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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연재 > 라이트노벨
당신과 나의 시간
작가 : 이로공
작품등록일 : 2018.12.10

「평행세계라고…, 들어보셨나요?」

내가 긍정의 의미로 고개를 끄덕이자 그녀는 말을 이어갔다.

「음……, 평행세계와는 조금 다를 수도 있는데…
간단하게 하나의 세상에 두 개의 시간이 흐른다고 생각하시는 게 더 편하실 수 있어요.」

세상은 하나의 시간을 가지고 있었다.
그러나 어떤 '사건'을 계기로 하나의 시간은
A시간대의 세상과 B시간대의 세상, 둘로 나뉘게 된다.

 
프롤로그[2]
작성일 : 18-12-10 19:53     조회 : 384     추천 : 1     분량 : 55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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맑은고딕 나눔고딕 돋움 굴림 궁서 바탕
13 15 17 19 21

 3월 아침.

 아직 온도에 적응하지 못하고 눈을 뜨고도 이불속에서 헤어 나오지 못하고 있을 때

 갑작스럽게 복부에 느껴지는 강한 충격에 어쩔 수 없이 이불속에서 나오자

 아직은 11살 철부지인 내 동생이 환한 미소로 콩알 만 한 새끼 고양이를 들고

 나를 반기고 있었다.

 

 「일어나세요~ 지~각입니다~」

 

 「내가 말할 땐 노래 부르면서 하는 거 아니라고 했지.」

 

 「아~ 그랬습니까~? 죄송합니다~」

 

 마치 엄마 속을 죽도록 썩히는 청개구리 같은 얼굴로 ‘메~롱’을 한 뒤

 고양이와 함께 내 방에서 뛰쳐나갔다.

 아침부터 시작되는 소란스러움에 약간의 현기증을 느끼며 준비를 마치고

 집 밖을 나가는 순간 내 눈엔 익숙하진 않지만 낯익은 얼굴이 포착됐다.

 

 「어라……?」

 

 상대편도 나를 보고는 발걸음을 멈추고 잠시 고민에 빠진듯한 제스처를 취했다.

 무심코 지나가려하자 발을 옆으로 옮겨 내 앞길을 막고 아직 고민이 끝나지 않았는지

 나를 쳐다보고 있었다.

 

 「학교가야 되는데…, 길 좀 비켜줄래?」

 

 「잠깐만…, 생각날 거 같은데….」

 

 조심스레 말을 꺼내봤지만 가볍게 묵살 당해 버렸다.

 

 지금도 충분히 지각이라 생각하는데….

 

 당황스러움에 옆을 보자, 생기 없는 두 눈이 나를 응시하고 있었다.

 나를 보고 있는 건지 나를 그냥 돌멩이라고 생각하고 보고 있는 건지

 정은하는 초점 없는 눈을 고수한 채 나를 보고 서 있었고,

 정은비는 아직까지도 나라는 존재에 고민을 하고 있는 것 같았다.

 

 「우리랑 같은 반 맞지? 창가 쪽에 앉아있는…….」

 

 정은비는 용한 점쟁이 마냥 눈을 번뜩이며 자신의 주장에 확신에 찬 상태로

 내게서 ‘정답’이라는 말이 나오길 기다리고 있는 듯한 포즈를 취하고 있었다.

 

 「어어…맞아 기억하고 있네, 그럼 이만.」

 

 「잠깐 잠깐! 어…그러니까…이름이…….」

 

 더 이상 시간을 지체 하다간 학기 초부터 담임선생님에게 찍힐 것 같은 기분이 들어

 내 이름을 짧게 말한 뒤 그들을 지나쳐 학교를 향해 발걸음을 옮겼다.

 

 「맞아! 달님! 윤달님! 이름이 특이해서 기억하고 있었는데

 잠깐 깜빡했네, 미안!」

 

 걱정하지마라, 곧 다시 잊어먹을 거다.

 

 

 내가 발걸음을 옮기자 자연스레 정은비가 따라 걸었고,

 정은비가 걷자 정은하 역시 영혼 없는 걸음걸이로 나와 정은비를 따라왔다.

 

 「어라? 근데 우산 안 들고 나왔네?

 오늘 비 온다고 그러던데….」

 

 시선을 살짝 돌리자 정은비와 정은하는 작은 우산을 하나씩 들고 있었다.

 

 「늦잠 잤나 봐? 나도 오늘은 늦게 일어났긴 했는데…,

 그래도 우산은 챙겨왔지.」

 

 「…일기예보가 맞는 걸 본적이 없어서….」

 

 「뭐야 그 아저씨 같은 대답은…

 아마도… 학교 도착할 때쯤이면 바로 후회할 걸?」

 

 뭐가 그렇게 신이 났는지 정은비는 큰소리로 웃었다

 

 

 

 

 학교로 가는 버스정류장에 가까워지자 나는 버스를 타야하나 잠시 고민을 했고

 정은비는 잽싸게 정류장 앞으로 뛰어갔다

 우산을 쥔 왼손을 번쩍 들어 올리는데 그 모습이 마치 흡사 ‘자유의 여신상’같아보였다.

 버스를 타지 않기로 마음먹은 나는 인사를 할까 잠시 고민했지만,

 딱히 필요성을 느끼지 못하고 버스정류장을 그대로 지나쳤다.

 

 「뭐야? 어디가? 버스안타?」

 

 「그냥 걸어가려고….」

 

 버스정류장을 지나가는 나를 발견한 정은비는 잽싸게 내 옆으로 뛰어와 같이 걷기 시작했다.

 

 「지금 버스를 안타는 건 일부러 지각하겠다는 건데?」

 

 「그럴 생각은 없는데, 너야말로 이대로 면 지각 확정이다.」

 

 「흐음……,」

 

 잠시 미간을 찡그리고 고민을 하던 정은비는

 

 「알았어! 먼저 갈게.」

 

 라고 말하며 뒤로 돌아 버스정류장으로 돌아갔다.

 정은하는 마치 처음부터 거기 있었다는 듯 버스정류장 의자에 앉아있었다.

 

 「하아…….」

 

 입김을 불자 입안에서 연기가 훅 하고 나왔다.

 3월이지만 상당히 쌀쌀한 날씨에 버스를 타지 않을 것을 잠시 후회 할 뻔했다

 몸을 최대한 웅크리고 하늘을 바라보니,

 우중충한 먹구름이 서서히 다가오고 있었다.

 부디 비가 오지 않길 바라며 학교로 향하는 발걸음을 재촉했다.

 

 

 여담으로 이 날 결국 지각하여 반성문을 써야했다

 

 

 

 

  *

 

 

 

 비가 내리지 않길 바라는 내 마음을 가볍게 무시하며 점심쯤 내리던 비는

 방과 후가 되자 폭우 수준으로 내리기 시작했다.

 나를 제외한 거의 모든 학생들은 마치 오늘은 우산을 가져오는 날 이라도 된 마냥

 우산을 펴고 하교하고 있었고 일기예보를 믿지 않은 나를 원망하고 있을 무렵,

 어깨에 무언가 ‘툭’하고 내 감각신경을 건드렸고 반사적으로 옆으로 시선을 옮기자,

 아침에 정은비의 손에 있던 노란색 작은 우산이 보였다.

 

 「역시! 이러고 있을 줄 알았어, 같이 가자 우산 씌워줄게.」

 

 「굳이 그럴 필요는 없는데…, 우산도 작고…….」

 

 「에이~ 사양하지 말고 출발!」

 

 

 누군가 이 상황을 내가 이해할 수 있게 설명해준다면 극찬을 마다하지 않을 거다.

 내 모든 기억을 뒤집어봐도 정은비가 나와 우산을 쓰고 집에 갈 정도의 친분이 있다?

 그건 결코 아니다,

 나로서는 얘기를 나눠본 자체가 오늘이 처음인데 마치 언제나 그래왔다는 듯

 정은비는 우산을 펼친 뒤 내 옷자락을 잡고 출입문을 나가려했고

 정은비가 우산을 피자마자 옆에 있는지도 몰랐던 정은하 역시 우산을 펼치고

 나갈 준비를 끝마친 상태였다.

 

 「은비야!」

 

 그때 뒤에서 생소한 목소리가 정은비를 찾았고

 정은비는 소리의 주인인 여학생을 보자 우산을 접고 여학생과 잠시얘기를 하다

 내심 아쉬운 표정으로 나를 쳐다보곤,

 

 「끄응…, 아쉽게도 볼 일이 생겨서 나중에 가야겠는데…….」

 

 그러고는 뭔가 생각이 난 듯 손바닥을 주먹으로 ‘탁’ 치며

 

 「그래! 은하언니랑 먼저 같이 집에 가.」

 

 「……?」

 

 「나는 친구랑 같이 우산 쓰고 가면 되니까

 내 우산 쓰고 언니 좀 같이 바래다줘!」

 

 아니 그게 문제가 아니라…,

 

 어느새 내 손엔 작은 노란색 우산이 쥐어져 있었다.

 

 「집에 가는 방향이 비슷하기도 하고…, 너도 우산 필요하잖아?」

 

 정은비는 뭐가 그리 신이 났는지 싱글벙글 웃으며 내 대답을 기다리는 눈치였다.

 

 「알았어.」

 

 정은비의 말대로 확실히 우산이 필요하긴 했고 집 앞에서 만난 걸 생각해보면

 아마 이 자매들의 집은 우리 집과 그리 멀지 않은 곳에 있다고 생각해서

 정은비의 제안을 승낙했다.

 

 「잘 생각했어~ 단둘이 있다고 언니한테 고백 같은 거하지 말고!」

 

 「걱정하지마라.」

 

 「장난이야~ 내일 봐~, 언니도 집에서 봐!」

 

 그 말을 끝으로 정은비는 자기와 얘기한 여학생과 학교 안으로 들어갔다.

 

 「어… 갈까……?」

 

 「…….」

 

 딱히 대답을 바라고 물어보진 않았지만 안 그래도 어색한 분위기를 더욱 더 증폭시켰다.

 정은하는 대답 없이 나를 바라보고 있었고,

 새삼스레 정은하의 외모에 감탄한 내 우스꽝스러운 얼굴을 보고 있을 거라 생각하니

 급격하게 창피함이 밀려왔다.

 작은 키에 어울리지 않는 허리까지 내려오는 새까만 흑발,

 눈은 마치 죽은 사람처럼 생기가 없어 보였지만 묘한 분위기를 가지고 있어 보였고,

 성숙해 보이는 외모와 어울리지 않은 작은 손과 발이 생각보다 귀엽게 보였다.

 

 그 순간,

 

 알 수 없는 일이 벌어졌다

 빗소리와 웅성거리던 학생들 소리, 하교를 알리는 종소리가

 한순간 원래 없었다는 듯, 쥐도 새도 모르게 사라졌다

 하늘에 구멍이라도 뚫린 듯 내리던 비는 순간적으로 그 움직임을 멈췄고

 우산을 쓰고 가던 학생도 우산이 없어 뛰어가는 학생도 그 순간 움직임을 멈췄다

 

 「……?」

 

 나는 당황스러움을 감추지 못하고 주변을 꼴사납게 두리번거리던 중,

 정은하와 두 눈이 마주쳤고 여전히 감정 없는 눈이었지만,

 마치 그 눈은 이 모든 사태를 알고 있다는 듯이 침착했고

 깊이를 알 수가 없던 눈은 악의라곤 찾아볼 수 없는 따뜻한 눈이었다.

 

 「저기…….」

 

 흡사 미로와 같은 두 눈에 정신이 아찔해져 갈 때 쯤…

 

 ‘투둑’

 

 다시 빗소리가 흘러들어왔다.

 그리고 모든 움직임과 소리를 잃어버린 것들은 다시 자리를 찾아 원상태로 돌아왔고,

 그와 동시에 정신을 차린 나는 황급히 우산을 피고 출입문계단을 내려갔다.

 

 잠은 충분히 잔거 같은데…, 이건 무슨 현상인지 제발 아무나 알려줘, 무서우니까.

 

 혹시나 정은하가 따라오지 않을까 하고 슬그머니 뒤를 쳐다봤더니

 다행히 정은하는 나를 따라 계단을 내려오고 있었다.

 

 

 학교 앞 정류장에는 하교를 하는 학생들이 상당히 길게 줄을 지어 버스를 기다리고 있었다.

 평소에도 사람이 많았지만 날이 날인만큼 평소보다 학생들이 많았다.

 

 「저기… 나는 걸어서 갈 생각인데 너는 어떡할래?」

 

 「…….」

 

 애초에 버스를 탈 생각이 없던 나는 정은하에게 질문을 던져봤지만,

 돌아오는 건 침묵뿐.

 잠시 동안의 침묵이 이어진 뒤 이대로는 집에 가지 못할 것 같아 부탁과도 같은 질문을 던졌다.

 

 「같이……, 걸어갈래?」

 

 그러자 도저히 움직이지 않을 것만 같던 정은하의 고개가 미세하게 위 아래로 흔들렸고

 다행히 그 움직임을 캐치한 내 두 눈에 고마움을 느낀 뒤,

 집을 향해 발걸음을 옮기자 정은하 역시 나를 따라 발걸음을 옮겼다.

 학교에서 집까지는 상당히 거리가 있기에 나는 발걸음 속도를 높였고

 정은하는 마치 그 속도가 자기 걸음걸이라는 듯 자연스럽게 따라왔다.

 

 

 하늘에 구멍이라도 뚫린 듯 비는 점점 거세져 정은비가 준, 작은 우산으로는

 수많은 물방울들을 차마 막아내지 못하고 내 양 어깨를 고스란히 노출시켜

 안 그래도 떨어져가는 내 체온에 더는 안되겠다고 생각 될 정도의 플러스 효과를 더했다.

 급하게 비를 피할 곳을 찾던 내 시야에 아파트 단지마다 한두 개는 설치한

 팔각형의 정자가 눈에 들어왔고, 나는 지체 없이 바로 팔각정에 흠뻑 젖은 몸을 밀어 넣었다.

 우산을 접고 하늘을 바라보니 나를 약 올리기라도 하는 듯 하늘에선 더욱 더 굵은 빗방울이

 떨어지고 있었고 정은하는 옆에서 우산을 접고 정면을 응시하고 있었다.

 

 「미안한데… 비가 조금 그치면 가는 게 어때? 너무 많이 오네……」

 

 혹시나 정은하가 거부하진 않을까 걱정했지만

 다행히 정은하의 고개를 위 아래로 약하게 흔들렸다

 

 「버스타고 가지, 나 때문에 억지로 걸어가는 건…」

 

 어색함을 떨쳐내려 별 생각 없이 던진 말에 정은하는 고래를 좌우로 흔들었고

 왠지 모르게 의사소통이 이루어지는 것에 신이 나버린 나는 안 해도 될 말까지 해버렸다.

 

 「사실 나는 버스를 못 타서 말이야…,

 어렸을 적 이후로는 타본 적이 없네.」

 

 「2001년 4월…….」

 

 다시 한 번 정은하의 반응을 보기 위해 고개를 돌린 나는 빗소리에 잘 들리지는 않지만

 확실하게 작은 입에서 나오는 작은 소리를 들었고 그 충격이 가시기도 전에

 또 다시 충격에 휩싸여야 했다.

 

 「2001년 4월 17일 우주초등학교…

 소풍을 가던 버스가 빗길에 미끄러져 추락……,

 단 한명을 제외하곤 전부 사망….」

 

 기계적인 말투로 들릴 듯 말 듯 얘기했지만, 내게 충격을 주기엔 충분했다.

 아니, 충분함을 뛰어 넘었다.

 

 「너……, 지금 무슨 소리를 하고 있는 거야?」

 

 「알고 있어…, 그 사건…….」

 

 생각지도 못한 타이밍에 말문이 막힐 정도의

 충격을 받는다면 당신은 어떤 선택을 하겠는가?

 

 언젠가 읽어 본 책에서는 ‘침착하게 상황에 맞춰 대응하라’라는

 문구를 본 것이 어렴풋이 기억나는데

 그 책이 내 손에 있다면 당장이라도 찢어 버렸을 것이다.

 침착은커녕 내 심장소리는 거샌 빗소리와 함께 리듬을 타도 될 정도로

 급격하게 빠른 속도로 뛰고 있었고, 무언가를 말하려 했지만

 내 머릿속은 아직 생각이 끝 맞춰지지 않았는지 목으로 단어를 보내지 못하고 있었고

 당황한 내 시야엔 정은하의 눈동자가 들어왔다.

 아까와는 또 사뭇 다른, 그러나 이번에는 의도를 알 수 없는 눈동자가 보였고

 마치 모든 것을 빨아들이는 블랙홀을 눈앞에서 보는 듯한

 강한 어지러움이 발끝에서부터 뒤통수까지 흘러들어와 자칫 그 자리에 주저앉을 뻔했다.

 

 비가 오는 날의 하굣길,

 평생 잊을 수 없는 강렬한 충격을 받은 그 날.

 나와 정은하는 함께 있었다.

 

 
작가의 말
 

 잘 부탁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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