 겨울바람이 지나가고 봄의 꽃향기가 서서히 찾아온다는 3월.

 아직까지는 겨울의 한기가 완벽히 가시지는 않았지만

 앙상한 나뭇가지들에게서 겨울에는 볼 수 없는 벚꽃의 기운이 조금씩 보이는 걸 보아하니

 봄이 어느 정도 찾아오고 있음을 알 수 있었다.

 아직 완전히 피지는 못했지만, 보름만 지나도 거리는 봄의 향기로 가득해져

 지나가는 사람들에게 장관의 풍경을 곧 보여 줄 사전준비를 하는 것처럼 보였다.

 추위에 약한 나로서는 하루 빨리 그날이 오길 바라며 몸을 웅크린 채 학교를 향해 걸었다.

 

 

 학교 근처에 다다르자 등굣길 좌우로 자리 잡은 문방구들이 보였는데

 오늘따라 많은 학생들이 문방구 주변을 서성거렸다.

 대부분의 학생들의 손에는 가지각색의 포장지로 포장한 물건들이 있었고,

 심심찮게 막대사탕을 입에 물고 있는 광경도 볼 수 있었다.

 평소에는 볼 수 없는 광경으로, 나는 핸드폰을 열어 날짜를 확인해 봤고,

 그제서야 오늘이 화이트데이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언제부터였는지는 알 수 없지만 3월 14일이 되면,

 마치 약속이라도 한 듯 사람들은 서로 사탕을 주고받았는데.

 주로 좋아하는 사람에게 고백의 용도로도 많이 쓰이며,

 타인에 대한 자신의 호감도를 올리기 위한 용도로도 많이 쓰이고 있다.

 화이트데이에 대한 기억으로는,

 중학교 시절 당시 한 명의 여학생에게 사탕을 받아 본 기억이 있다.

 그 당시엔 딱히 좋아하는 사람이 아니더라도, 서로 친한 친구끼리도

 주고받았기에 당시의 나는 별 생각 없이 받기만 했었고

 그 결과, 다음 날 그 애에게서 눈치가 없다는 소리와 함께

 반에서 여자를 울린 ‘매정한 돌부처’ 라는 쓸데없는 타이틀을 획득했었다.

 그 이후 지금까지 사탕을 사지도, 받지도 않았고

 어느 샌가 화이트데이는 내 머릿속에서 잠시 지워져있었는데,

 매년 이맘때쯤만 되면 잊지 말라는 듯 익숙하지만 낯선 장면을 보여 줬다.

 

 별 생각 없이 주변을 둘러보며 학교로 발걸음을 옮길 무렵

 문방구에서 여러 가지 사탕이 담겨 있는 조그마한 바구니를 들고

 만족하는듯한 미소로 걸어 나오는 허윤의 모습이 보였다.

 녀석 역시 나를 발견하고는 세차게 손을 흔들며 내 옆에 따라 붙었고

 녀석의 손에 담긴 사탕의 주인을 어느 정도 파악한 나는 가볍게 말을 붙였다.

 

 「현재 심정은?」

 

 「말도 마. 상당히 격양된 상태라고, 물론 긴장을 해서 그런 건 아니고….」

 

 태연한 척 말하는 허윤의 눈에는 긴장감이 맴돌았고,

 나름 걱정이 된 나는, 녀석을 떠봤다.

 

 「구체적인 계획이라도 있냐.

 무작정 사탕만 쥐어 줄 생각은 아니겠지?」

 

 「당연히 아니지.

 지금 머릿속에서 수만 가지의 상황 시뮬레이션을 그려 가고 있다고.

 가장 최고의 상황을 그리는 중인데…, 거의 최종단계라고 보면 돼.」

 

 「아무 생각 없이 사탕만 샀군.」

 

 「돌부처 주제에 연애 상담이라니…, 기가 차네.

 두고 봐, 다음 주 부터 나는, 네가 아니라 여자친구와 손을 잡고 등교하고 있을 거야.」

 

 「뭐…, 잘해봐라.」

 

 나름 녀석의 1년간의 짝사랑을 응원하는 입장으로서 조언이라도 해줄까, 했지만.

 내 코가 석자라고, 고백의 경험 같은 건 가지고 있지 않았기에

 마음속으로 나마 녀석의 사랑이 결실을 맺길 응원했다.

 

 「보아하니, 너는 단 한 개도 받지 못할 것 같으니 이거라도 하나 받아.」

 

 허윤은 바구니에 담겨 있던 작은 막대사탕을 꺼내어 내게 건네 줬다.

 

 「나한테라도 받은 걸로 위안을 삼으라고,

 나쁘지 않잖아? 우정사탕.」

 

 뭐가 그리 신이 났는지 허윤은 크게 웃으며 걸었고

 나는 녀석의 우정을 별 생각 없이 주머니에 집어넣었다.

 

 

 

 

 

  *

 

 

 

 교실에 들어서자 확실히 어제와는 사뭇 다른,

 사탕을 들고 있는 반 애들의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토요일, 주말의 등교는 누구나 싫어할 만한 상황임에도

 반 전체의 분위기는 한층 들 떠 있는 느낌이었다.

 자리에 앉아 가방에서 1교시 과목에 대한 교과서를 꺼낼 무렵,

 옆에서 인기척이 느껴졌고 시선을 돌리자 정은비가 눈에 들어왔다.

 

 「안녕? 일찍 왔네.」

 

 정은비는 웃으며 인사를 건넸고 손을 살짝 들어 대답을 했다.

 

 「오호, 너는 한바가지를 사 들고 왔네. 누구 주려고?」

 

 「아…, 그…그건 비밀이지…하하.」

 

 옆자리에 같이 앉은 허윤의 손에 달린 사탕 바구니를 보자

 정은비는 관심이 있다는 듯 녀석에게 말을 걸었지만

 허윤은 아직은 정은비를 대하는 게 어려운지 연기가 어정쩡한 신입배우 마냥

 어색한 톤으로 대답했다.

 

 「수상한데…, 혹시 우리 반?」

 

 정은비는 예리한 탐정마냥 허윤을 쏘아봤고

 허윤은 눈도 마주치지 못한 채 어색한 웃음으로 겨우 정은비의 시선을 돌릴 수 있었다.

 그리고,

 

 「윤달님, 너는 화이트데이에 별로 관심이 없나보네?」

 

 예리한 탐정의 다음 타겟은 나였다.

 

 「뭐…, 그렇지. 연관성이 별로 없거든.」

 

 「좋아하는 사람…이라던가…, 주고 싶은 사람 없어?」

 

 「딱히?」

 

 내가 어깨를 으쓱해 보이자 정은비는 내심 아쉬운 얼굴로 나를 타박했다.

 

 「에이, 인생을 그렇게 딱딱하게 살면 안 되지.

 오늘 같은 날은 그래도 한 번쯤은 특별한 사람에게

 마음을 선물해 보는 것도 나쁘지 않아.」

 

 「너는 마치 있다는 듯 얘기하는데, 누구냐.」

 

 「나는 오늘 아침만 해도 엄마와 아빠, 그리고 언니에게 줬지.」

 

 정은비의 얘기를 듣자 문득 가족과 철부지 동생이 생각났고

 한번쯤은 이런 날 상술에 넘어 가보는 것도 나쁘지 않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쁘지 않을 거 같네.」

 

 「그럼! 분명 엄청 좋아하실 걸?」

 

 문득 정은하도 사탕을 샀을까 하는 궁금증이 생겼다.

 

 「혹시, 정은하도 사탕을 샀냐?」

 

 「당연하지, 어제 나랑 같이 사러 갔었거든.」

 

 생각보다 의외였다.

 시간을 중재하는 중재자라는 이미지와 평소 보이는 모습 때문인지

 기념일과는 전혀 무관 할 것 같았는데…,

 물론 받기는 많이 받을 것 같은 외모긴 하다만…….

 누군가에게 기념일 날 무언가를 선물할 이미지는 아니었다.

 이건 편견이겠지.

 

 「그보다, 신경 쓰이는 게 하나 있어.」

 

 「…?」

 

 정은비는 잠시 허윤의 눈치를 보더니 얼굴을 내 쪽으로 밀며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이건 비밀인데…, 어제 언니랑 사탕을 사러 갔는데

 언니가 사탕을 네 개를 산거야…

 여태껏 나랑 언니는 가족에게 줄 것 포함해서 세 개만 샀었는데

 누구에게 줄 거냐고 물어봐도 알려주지를 않아서… 궁금해 죽겠어.」

 

 「좋아하는 사람이 생겼을지도…, 모르지.」

 

 「흐음…, 만약 그런 거라면 조금 서운할 거 같은데….」

 

 「쑥스럽겠지, 그걸 어떻게 말하겠냐.」

 

 「그렇지? 내 생각도 그렇긴 해.」

 

 그렇게 말하는 정은비의 얼굴엔 근심이 가득해 보였다.

 그건 서운함과는 사뭇 다른 느낌으로 보였는데 나로서는 알 수 없는 표정이었다.

 

 「만약 그게 사실이라면 정말 축하할 일이지.

 동생으로써 남자하고는 한 마디도 못해 본 언니가

 혹시나…, 평생 혼자 살아가면 어쩌나 하고 걱정 해본 적도 있으니까.」

 

 「다른 사람은 몰라도 너나 정은하는 그럴 걱정 없어 보이는데….」

 

 「어머, 그건 무슨 의미?」

 

 굳이 그걸 내 입으로 얘기해야 되나 싶어, 정은비를 쳐다보자

 내 대답을 꽤나 기대하고 있는지 웃으며 나를 보고 있었다.

 

 「무슨 의미라니…, 그렇고 그런 의미지.」

 

 「무슨 소리인지 모르겠는데~」

 

 적당히 둘러대려 해봤지만 정은비는 대답을 들어야겠는지

 앞에 빈자리 의자를 끌어다 앉고는 심술궂게 물었다.

 

 「뭐…, 둘 다 예쁘잖아 일단…, 성적도 우수하고.

 그것만으로도 충분하다고 생각하는데….」

 

 「그리고…?」

 

 「……어?」

 

 「기분이 나쁘진 않네, 계속해줄래?」

 

 정은비의 미소는 한층 더 심술궂어 졌고,

 혹시 여기서 말실수라도 하게 되면 중학교 때 와는 비교도 안 돼는

 고독한 학교생활을 해야 하나, 잠시 고민했지만 정은비는 그럴 사람이 아니라고 생각됐기에

 나는 내가 느낀 그대로 얘기했다.

 

 「너는 뭐…, 성격도 좋은 편이잖아 활발하기도 하고… 붙임성도 좋고….

 정은하는… 정은하대로 매력이 있으니까, 적어도 너희는 혼자 살 일은 없을 거다…

 라는 얘기지.」

 

 정은비는 나름 만족했다는 얼굴을 하곤,

 

 「흐음…, 좋아 나랑 언니를 잊어 먹은 건 이걸로 용서해주지.

 엄청난 충격이었다고, 나랑 언니는 너를 보자마자 기억해 냈는데….」

 

 「분명…, 너희와 나는 초등학교 2학년까지 같은 반이라고 했지?」

 

 「응, 맞아.」

 

 「조금 뜬금없는 얘기일 수도 있는데…

 사실 나는 초등학교 2학년 이전의 기억이 없어.」

 

 「…어?」

 

 「사고로 인해 기억상실증이 왔거든…, 미안하게도.」

 

 9년 전,

 나는 당시 버스사고로 인해 기적적으로 살았으나 기억을 잃었고

 정은비와 정은하가 초등학교 2학년 당시 전학을 갔다면

 사고가 일어나기 전, 전학을 갔다고 생각할 수 있다.

 사고 이전의 기억은 단 한 장면도 기억이 나지 않지만

 사고 이후의 기억은 남아 있는데, 정은비와 정은하는 내 기억 속에 없으니

 사실상 내게는 초면 그 자체였기에 나는 사실대로 내 기억 네트워크를 공유해줬다.

 

 「아…, 그건 좀 충격적인데……, 미안.」

 

 「신경 쓰지 마. 오랜 시간이 지나기도 했고….」

 

 정은비는 상당히 충격을 받은 듯 나와 허윤을 번갈아가며 눈치를 봤고

 나는 최대한 자연스럽게 넘어가려 했지만

 정은비는 그래도 찜찜한지 표정이 영 시원찮았다.

 그리고 1교시 시작을 알리는 예비종소리가 학교 내에 퍼졌다.

 

 「…이런 상황에서 주려 했던 건 아닌데…, 잠시만.」

 

 정은비는 자신의 자리로 돌아간 뒤

 가방에서 빨간색 포장지에 감싸여진 물건 하나를 꺼내 내 책상위에 올려놓았다.

 굳이 물어보지 않아도 내 책상위에 놓인 물건이

 사탕이라는 것쯤은 쉽게 추리할 수 있었다.

 

 「어…, 일단은 화이트데이니까…. 오랜만이기도 하고….」

 

 정은비는 쑥스러운지, 손을 꼬며 조심스레 말했고

 사탕을 받을 수 있을 거라는 생각은 조금도 하지 못했기에

 선물용은커녕 답례용 사탕조차 사지 않았기에 나로서는 조금 난감한 상황이었다.

 

 「…고마워, 근데 나는 줄게 없는데.」

 

 「응? 아, 괜찮아. 딱히 답례를 바라고 산건 아니니까….」

 

 괜찮다고 말하는 정은비의 얼굴은 약간의 아쉬움이 묻어 있는지, 침울해 보였다.

 

 「그래도….」

 

 「그러면 오늘 우리 집에서 같이 저녁이라도 먹을래?

 부모님도 오늘 일찍 오신다고 했고…, 오랜만에 너를 보면 좋아하실 거야.」

 

 「…나는 상관없긴 한데, 괜찮겠냐.」

 

 「그럼! 언니도 좋아 할 거야.」

 

 이것마저 거절해 버린다면 더 이상 정은비에게 해줄 게 없을뿐더러,

 정은비의 집에서 저녁을 먹는 것쯤이야 딱히 어려울 게 없기에

 정은비의 저녁 제안을 승낙했다.

 무엇보다 정은하에게 물어 볼 얘기도 있고, 괜찮은 기회라고 생각됐다.

 

 「우리 집 모르지? 전화번호 알려 줘.

 내가 저녁쯤에 전화할게.」

 

 문득, 정은비와 정은하를 찾기 위해 아파트 주변을 헤맨 월요일이 생각났다.

 정은비가 핸드폰을 내밀어 번호를 찍어 달라는 듯한, 제스처를 취했고

 나는 핸드폰을 받고 내 핸드폰에 전화를 건 뒤 정은비에게 돌려줬다.

 

 「진달래 공원알지?

 내가 저녁쯤에 전화하면…, 거기로 나와. 나도 나갈게.」

 

 내가 고개를 끄덕이며 알겠다고 대답하자

 정은비는 만족스러운 듯, 밝은 얼굴로 자기 자리를 찾아 돌아갔다.

 

 「윤달님, …이건 대체 무슨 상황이냐.」

 

 「무슨 상황이긴….」

 

 정은비가 사탕을 주는 시점부터 믿을 수 없는 장면을 본 듯한

 얼굴로 구경하던 허윤은, 아직도 시선은 정은비에게 고정한 채 물었다.

 

 「너랑 정은비,정은하가 동창인 건 알겠는데…,

 어째서 사탕을 주는 거냐. 그것도…너한테만?」

 

 「너한테 사탕을 줄 정도의 친분은 아니라고 생각했겠지.」

 

 사실 나도 사탕을 받을 정도의 친분이 있다고는 생각안하지만.

 

 「부럽구나 부러워, 저 정은비에게 사탕이라니…젠장.」

 

 「나쁘지 않다며.」

 

 「뭐가?」

 

 학교를 오며 허윤이 했던 얘기가 떠올라, 나도 모르게 웃으며 말을 덧 붙였다.

 

 「우정사탕.」

 

 

 

 
작가의 말
 

 잘 부탁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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