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군가 내게 말했다.
학창시절은 그야 말로 인생을 아무 걱정 없이 즐기는 시기라고.
혹은 학창시절이야 말로 인생을 되돌아보면 가장 좋았던 시기…라고.
물론 그 의미는 대한민국 청소년의 1순위의 꿈이 공무원이 되어 가면서
학창시절이 마냥 아무 걱정 없이 즐길 수 있는 시기가 아닌지는 꽤나 시간이 흘렀지만,
적어도 나는 이 의견에 어느 정도는 찬성하는 편이다.
누군가 내게 물었다.
-당신의 학창시절은 어땠는지?
나는 누군가 나에게 학창시절에 대해 물어 온 다면,
적어도 내게는 인생의 전환점…. 혹은 선택의 연속이었다고 대답 할 수 있다.
지금이야 웃으면서 얘기라도 할 수 있겠지만.
적어도 당시 고등학생이었던 내게, 순간의 선택지들은 너무나도 난이도가 높았기에
당시의 나는 정확한 선택을 해왔다고는 확신할 수 없었다.
누군가 다시 한 번 내게 물었다.
-지금은 그때의 선택이 올바르다고 생각하는지?
지금 와서 생각해보면…
사실, 선택 자체에 정답이 있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그때의 선택지는 지금 생각해도 너무 어려운 선택지라고 생각하기 때문.
그렇기에 나는 적어도 내가 생각한 방향대로는 선택을 해왔다고 생각한다.
왜냐?
적어도 내가 생각하는 내 학창시절은 힘들고 어려웠다는 생각 보다는
‘즐거웠다’라는 생각이 우선적으로 들기 때문이 아닌가 싶다.
누군가 마지막으로 내게 물었다.
-학창시절로 돌아가도 그때와 똑같은 선택을 하겠는지?
무조건 그렇다…라고 한다면, 그건 분명 어느 정도는 거짓말 일 것이다.
생각이라는 건, 시간이 조금씩 지나며 바뀌기 마련.
그 당시 최선이라 생각한 선택이,
지금은 최선이 아닌 차선의 선택일 수도 있다고 ‘생각은’ 한다.
그러나 그건 ‘생각’일 뿐.
만약 지금의 상태로 내가 그 시절로 돌아간다면, 나는 분명 같은 선택을 할 것이라 생각한다.
왜냐?
아까 말 했듯,
그 당시의 내가 선택한 최선은,
지금 돌아봐도 ‘즐거웠다’라고 생각할 수 있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
2010년 3월 15일.
내가 눈을 뜨자마자 가장 먼저 확인한 건, 전날 선연화가 준 신발과 잠바였다.
확인하기 직전, 혹시나 이 모든 게 꿈은 아니었을까… 했지만.
신발과 잠바는 그 자리가 원래 자신의 자리였다는 듯
태연하게 어제 내가 던져둔 그대로 방구석에 자리를 잡고 있었다.
작게 한숨을 내쉬며 몸을 일으키자 어제 책상에 올려 뒀던 목걸이가 눈에 들어왔다.
어제 정은비에게 저녁식사를 초대 받고 집에 가는 겸해서
정은하에게 이 목걸이에 대한 질문을 하고 싶었는데
엉뚱하게 정은하의 아버지인 할리에게 목걸이에 대한 얘기를 듣고 말았다.
중재자와 관련된 이 목걸이에 대한 얘기만 들었다면
적어도 내 머릿속은 이렇게 복잡하지 않았을 터.
나 자신이 정은하에 의해서 만들어진 존재에, ‘이’ 세상 역시 정은하가 만들어 냈다는
누가 들어도 기가 막힐 얘기를 다시 떠올리니 두통이 밀려 올 지경이었다.
그러나 나는 밀려오는 두통을 참고 이 목걸이에 대한 선택을 해야만 한다.
최우선 적으로 이 목걸이를 할리에게 줄 것인지, 정은하에게 돌려줄 것인지.
할리는 분명 중재자의 표식이라는 이 목걸이가 ‘그곳’의 중재자인 정은비의 손에 들어가면
두 개로 나뉜 세상은 다시 하나의 시간을 가진 하나의 세상이 가지게 될 수 있다고 말했다.
그 와 동시에 원래 베타시간대의 존재했던 정은하 역시 ‘그쪽’세상으로 돌아 갈 테니
할리로서는 최선의 방법이라고 할 수도 있는 부분이라 생각은 한다.
정작 ‘그곳’의 중재자이자 당사자인 정은비는 그리 생각하지 않는 것 같았지만….
정은비는 내게 정은하의 설득을 원했다.
두 개의 세상을 만들어 냈으니,
그것을 다시 복구하는 것 또한 정은하라면 가능 할 거라는 것.
어찌 보면 할리와 정은비,
이 둘은 각자 최선의 방법을 내게 말한 것일 수도 있다고 생각은 한다.
하지만 그건, 그들에게만 최선일 뿐 나에게는 최악에 가까운 방법으로
내가 살고 있는 ‘이곳’을 철저하게 배제시키고 있다고 볼 수 있다.
자신들이 살아 온 베타시간대의 세상이 온전했던 하나의 세상이다. 라며
다시 하나의 세상으로 돌리려는 계획은 당연하게도 내가 살고 있는 알파시간대의 세상은
사라져도 어차피 ‘이쪽’은 만들어진 세계니까, 라고 말하는 것과 다를 게 없기 때문.
그렇기에 나는 적어도 목걸이를 할 리가 아닌,
정은하에게 돌려주는 게 정답이라고 생각을 정리했다.
물론 ‘그쪽’의 정은비의 ‘부탁’ 역시 별로 들어주고 싶은 생각은 없지만
우선은 정은하에게 말은 전해 줄 생각이다.
정은하가 어떤 답을 들려줄까…에 대한 개인적인 궁금증이 있기 때문.
그리고 할리와 정은하에게 목걸이를 주는 것 말고도
사실 내게는 하나의 선택지가 더 있다.
어찌 보면 이 선택지야 말로 내게 ‘최선’의 선택지라고 적어도 나는 생각한다.
하지만 이 선택에 대해서는 나의 욕심이라고 생각하는 부분이 있기에 이내 생각을 접은 뒤
방문을 열고 거실로 나오자
생각지도 못한 손님이 동생과 함께 거실소파에 앉아 TV를 보고 있었다.
「……?」
「…사람 얼굴을 보고 그런 표정을 짓는 건
조금…실례라고 생각하는데…?」
손님의 정체는 특유의 빨간색머리를 고수하고 있는 이슬비로,
이슬비는 방에서 나온 나를 발견하고
내 당황스러움이 얼굴에 그대로 반영이 됐다는 걸 눈치 챘다는 듯,
내 얼굴을 보고 불편함을 토로했다.
「…아니, 남의 집에 무단으로 출입하는 게
더 실례라고는 생각하는데….」
「무단출입이라니? 엄연히 허락을 받고 들어온 건데.」
부모님은 오늘 사촌의 결혼식 때문에 아침 일찍 나간다고 했다.
그렇다는 건…
「내가 모르는 사람한테 함부로 문 열어 주지 말라고 했지.」
「아냐! 분명히 오빠를 아는 사람이라고…했는데….」
철부지 동생은 이슬비를 바라보며 작게 중얼거렸고
이슬비는 동생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말했다.
「우리가 모르는 사이는 아니잖아?」
「…주말에 TV를 시청하러 집을 찾아 올 정도의 사이도 아니지.
…그보다 우리 집은 어떻게 알고 찾아왔냐.」
「은하에게 물어봤지, 월요일 날에 병문안을 갔었다고 들었거든.
그리고…내가 찾아 온 이유는…, 어느 정도는 알고 있지?」
의문의 손님에 대한 심문을 어느 정도 진행을 해본 나는,
더 이상의 질문은 의미가 없다 생각 한 뒤, 방으로 들어오라는 손짓을 보냈고
이슬비는 동생에게,
「잠시만… 재미없어도 조금만 혼자 TV보고 있어 줄래?
언니가 금방 돌아올게.」
라고 웃으며 말했고 동생 역시 웃으며 고개를 끄덕이자
자리에서 일어나 내 방으로 걸음을 옮겼다.
사실 이슬비의 갑작스런 방문은 내게 그리 나쁜 것만은 아니었다.
아무래도 어제 있었던 일은 이슬비에게 전해줘야 한다고 생각은 하고 있었기 때문.
그리고…이슬비가 방에 들어오는 짧은 찰나의 순간. 나는 한 가지 선택을 해야 했다.
첫 째. 이슬비에게 어제 할리가 전해준 모든 ‘사실’에 대하여 알려준다.
둘 째. 일부를 숨기고 이슬비가 납득을 할 정도의 ‘사실’만 알려준다.
사실 이 부분에 관해서는…, 따로 고민할 필요도 없이 나는 ‘후자’를 선택했다.
왜냐? 적어도 지금은 이슬비에게 태연하게 혹은 진지하게 ‘사실’을 전해줄 정도로
나는 할리의 말을 맹신하고 있지 않았다.
단순하게 말하자면, 내가 만들어진 존재라는 것을 인정하고 싶지 않았다.
「어땠어? 이번 베타시간대 여행은?」
「…최악 이었다고 생각해.」
이슬비는 마치 ‘내 말을 안 듣더니 꼴좋다’는 표정으로 말했다.
「네가 은하를 만나지 않았다면,
적어도 네 인생의 기억에 남을 최악의 여행을 하진 않았을 텐데.
…어떻게 생각해?」
「…‘그곳’에서 할리를 만났어.」
「할리…?」
「베타시간대의 중재자.」
굳이 베타시간대의 중재자인 정은비에 대해서는 딱히 얘기를 하지 않았다.
굳이 알아야 될 사실은 아닌 것 같기도 했고
무엇보다 할리를 중재자라고 단정을 지어 놓으면
얘기가 조금 더 쉽게 풀릴 거라 생각해 말을 했다.
「…이름은 모르고 있었는데, 그래서?」
「너는, 정은하가 내게 존재하는 미래의 시간의 흐름…,
…네가 말하는 ‘제3세계’에서 정은하가 내 위험을 보고 나를 베타시간대로 옮긴다고 했지?」
이슬비는 고개를 끄덕였다.
「…할리는 오히려 그 부분을 이용하고 있었어.」
「……?」
「정은하가 내 미래를 보고 있다는 걸…, 할리가 알고 있었다는 거야.」
「…그게 무슨 소리야? 자세하게 얘기해 봐.」
이슬비는 자신이 모르는 사실이 내 입에서 나오자
당황했다는 듯 눈이 커졌고 나는 말을 이어 갔다.
「…저번 주말과 어제, 내가 베타시간대의 세상으로 가게 된 원인인 ‘사고’는
우연한 사고가 아니라…, 할리가 계획한 ‘사고’였다는 소리야.
그 계획을 정은하가 미리 봤고… 그로인해 나는 베타시간대로 가게 된 거라는 말이지.」
「사고를 계획했다고…? 잠깐만…아니, 그보다… 이유는…?」
「…나를 만나고 싶었다는군.
정은하가 미리 내가 당하는 사고를 볼 것을 알고 있었기에
자신이 사고를 계획하고 실행하면,
내가 베타시간대에 반드시 올 거라고 생각을 했다고 말했어.」
「…조금 당황스러운 얘기네….」
이슬비는 내가 하는 말에 생각지도 못했다는 반응을 보였고
나는 책상위에 올려 논 목걸이를 손에 들었다.
「그리고…이 목걸이를 자신에게 가져다 줄 수 없냐고 물었어.」
「중재자의 표식을…? 어째서?」
「할리의 말에 의하면… 두 개로 나뉜 시간세상을
다시 하나의 시간세상으로 만드는데 이 목걸이가 꼭 필요하다고…
자신에게 줄 수 있겠냐고…, 내게 물었다.」
이슬비는 잠시 생각에 빠진 듯, 행동을 멈췄다.
그와 동시에 나는 이유모를 묘한 긴장감을 느껴야만 했다.
그 이유는, 이 이상 이슬비가 어제의 일에 대해서 물어온다면
태연하게 거짓말을 이어 나갈 자신이 없었고 그로 인해
이슬비의 침묵이 길어질수록 내 긴장감도 더욱 상승했다.
그리고 잠시 후, 이슬비는 내게 물었다.
「…그래서 너는 뭐라고 대답했는데…?」
「…생각할 시간을 달라고 했다.
하지만…적어도 나는, 목걸이를 정은하에게 돌려줄 생각이야.」
「…그래, 베타시간대의 중재자…, 이름이…할리라고 했지…?」
「…그래.」
「할리가 사고를 계획하고…, 그 사고를 미리 본 은하가 너를…」
이슬비는 머리로는 완벽하게 이해가 되지 않은 듯
혼잣말로 다시 한 번 나를 통해 들은 얘기를 정리하기 시작했고
이내 무엇인가 생각난 듯 내게 질문을 던졌다.
「잠깐만…, 그럼 누가 ‘이곳’에서 사고를 일으켰다는 거야?
할리의 사고계획은 말 그대로 계획일 뿐이고,
베타시간대의 사람이 계획을 해봐야 ‘이곳’에서는 그 계획을 실행할 수가 없을 텐데…?」
나는 순간 말문이 막혔다.
이슬비가 묻고자 하는 할리의 계획을 이행한 것은 다름 아닌 닉 선생으로,
베타시간대의 시간의 흐름만을 가지고 있는 닉 선생은 이슬비의 도움 없이
선연화의 힘만으로 알파시간대와 베타시간대를 오갈 수 있고
닉 선생이 알파시간대와 베타시간대를 둘 다 오갈 수 있다는 사실을 이슬비가 알게 되면
이슬비가 알고 있는 사실과, 지금 내가 말하고 있는 사실에는 분명 혼선이 생길 수밖에 없다.
굳이 이 사실을 이슬비에게 알리고 싶지 않은 나는 말을 돌렸다.
「…딱히 물어보지 않아 모르겠는데….
…어제 당시의 나는, 혼란스러움…그 자체였다고.」
급하게 지어낸 말이 다행히 어느 정도 신빙성이 있었는지
이슬비는 더 이상 묻지 않고 다시 혼자 생각에 잠겼다.
그리고 나 역시 잠시 생각에 빠졌다.
분명…이 모든 사실을 정은하는 알고 있을 것이라 생각한다.
알파시간대의 모든 시간의 흐름을 중재하고 있다는 정은하는
닉 선생이 알파시간대의 세상과 베타시간대의 세상을 마음대로 오가고 있다는 것을
모를 리가 없기 때문.
이슬비가 이 사실을 모른다는 건, 정은하가 말을 하지 않았다는 소리이기에
나 역시 더 이상의 말은 할 생각이 없었고
이슬비는 마침내 체념 했다는 듯 말을 했다.
「일단…, 너랑 내가 둘이서 고민 할 문제는 아닌 거 같고….
은하를 만나봐야겠네.」
그 말을 끝으로 서둘러 나갈 채비를 마친 이슬비가 내 방문을 열기 직전,
내 손에 쥐어진 목걸이를 보고 물어 왔다.
「지금 바로 은하네 집에 갈 생각인데…, 목걸이 대신 전해줄까?」
「…아니, 내가 직접 전해 줄게.」
이슬비는 어느 정도는 예상 했다는 듯, 고개를 끄덕이며 방문을 열고 나갔다.
이슬비가 정은하를 만나러 간다면
목걸이는 내일 전해줘야겠다고 생각했고 목걸이를 바지 주머니에 넣고 거실로 나오자
이슬비가 집을 나가는 모습을 보며 울상을 짓고 있는 동생이 보였고
나는 동생의 머리를 쓰다듬어 주며 말했다.
「…할 것도 없는데 공원이나 갈까?」
「진짜? 갈래! 갈래!」